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련의 책冊수다 _ #서랍에저녁을넣어두었다 #한강 _ "우리 생生이 잔잔히 따스하기를" _ 여기, 빛의 경계에 선 한 여자가 울고 있다. 빛의 이면 때문이 아니라 형형한 빛 때문에. 소멸하는 것보다 슬픈 것이 있다면 부득이한 생을 붙들고 걸어가는 일일지 모른다. 한바탕 꿈이 아니라면 차라리 더 고요할 것을. 나락은 어둠이 아닌 빛 가운데 더 짙고 위태로웠다. 선혈이 곳곳에 흘렀다. 흩어진 단어마다 피 냄새가 났다. 한 여자의 지독한 자기 해체 장면이 애써 끊어낸 것들의 무덤으로 나를 옮겨 놓았다. 붉고 뜨거운 언어가 흥건하다 쓸려 나간 자리에 오한처럼 자아가 남았다. ㅡ요동 치는 것은 어김없이 고통과 끈질기게 닿아 있음을 이미 배운 여자가, 붉은 것을 다 흘려낸 채 숨죽이며 투명으로.ㅡ 위태로운 두 여자를 본다. 저마다 치열했으나 나는 여기 없었고, 순응할 수 없는 것 앞에 끝없이 고통을 드러내는 그녀는 붉게 박동하고 있었다. 문득 생존生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살아지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 같던 때가 있다. 고백하자면 매일 스스로 장사葬事를 치르며 여전히, 산다. 수혜자 없는 생일지라도 붙들어야 했다. 긴 시간 골방 한편에서 세네카로부터 얻은 지혜란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체념을 택하는 법뿐이었다. 고작 체념이 위로가 되더란 말을 할 때면 불쑥 뜨거워지는 나를 어쩌지 못 했다. '지극히 보통'의 범주란 누구를 대상으로 어디에서 어디까지 그어진 축복의 경계인 걸까. 삶의 타협 지점에서 나는 마땅히 여겨 포기할 수 없던 것들 ㅡ그래서 실은 고통이던 것들ㅡ 을 떠나보냈다. 존재하기 위해 상처의 원인과 맞서야겠지만 때론 상처를 내려놓는 일이 나를 살리는 길이 되기도 한다. 살아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있음으로 진정 산 것이기에, 매일 나는 나를 버렸으나 또한 아직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고통에는 출처가 없다. 들여다볼 수 없지만 우린 이미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 잘 알고 있기도 하다. 어둠의 표출이 금기시된 세상에서 역으로 우린 얼마나 오랜 어둠 속에 고통받아야 했나. 지금 그녀는 자신의 언어를 피 흘림으로 홀로 일어서는 중이다. 인류를 대신해 외롭게 사투해야 할 작가의 생이기에 기꺼이 상처를 마주하는 그녀에게 고맙다. 그녀가 저녁을 서랍에 옮긴다. 밤으로 쇠잔해지는 것이 아니라 해(太陽)로 떠오르기 위해. 생의 의지는 종종 척박한 곳에서 벅차게 움트곤 한다. 마음을 건드린 그 저녁의 미풍을 간직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밤으로 가는 길목을 조용히 가둔 것일까. 무엇이건 그것이 그녀의 진심이라 믿고 싶다. 실은 고통이 아닌 빛을 노래하고 있었다고. 얼음은 이내 녹을 것이다. 창 유리를 깨뜨리지 않고 조금씩, 잔잔한 온기로. 그러다 무심한 바람 한 줄기에 문득 가슴 일렁여 고인 물을 밀어내고 빛으로 내부를 가득 데워 낼 것이기에, 우리는 긴 겨울을 버틸 것이다. _ (*)......126쪽 [회상]에서 _ #초록抄錄 1)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파란돌> 전문 _ #초록抄錄 2) 유리창, 얼음의 종이를 통과해 조용한 저녁이 흘러든다 붉은 것 없이 저무는 저녁 앞집 마당 나목에 매놓은 빨랫줄에서 감색 학생 코트가 이따금 펄럭인다 (이런 저녁 내 심장은 서랍 속에 있고) 유리창, 침묵하는 얼음의 백지 입술을 열었다가 나는 단단한 밀봉을 배운다 -<저녁의 소묘 3> 전문 _ #시집 #한강시집 #북스타그램 #글스타그램 #문학과지성사 #책 #책속의한줄 #밑줄 #서이련의책수다 #서이련 #텍스트와시선 #책수다 #poetry #poem #bookstagram #HanKang #koreanliteratur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