볼을 팔 밑에 끼고 잔디를 가로질러 걸을 때, 나는 소년처럼 보였다. 잘 정돈된 가르마와, 깔끔한 레드 앤 화이트 셔츠와, 가슴에는 황금 대포가 있었다. 나는 소년 시절 꿈 속의 서른이 훌쩍 넘은 남자였다. 위건을 상대로 한 잉글랜드 FA컵 4강전, 웸블리에는 8만 2천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 5만명이 우리를 응원했다. 우승에 굶주린 그들은 목소리가 컸다. 그들은 9년 동안 우승이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클럽들 중 하나로 생각되는 클럽에게는 영겁과 같은 시간이다. 그들은 가장 충성스러운 팬들, 구너들을 가지고 있다. 이상하고 생각지 못했던 길을 돌아서, 나는 탑 클럽 북런던 아스날에 당도했다.
다리는 똑바로 선 채로 나는 숙여서 볼을 페널티 지점에 볼을 놓았다. 나는 키퍼를 재빨리 쳐다보았다. 나는 이미 어디로 찰지 정했었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했다. 그 순간이 여기있다. 여기, 라틴어로 된 클럽의 모토인: Victoria Concordia Crescit, 화합을 통한 승리 한 가운데에 내가 있다. 나는 내 스스로 희미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스날에서 30분도 뛰지 않았다. 나는 스완지를 상대로 데뷔해서 7분을 뛰었고, 이제 경기가 결정적이던 연장전에 교체 투입되었다. 축구 선수의 인생에서 15분은 내 인생 스토리를 바꾸었다.
나는 내 에이전트인 (94월드컵 3위 멤버이기도 한) 로저 융에게 전화를 받았다. "프리미어 리그 클럽으로 임대갈래?" "아니" "아스날로 임대갈래?" "예쓰!"
이적 시장 마지막 날이었고 루머가 새 나갔다. 훈련 시설에는 많은 서포터들, 기자들, 미디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히스로에 도착해서 우리는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도록 들로 달리고 차를 바꿔탔다.
모두가 나에게 친절했다. 그리고 나는 내 이름과 29번이 적힌 훈련복을 얻었다. 나는 의무적인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팀 닥터에게 보내졌다. 의사가 테스트를 하는 동안 나는 카페에 앉아 엷은 잉글랜드 식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프로 축구 선수의 일반인적인 복장인 클럽의 컬러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말은 티셔츠와 반바지와 플립플랍이라는 말이다. 선수들이 오늘의 훈련을 위해 그 길을 지나갔다. 그들 중 몇몇은 프렌치였기에 나는 그들을 알았고 잠깐 얘기를 나눴다.
의사가 나를 불렀고 나는 X레이 시험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무언가 잘못됐다. 우리는 훈련 시설로 돌아갔다. 나는 TV 오디션 프로에 나온 나를 떠올렸다. 아스날 옷을 입은 심사위원들 앞에 서 있었고 X레이 사진이라는 CD를 들고 나쁜 자세로 서 있는 것이다. 내 앞에는 팀 닥터들, 디렉터들, 그리고 아스날을 20년 동안 철권 통치하고 있는 강력한 매니저 아슨 벵거가 앉아있었다. 의사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아스날은 너에게 큰 껀이고 희망을 갖고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등 문제가 너무 안좋다고 말했다. 척추 골절이 있었고 나는 4-6주 아웃될 것이었다. 나는 충격 받았고 실망했다. 하지만 이해했다. X레이 사진이라는 증거가 명백한데 소년 시절 꿈이나 주장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이해했다. 나는 '부상 당한거면 어쩔수 없죠'라고 말했다. 실은 나는 미친듯이 화가 났다.
방 안에는 침묵이 있었다. 벵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동료들이 내 부상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혼자 생각했다. 나는 그가 말하길 기다렸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적 시장은 몇 시간 후면 닫힌다. 대체를 구하기 불가능하다. 너를 취하거나 아니면 아무도 없는 거다." 다른 사람들이 놀라서 그 빅 보스를 쳐다봤다. 아무도 그가 어떤 말을 이어나갈지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말이 법이라는 걸 안다. 그것은 그가 그의 결정을 나머지 다른 스태프들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벵거는 결정했다. "너는 남아서 치료하고 훈련한다. 나는 너가 핏하면 쓸 것이다."
써커스가 시작되었다. 나는 실시간으로 이벤트를 따라갈 수 있었다. 미디어들은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친구들이 연락하기 시작했다. 4시간 시차에도, 그리고 러시아 축협이 문을 닫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적은 성사되었다. 계약서는 마지막 순간에 사인되었다. 나는 모두가 자고 있을 때 스파르탁 모스코우에서 출발해서 그 다음날 클럽을 떠난 것이다. 나는 몇 개의 굿럭 텍스트를 받았지만, 그 외에는 그 순간 나에게 러시아는 끝이었다.
나는 잉글랜드에서 미친 듯이 훈련했다. 내가 잘하는 것이다. 하루는 짐에 벵거가 들렀다. 그가 방에 들어오면 모두는 정지된다. 마치 그들이 신호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는 그 정도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다. 나는 바이크를 부술 것처럼 계속 페달을 밟았다. 벵거는 프랑스인 특유의 약간 캐주얼하고 그렇지만 심각한 눈길로 나를 지켜봤다. 우리는 잠깐의 얘기를 나눴다. 나는 아직 볼을 차진 않았지만 리더에게 신뢰를 쌓고 있다고 느꼈다. 5주간의 힘든 회복후 부상이 회복되었는지 불확실했지만 나는 갑자기 피치에 복귀했다.
클럽이 우승한 지 굉장히 오래되었고 영국의 수도는 타블로이드가 감독인것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4강에서 우리는 위건 보다 우위라고 생각되었지만 정규 시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시간은 흘렀고, 경기를 끝내지 못했다. 나는 아무런 개인적인 기대 없이 벤치에 앉아있었다. 7분이 남았고 나는 갑자기 지친 아론 람지를 대신해서 교체 투입되었다.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이제 결승 진출 한 팀이 승부차기로 결정된다. 간단하지만 잔인한 끝내기 방법이다. 지금부터는 경기에 대한 이해, 전술, 신체적인 용맹함은 소용이 없다. 지금부터는 오직 긴장과 기회에서 오는 혼란스러운 소동만 존재한다. 페널티 슛아웃은 축구의 왕좌이다. 그리고 항상 희생양이다. 득점해야만 한다. 모든 압박은 키커에게 있다.
나는 벵거가 프렌치로 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다. "킴, 페널티 찰 거야?" "네, 기꺼이요." "좋아. 너는 두 번째다" 나는 어디로 찰지 진작에 결정했다. 내가 지점으로 혼자 걸어갈 때, 경기장에는 내 고향인 샌드비켄 인구의 세배가 되는 관중이 있었다. 나는 미소를 억눌러야 했다. 피치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길은 길었다. 나는 편안했다 - 아마도 기뻤는지도 모른다. 나는 볼을 지점에 놓았다. 이제 나는 뒤로 물러서서 볼과의 알맞은 거리를 찾고 달려와서 볼을 세게 차서 왼쪽 높은 곳으로 보내면 됐다. 내가 늘 하던 것들, 내가 아는 것, 그리고 항상 해냈던 것들이었다. 나는 이전에 수 천 번 그것을 해왔다. 그리고 아무런 긴장감이 없었다. 키퍼는 내가 차기로 한 방향과 반대쪽으로 먼저 몸을 날렸다.
유투브로 그 페널티를 보면 감정들이 돌아온다. 그 침착함과 기쁨이. 하지만 볼이 향한 방향에 놀랐다. 볼은 왼쪽 낮은 곳으로 향했다. 내가 기억했던 것과 반대로 말이다. 왼쪽 높은 곳으로 차기로 결정했으나, 사실 오른쪽 아래로 찼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헷갈렸지만 볼은 네트에 들어갔다. 우리는 결승에서도 이겨서 런던의 거리에서 20만명 앞에서 축하를 받았다. 비록 내 공헌은 클럽의 120년 역사에서 작았겠지만, 나에게는 하이라이트였다. 내 인생의 가장 위대했던 15분이었다. 그리고 내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내가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 어디에 있었던가? 무아지경, 쇼크, 극도의 흥분, 혼수상태, 긴장, 원하는대로 아무렇게나 불러도 좋다. 내가 확실히 아는 단 한 가지는 스포츠와 축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그것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그 페널티가 계속되어서 볼이 네트에 들어간 이상, 내 경험은 사실이다.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