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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혹은 h
2026-06-04
오후 3:32
오늘 한 번도 안 웃었어.
잘못먹은 것도 없는데 알러지가 잔뜩 올라왔어.
얼마 전에 방어기제 검사를 했는데 나는 해리가 아주 높대.
알고 있었어서 놀라진 않았어.
이제야 얼굴들을 떠올려.
작년 이맘때쯤에 함께 했던 얼굴을 떠올리다가 자연스럽게 그 다음 얼굴도 떠올리지.
다음으로 가야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나는 아마 계속 알고 싶어 했던 것 같아.
나 스스로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서 관계 속에서 나의 의미를 찾고 확인받는 데 혈안이었을 수도.
없다가 있으면 얼마나 소중한지까지는 잘 몰라도, 있다가 없으면 알게 된다는 건 남은 사람이나, 떠나기로 한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일 거야.
이제는 그냥 나 스스로를 이 정도로 인정하기로 했어.
딱히 강하지도, 대단하게 약하지도 않고 가끔 고꾸라지는 일이 있은 후에는 대단하게 다시 서 있지 못한대도, 뭐 그 자리에 엎어져 있지는 않으니까.
아마 너나 나나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든, 만났을 거야.
우리는 영리하게도 부단히 늘 덜 상처받으려고 노력했으니까, 이 다음은 더 괜찮은 걸 하게 될 거야.
잊고 있던 얼굴을 떠올려.
너도 그렇다면 좋겠다.
사실 모든 걸 기억하고 있어.
내일은 새 기억이 떠올라 한 번은 웃었으면 좋겠다.
너랑 헤어지고 카톡 다 읽어봤다 내가 그 얘기 했던가
너 사진을 이제서야 제대로 봐
구루프에 머리카락도 빼서 주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거야
꼭 잘 지내
혼자 산책하니 좋더라 같이 와보고 싶었는데 한 번을 못왔네
너무한 것들은 젊어서 다 해봐서 다행이다
너무 사랑하던지 너무 이별이 잦았던지 너무했던지 너무 울었던지 너무 혼자였던지 너무 함께였던지 너무 마셨던지 너무 아팠던지 뭐 많다 뒤에 뭘 갖다붙여도 다 해봤던 짓이다
그렇게 과격한 건 그 때 다 해봐서 다행이다 더 큰 일이 닥쳐올 것은 이제 두렵지 않다 그만큼의 너무는 돌아오지 않을테니까
젊어서 다 해봐서 다행이다 한 톨이라도 힘이 더 있을 때 다 해봐서 다행이다
꿈을 너무 많이 꾼다 네가 보고싶지는 않다 이것은 더 막연한 그리움이다 아마 나는 우리가 그리운 것 같다
출근길에 너 생각하다가 지하철 놓칠 뻔 했다
자꾸 꿈에 너가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면 뭐가 진짜인지 헷갈려서 출근길이 꿈 같을 때도 있다
이맘때처럼 출근이 필요했던 때가 또 언제 있었나싶다 이걸 해내야한다 여기가 현실이다
니 사진을 계속 들여다봐야지만 지금이 진짜인 걸 안다 이렇게 언제까지 버틸란지 모르겠다 니가 나를 책임져라
너는 새사랑 할라거든 흔적이나 지우고 시작하길
디시 엎어지고 싶다 그것도 아니면 당장이라도 사랑하고 싶다 나는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혼자서 나를 긍정할 수 없음을 알았다
당장은 이러나 저러나 힘이 없어서 엎어져있겠지
온 인생에 걸쳐 구려지는 것만 같다 뭘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딱히 보고싶은 사람도 없다 혼자서 말에 질식하지 않을 정도로만 쓰고 조용히 있고싶다
수명아 난 있잖아 걔랑도 가족이 되고 싶었고 쟤랑도 가족이 싶었을걸
수명아 나는 아마 내 과거가 그저 잘 버텨낸, 그냥 대견한 한 사람으로서 긍정되며, 그 치졸하고 엉망진창인 것들이 그저 과거로만, 혹은 서사로만 여겨지고 그리하여 하나의 나라는 존재만, 내가 앞으로 기억하고 싶은 나라는 사람만이 남길 바랐던 것 같아
좋은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안좋은 것만 열심히 씹고 삼키고 소화시켜서 똥으로 만드는 것 같다
싸지도 못하고 그냥 쌓아만 둔다 그러다 낯이 노래져서 죽을 날만 기다릴거다
오늘은 스무마디도 안했다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너도 내가 사랑할 때나 특별하지
너 만나서 좋았다
이런 말은 너무 뻔한가
다른 사람 옆에 서서 너네 집에 두고 온 화분들을 생각한다
왜 자꾸 걔네는 죽었을까 좀 더 잘했다면 달랐을까
아마 그 집은 해가 잘 들지 않아서 비슷했을 것 같다
찾아오던 고양이는 그 이후로도 찾아왔을까
너는 이제는 비로소 모든 것을 버렸을까
살다가 한 번 보면 좋을 것도 같은데 그립다는 건 아니다 너는 나를 너무 많이 울렸다
나는 너 앞에서 왜그렇게나 죄인이 되어야했던지
너가 궁금해했던걸 이제 와서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래 엄마는 너를 싫어했다
허구한 날 애가 집에 들어오면서 울고, 안절부절해하는데 어떤 엄마가 좋아라고 하겠니
그래도 나는 너 만나서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씨가 돌아왔다
너와 이별하고 나서 너에 대해서 쓰지 않았다 별로 쓰고 싶은 게 없었다 괜히 써봐야 또렷해지고 하마터면 그리워질 수도 있는 것들은 부러 잊어야함이다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했던 기억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명확하게 과거형이다
그래도 있잖아
너 만나서 좋았다 그냥 그렇다고
소- 녀의 기도
10주기다 아직도 아빠 생각하면 운다 원망도 한다
이제 딱히 비밀도 아니다 이 짓은 환갑 먹어도 할 것 같다
아빠 나이는 마흔 셋에 멈춰 있는데 나만 열심히 나이를 먹는다 그냥 그런 생각하면 좀 슬퍼진다
아마 나는 평생에 결쳐 대견한 사람이 되고싶었던 것 같다 봇대가 많이 아프다 얘가 죽으면 그때는 아빠가 보살펴라 그만큼은 해라 엄마랑 먹으려고 체리를 한 팩 샀다 나는 이제 딸기도 살 수 있고 체리도 살 수 있고 콘서트도 보고 염병 다 떨 수 있을만큼 번다 많이는 아닌데 그만큼 벌어 엄마는 전라도서 나고 자랐으면서 만두를 그렇게 잘 빚어 그거 다 아빠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다시 볼 때는 그거 다 알아줘 미안하다고 싹싹 빌고 꼭 그렇게 해 쓰다보니 원망같네 미안 아직도 그래 근데 얘기했다시피 그거 환갑되도 그럴거야 아빠는 환갑 안해봤지 나는 엄마 성대하게 그거 시킬거고 나도 할거야 이 멍청이야
가을 금빛 고양이
운전 중에 고양이 사체를 보면 진아 앞만 봐 옆에 보지 말어 하고 지나가며 한 손으로는 주머니나 운전석 컵홀더를 부지런히 뒤져 찾아낸 동전을 창을 내려 던져주는 사람을 안다
그때마다 나는 지독하게 앞만 봤고 그 애는 다음번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중얼거리고 나는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뭐가 크게 다르려나 생각만 하고 동전은 속도 없이 경쾌하게 떨어졌다
아빠를 보러 가다가 고양이 사체를 봤다 아무런 주의를 받지 못한 날이었다 어금니를 힘을 주어 두 번 물었다
엄마 가을은 유독 하늘이고 햇볕이고 노오란색이고 구름은 조각 같다 알아? 이렇게 띵 띵 띵 구름들이 찍어둔 것처럼 있어
했더니 엄마는 말이 없다가 창밖을 슬쩍 살피고
그러게 이유가 있으려나
오면 어영부영 있다가 별 거 없지 하고 가면서 안 오면 찝찝하고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고 했다
나는 머쓱해져 괜히 슬몃 웃으며 올 때마다 같은 소리냐고 대답하고 말았다
마음이고 위로고 체력전이라고 잘만 떠들어대면서 정작 내 마음이 피로할 때 속에서 나를 붙드는 걸 못하는 것은 아주 우스운 일이다
나야말로 더 아빠에게 할 말이 없다 햇수로 7년 동안 술 먹고 길바닥을 껴안으며 씨부린 것들만 합해도 300쪽 정도는 나올 것 같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아마도 그래서 괜히 오래 들여다봤다
삼십 센티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좁은 정육면체의 아빠의 방에는 노란 조화가 테를 둘러 장식되어있고 자식 셋 증명사진과 어릴 적 단란했던 사진, 평생 내용을 모를 엄마의 편지와 그 언젠가 아빠가 썼던 안경과 그 뒤로 아빠가 고요하게 담겨있다 분명 죽기 전에 쓰던 안경은 다른 것이었는데 늘 그 안경은 어디 갔을지가 궁금했다
나이 먹어가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부재는 슬플 때 괴로울 때 혹은 원망하고 싶을 때가 아니라 자랑하고 싶을 때 가장 크게 마음에 박힌다는 것이다
가령이면 대학 합격증을 오려서 왕복 네 시간을 버스 타고 아빠 앞에 붙여뒀을 때, 졸업작품을 멋지게 해냈을 때나 좋은 직장을 얻었을 때, 혹은 내가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 그럴 때
올해 가을은 유독 노란 금빛이고 오늘 사다 꽂아둔 조화도 노랗고 당신이 데려왔던 금빛 고양이가 그렇게 미웠는데 우리가 이제 하루 종일 끌어안고 있는다는 것과 건강하려고 노력한다는 것 무엇보다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오늘의 자랑이다
그러니 언젠가 만나면 자랑스럽다고 해라 아빠가 놓친 자랑을 오백개쯤 늘어놓겠다
10주기
보고싶어 망할 인간
29.9
일 년간 이어진 일련의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소감을 남길 여력은 남아 있지 않다. 늘 그래왔듯이 좋거나, 나빴다.
언제부턴가 나를 지배하는 생각은 이쯤 되니 별로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 힘은 이미 그 전에 모두 써버린 것 같다. 늙은 게 아니라 낡아버린 것 같다. 그냥 매해 빨아 쓰고, 헤지거나 찢어진대도 호들갑 떨지 않고 깁고, 또 깁고, 다시 기워 쓰고. 느는 거라곤 차분함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내 읽어온 삶에서 하나같이 말하던 어른들이 결국 이 정도라는 걸 다시금 깨닫고 나면, 뭐랄까. 그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다. 오히려 조금 우스워 보이거나 위로가 되기까지 한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다는 것은 이제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된다는, 어떤 명패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그랬다.
이틀을 남겨둔 마음에서는 이제 과거를 더듬을 게 아니라 앞으로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졌다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하는 수밖에.
기억하고, 용서하고, 뚫고 지나가야 한다. 또다시 해야 한다. 그냥 해야 한다.
치열하게 살기 싫으면 루틴을 유지하며 그냥 하는 수밖에 없다. 지겹지만, 그게 나와의 합의점이다.
좋은 어른에 대해서 또 생각한다. 그것도 지겹다.
근데 웃긴 건, 그러다 보면 또 뭐가 비슷해지는 것도 같다는 거다.
p.s. 너랑 함께한 모든 시간을 완벽하게 긍정해
어디서든 잘 지내.
가을 잘 놀았다 꺼억
님들 잘 지내시죠? 감기 조심하시고 가끔 안부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