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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yooo
요즘에는 나름 열심히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또 뭐가 부족해질까 언제 불행해질까 초조해하는 습관이 있다. 불행 속에 사는 게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던 시간이 길어서 인지. 집을 나오고 나서는 난 굉장히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불행한 거였나. 불행 1에서 불행 2로 간 거였나. 그런 건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지만. 적어도 난 우울하고 미래가 없고 자유의지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만 했던 것에서 벗어났으니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힘들어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나에게 무논리하게 짜증까지 내고 뭐... 불행이 내 탓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할아버지의 빈자리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앞으로 어떤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집에서 나가려면 한참 먼 것 같은데 말이다.
엄마와 주말을 보냈다. 엄마는 등산에 가거나 모임에 가고, 나는 데이트를 하거나 다른 약속에 가면서 서로 주말을 함께 보내는 일이 드물었는데 모처럼 둘이 밥을 해먹고 외식도 했다. 영화까지 보았으면 좋았으련만 내가 <허스토리>를 본 까닭에. 별것 아닌 일상을 기록하는 것은 이것이 별것 아닌 것이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4년 전에 집에서 도망쳤다. 아빠와 오빠로부터 도망쳤다. 그전까지 엄마와 나의 주말은 가족을 위해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상을 피고, 설거지를 하고. 담배냄새가 나는 집에서 아빠와 오빠의 눈치를 보고. 그런 시간들이었다. 엄마와 주말 저녁에 라볶이 하나 두고 나눠먹고 컵빙수를 사서 녹기 전에 먹자고 벤치에 나란히 앉을 시간을 얻기까지 몇십 년이 걸린 걸까. 엄마가 나를 낳고 기른 건 집에서 나오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수하고 얼굴을 스킨으로 닦으면서 엄마와 주말을 함께 보내서 좋다고 말했고, 엄마도 그렇다고 했다.
엄마와 둘이 한 방에서 지내게 되면서 서로의 비밀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서로 적당히 모른체 하는 물품들이 나란히 놓여있다. 엄마는 에쎄 수를 피우고 나는 정신과 약을 먹는다. 도망친 집의 흔적을 서로 다르게 몸에서 녹여내고 있지만 그 또한 공유하고 있다. 나는 엄마가 담배 태우는 게 싫지만, 엄마도 내가 정신과 약을 먹는 게 마음이 안 좋지만, 서로의 생존 방식이겠거니 하고 둔다. 우리 둘다 이걸 피우지 않고 먹지 않을 때가 오면 정말 집을 잊는 게 될까?
더이상 젊은 사람이 아니라는 이상한 생각에 죽음이 두려워지고 무력한 나날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자학해왔다. 어떤, 생각이랄 것 없이 그냥 쏟아지는 대로. 그게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올바르게 사는 방법이라고 믿었는데, 이제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공황장애를 통과했고(그것을 핑계 삼아 앞으로 무기력하게 지내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시기는 나의 많은 것들을 죽였다. 내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과 가능성, 앞으로 제대로 살 수 있을 희망에 대한 가능성.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자책감을 남겼다. 하지만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나는 그것을 꾸역꾸역 통과했고,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런 저런 증상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공황장애 이전부터, 지금도 나는 참 겁이 많다. 그걸 몸으로 받아낸 것이 공황장애였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혼자 책임지는 게 두려워서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가고싶던 문창과를 가지 않았고, 부모님이 좋아하고 나도 좋다고 생각하는 안정적인 대학교에 갔다. 그리고 이곳은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는 감각으로 5년 반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아주 깊게 원하던 대학원에 가지는 못했지만, 붙었을 때 아주 감사한 대학원에 내가 원하는 전공으로 재학 중이다. 아주 길게 돌아온 느낌이 들었고, 마침내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지 몰라서 설렜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불안들이 버티고 있었다. 나는 기초가 많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영화를 많이 보지도, 알지도, 찍지도 못 했다. 내가 많이 한 것은 그저 ‘열심히 열망하기' 뿐이었다. 방학 동안 열심히 기초를 공부해서 다음 학기엔 더 나은 내가 되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한 학기를 보냈지만 방학 동안 용돈 정도를 벌고 무기력하게 누워서 게임만 했다. 나는 여전히 겁만 많고 열망만 많이 했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가는 이 무렵에, 제발 이제 벗어나자고, 속에서 누군가 나를 강하게 두드렸다. 이제 그만 나가자고. 이 지긋지긋한 겁에서 탈출하자고. 그래서 지난 학기의 노트를 폈다. 복습을 하고 있다.
겁을 주는 것들이 많다. 내가 겁을 먹는 것들이 많기도 하지만. 내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기획실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을까? 29세 이하의 직원을 뽑는다는 몇 공고들을 보았다. 내가 졸업 후 1년 이내에 취업할 수 있을까. 겁이 여전히 나를 조여온다. 그런데 이것은, 삶의 감각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오늘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했다. 이것은 성공의 감각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성공한 상태에 대한 감각. 자기계발서에서 보던 어떤 성공한 삶에서 미끄러져내릴까봐 고민하는 것. 여전히 무섭고 계속 무섭겠지만 조금씩 그 무게를 덜어나갈 것이다. 삶의 감각은 내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잘'은 ‘잘난'의 ‘잘'이 아니고, ‘잘 자'의 ‘잘'이다. 내가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 내가 무언가를 하면서 내 팔다리가 살아있구나, 하는 기분을 느껴? 이불을 정리하고 세수를 하면서 무언가 개운한 기분이 들어? 우울하고 힘들지만 여전히 무언가 붙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 그것을 붙잡자. 그런 감각. 그러니까 우선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공부를 하고,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자. 부족한 건 필요한 만큼만 뒤돌아보자. 겁은 그만 먹고 뛰어내리자.
마음을 다잡으면 보란듯이 안 좋은 일이 생기곤 한다. 어쨌든 나는 혼자 살아내야 하고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내가 좋아하는 일 따위는 없다고. 항상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맞아?를 반문하면서 행동은 하지 않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시간을 보내고.
내일 모레 처음으로 외국에 간다. 비행기를 타는 게, 낯선 곳에 가는 게 무서워서 약을 받아왔다. 면세점에서 뭘 사야 이득이지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파운데이션 떨어진 김에 사려고 했는데 내가 쓰던 거, 웬만한 거 다 품절이다. 그냥 가서 있는 것 중에 괜찮은 거 사서 가야지.
아르바이트를 잘렸다. 이번주까지만 해요 선생님, 했는데 오늘까지만 해도 괜찮을까요? 해서 하루 더 유예하지 않았다. 4만원 더 벌 수 있었지만, 그냥 할 일도 없는데 나오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점점 돈 버는 일이 쉽지 않다. 학생들이 별로 들어오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쓸수 없다고 했다. 다른 아르바이트들은 최저시급이 올라서 잘 써주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예전보다 통장에 돈이 없고 그걸 부담해주는 애인에게 미안해지고 그렇다. 그런데 최근에 아르바이트 그만두고 싶다고 계속 생각헀는데 짤려서 좀 좋기도 하고 그렇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녀야겠지, 집에서 가깝고 시급도 괜찮고 일도 어렵지 않고 돈은 항상 필요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긴 했는데. 그런데 공부할 시간이 잘 안 나고 체력적으로 일하고 공부하려니 쉽지 않아서 고민했던 건데. 고민에게 보란듯이 잘렸다. 나는 이제 A하면서 B도 열심히 하기 따위는 잘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하나만 선택해서 계속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
연휴의 시작에는 남자친구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뒹굴거렸다.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하던 고등학생 시절처럼 식당과 카페를 돌아다니며 계속 먹었고 서로 대화하다가 휴대폰 게임만 하다가 마주보고 웃기도 하고 그랬다. 엄마가 부재하는 집은 항상 묘한 느낌을 준다. 엄마가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이 실감나기도 했다. 삶이란 왜 고통을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만 하는 걸까? 엄마는 엄마를 잃은 후 꾸역꾸역 살았겠지? 그런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게 왜 삶이 되어야할까 조금 억울했다.
대학원에서는 자기가 쓴 글을 자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 내가 내 글을 읽어야하기도 한다. 그리고 의견을 듣고, 또 고친다. 자기의 글을 읽을 때 쑥쓰러워하지만 내면의 단단함이 있는 사람들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글을 읽는 목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나는 내 일기를 읽는 것 같아서 왠지 너무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교수님이 물어보면 나는 대체로 내 글을 깎아내린다. 왜? 더 나아지기 위해서. 아니면 왜? 그냥 부끄러우니까? 그래도 또 다음주에 글을 써간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상,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상. 나는 글을 쓸 때 그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내가 글을 쓰기도 전,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현실로부터 피신하곤 하던 곳이었다. 내성적인 사람들의 희미한 목소리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 나는 그 집에서 편안함과 소속감을 느꼈다. 그곳은 내가 마음을 둘 곳이었다.
두려운 어른들과 함께 있어야 할 때, 당황스럽고 난처할 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질 때 책을 펴고 문장들을 따라 읽으면 마음의 고통이 누그러졌고,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을 금방 흘려보낼 수도 있었다. 현실에서 내내 겉돌기만 할 때도 언제고 그곳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그곳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흘러드는 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최은영, 「그 여름 」 작가노트 中,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7)
거의 모든 것이 재미가 없다. 호기롭게 시작한 다큐와 단편 영화도 지쳐간다. 혼자 모든 일을 하려니 그런 지도. 갖은 불안에 시달리고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서 존경스럽지도 않기에 자신이 없다. 쌓아둔 인간 관계에 회의감이 들고 일관성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것 같아 끔찍하다. 모든 게 윤리적이거나 정당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라며 나는 스스로 발목을 잡는다. 아, 이렇게 새로운 증상을 얻고 나는 불쾌한 삶의 노선으로 굴러가는가.
Michael Kiwanuka - Black Man In A White World
1. 직업이 없다는 점에서 가장 자유롭고 불안하지만, 지금의 생활은 꽤 즐겁다.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시간과 자금 측면에서 여유롭게 준비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하는 나날들. 물론 불안이 그때그때 치밀어 오르기는 하지만 잘 조절해나가고, 잘 해나가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이것저것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엔 무조건 작가 하겠다고 글만 쓰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영상도 찍고 싶고, 회사도 어느 정도는 다녀도 좋지 않을까 싶고, 그래서 이것저것 다 하고 싶어서 나름의 고민이 있다.
2. 패딩을 샀다. 엄마가 회사 앞 노스페이스를 데려가서 뭐가 예쁘다고 봐놨다고 입어보라고 해서 입어보고, 가장 나은 것을 샀다. 4개월 할부를 했다. 나 말고 엄마가. 언제까지 엄마가 내 옷을 할부로 사는 걸까. 그럼에도 나는 패딩을 산 것이 좋았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나는 어쩌다보니 내 것의 패딩이 없었다. 엄마의 오리털 점퍼를 입거나, 바람막이 안에 여러겹의 옷을 뚱뚱하게 입거나, 그런 식이었다. 디자인 따지다가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고. 항상 겨울을 그렇게 났었는데, 이제 패딩이 생겼다. 이상하게도 무언가 탁, 들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겨울엔 패딩이지, 마치 정상의 삶 같아서 조금 기뻤고 역겨웠다.
3. 포켓몬고를 하느라 일찍 일어나고 나같은 집순이가 얼른 나가고싶어한다. VR의 시대가 온다더니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위가 좋지 않으니 심난하다. 조금씩 낫고는 있지만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으며 저자극의 음식들로 식단이 이루어진다. 인턴 쌤들은 내가 순두부를 너무 좋아해서 한 그릇을 다 먹는다고 생각한다. 밥이랑 순두부 밖에 먹을 수 있는게 없어서 배가 고파서 다 먹는 건데. 몸무게는 2주에 1키로 정도 줄었다. 예전에 위염이 더 심했을 때는 5키로인가가 두 달 만에 빠졌다. 그리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 그때는 밥 대신 고구마 감자 이런것들을 먹었다. 지금은 그래도 밥과 같은 것을 챙겨 먹는다.
속이 쓰린지 아닌지 맨날 생각하는 것이 지겹다. 의사가 학교에 휘트니스가 있지 않아요? 운동을 해요, 라고 했었지. 그 후에 4년 반이 지날 동안 운동은 가끔 하다가 말다가 했다. 중간에 쓰러지기도 몇 번 했고 공포증이라든가 공황장애 증상이라든가가 나를 압도했고 나는 움직이는 게 싫어졌다. 누워서만 생활하던 휴학생활들이 있었다. 몸무게는 10키로 가량 빠졌었다. 걷는 게 힘들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무엇이 나를 살게 했지? 무엇이 나를 되돌아오게 했지? 이별이었다. 이별 후에 나는 혼자 살아남은 생존자 1처럼 허겁지겁 누군가를 붙잡으려 애를 썼다. 사람들을 만나고 억지로 나갔다. 평범하게 사는 척을 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살아지겠지, 그러다가 난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나는 증상이 있고, 그것은 아프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치료의 시작이었다. 규칙적인 운동은 여전히 못하고 있지만 어떤 삶의 규칙들을 알게 되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것. 세 끼를 규칙적으로 섭취할 것. 밀가루와 자극적인 음식을 피할 것. 너무 늦게 자는 일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그러한 것들이 신체를 끌고 다니는 내 삶에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뒤섞어서 삶을 유지시킨다. 삶을 매일 살지 말고 때때로 죽는 옵션을 주면 어떨까. 아 죽고싶다, 하면 당분간 죽어있고, 이제 살고 싶다, 하면 움직이고. 매일매일을 숨을 쉬고, 밥을 밀어 넣고, 걷고, 웃어보이고, 말을 하고, 변을 보고, 그런 일들을 매일 한다는 건 너무 피로하지 않니. 그렇다고 모든 걸 한 번에 잃으라는 건 너무 잔인하고. 그래서 잠을 주었다는 것은 알지만, 현대인의 잠은 오직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휴식은 아니잖아.
새들이 있는 기숙사에 푸득푸득
그는 우는 것 같았고
그저 숨을 쉬는 건지도 몰랐다
한 수저에 추억과, 한 수저에 사랑, 한 수저에 쓸쓸함. 삶의 감정들이 차분하게 녹아 있는 건강한 한 끼. 매주 수요일 시를 닮은 이야기들이 차려집니다.
오래되면 끝나야 한다는 물리 법칙에 맞서는,
불확실한 학교 Uncertainty School (33m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