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수영은 무서운 것이다. 뻗으면 발이 닿는 수영장이 아닌 곳에서 도착할 때까지 헤엄치지 않으면 마칠 수 없는 망망대해를 헤어쳐나간다는 점에서 이번 바다 수영 대회는 첫 도전 그 이상의 의의가 있었다. 한창 수영에 재미를 붙였던 수력 4개월차, 베트남에는 실내 수영장이 거의 없고 그런 까닭에 실내 수영 대회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윽고 바다 수영으로 눈을 돌렸을 때, 3개월 뒤 내가 살고 있는 다낭 근처에 위치한 - 라고 해도 차로 3시간+배로 1시간 걸리는 Ly Son 섬에서 오픈워터 바다수영 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령이는 걱정했지만, 걱정해준 덕분에 천천히 대회를 준비했다. 주 2-3회 수영장을 가고, 헬스장 가서 수영을 위한 PT도 주 2회 받고, 주말에는 이틀 내내 집 근처 바닷가에 가서 연습을 했다. 수 천 번 짠물을 마셔가며 바다 속에서 뒹굴렀고 접해본 적 없는 파도와 조류에 휘말리면서 진짜 자연이란 어떤 것인지 경험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은 그 공간 속에서, 심지어 내가 지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건지 허우적 거리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는 그 속에서 어딘가로 헤쳐나간다는 것 자체가 큰 공포로 다가왔다. 바다 수영은 기술 싸움이 아니라 이걸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과 그를 뒷받쳐주는 체력 싸움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은 덕분에 좌절하기보다는 일단은 계속 해보기로 했다. 바다 수영 시간도 늘려갔고, 주중에 가는 수영도 인터벌보다는 장거리 수영에 최적화하도록 연습량을 조절했다. 마침내 대회를 한달 정도 앞둔 5월, 1.6km 정도는 쉬지 않고 안정적으로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을 때, 1km 대회는 너무 쉽지 않을까, 이참에 2km부터 도전해볼까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동급생 2가 명작이라고 해도 동급생 1을 안 해볼 수 없는 것처럼,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연습하던 페이스대로만 수영한다면 30분 이내 완주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어느새 '도전' 자체에 의의를 두려고 했던 나는 '완주'라는 목표를 넘어서서 '기록'이라는 오만함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식의 전개가 대부분 그러하듯, 실전은 너무나 달랐다. 300명이 넘는 참가자가 동시에 출발해서 초반 100m까지는 제대로 수영이 불가능했다. 앞 사람의 발길질에 치이고,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낸 물장구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외곽으로 돌아서 서둘러 그들을 제껴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뻗어나갔고, 결국 300m 지점에 다달았을 때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서 그냥 포기하고 싶었다. 오전 7시에 시작했지만 이미 37도를 육박하고 있었고, 수온은 32도에 다달아서 쉽게 지칠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연습이고 1.6km의 연습 실력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이 없었다. 이게 진짜 오픈워터 대회였다.
어째서인지 나는 폐에 물이 차서 폐수종으로 떠난 냔런이가 떠올랐다. 무거운 바다 속에 혼자 앞으로 뻗어나가면서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손을 뻗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내 주변을 둘러싼 푸른 바다 속에서 온전히 나 혼자 여기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만큼 외로웠다. 심박수는 170까지 치솟았고, 30분 이내 들어오겠다던 목표는 깨져버린지 오래였다. Ly Son섬의 아름다운 경관과 산호초들을 구경하면서 수영하겠다던 낭만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나 혼자 나아가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럴 뿐이었다.
마침내 골인 지점에 다달았을 때, 내게 찾아온 것은 성취감이 아니라 실망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고, 기록도 연습했던 것만큼 나오지도 못 했다. 그런 까닭에 세레모니할 생각도 미처하지 못 한 채 성난 표정으로 골인하는 것이 고스란히 사진에 찍혀버렸다. 하지만 149명의 참가중 내가 35번째로 들어왔고 성인 남성 중에서는 10번째라는 (나이가 깡패라서 어린 친구들은 절대 못 이긴다) 결과를 듣고 나서야 첫 도전치고는 제법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이 들었다. 2km 경기에 도전장을 던진 친구들은 나에게 '1km는 너무 짧어, 초등학생 애들이나 하는 거야, 나도 바다수영은 처음이지만 2km정도 해야지!' 비웃었지만 1명 빼고 그들은 모조리 탈락을 했다. 거봐,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중학교를 갈 수 있거야, 쨔사.
다음 경기는 3주 뒤 냐짱이다. 할 수 있다,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내 인생이 늘 그러하듯 -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이다. 한 번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