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 후기2
사의 찬미
150905 이충주, 안유진, 이규형
150906 정문성, 안유진, 이규형 페어막. 세미막
광란의 이주였다. 이주 동안, 내 온 주말을 바쳐서 공연을 봤다. 그것도 하루에 두 개씩. 총 이주 동안 공연을 여덟 번 봤다. 다시 생각해도 미친 것 같아. 사실 공연 종일반은 ‘지킬 앤 하이드’ 때 딱 한 번 해봤다. 그때도 해보고 너무 힘들어서 ‘아,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아야겠다.’ 다짐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반년 만에 다짐 박살. 그것도 어쩌다 보게 된 소극장 극으로.
그 여덟 번 중에 ‘사의 찬미’만 다섯 번 이었다. 나는 msg가 정말 필요했나 보다. 이걸 이렇게 많이 볼 줄은ㅋㅋ 나도 내가 참 어이 없다. 이놈의 기획사는 뭐 주는 것도 이렇게 많은지, 할인권은 쓰지도 못했는데 결국 받고 싶었던 캐릭터 ost는 다 받게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뒤늦게 보기 시작한 터라 티켓팅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예대만 걸어봤을 뿐인데 거는 족족 터짐. 그것도 괜찮은 자리들이. 게다가 공연지원 덕분에 가격도 착하지. 사의 찬미 8번 보는 동안 팬텀vip 1장 가격밖에 안 썼다. 이러니 내가 정신을 놓고 봐요, 안 봐요. 새삼 상반기를 돌이켜보니 눈물이 나는군…흡…
아무튼 인상 깊었던 첫날과 특공 공연 뒤로, 아주 합이 좋다는 정문성,안유진,이규형 페어를 이미 예매해놨었다. 그런데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지 생각보다 막 더 좋진 않았음. 그냥 좋은 정도. 볼수록 이규형 배우가 귀여워서 내 취향인 것만 재확인했다. (…) 근데 뭔가 첫날의 임펙트처럼 팍 터지는 게 없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지. 어쩌다보니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던 날이어서 그건 재미있고 좋았다. 정문성 배우가 진짜 웃긴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된 ㅋㅋㅋㅋ 관객과의 대화였음. 이규형 배우는 별로 말은 없는데 조근조근 한마디씩 하는 게 되게 웃겼다. 문성우진과 안심덕이 진지하게 물새 얘기하는데 끼어들어서 ‘근데 그 새가 그 새야?’ 라고 물어보는 겤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인상적이었음. 거기다가 문성우진이 ‘시방새야’라고 받아친 것돜ㅋㅋㅋㅋㅋㅋ 정말 합이 잘 맞는 페어네요.ㅇㅇ
아무튼,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던 날 공연도 뭔가 좀 아쉬워서 그 다음을 또 예매하고, 그 다음도 뭔가 쫌 아쉬워서 다른 사내도 예매하고(...) 그런 악순환… 그러다 보니 도장을 조금만 더 받으면 캐릭터 ost를 받을 수 있어서 예대나 걸어보자 했던 게 또 예매로 이어지고 ㅇㅇ…‘내가 찍은 곳이 곧 내 자리다.’ 인 것 마냥 페어막 공연 예대까지 터지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네요. 게다가 i열 뒤로 가본적도 없다. 뭐가 되려고 하면 이렇게 물 흐르듯 흘러간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ㅇㅇ…
아무튼 그렇게 돌고 돌아 내일이 없는 것처럼 주말을 다 바쳐 공연을 봤는데, 결국 막공 주에 후기를 남기고 싶을 만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정말 좋았음. 일단 역시나 심덕과 사내 사이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걸 본 게 큰 듯.
먼저 심덕. 난 외강내유가 강하게 드러나는 안심덕이 좋다. 또 행복할 때의 심덕 표현이 너무 좋음. 진짜 자유로운 영혼인 게 느껴진다. 그래서 21년과 26년의 차이가 극명하다 보니까 보는 재미가 있다. 첫 등장에서 김우진의 키스를 피하고, 담배를 꺼내 물면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날 다시 조선으로 돌려보낼 생각이라면 지금 얘기해. 차라리 바닷물에 뛰어드는 편이 훨씬 나으니까.’ 이 대사를 내뱉을 때부터 심덕의 성격이나 마음이 제대로 정립돼서 느껴진다.
김우진이 ‘그런 거 없다.’고 말하는 걸 들은 안심덕의 표정이 아주 좋다. 침묵 속에서 애써 침착하려고 담배를 한번 깊게 마시지만 담배를 들고 있는 손은 조금 떨리는 것 같다. 그리고 기대했던 만큼 실망 했다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포커 페이스로 책상에서 내려와 담배를 끄고, ‘역시 널 믿는 게 아니었어.’라며 김우진을 스쳐나가려고 하지. 한번은 안심덕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구겨 쥐던 적도 있었는데 김우진에게 기대한 만큼의 실망, 그를 믿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 느껴져서 되게 좋았음.
우진이 심덕을 붙잡으면 ‘놔!’라고 소리친다. 초반에 볼 때는 안심덕이 너무 버럭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공연 후반으로 갈수록 절제미가 뿜어져서 더 좋았다. 모든걸 다 버렸다는 김우진에게 ‘사랑도. 넌 날 버렸어.’라고 말할 때의 그 증오 섞인 표정이 인상적이었음. 그리고 ‘이 세상에 없는 곳’을 시작한다. 이를 악물고 그때의 감정을 늘어놓으면서 장갑을 벗는 안심덕. 벗은 장갑을 클러치에 넣으면서 ‘또 그렇게 사라지겠지. 또 말없이 떠나가겠지.’라고 말하는 얼굴엔 기대 같은 거 버린 지 오래라고 써있다. 하지만 속마음은 아니다. ‘날 데려가줘. 그 어디로든. 약속해.’ 우진을 증오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심덕이 이 배에 탄 이유인 김우진에게 진짜 마음을 말한다.
페어막공에선 문성우진이 ‘약속할게.’ 라고 대답하고 다시 한 번 말할 때 ‘그래. 약속해.’ 라고 했다. 이때 문성우진의 말투나 표정 때문에 마음이 덜컹했다. 정말 심덕에 대한 진심이 가득한 느낌. 그러면서도 뒤이어 있을 일 때문에 마음 한 켠의 무거움을 저버리진 못한, 그럼에도 심덕만큼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다짐이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왜 심덕이 우진에게 녹아서 다시 그를 믿고 마는지 이해가 되는 우진이었다.
약속하는 우진을 끌어안고 안심덕이 부르는 ‘이 세상에 없는 곳’은 정말 슬프다. 안 그래도 정말 좋아하는 부분인데, 페어막공에선 더 좋았다. 현실에 지치고 지친,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저 한 남자의 여자이고 싶은.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안심덕에게서는 처연함이 뚝뚝 흘러 넘친다. 먼 곳을 보는 것 같은 시선과 무표정이 오히려 그 분위기를 더한다. 그저 김우진과 온기를 나누고 있는 지금만이 사실인 것처럼. 눈을 감고, 오직 둘 뿐인세상에 빠진 듯 우진에게 안기는 심덕을 다시 현실로 꺼내오는 건 뱃고동 소리다. 현실로 돌아온 심덕은 우진의 품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꿈꿨던 자신을 비웃듯이 말한다. ‘내일은 올까?...’ 거기에 문성우진은 가까스로 대답한다. ‘내일은 올 거야.’ 하지만 그 내일에 자신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심덕을 뒤에서 끌어안고 같이 부르는 후렴구. 심덕은 볼 수 없는 문성우진의 표정이 참 고통스러워 보인다.
바람을 쐬고 오겠다는 심덕에게 같이 가자는 김우진. 하지만 심덕은 웃으면서 과거의 상처를 내뱉는다. ‘걱정 마. 난 너처럼 사라지거나 하지 않아.’ 거기에 멈칫 하는 우진을 보면,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거리감이 느껴진다. 심덕도 그걸 느낀 것 같다. ‘다시 돌아갈 순 없겠지? 그땐 참 행복했는데. 우리, 세 사람.’
심덕이 나가고 나면 우진은 두통을 호소한다. 그리고 장면은 21년 여름으로 바뀌어, 우진과 사내가 처음 만났던 그 날로 돌아간다. 여기서 문성우진의 디테일이 되게 좋은데, 21년 과거에는 항상 안경을 꺼내 쓰지만 26년 현재에서는 대부분 안경을 벗고 있다. 되게 사소한 걸로도 시간 간극을 표현해줘서 좋았다.
아무튼 극을 번역하고 있는 김우진의 뒤로 사내가 등장. 작고 소듕한 규형 사내의 등장이다. 사실 정민 사내를 보기 전 처음으로 규형사내를 봤을 땐 그렇게 소듕한지 몰랐다는 게 함정(...) 그냥 내 취향인 건 알았는데 소듕하게 내 취향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 난 왜 이렇게 취향이 소나무일까.
규형사내의 일본어 톤도 괜찮다. ‘어이 조센진.’ 대사 뱉는 톤도 좋고, 목소리도 좋음. 일본어 잘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좋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이 고작 번역이야?’ 사내가 비웃으면 김우진은 ‘건방진 일본놈’이라고 말한다. 충주우진은 진짜 정색하고 기분 나쁨을 티 내며 말하는 반면, 문성우진의 표정은 재미있다. 상대가 한국어를 못 알아 들을 거라고 단정하고 비웃음 띈 얼굴이다. 사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아서 ‘일본인들이 좀 건방지긴 하지.’하고 대답하면 완전 당황하는 표정도 귀여움.
충주우진은 시종일관 경계하는 얼굴이다. 사내가 옆에서 계속 말을 시켜도 별로 관심이 크게 두지 않는 느낌. 그러다가 ‘창의적인 사고, 창조적인 삶!’을 말하면 그제서야 놀라 돌아본다.
반면 문성우진은 동포에게 몹쓸 말을 함부로 했다는 것에서 이미 지고 들어간 듯한 얼굴이다. 미안한 목소리로 ‘학교에 내가 모르는 조선인이 있는 줄 몰랐어.’ 라고 한다. 이어서 규형사내가 사상에 대한 무반주 랩을 펼치면 뭔가 ‘이런 이론이 있었다니? 내가 모르는 이론을 아는 사람이 있다니?’ 하며 사내의 평가를 한번 더 높인 듯한 표정이 된다. ‘누구의 이론이야?’ 라고 묻는 얼굴에는 이미 호감이 좀 있다. 사내가 낮게 웃으면서 ‘언제까지 남의 이론에 집착할 거야? 스스로 생각해. 창의적인 사고, 창조적인 삶!’ 이라고 하면 정말 놀란 얼굴로 사내를 쳐다본다. 마치 사상에 심취한 듯 말하던 사내가 우진을 보며 ‘왜?’ 라고 물으면 그제서야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요즘에 내가 가장 고민하던 거야. 창의적인 사고, 창조적인 삶.’ 어떻게 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신기해하면서. 그 홀림의 강도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니까, 왜 우진이 사내와 교감하게 되는지 자연스럽다. 가랑비에 옷 젖듯, 같은 사상에 취하는 김우진. 정치색 비슷한 사람들이 금세 친해지는 것처럼 우진은 쉽게 경계를 푼다.
우진의 호감을 느낀 사내는 웃으면서 ‘그것 봐, 우린 굿또 파토나라니까!’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작되는‘사내의 제안’은 역시 사내가 매력적이긴 한데, 그 앞에서 문성우진이 사상에 취해가는 모습을 잘 보여줘서 더 그렇다.
우진이 보지 않을 때나 우진의 뒤에 있을 때 규형사내의 표정은 아주 의뭉스럽다. 우진이 보는 앞에서는 굉장한 선동가의 모습이다. 특히 ‘정해진 길만 가르치지.’ 부분에선 계단을 올라가며 그 길을 손으로 하나씩 가르치는 제스처가 좋다. 뒤이어 ‘율법은 던져버려!’ 라고 웃으면서 김우진을 선동한다. 거기에 동요된 우진이 돌아서서 마치 스스로에게 되새기듯 노래하는 사이, 뒤에 서있는 규형사내의 얼굴에서는 표정이 사라진다. 김우진의 뒷통수를 노려보다가, 마치 떡밥 던지듯 가사를 던진다. ‘계급과 윤리. (죽음과 삶) 관념과 실재. (이상과 진실)’ 바로 이 부분. 여기서 규형사내의 몸짓이 되게 좋다. 마치 사람을 떠보는 듯한 표정으로 ‘이건 어때? 그럼 이건? 이것도 좀 좋아할까?’ 이런 느낌으로 말을 던진다. 이때 규형사내 한쪽 눈썹이 슬쩍슬쩍 움직이는데 진짜 의뭉스러운 표정이 나옴. 우진이 말을 받아 덥석덥석 물 때마다 사내의 얼굴엔 미묘한 웃음이 그려진다. 그러다 우진이 사내를 돌아보면 정말 놀랍도록 빠르게 ‘뜻이 잘 맞는 친구 선동가’의 얼굴로 돌아온다. 그리고 김우진도 모르는 그 안의 분노를 꺼내라면서 애를 선동선동. 이미 김우진은 넘어가 있다.
둘이 노래를 주고받는 시퀀스도 되게 좋은데, 우진이 ‘내 안에!’ 라고 하면 사내가 ‘니 안에!’ 라고 받아준다. 그리고 둘이 같이 ‘분노가 난 느껴져!’ 라고 하지. 이어서 ‘바꾸자 뒤집힌 세상!’ 할 때 서로 교차하면서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오는데, 바로 객석을 향해 몸을 돌리는 우진과 반대로 규형 사내는 ‘다시 뒤집어’ 할 때까지 옆을 보고 있다가 ‘깃발을 흔들자.’에서 몸을 돌려 객석을 바라봄. 이 부분이 좋은 이유는 사내가 김우진과 같은 마음이 아니고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게 그 옆모습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번 더 속마음을 감추고 가다듬는 듯한 행동이라 그렇게 한 박자 쉬고 돌아보는 게 되게 좋았다.
그 다음 부분은 가사 때문에 조금 웃기다. 사내의 ‘사상과’ 우진의 ‘언어로’ 는 꽤 평등한 등가교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내의 ‘숨결과’ 우진의 ‘피’는 ㅋㅋㅋㅋㅋ 이거야말로 이걸 동조하고 서있는 김우진이 사내에게 완전히 넘어갔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노래 가사에 복선 깔기 있냐 없냐.ㅋㅋㅋㅋ 완전히 고무돼서 주먹을 불끈 쥐는 김우진과 그 뒤, 의자에 올라서서 책상에 한발을 올리고 김우진을 관찰하는 사내. 마치 그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여기서 사내는 낮은 음의 화음을 넣는다. ‘새로운 삶. 네가(내가) 무엇을 꿈꾸는 지 난 느껴져.’ 그저 김우진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 같은 얼굴과, 모양새다. 바로 뒤이어 먼저 나오는 사내 가사가 그 느낌을 뒷받침한다. 사내가 ‘네가 원하는!’ 하고 나서 둘이 같이 부르는 ‘새로운 세계’. 사내는 김우진이 완전히 넘어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의자에서 내려와, 여유로운 걸음으로 김우진과 마주서서 손을 내밀지.
불쌍한 사냥감은 제대로 걸려들었고, 우진은 호감이 가득한 얼굴로 사내를 대한다. 사내는 마치 방금 생각난 것처럼 ‘너와 둘이서만 작업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간에 절대 그만두면 안 된다.’ 라고 하지. 이 대사할 때 규형사내 옆얼굴이 서늘하다. 첫 번째 조건을 말할 때는 그래도 능글맞음으로 가장하려는 의지라도 있었는데, 두 번째 조건은 그렇지 않다. 그 좋은 분위기 속에서 차가움이 느껴짐. 와중에 사내의 어깨를 툭 치면서 ‘그럴 일 없을 거야.’ 라는 문성우진의 따뜻한 미소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그러면 규형사내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지는데 이게 진짜 ‘걸려들었어.’ 하는 웃음이다.
‘그럼 등장인물부터 정하자.’ 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둘. 여기서 규형사내는 자켓을 벗는다. 셔츠에 베스트, 제일 좋아하는 패션이지. 왠지 셔츠 팔이 벙벙한 느낌이 좀 들긴 하지만ㅋㅋㅋ 넘어가자.
안심덕의 낭랑한 ‘도쿄찬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둘은 글에 열중이다. 흥미로운 건 역시 사내가 우진의 펜을 가져가서 본인이 써 보인다는 점. 책상에 먼저 앉는 것도 사내다. 그렇게 한참 구성을 짠 뒤에야 우진에게 넘겨주지. 엄청 큰 맥주병을 나발로 불다가 둘 다 푹 터지는 디테일이 귀엽다. 우진의 모자를 먼저 들고 나가면서 살짝 흔들어 보이곤 우진에게 삐딱하게 씌워주는 것도 좋다. 진짜 장난기 많은 친구 같은 모습.
언젠가부터 규형사내는 노래하는 심덕을 발견한 뒤에 ‘이야~’라는 감탄사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진을 툭 치고 잘 보라는 듯 나서서 왈츠를 신청한다. 규형사내와 안심덕은 눈높이가 딱 맞아서 귀여움. 이때 안심덕의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행복해서 좋다.
이 부분은 역시 연출이 정말 좋다. 사내는 심덕을 빙글 돌려서 우진을 바라보게 한다. 우진에게 심덕을 넘겨준 규형사내는 뒤로 빠져서 모자를 벗어 허공에 파도의 형상을 그린다. 그리고 벽에 비친 우진과 심덕의 그림자 위로 사내의 모자가 올라온다. 그리고 마치 그 둘을 함께 조종하는 것처럼 움직이는데, 이때 모자를 살짝 흔들어서 마치 장난감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도 있다. 좋아요. 둘이 왈츠를 추는 사이, 사내는 이미 다 완성된 계획을 그려보는 것처럼 손짓으로 출렁이는 파도를 표현한다. 그리고 다시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것처럼 여자, 심덕과 남자, 우진을 묘사한다. 이때도 규형사내는 말을 엄청 빨리 하는데다가 정면을 보는 눈이 움직이질 않아서 좀 무서웠다. 한번 정중앙에 앉았을 때는 진짜 내가 쭈그러들고 싶은 느낌이었음… 그냥 미친 것처럼 보였습니다.
막 중간중간에 웃음을 섞어가면서 말하는데, 굉장히 광기가 느껴진다. ‘자신의 처지가, 괴로워.’를 말할 때는 또박또박 힘주어서 무겁게 뱉는데,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어서 ‘그 둘은’ 하는 부분이 되게 좋다. 갑자기 다시 극 중 등장인물 설명으로 돌아온 가벼운 느낌. ‘어떻게 됐을까?’ 하고 웃으면서 우진에게 물어보는 것도 가볍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진이 천진하게 ‘비극적인 결말은 아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때 규형 사내는 무표정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한 박자 쉬고 다시 그린 듯이 웃으면서 ‘차차 생각해보자.’ 라고 말하는 텀이 좋다. 사내가 심덕과 왈츠로 돌아가면 우진은 희망에 부풀어서 도쿄찬가를 받아 부른다. 여기 문성우진의 목소리도 따뜻해서 정말 더 짠하네요.
왈츠가 끝나고 사내는 인사하는 심덕의 손을 잡아 놓지 않는다. 심덕은 ‘뭐야, 지금 나한테 수작부리는 거야? 어머, 얼굴 좀 봐라. 아주 얼굴에 음흉이라고 써 있네.’라면서 우진과 똑같은 짓을 ㅋㅋㅋ 한다. 역시 커플은 끼리끼리.ㅇㅇ 사내가 한국말을 하면 당황당황하다가 이내 모르는 척 뻔뻔하게 구는 얼굴이 귀엽다. ‘누구야?’‘한명운이야. 와세다에 다녀.’ 라며 악수를 청하는 손을 무시하고 웃으면서 ‘난 너 모르는데~’ 라고하는 말투가 좋음. 경계는 하지만 가시를 세우지는 않는 적당함. 하지만 ‘도쿄에서 윤심덕을 모르는 조선인이 있을까? 윤심덕은 그야말로 밤하늘의 별이지. 스따~’라며 능청을 떠는 사내에게 금세 경계를 풀어버린다. 자신감이 가득하고 당당한 신여성.
같이 작업하는 친구라며 우진을 소개하면 심덕은 사내의 팔을 잡으며 작게 묻는다. ‘일행이었어?’ 여기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응.^-^’하고 대답하는 규형 사내의 목소리가 아주 잔망스럽다.
‘안녕하시오.’ 라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우진을 보며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규형사내. ㅋㅋㅋ 우진에게 다가가 ‘이 무슨 짓이오.’라고 말투를 따라 하는 게 귀엽다. 하지만 아무리 단속을 해도 우진의 반응은 여전하다. 사내는 삐루를 가지러 간다는 명목으로 자리를 뜨는데, 가다가 돌아서서 둘을 관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안심덕은 우진을 구석으로 몬다.ㅋㅋㅋ 충주우진은 가까스로 빠져 나온 뒤 자신의 모자를 집으려고 하지만 심덕이 먼저 선수를 치는 바람에 손이 무안해진다. 심덕은 모자로 부채질을 하다가 충주우진이 모자를 포기하자 금세 제 옆에 놓아버린다. 어디로 보나 우진에게 관심이 있는 얼굴이다. 문성우진은 아예 뒤돌아서 뒷짐을 지고 있어서 심덕은 몇 번이나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꿈쩍을 안해. 김우진, 스고-이. (feat. 규형사내)
하지만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그걸 보며 같이 미소 짓는 우진을 보면 다시 먼저 말을 시킨다. 그래도 우진이 계속 말을 놓지 않자 심덕은 우진의 말투를 따라 하며 놀린다. 그것마저 진지하게 받아 치는 김우진을 보고 귀엽다고 느끼는 걸 보면, 참 사람 취향이 무섭다는 걸 알게 되지…
당당한 키스 한번에 우진도 퐁 넘어온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 취향을 늘어놓는 심덕. 여기서 안심덕의 톤이 참 좋다. ‘서양 사람들, 정말 대단하지 않아? 그런 걸 만들고 보다니!’ 정말 그 나이대의 꿈에 부풀어 있는, 어리고 천진한 말투다. 우진이 ‘그러다가 여배우가 되겠다고 나서는 거 아니야?’ 라고 물어보면 안심덕은 살짝 텀을 둔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지만 현실이 그럴 수 없는 것처럼. 그걸 본인이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심덕은 그저 우진의 코를 살짝 튕기면서 ‘…그냥, 영화가 정말 좋았다는 말이야.’라고 말을 돌린다. 하지만 우진의 진심 어린 말에 살짝 꿈을 상상하지. 그러다 이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우진은 그런 심덕을 붙잡아 격렬하게 키스한다. 언젠가부터 안심덕은 문성우진을 한번 밀쳐내는 디테일이 생겼다. 그래도 문성우진이 놔주지 않고 다시 키스하니까 그제서야 동조해서 러브러브. 이 페어는 애정행각이 엄청나게 엄청남. 잘됐으면 좋겠다.
조용하게 돌아온 사내가 ‘난 대체 왜 삐루를 사러 갔던 걸까?’ 라고 능청맞게 끼어들면둘은 황급히 떨어진다. 규형사내는 마치 칠칠맞다고 단속하는 것처럼 우진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을 슬쩍 닦아준다. 그러면 우진이들이 다시 한번 더 제 입술을 닦아내지. 그 사이에 안심덕은 혼자 다 정리하고 있는 게 재미있다. 규형사내는‘너희가 앞당길 수 있어.’ 라고 말한뒤 우진을 툭 친다. 그러면 우진이들은 삐루를 마시거나 다른 짓을 하다가 다급히 정신이 돌아온 느낌으로 ‘어, 니가 눈뜨게 해줘.’ 라고 말함. 심덕은 그걸 다 보고 있으니 귀여울 수밖에. ‘일정이 어떻게 되는데?’ 라고 물어보면 사내는 우진에게 대답을 넘긴다. 아주 교활해.
그리고 ‘7월 8일’ 이란 대답을 들은 안심덕은 너무 귀엽다. ‘도시떼 7월 8일까…’ 그리고 언젠가부터 안심덕은 우진과 사내를 돌아보며 울상인 채로 볼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ㅋㅋㅋㅋ 9월 5일 공연에서는 그걸 본 규형 사내가 ‘이야…’라곸ㅋㅋ 감탄사를 뱉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얼굴에 대한 감정이 느껴져서 진짜 웃겼다. 아무튼 그렇게 남자들 애간장을 태우다가 활짝 웃으면서 ‘할게!’ 라고 말하는 안심덕의 얼굴엔 장난기만 가득하다. 두 손도 번쩍 들고, 가끔은 발랄하게 한발도 들었다. ‘고국에서 노래하고 싶어~!’ 라고 외치는 심덕의 목소리. 그 뒤를 이어 ‘그럴 줄 알았어!’라는 사내의 목소리가 울린다. ‘넌 밤하늘에 별이 될 거야.’라는 가사가 의미심장하다. 그 뒤에서 시작된 사랑에 벅차하는 문성우진의 표정이 좋다. 사내가 심덕을 따라 올라가는 사이, 심덕과 우진은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노래한다.
규형사내는 심덕을 따라 올라가다가 점점 걸음을 늦춘다. 굉장히 느긋해지고, 심덕과 우진을 관찰하는 입장이 되어서 사랑에 빠진 그 둘을 바라본다. 뒤늦게 우진이 따라 올라오면 그제서야 천천히 심덕에게로 다가간다. 뒤따라 오는 우진을 슬쩍 확인하면서, 앞으로 자신이 할 일이 잘 보일지 가늠하듯이. '여기는 도쿄!'하고 노래가 끝나자마자 사내는 심덕에게 키스한다. '이게 무슨 짓이지?' 라고 묻는 심덕에게 사내는 능청스럽게 '그냥, 친구가 된 기념?'이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안심덕은 유혹하듯이 웃으면서 사내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끌어안을 듯이 가까운 거리에서 '너 한번만 더 이런 짓 하면 면상을 날려버린다.'라고 말하지. 이 대사톤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게 좋다. 처음에는 오히려 눈웃음을 치면서 '너어~ 한번만 더 이러면~' 하고 말하다가 '면상을 날려버린다?'에서는 살짝 정색. 어깨에 올렸던 손을 내려서 주먹 쥐고, 사내의 가슴을 콩 때리면서 말한다. '이번 한번은 장난으로 넘어가 준다.' 하는 느낌. 그럼 규형 사내는 실실 웃으면서 'ㅎㅎ어, 그럴게.' 라고 대답한다. 누가 봐도 알아듣지 않은 모양새. ㅋㅋㅋ
사내는 이만 가봐야겠다며 말을 돌린다. 우진과 희곡작업을 해야 한다는 사내에게 안심덕은 뾰루퉁한 얼굴로 '가버려.'라고 말한다. 그러면 규형 사내는 우진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고 다시 한번 더 '안녕~'하고 손을 흔든다. 그러면 안심덕은 사내가 우진과 함께 인사하는 걸 보고 금세 웃는다. 우진을 이용하는 사내는 교활하고 영리하다. 덕분에 이전의 행동 모두가 장난스럽게 보이고,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안심덕은 완전히 풀어진 얼굴로 웃으면서 '안녕~'하고 인사해준다. 규형사내는 마치 먼저 내려간다는 듯 우진의 어깨를 한번 집었다가 뗀다. 그리고 허밍으로 '사의 찬미'를 부르면서 멀어진다.
사내가 사라지면 다시 시간은 현재로 돌아온다. 웃느라 고개를 숙였던 안심덕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표정이 확 변해있다. 이 표현 정말 좋다. 심덕의 표정 하나로 시간 변화를 더 잘 알 수 있다. 문성우진도 사내가 내려가고 나면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서 자켓 안주머니에 넣는다. 안경을 쓰지 않는 현재를 알려주지.
여기서 안심덕의 대사톤 너무 좋다. '늦었네.' '금방 온다더니.' '오래 기다렸어.' '넌 언제나 나 기다리게 하지.' 안심덕이 대사 치는 걸 듣고 있으면 정말 배 갑판 위에 서있는 것 같다. 바닷바람 속에 흘려 보내는 듯 무감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사실은 감정을 엄청나게 절제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심덕은 우진에게 끊임없이 날 보라고 외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라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빠져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김우진에게 다시 한번 실망한 듯한 심덕이다.
여기서 우진과 심덕은 철저하게 다른 말을 한다. 우진은 심덕을 추궁하며 다그치지만, 심덕은 우진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에 걸맞게 우진은 심덕을 보고 있고, 심덕은 바다 너머 과거를 보고 있다. 우진이 소리치면, 그제서야 돌아보면서 심덕도 화를 낸다. 심덕이 항상 하는 말은 ‘이건 너와 내 문제야.’ 다. 안심덕이 좋은 점은 극 내내 사내와 묘한 케미를 풍기면서도 우진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 걸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와 무슨 사이야!’ 라는 우진에게 안심덕은 아주 차갑게 대답한다. ‘친구.’ 천천히 우진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네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날 욕했을 때도’라고 대사 치는 부분이 좋음. 심덕의 얼굴엔 차가운 비웃음이 어려있다. 너는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관계를 추궁하냐고 묻는듯한 어조. 냉정하게 돌아서면서 ‘날 구원한 건 그 아이지 네가 아냐!’라고 하는 대사가 묘하다. 심덕이 힘들었을 지난 세월 동안 사내가 그녀 옆에 계속 있어왔다는 얘기가 되거든. 게다가 ‘그 아이’라는 지칭이 참 ㅋㅋㅋ 친근하면서도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심덕에게 사내는 정말 남자가 아니라 친구라는 게 오히려 잘 느껴지는 대사. 이 단호한 신녀성 때문에 나는 슬픔…
아무튼 그런 거 1도 모르겠는 김우진은 ‘넌 속고 있어!’ 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그 동안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 모든 죽음들, 아마 혼자 도망쳤던 시간 동안 파헤쳤을 모든 사건들에 대해 심덕에게 늘어놓는다.
엄청 빠르게 다다다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우진의 광기가 제대로 느껴진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만은 백프로라고 확신하는 얼굴이다. 심덕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라고 소리치면 ‘이 모든 일에 그가 연관되어 있어!’ 라고 절규한다. 그리고 심덕을 공포에 몰아넣는 ‘그가 오고 있어’가 시작.
원래 문성우진은 노래를 하다가 중간에 사내에 빙의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미친 것처럼 목 안으로 웃으면서 심덕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녀를 구석으로 내몬다. 관객과의 대화가 있던 날, 사내가 우진의 또 다른 자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는데, 아마 그런 느낌을 보여주려고 한 듯. 6일에는 아주 제대로 표현을 해줬는데, 바로 여기에서 규형사내가 표현하는 사내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 냈다. 목을 양쪽으로 꺾고, 입을 쩍 벌렸다가 닫는 모습을 그대로. 심덕을 등지고 선 모양새가 마치 우진을 등지고 섰을 때만 보여주는 규형사내와 겹쳐 보여서 되게 비슷했다. 그렇게 심덕을 뱃머리로 몰아세우다가 문득 두통을 호소하고 나면 다시 김우진으로 돌아온다. 사내의 모습을 하기 전보다 훨씬 더 연약해진 상태의 우진이다. 문성우진은 심덕의 다리를 잡고 매달리지만, 심덕은 공포에 질려서 그를 뿌리치고 내려간다. 도망치는 심덕의 뒤에서 문성 우진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그녀를 부른다. ‘안돼, 심덕…심덕아…’
당장에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갑판 위의 우진, 그 아래로 아주 여유롭게 사내가 들어온다. 규형사내가 좋은 건 셔츠 팔을 걷어 올리고 있다는 거지. 아주 흡족한 외양입니다. 천천히 들어와서 마치 김우진처럼 의자에 앉는다. 그야말로 바른 자세로 앉아서 김우진처럼 노트를 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노래가 고조 될 때마다 글을 쓰는 것도 고조된다. 점점 더 펜을 쥔 손이 빨라지고, 집중하는 것처럼 몸이 책상 가까이 붙는다. 노트 페이지를 넘기는 것에도 광기가 어려있는데 진짜 책상하고 혼연일체가 된 듯이 몸을 구부렸다가 ‘과앙마악칸!’하고 시작할 때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며 두 손으로 책상을 내려친다. 얼굴에는 악마 같은 웃음이 달려있다.
사실 이 부분 조명 때문에 사내가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 압도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그냥 사내만 보고 있게 된다. 그런데 6일에는 억지로라도 눈을 광활하게 사용해야 했다. 왜냐면 갑판 위의 문성우진과 방 안의 규형사내가 계속해서 똑 같은 모션을 취했기 때문이지. 초반에는 ‘뭐지? 우연인가?’ 했는데 아니었고, 제대로 합을 맞춰 온 거였다. 근데 합을 맞춘다고 해도 두 남자의 표정이 다르고 노래를 부르는 입장이 다른데, 어쩜 그렇게 각자에 맞게 소화가 되는지 솔직히 좀 소름 돋았다. 사실 둘이 똑같이 한 행동이라고 해봐야 그렇게 어려운 모션은 아니었다. 팔을 펼쳤다가 제 가슴으로 가져다 대는 동작이었으니까. 그 외에도 다 한 팔만 사용한 동작이었다. 근데 그 행동을 보여주는 둘의 분위기가 너무 다르고, 표현하는 게 너무 달랐다. 규형 사내는 노트를 들고 손을 움직였다. 손을 펼쳤을 때는 노트를 바라보며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고, 손을 접었을 때는 그게 그저 유희에 불과한 장난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반면에 문성 우진은 손을 펼쳤을 때 마치 세상에 호소하는 듯한 느낌이었고, 팔을 접었을 때는 주먹을 같이 쥐면서 가슴에 대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었다.
이렇게 같은 행동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보여주니까 임팩트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차례야!’라고 하면서 마지막에 서로를 직시하는 것까지 정말 완벽했다. 절규 어린 문성우진의 표정과 여유로운 규형 사내의 미소. 완벽한 결말, 아름다운 결말. ㅇㅇ
암전 되고 나면 다시 과거다. 난 이 시퀀스가 통으로 좋다. 우진의 책상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사내와, 비가 오는 것마저도 즐거운 듯한 과거의 안심덕. 심덕은 방안으로 들어오다가 사내를 보고 깜짝 놀란다. 20일에 봤을 때부터 규형사내는 여기서 개그를 뺐다. 술 마시다가 사레 들리는 것 대신, 살짝 취한 듯이 마신 술잔을 이리저리 돌리며 혼자 놀고 있다. 유리잔을 빙그르르 돌리다가 집어서 망원경을 보듯 한쪽 눈을 감고 안을 쳐다보거나 한다. 뭔가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정말 취한 사람이 오갈 데 없는 손으로 장난을 치는 듯한 분위기.
심덕이 ‘우진이는?’ 하고 물으면 ‘글쎄. 우리 둘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서 잠시 자리를 피해준 모양이야.’라고 말한다. 누가 봐도 취해서 하는 헛소리나 농담처럼 들린다. 심덕도 정확히 그렇게 받아들인 듯 하다. 심덕은 기가 차다는 듯이 웃으면서 ‘술 마셨어?’ 라고 물어보면 ‘조금.’ 하고 대답한다. 안심덕은 ‘네네, 그러세요.’ 라는 얼굴로 웃으면서 자기 술을 따라서 책상 위에 앉으며 작업 진행에 대해 묻는다.
사내는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말하며 책상 주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돈다. 그러면서 우진과 심덕이 자신의 생각보다 특별하다고 말한다. 책상을 돌아 심덕의 앞에 자리한 사내는 심덕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마주보며 ‘좀 더 오래 보고 싶다.’고 한다. 안심덕은 무슨 농담을 하냐는 듯이 ‘그럼? 오래 안 볼 생각이었어?’ 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대답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말끝을 잘라내며 심덕에게 훅 다가가 입을 맞춘다. 입술만 부딪히는데도 전혀 가볍지 않다. 레알 치명치명. 사내는 입술을 떼어내고 여전히 심덕의 코 앞에서 그녀를 보며 단정하게 대답한다. ‘응.’ 여기서 사내의 시선은 심덕을 관찰하는 것도 같다. 이제 어떻게 나올래, 하는 듯.
사내와 심덕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마주보고 있다. 방금 전까지의 친근한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심덕은 웃지 않는다. ‘…면상을 날려버리겠단 말, 잊었어?’ 심덕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 규형사내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심덕의 눈을 똑바로 마주본다. ‘김우진은 되고, 난 안돼?’
재미있는 게 여기서 심덕이 먼저 말을 돌린다는 것이다. 심덕은 ‘…뭐래.’ 라면서 코웃음을 치고, 사내의 시선을 피해고개를 돌린 뒤 술을 한 모금 마신다. 심덕은 왜 얼버무리는 걸까? 이전까지 팽팽히 당겨진 긴장감이 조금 해소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긴 하지만 왜 그 솔직한 윤심덕이 사내한테 대답을 회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사내한테 둘의 관계를 숨겨왔던 걸까? 뒤의 시퀀스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긴 하지. 하지만 난 이걸 심덕이 사내한테 조금 흔들렸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심덕을 빤히 보는 그 눈에서 뭔가를 느낀 게 아닐까? 사내도 눈치 못 챈 걸 심덕이 먼저 알아챈 건 아닐까. 사내x심덕 사랑해여. ㅠㅠㅠ
5일에는 사내가 심덕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러게. 뭐라는 걸까. 뭐라는 거야.’ 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끅끅 웃어댔다. 웃음을 참는 듯한 제스쳐를 해 보이며 심덕이 앉은 책상을 한 바퀴 돌았네. 사실 여기 호흡이 너무 길었다. 책상을 한 바퀴 다 돌다 보니까 너무 길어져서 오히려 뒤에 뭐 더 붙일 말을 찾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하자면 살짝 또라이 같으려다가 갈 곳을 잃고 마가 뜬 느낌이었는데, 그 분위기를 잡아준 게 안심덕이었다. 이때 안심덕 표정이 진짜, 너무 싸늘해서 놀랐다. 원래는 심덕이 ‘뭐래.’ 하고 웃음을 흘리고 나면 사내가 다시 능글능글하게 말하고 심덕이 유혹하듯이 놀리는 그런 아어이다였는데, 규형사내가 진짜 심덕을 비웃는 것처럼 구니까 안심덕도 표정 싹 바뀌어서 너무 싸늘하게 쳐다보는 거다. ‘저 새끼 한대 쳐, 말어.’ 이런 얼굴이었음. 오히려 그런 것 때문에 심덕이 사내와 되게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니까 한명운과 안심덕의 성격이 비슷해 보였음. 동류구나, 뭐 이런 거?
아무튼 호흡이 너무 길긴 했는지 6일엔 ‘그러게. 뭐라는 걸까.’ 라고 하고 잠시 웃다가 웃음을 참는 척하며 바로 다음 대사로 넘어갔다. 다음 대사, 이게 또 아주 좋지. ‘왜이래, 우리끼린데 어때. 응? 괜찮으니까 말해봐.’ 이런 뉘앙스의 대사다. 이 대사를 칠 때 규형사내 느낌도 진짜 좋음. 껄렁껄렁하고 능글맞은 한량 같다. 특히 ‘우리끼린데.’라고 말할 때 문 쪽을 슬쩍 돌아보며 우진이 오는지 살피는 것까지 완벽하다. 그리고 또 좋은 점이 뭐냐면, 이 대사를 치는 사내가 원래 심덕이 알던 사내의 모습일 거라는 것이다. ‘김우진은 되고 난 안돼?’라던 진지한 모습이 아닌 속을 감춘 채 장난만 치는 듯한 이 느낌. 심덕은 사내의 그 분위기에 금방 적응한다. 혹은 제가 아는 모습으로 돌아와서 안심하는 걸지도 모르지. 심덕은 눈웃음치며 말한다. ‘너랑 우진이랑 다른 점이 뭔 줄 알아?’사내는 능청맞게 대답한다. ‘얼굴? 아니지, 얼굴은 확실히 내가 낫지. 그럼 그 소심한 성격?’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김우진을 디스할 것 같은 사내다. 심덕은 웃으면서 ‘아니.’ 하고 대답한 뒤 진짜 유혹적인 표정을 지으며 사내의 가슴께에 손을 올린다. 사내는 마치 ‘네가 어떻게 할지 보겠다.’는 듯 흥미진진한 얼굴이다. 그런데 여기서 안심덕이 훅을 날리지. 원래는 가슴께에 있던 손을 천천히 쓸어 올려 어깨를 잡아 당겨 키스했는데 달라졌다. 더 좋아졌음. 5일에 안심덕은 진짜 작정한 듯이 규형 사내의 넥타이를 쥐고 잡아 당겼다. 어찌보면 멱살이나 다름 없는데, 또 키스는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하단 말이야. 안심덕 센스bb 게다가 진짜 제대로 진하게, 길게 해줬음. 약간 뭔가 안심덕이 규형사내 아랫입술 살짝 물었다가 사내 표정 보곤 웃었던 거 같은데 이거 내 망상인가요? 영상 좀…
아무튼 당하는 규형사내 눈도 동그랗게 커져서 진짜 놀란 얼굴이었다. ㅋㅋㅋㅋ 조금 전과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안심덕은 사내에게서 입술을 떼지 않고 천천히 웃었다. 닿아 있는 입술이 그린 듯이 미소 짓는 게 보이는데, 와, 나 걸크러쉬 쩔었네요. 안심덕 사랑해!ㅠㅠㅠㅠ (야광봉)
심덕은 사내의 표정을 보고 자신이 제대로 한방 먹여줬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아마 사내가 그 정도로 당황한 표정을 지은 건 처음이겠지. 제대로 복수해줬다는 듯이 웃으면서 ‘온도야.’ 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이 참 좋은 게, 심덕과 사내에게 전혀 다르게 맞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답을 들은 규형 사내 반응이 아주 좋다. 심지어 이미 키스로 심각하게 놀랐는데도 심덕의 대답이 충격을 더했던 것 같다. 특히 규형사내한테는 되게 송곳 같은 말일 것 같은 게, 그 자신이 사람이 아니니까 온도 같은 거 있을 리가 없지 않겠어? 규형사내는 그걸 또 미묘하게 캐치하게끔 연기해준다. 규형 사내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할 때 아주 무감정하고 낮은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규형사내를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준다. 이런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여기도 그렇다. 게다가 여긴 제대로 한방 먹은 듯한 불안함도 포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대답하는 입꼬리와 볼이 살짝 떨리는 게 보인다. 그리고 간신히 물음을 가장하여 되묻지. ‘…온도…?’ 마치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 같은 불안함이 담긴 미묘한 말투와 표정 때문에 규형 사내가 더욱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때 심덕이 사내를 보지 않고 있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심덕은 술잔에 단긴 술을 응시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넌 너무 차가워~’ 농담처럼 흘리는 말투지만 아마 심덕이 그 동안 사내에게 느껴왔던 진심일 것이다. 가벼운 장난으로 무장하고 진심을 내보이지 않는 사내에 대한 느낌. 이것도 꽤 의미심장하다. 사내는 사람이 아니니까 뱀파이어 같은 것처럼 몸도 차갑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
아무튼 제대로 한방 먹은 사내는 새침하게 모른 척 하고 앉아있는 심덕에게 다가가 귓가에 ‘음탕한 년’이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둘은 그야말로 빵터지지. 사실 잘 모르겠음. 왜터지는 거지? 뭔가 내가 모르는 섹슈얼한 속 뜻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장난치는 느낌?....너무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 때문에? 이건가?...왜 나만 모르냐 나도 좀 알려주고 웃어라…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사내는 마치 감탄했다는 듯 말한다. ‘어떻게 너 같은 게 조선에서 태어났지.’ 그러면 심덕은 ‘너같이 고루한 인간이 어떻게 날 이해하겠니~’라고 장난스럽게 새침을 떤다. 사내는 온몸으로 웃고 난 뒤 축음기 옆으로 간다. 거칠게 술을 따라 마시면서 말하지. ‘넌 이폴리타야. 죽음의 승리! 젊은 남자와 욕정을 불태우다 끝내 그 남자 손에, 죽어.’ 이때 규형사내가 축음기를 마구 돌리다가 ‘손에,’ 에서 한 호흡 쉬고 ‘죽어.’에 맞춰서 손을 놓는 게 좋다. 그리고 그 손을 음악에 맞춰 느릿하게 선을 그리며 움직이지. 규형사내는 심덕이 말을 하기 전까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잔에 술을 채워 넣고 있다. 심덕이 어떻게 나올지를 기다리는 것 같다.
사내의 디스나 다름없는 말을 듣고도 심덕은 화를 내거나 하지 않는다. ‘뭐, 그런 것도 나쁘지 않네.’ 라며 자조적인 목소리로 해탈한 듯, 포기한 듯 스스로를 인정한다. 심덕은 술잔을 들어올리고 마치 연극하듯 과장된 목소리로 말한다. ‘난 찰-나에 사는 사람이니까.’ 이쯤에서부터 규형사내가 돌아서서 심덕을 보기 시작한 듯. 규형사내는 이 부분에서 심덕에게 빠져드는 것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술잔을 내려보고 있다가 심덕의 말에 고개를 든다. 심덕을 보며 천천히 술을 마시는데, 이 와중에서 시선은 떨어지지 않는다. 심덕이 ‘순간의 미, 그걸 얻을 수 없다면 난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라고 말하며 잔에 든 술을 조명에 비춰볼 때, 사내는 심덕을 바라보며 잔을 들고 있던 손을 툭 떨어드린다. 그녀의 말에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난 그런 사랑을 원해.’는 심덕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넘버다. 실제로 안심덕은 이 노래를 할 때 정말 예쁘고, 매력적이다. 노래하는 내내 짓는 표정도 그렇고, 사이사이 사내와 케미를 보여주는 몸짓도 그렇다. ‘모두 마음 속으로 생각만할 때, 난 그저 행동할 뿐이야. 모두 막연하게 동경만 하던 삶을, 난 직접 살아갈 뿐이야.’ 심덕이 첫마디를 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동안 규형사내는 홀린 듯이 심덕에게 다가온다. 사내가 천천히 술잔을 내밀면 심덕은 웃으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잔을 사내의 잔에 부딪힌다. 쨍하고 유리끼리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나고 나면, 심덕은 다시 앞을 보고 노래를 이어가고 사내는 유리잔을 내려다 본다. 마치 그 소리와 함께 사내의 마음 속에서도 무언가 부딪혀 깨진 것 같은 멍한 표정이다. 그리고 사내는 노래하는 심덕의 주변을 돌면서 ‘어떻게 너 같은 애가 있을 수 있지?’ 하는 표정으로 관찰하기 시작한다.
안심덕은 자신이 부르면서도 그 노래에 취한 듯한 표정이다. 살랑살랑하는 몸짓과 은근한 노래가사가 아주 잘 어우러지지. 1절이 끝나면 규형사내는 능청맞은 얼굴로 말한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날 한번 탐미해 봐.' 안심덕은 그런 사내가 귀여운 듯이 까르르 웃는다. ‘미안하지만 내가 빠지고 싶은 남잔 니가 아냐.’ 라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사내를 스쳐 지나간다. 이때 사내의 엉덩이를 톡 치는 디테일이 있는데 ㅋㅋㅋ 이건 규형사내한테만 하는 행동이더라. 진짜 사내를 ‘친구’로 보는 ㅋㅋㅋ 심지어 자기보다 ‘어린 남동생’을 대하는 것같이 보여서 나만 또 슬픔…몸케미가 그렇게 좋은데 왜죠. 아무튼 규형사내는 당황하지도 않고 돌아서며 자켓 단추를 푼다. ‘아냐아냐, 난 괜찮아. 날 한번 탐미해!’ 이 대사치는 톤이 엄청 매력적이다. 가볍게 장난치는 어조로 시작했다가 ‘탐미해!’ 라고 단정 지을 때는 소리가 한 톤 낮아진다. 게다가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에 명령조를 붙였지. 사내의 장난스런 겉모습과 오만한 속이 동시에 느껴져서 정말 좋다. 물론 정민사내의 ‘아니라고? 생각을 바꿔주지.’도 레알 좋았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짐승 느낌이었음.ㅇㅇ…
사내들이 이렇게 남성적인 매력을 뿜어내는데 흔들리지 않는 심덕도 대단하다. 오히려 더 유혹하지. ‘오늘밤 누구든 날 원하면 가질 수 있어.’ 이 부분에서 사내는 심덕을 뒤에서부터 천천히 안아온다. 한 손은 심덕의 허리를 살짝 잡고, 한 손은 심덕의 팔을 쓸어 내린다. 정말 살짝 대고만 있는 건데도 케미가 어마어마함. 아마 둘은 언제나 이런 식의 가벼운 스킨십은 아무렇지 않게 해왔을 것 같다. 심덕도 마치 사내의 손길에 응하듯이 가볍게 살랑살랑 움직이지. 제 허리를 잡은 사내의 손을 겹쳐 잡고, 한 손은 사내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그러다가 ‘네 안의 진심을’ 에서 획 돌아 마주본 뒤, ‘행동으로 보여줘!’ 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부르면서 사내를 밀어내고 천천히 뒷걸음질 친다. 심덕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사내와 대치하면서 제대로 된 밀당을 보여준다. 한번은 안심덕이 사내에게 도전적으로 검지 손가락을 까딱까딱하기도 했다. ‘내가 널 탐미하게 하고 싶으면 와서 날 잡아봐.’ 딱 이거였다. 이 장난과 케미의 아슬아슬한 경계가 너무 좋음…
사내와 심덕은 우진의 책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쳐다본다. 이때 구도도 되게 연출이 좋다. 둘 다 책상 끄트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상체만 내려서 마주본다. 사내가 어느 쪽으로 갈 지, 심덕이 어느 쪽으로 피할지 알 수 없게 하지. 결국 심덕은 사내가 달려간 반대편으로 유유히 피하며 당당하게 웃는다. ‘넌 난 못 잡아.’ 이런 표정이지. 딱히 사내도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듯. 심덕의 표정을 보며 같이 웃는다. 5일에 규형사내는 달아난 심덕을 보며 ‘앙.’ 하고 입을 벌렸다가 깨무는 제스처를 했다. 이날 케미가 정말 좋았던 터라 아마 애드립으로 터진 듯. 그리고 그 모습이 사내답지 않게 귀여워서ㅋㅋㅋ 귀여웠다. ㅇㅇ
안 심덕은 다시 노래를 부르고, 사내는 비운 술잔을 채워 넣으며 심덕을 바라본다. ‘오늘이 지나면 난 사라질 테니까. 난!’ 이 부분을 부르는 안심덕이 너무 좋다. 매력이 넘쳐. 두 팔을 천천히 들어올리다가 ‘난!’에서 앞으로 넓게 벌린다. 여기서 성량도 엄청나게 커짐. ‘그런 찰나의 인생을, 불꽃처럼 타오르는 마음을, 찰나의 인생을, 그런 순간의 기쁨을.’ 심취한 안심덕도 좋은데 그 옆에서 심덕에게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단숨에 술잔을 비우는 규형사내도 좋음. 눈빛이 진짜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이 이글거린다. 그런데 술을 탁 털어 넣고 단숨에 심덕의 옆으로 와서 허리를 잡아 저를 보게 돌리는 손길은 부드럽기 그지 없음. 물론 어느 정도 심덕이 자연스레 돌려주는 것도 있지만, 그게 어쩜 그렇게 금욕적으로 보이는지. 규형사내는 심덕을 터치할 때도 뭔가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키스도 그렇고, 손길도 되게 담백하고 금욕적이다. 그런데 눈빛은 완전 반대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엄청난 집중력으로 심덕을 바라보고 있어서 진짜 구멍이라도 날 것 같다. 그 상반되는 느낌이 오히려 더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심덕이 마지막으로 ‘난 원해.’ 를 노래할 때 둘을 마주보고 있다. 규형사내는 천천히 미소를 짓다가 순식간에 심덕을 안아 들어올린다. 심덕은 마치 놀이기구를 탄 어린아이마냥 까르르 웃지. 심지어 의심덕은 공주님 안기를 해준다고 하더라. 그래서 잔뜩 기대하고 봤는데 왜 나 보는 날에 안 해줘요? 왜죠? 왜냐?...
아무튼 그래요. 이 시퀀스 후기만 4장이 되는 걸 보면 알겠지만 난 이걸 보려고 사찬을 그렇게 또 본 것 같습니다.ㅇㅇ…. 아무튼 내가 본 얼마 없는 뮤지컬 중에 제일로 아슬아슬하고 치명치명하고 남녀 케미가 쩌는, 그런 씬이었네요. ㅇㅇ
심덕과 사내 둘이 끌어안고 즐겁게 웃는 장면을 우진은 뒤에서 목격한다. 멈칫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방으로 들어온다. 사내는 우진을 반갑게 맞으면서 심덕이 사랑을 하고 있다고 우진에게 늘어놓는다. 사실 이게 조금 이상한 부분인데, 분명 앞에서 ‘김우진은 되고 난 안돼?’ 라고 물었으면서 왜 심덕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는 걸까? 김우진하고는 사랑은 아니라고 치부? 한 건가? 아니면 김우진은 사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그냥 거기에 맞춰준 걸까?...
아무튼 심덕의 표정은 금세 차가워지지만 사내는 모른 척 장난을 계속하지.
규형사내는 우진에게 귓속말로, 하지만 심덕에게도 다 들리게 물어본다. 이 귓속말도 사내와 우진이 친구였던 시절을 깨알같이 보여주는 부분이라 재미있다. 특히 문성우진이 ‘명운아.’ 라고 사내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그때부터 좀 더 의미가 부여돼서, 둘이 정말 친구 같은 분위기가 났다. 우진도 모른다는 대답에 사내는 ‘그럼 우리 둘이 같이 심문해보자.’며 심덕을 심문한다. 근데 이때 규형사내가 ‘누구야.’ 라고 묻는 톤이 무슨 강아지 혼내는 듯한 ㅋㅋㅋㅋ 그런 톤이라 웃김. 그리고 안심덕이 정색하고 낮게 ‘그만해라.’ 라고 말하면 ‘올? 뭐 이런걸로 화내?’ 하는 표정을 짓는 것도 좋음 ㅋㅋㅋ 심덕은 새침하게 돌아서서 담배를 꺼내 문다. 사내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등장인물을 추가해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내 몰래 살짝 데이트하는 심덕과 우진이다. 막공주 쯤에는 심덕의 라이터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서 자꾸 불이 안 붙는 상황이 있었다. 원래는 앞에서 사내가 다음 구성을 얘기하는 동안 심덕과 우진이 꽁냥꽁냥대야 하는데 심덕이 담배에 불을 못 붙이니까 그게 진행이 안됐다. 그리고 한번은 안심덕이 정말 애처로울 정도로 불 붙이기에 실패했다. 진짜 한 스무 번도 넘게 찰칵거린 듯. 나중에는 사내 대사 치는데 방해되니까 한 손으로 가리고 계속했다. 웃긴 건 문성 우진이 그걸 계속 보면섴ㅋㅋㅋ 어떻게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다는 것이다. 뭔가 진짜 김우진처럼 다정한 눈빛이라 커플 케미 쩔었네요. 진짜 ‘이걸 붙여줄까 말까, 붙여줘도 되나? 하지 말까, 어떡하지.’ 고민하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눈은 불 붙이는 안심덕에 고정이고 손도 안정부절. 책상 서랍을 잡는가 싶더니 이내 포기하고 다시 안심덕을 봄. 내가 문성우진 입술 씰룩거리는 것도 다 봤다. 분명히 현웃터지는 거였음. 더 웃긴 건 웬만하면 안심덕도 포기할만한데, 끝까지 했다는 거다. 중간에 포기할 것처럼 라이터 든 손을 내려놨다가 다시 시작한 게 레알이었음ㅋㅋㅋㅋㅋ 근성 쩔어. ㅇㅇ 결국에는 보다 못한 문성우진이 책상 서랍을 열고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여줬다. 눈빛이 무슨 ‘담배가 그렇게 피고 싶었어? 우쭈쭈’ 이런 느낌. 아무튼 담배 불 붙이는 걸로 꽁냥대는 케미 타임 다 날리고 ㅋㅋㅋ 그냥 감사의 볼뽀뽀만 있었던 이색적인 순간.
라이터는 5일에도 말썽이었다. 안심덕은 이번에도 약 열 번 이상의 시도 끝에 겨우겨우 성공. 6일에는 드디어 다시 커플 케미를 볼 수 있었다. 사실 그 동안 여기에서 문성우진과 안심덕 케미가 그야말로 폭풍처럼 강렬했다. 한번은 문성우진이 제 무릎에 앉은 안심덕에게 키스를 퍼붓다가 고개가 그 아래로 내려가서 진짜 헉! 한적 있었지… 안심덕은 꿋꿋하게도 야한 짓 하는 애인을 막을 생각은 안하고, 사내의 뒤통수를 보며 이런 몰래 애정을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레알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음. 안심덕 본인이 피던 담배를 우진의 입가에 가져가 권하는 것도 좋다. 우진이 한번 피고 나면 다시 가져와서 아무렇지 않게 본인이 피는, 담배 나눠 피기를 시전함. 선수다…
사내가 한번 돌아 볼 때는 둘 다 아닌 척, 열심히 듣고 있었다는 척 하는 게 웃기다. 키스하던 입술을 앙 다문 채 고개를 끄덕끄덕, 가끔 안심덕은 한쪽 구두 끝을 들어서 같이 까딱까딱. 문성우진은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면서 끄덕끄덕. 이게 너무 귀여워.
6일에는 안심덕이 문성우진의 뒤에서 허리를 굽혀 살짝 뽀뽀하고 나서한 손은 우진의 어깨 위를 잡았다. 근데 문성우진이 검지손가락으로 심덕의 팔을 야하게 쓸어 내렸다.ㅋㅋㅋㅋ 야했어! 책상에 반쯤 엎드린 채로, 온전히 심덕만 보면서 팔을 쓸어 내림. 뭔가 커플이 사소한 이야기로 시시덕대는 ㅋㅋㅋㅋ 그런 느낌이 났다. 진짜 규형사내 혼자 뭐하나…이런 생각 들 정도. ㅋㅋ
그렇게 꽁냥꽁냥대다가 사내가 하는 얘기를 듣던 심덕은 풉하고 조선시대의 고루한 사고방식을 비웃지. 하지만 그건 심덕이 모르는 우진의 진짜 얘기다. 우진은 급격히 얼굴을 굳히면서 ‘그만’하고 말한다. 그러면 사내는 천연덕스럽게 ‘왜 맘에 안 들어서 그래? 그럼 그 얘기를 한번 넣어보자. 네 일본인 애인.’하면서 폭탄을 펑 터트리지. 나중에 얘기하자는 우진의 말을 자르고 심덕은 지금 얘기하라고 다그친다. 우진이 심덕을 보면, 규형사내는 들고 있던 대본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소리 없이 웃는다. 악마가 따로 없다. 그러다 금세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김우진을 완벽하게 디스한 뒤, 마치 본인도 절망스러운 것처럼 과장되게 대본을 던지고 축음기 쪽으로 돌아선다.
그리고 우진을 바라보는 안심덕의 간극이 좋다. 조금 전까지 다정하게 나눠 피던 담배를 든 손이 가늘게 떨리지만, 아닌척하며 천천히 한번 담배를 마신다. 그렇게 숨을 내쉰 뒤 우진에게 ‘너만 빠지면 된다.’라고 말하지. 이때 옆으로 돌아서 있던 규형사내는 ‘오우, 세네.’ 하는 표정을 짓는데, 이거 너무 좋음 ㅋㅋㅋ 짱 귀여움! 심덕은 마치 본인에게 다짐하듯이 말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 노래해.’ 그리고 더 과장되게 ‘나 윤심덕이, 고국 무대에서!’를 말한다. 이때 규형사내가 옆에서 심덕과 똑같이 입모양을 움직인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이. 본인이 그렇게 말하게끔 만들었다는 듯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그리고 자연스럽게 심덕에게 겉옷을 꺼내 걸쳐준다. 여기서 안심덕은 진짜 매력이 쩌는 여성이다. 심덕은 겉옷을 입혀준 사내에게 ‘이따 연습실에서 봐.’라면서 짧게 입술에 뽀뽀를 남기고 떠난다. 뽀뽀를 받은 규형사내의 얼굴은 아주 능청스럽고 귀엽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말아 다물면서 우진의 눈치를 보는 척한다. ‘내가 먼저 한 거 아니다?’ 하는 얼굴임.ㅋㅋㅋㅋ
우진은 심상한 표정으로 ‘너한테 내 얘기를 한적 없는 것 같은데.’ 라고 묻는다. 사내는 여전히 능청맞게 ‘내가 너에 대해 관심이 많잖아.’라고 대답한다. 제 앞으로 다가오는 사내에게 우진이 다시 묻는다. ‘윤심덕, 사랑해?’
이게 또 6일의 키포인트였다. 규형사내는 호흡을 진짜 길게 가져가면서 대답했다. 대답을 한땀한땀했음. ‘윤심덕…사랑해……라고 물었어?’이 대답을 하는 사이사이 침묵이 엄청났는데, 그만큼 텐션이 높아져서 분위기 장난 아니었다. 난 솔직히 ‘윤심덕, 사랑하냐고?’ 라고 되물을 줄 알았다. 5일 공연에서도 대답 전에 호흡이 엄청 길었고, 애드립을 치려다 만듯한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거든. 근데 거기에서 ‘사랑해.’ 라고 단정짓는 듯한 말투를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음. 사찬 장르 바뀌나?ㅋㅋ 아니면 어떻게 마무리하려고 저러는 거지? 그러더니 결국 ‘라고 물었어?’라고 마무리를 하더라. 이게 물론 그렇게 해야 하지만 사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문장은 아닌지라 좀 어색하긴 했다. ㅋㅋㅋ 그럼에도 저럴 수밖에 없었던 걸 이해하는 게, ‘사랑해.’ 라고 끝맺음 내는 그 톤의 힘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사내x심덕 플랜카드 꺼내서 흔들뻔했네.
문성우진이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 없는 사이, 규형사내는 다시 피식 웃으면서 분위기를 가볍게 만든다. ‘무슨 소리야. 작업에만 집중해.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 말하고선 우진의 어깨를 툭 치고 나간다. 그리고 홀로 남은 우진은 두통을 호소한다.
그리고 물새로군. 우진이 설명하는 부분인데 놀랍도록 기억이 안 난다… 좋아하는 장면과 아닌 장면의 차이. 우진이 설명을 하는 동안 비틀비틀 등장한 심덕이 ‘날개가 찢긴 한 마리 물새’ 1절을 부른다. 특히 ‘막막한 바다!’에서 안심덕의 빵빵한 성량을 느낄 수 있지. ‘어디쯤 왔나. 보이지 않아. 떠나온 곳도 가 닿을 곳도 보이지 않아. 난 어디.’ 26년 현재 심덕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안심덕도 노래하면서 자포자기한 듯한 표정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심덕이 돌아 무대 뒤로 들어가면 우진이 받아서 2절을 부른다. 우진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한쪽 뱃머리 위에서는 사내와 심덕이 등장해 키스한다. 지난 세월 동안 우진이 이 둘을 대상으로 어떤 망상을 해왔는지 보여준다. 초반에 우진이 심덕을 추궁할 때 ‘그와 어떤 사이야!’ 라고 했던 이유가 잘 드러난다.
사내는 등장할 때 심덕을 에스코트한다. 심덕이 들어오면 바로 키스. 여기서 규형사내는 뭐 스킨십 같지도 않게 덤덤하다. 키스도 진짜 짧게 닿았다만 떨어지는 느낌. 어차피 심덕 뒤통수만 보이니까 진짜로는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다. 다른 사내들은 그래도 좀 길게 하는 티를 내줘서 ‘아, 김우진이 저런 생각을 했으면 질투심에 불탔겠다.’고 생각할만한데 규형사내는 너무 담백함. 극 내내 케미를 풍겨주다가 딱 이 장면에서만 아무 케미가 없다. 사실 이 장면 끝나고 바로 사내가 등장하는 씬이다 보니까 ‘빨리 내려가서 다음 등장 해야 하는 걸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질 정도. 게다가 닿지도 않은 것 같은 키스를 재빨리 끝내고 돌아 나가는 사내와 심덕의 모습도 좀 웃기다. 출입구가 너무 낮아서 둘 다 허리를 숙이고 ㅋㅋㅋ 나가니까 갑자기 확 무대인 티가 나서 현실로 돌아오게 됨… 슬픈 일이지.
아무튼 물새 끝나면 다시 사내의 등장이다.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억지로 웃으면서 ‘대본 잘 봤어.’라고 하는 그 첫마디에 아주 여러 가지가 느껴진다. 우진이 바꾼 결말을 보고 레알 빡이 쳤지만, 일단 티내지 않겠으니 왜 그랬는지 말해봐. 하는 모습이다. 우진 역시 이미 사내에 대한 의구심이 든 상태라 순순히 타협할 생각이 없다. ‘이걸 쓰고 있다 보면 나까지 비관적이게 돼!’ 사내는 우진을 깔아뭉개는 발언을 하지. ‘너 같은 사람 말고 선택 받은 사람들은 내 메시지를 이해할 거야.’라며 사내가 본색을 드러내자 우진은 그 미묘한 어감을 잡아낸다. 선택? 누구에 의해서? 너야?’ 사내는 대답하지 않는다. 우진은 결심한 듯 일어선다. ‘…난 여기서 손 뗄게.’ 드디어 사내와 우진의 정치색이 갈렸어요. 규형사내는 여기서도 그 사람 같지 않은 무미건조한 톤과 무표정한 얼굴을 보여준다. ‘무슨 말이야?’ 우진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겠단 소리야.’
규형사내는 우진을 등지고 시그니쳐 행동을 한다. 목을 양쪽으로 한번씩 뚜둑뚜둑 꺾고, 입을 한번 크게 벌렸다 닫는다. 원래는 무서우라고 하는 거겠지만 난 왠지 외국영화 상영 전에 사자가 크르렁대는 게 생각나서 좀 귀여움… 내 취향 답이 없음…
우진을 보며 돌아선 얼굴은 완전히 바뀌어있다. 사내는 당황한 척 다급한 말투로 우진을 설득한다. 하지만 그건 곧 비꼬는 말로 변하지. 이게 되게 재미있다. 이런 거 보면 사내도 딱히 자기 본색은 꼭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나 봄. 일단 우진이 비틀어 놓은 결말을 보며 빡친 것도 있겠지만, 이미 우진과 쌓아온 관계가 꽤 오래됐고 어느 정도 김우진을 파악했다고 결론 내린 것 같다. 그러니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된다고, 그런 생각인 듯. 초반에 우진이 원하는 달콤한 말한 해주던 때와 완전히 다르다.
‘우진아, 너 왜 그래. 말해봐, 응?’ 하면서 안달난 척을 한다. 우진은 사내에 대해 아무 것도 없으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고국 순회공연 명단에서 이름을 빼겠다고 한다. 규형사내는 그게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게 우리의 다짐보다 중요해?’ 그러면서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그 ‘다른 것’이 뭔지 고민하는 척 김우진을 빤히 쳐다보다가 문득 멈춘다. 여전히 침묵하는 김우진을 보면서 한층 낮아진 톤으로 떠보듯이 ‘…윤심덕?’ 을 말하지. 우진은 대답하지 않지만 사내는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서워진다…
‘정말 네 욕심은 끝이 없구나!’ 재미있는 건 이 대사를 칠 때 아주 잠깐동안 사내가 절대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신이 시험을 내리고 주시하다가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을 꾸짖는 것 같다. 대체 누가 친구한테 저런 말투를 사용하겠나.
사내는 거침없는 보폭으로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우두커니 서있는 김우진을 제대로 모욕한다. ‘고향에 있는 아내와! 일본인 애인까지 모자라! 이제는 윤심덕까지! 스고-이.’ 여기서 ‘아내’와 ‘애인’에 제대로 강세를 줘서 대사 치는데 진짜 찰져서 좋다. 5일에는 ‘애인과!’에서 아예 의자를 손으로 밀어 넘어뜨려서 큰 소리를 냈지. 그리고 규형사내는 허리를 숙여서 김우진의 아랫도리에 박수를 쳐주며 ‘스고-이’라고 말한다. 아주 상스럽고, 모욕적임. 한번은 문성우진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서 ‘저래도 괜찮나;’ 하고 걱정이 들 정도였지… 아무튼 이렇게 상스러우니 우진이 부들부들할 수밖에.
‘나가. 당장 여기서 나가!’ 사내는 우진을 비웃으며 나가는 척 하다가 권총을 꺼내 들고 돌아선다. 그리고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야.’ 시작. 사내의 얼굴엔 살짝 미소까지 어려있다. ‘여기서 그만 둘 순 없어. 나 없이 넌 아무 것도 못해.’ 노래하면서 계단을 한 발짝씩 내려오는데 무게감이 있다. 총구나 시선은 쭉 우진에게 가 있다. 우진은 뒷걸음질 치며 도망친다. ‘여기서 그만둬선 안돼. 잘 생각해, 얼마 남지 않았어.’ 이 ‘잘 생각해.’할 때 한 손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는데,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 걸 해라, 멍청아.’ 이런 느낌이다… 그리고 우진에게 달려가서 총을 바짝 겨누고, 멱살을 잡아서 벽을 뚫을 듯이 밀어붙여놓고 ‘넌 곧 유명해 질 거야. 우린 완벽한 관계야!’를 강요한다. 여기서 문성우진 진짜 안쓰러워 죽는다. 특히 벽에 서랍장 같은 게 있어서 되게 불편한 모양새로 밀어붙여져 있기 때문에… 코앞에 또라이 같이 희번덕대는 사내의 눈과 겨눠진 총구가 그야말로 이중고다. 사내는 우진을 끌어내서 다시 바닥에 내던진다. ‘너도 알잖아, 넌 내가 필요해! 나는 널 잘 알아. 뭘 원하는지!’ 문성우진은 바닥에서 거의 울부짖는다.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냐!’
규형사내는 머리를 한번 넘기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다시 우진의 뒷덜미를 잡아다가 의자에 끌어 앉히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어투로 말한다. ‘날 빼고 싶으면 윤심덕도 빼. 그럼 이해해줄게.’ 규형사내는 무대 소품을 얌전하게 다루는 편인데 5일에는 앞에서 의자를 넘어뜨렸기 때문에 총을 든 손으로 그걸 다시 바로 세우느라 뭔가 불편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 다음엔 의자는 얌전히 내버려두더라. ㅋㅋ
아무튼 이 어마무시한 협박 속에서도 우진은 굴하지 않고 ‘빠지는 건 너 하나야.’라고 대답한다. 사내는 머리에 겨눈 총구를 더 들이미는데, 그게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대답은 한결같다. 정신력 스고이. 사내는 우진을 다그친다. ‘넌 지금 질투하고 있는 거야. 내 재능을, 그녀와의 관계를! 아냐?’ 여기서 살짝 재미있는 건 ‘그녀와의 관계’다. 관객이 보기에 사내와 심덕은 너무나도 친구관계라 우진이 질투할 거리가 뭐가 있겠느냐 싶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우진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너무나도 의심스런 정황이 몇 있다. 첫만남에서 키스한 것도 그렇고, ‘난 그런 사랑을 원해’에서는 둘이 끌어안고 있는 걸 봤었고. 특히 안심덕은 아예 우진이 질투하라고 사내에게 키스까지 했으니 글쟁이 김우진의 망상이 폭발했던 모양. 사내는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라는 걸 더 강조한 것도 같다. ‘관계’라니. 이 얼마나 주관적인 단어란 말인가. 아주 교활하다.
우진은 애써 부정한다. ‘아냐!’ ‘정말 아냐?’ ’아니야!’ 사내는 책상에 소리가 나게 총을 탁! 내려놓는다. 그리고 조롱하던 표정도 싹 굳어서 정색을 하고 우진에게 억지로 펜을 쥐어준다. ‘그럼 써.’ 우진은 펜을 놓으려고 하지만 사내가 꽉 잡고 있어서 쉽지 않다. 6일에는 ‘써!’ ‘싫어!’ ‘어서 써!’ ‘싫어!’의 실랑이 끝에 규형사내가 ‘써! 우진아!’ 라고 외치자 문성우진이 ‘명운아!!!’라고 외치며 사내를 쳐다보았다. 아, 이거 진짜 강렬했다. 문성우진의 절박한 표정과 ‘명운아!’라는 외침. 원래 우진은 사내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그게 ‘난 그런 사랑을 원해’에서 장난스러운 친구마냥 이름을 한번 부르는 게 추가되더니 결국 페어막공에서 또 한군데가 더 추가되었다.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고 싶지 않은, 정의하기 어렵지만 뭔가 중요하게 여겼던 감정을 버리고 싶지 않은 마지막 비명. 하지만 사내는 다시 우진에게 쓰라고 말할 뿐이다. 끝내 결심한 듯 우진은 사내의 총을 쥐고 사내를 겨눈다. 아까와는 반대의 상황이 된다.
규형사내는 자신에게 총을 겨눈 우진을 보자마자 뒤로 넘어질 듯이 몸을 피한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올려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우진에게 ‘총 내려놔, 위험해.’라고 말한다. 총을 들고 있는 우진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있다. 규형 사내는 우진에게 ‘잠깐만, 다가가려는 게 아니고 이거, 이거 종이 한 장만 잡을게. 어? 괜찮지?’라는 행동을 취한다. 무슨 흥분한 범인 진정시키려는 경찰도 아니고, 사내가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게 꽤 재미있다. 사내는 책상 위의 대본을 한 장 집어 들면서 ‘넌 곧 유명해 질 거야. 우린 완벽한 관계야!’를 외친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척하는 건 딱 여기까지다.
‘너도! 알잖아. 넌 내가 필요해.’ 여기에서부터는 총이고 나발이고 신경도 안 쓴다. 오히려 우진에게 달려들고, 총 앞으로 뛰어든다. 놀란 우진이 반대로 도망가는 걸 쳐다보지도 않는다. 사내는 손에 쥔 대본을 들어 보이면서 ‘넌 내가 필요해.’라고 단정을 짓지. 그리고 우진을 돌아본다. ‘나는 널 잘 알아. 뭘 원하는지.’ 6일에는 ‘널 잘 알아!’에서 목소리를 긁으면서 완전히 강조해서 말하듯이 했다. 그리고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우진에게 다가간다. 우진이 도망치는 걸 똑바로 보면서. 진짜 파트 내내 압박이 너무 심했다. 숨 쉴 구멍을 안 만들어 주고 몰아치는 느낌.
사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라고 지르는 것에 맞춰서 문성우진이 발악한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 이걸 들은 규형사내는 좀 놀란 듯? 의아한 듯? 보인다. 그 동안 우진의 모든 욕망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전혀 반대의 말을 하니까 놀라지 않을 수 없겠지. 우진은 울먹이면서 말한다. ‘창조적인 삶, 창의적인 사고, 그것뿐이야.’ 우진은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의 대본을 집어 들어 위로 던진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야.’ 대치한 두 남자와 흩날려 떨어지는 종이들. 그림이다.
우진은 여전히 사내를 겨누고 있지만 힘은 하나도 없다. 규형사내는 한 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넘기며 가다듬는다. 그리고 또 그 사람같이 않은 톤3333으로 아무 감정이 없이 대사를 친다. ‘…후회할 거야.’ 사내는 우진의 앞으로 달려가며 외친다. ‘김우진!’ 놀란 우진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은 나가지 않지만 우진은 자신이 총을 쐈다는 사실에 무너진다. 조금씩 울먹이는데, 점점 더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진짜 가까스로 서있는 정도. 사내는 모든 걸 알고 있었으면서 마치 몰랐다는 척 우진을 농락한다. ‘이 총이 왜 이러지?’ 이런 표정으로 총을 톡톡 쳐보다가, 총을 잡고 있는 우진의 손을 통으로 들어서 총구를 제 눈 앞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 씨익 웃으면서 천천히 총구를 입 안에 넣기 시작한다. 아무리 총알이 안나갔다고 해도 그건 꽤 그로테스크하겠지. 기겁해서 떠는 문성우진을 보며 규형사내는 총을 물고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긴다. 방아쇠에 우진의 손가락이 걸려있는 채로 같이. 우진은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지만, 여전히 픽 소리만 날뿐 총은 불발이다. 이쯤 되면 문성우진은 반쯤 정신이 나가서 입을 벌린 채 흐느낀다.
총구를 입에서 뺀 규형사내는 바닥에 침을 한번 뱉고,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낸다. 아주 가증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우진에게 한 개피를 권한다. 대답한 겨를이 없는 우진을 대신해 스스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싫으냐고 물어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끄덕끄덕. 담배는 제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라이터를 꺼내는데 바로 불을 붙이지 않고 우진이 쓴 결말 종이를 찾는다. 다시 한 번 내용을 눈으로 훑어보며 고개를 젓는다. 라이터로 결말 종이에 불을 붙이고, 그 불타는 종이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한번은 불이 너무 활활 타서 혹시 델 까봐 좀 걱정될 정도였지… 타는 종이를 쓰레기통에 넣고 돌아온 규형사내는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고 우진의 얼굴에 아주 길게 내뱉어준다. 6일에는 여전히 정신이 빠져있는 문성우진의 얼굴을 탁탁 치면서 ‘괜찮아, 그래, 괜찮아.’ 라고 달래주었다. 지금 누가 그 지경을 만들어놨는데 ㅋㅋㅋ 마치 다른 사람에 그래 놓은 마냥 달래주다니.
한번은 문성우진이 울면서 다가오는 규형사내를 향해 빈 총을 철컥철컥 쏜 적도 있었다. 그때 규형사내는 ‘아- 아-’ 하면서 총에 맞는 척을 해줬다.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진짜 흥미로웠지…
그렇게 난장을 쳐놨는데 혼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온 사내는 우진의 손에서 총을 다시 가져온다. ‘결말은, 내가 쓸게.’ 웃으면서 우진의 어깨를 한번 탁 집고 계단을 올라간다. 우진은 사내의 손이 떨어짐과 동시에 바닥으로 무너져 쓰러진다. 그 뒤에서 사내는 마지막으로 우진에게 총을 겨누며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라며 상기시켜준다.
사내가 사라지고 나면 무대에는 그게 자신의 환상인지 정신병인지 모를 상태로 망가진 문성우진만 남아있다. 우진은 기어서 노트를 꺼내온다. 그리고 사내가 사라진 이후에도 사내로부터 계속해서 글을 받았던 것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글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것도 알려준다. 사내가 사라졌어도 그는 계속 우진의 곁에 존재해왔던 것이겠지. 아마 사라졌다기 보단 그 동안 심덕의 곁에 있지 않았을까. 왜냐면 김우진은 사내를 피해 도망친 것이었으니까.
결국 결말이 완성된 사의 찬미 원고를 받은 김우진은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폐해진 것 같다. 문성우진은 사내가 남기고 떠난 말을 울부짖는다.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들리는 사내의 허밍소리. 우진은 공포에 떨며 어떻게든 몸을 숨기려고 하지만 소용없다. 우진은 허공에 대고 ‘나와! 어서 나와!’를 외치다가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사내인 줄 착각한다. 우진은 넥타이로 본인의 목을 조르고, 까무룩 쓰러지고 만다. 마치 천식이 온 것처럼 가까스로 숨을 ‘힉,힉’ 쉬면서 무대 바닥에서 꿈틀거린다.
방 안으로 들어서던 심덕은 그런 우진을 보고 놀란다. 단숨에 걱정이 어린 얼굴이 되지만 이내 표정을 갈무리한다. 예전처럼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기엔 심덕은 이미 상처가 많은 것 같다. 우진은 심덕을 보고 가까스로 말한다. ‘그가 여기 있어.’ 심덕은 살짝 놀란 얼굴로 주변을 살펴본다. ‘그를 만났어?’ 하지만 우진은 ‘나는 안다.’고만 할 뿐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심덕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한층 더 실망한 얼굴이 된다. 심덕은 우진에게 대본을 내민다. ‘대본을 읽었어.’ 하지만 심덕이 본 대본 그 어디에도 결말은 없다. 우진은 자신이 완성한 결말이 사라졌다는 것에 다시 실성한 사람처럼 군다. 안심덕은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치지만 우진은 아랑곳 않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대본만을 뒤질 뿐이다.
확실히 김우진은 문성우진이 좋다. 표현이 입체적이고, 디테일함. 윤심덕이 왜 김우진을 보면서 같이 슬퍼하고 절망하는지 잘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심덕과 사내의 관계성이라 어쩔 수 없이 그걸 중심으로 보는데도 페어막에선 문성우진에게 종종 시선을 빼앗겼다. 특히 이 부분은 문성우진과 붙을 때의 안심덕이 좋다. 문성우진이 보여주는 그 안쓰러움은 보고 있자면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다. 안심덕은 우진을 마냥 외면할 수가 없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같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힘도, 되돌릴 힘도 없다. 그저 같이 무너질 뿐. 안심덕은 비명처럼 ‘제발!’을 외친다. 6일에는 정말 원망스럽다는 듯 문성우진의 허벅지를 퍽 때리며 흐느꼈다. 그리고 제발 이러지 말라는 듯 그의 앞에 엎드려 울었다. 문성우진은 그런 심덕이 안쓰러운 듯 보면서도 결국에는 결말이 사라진 대본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가 멀쩡한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려놨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울던 심덕은 다시 고개를 들고 다급하게 말한다. ‘그럼 말해봐. 우리에게 정해진 결말이 뭔지!’ 하지만 우진은 쉽게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말하겠어 둘 다 죽는 건데. 우진이 입을 꾹 다물자 심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방금 전에 터트린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처럼. 김우진이 입을 다문다면 자신도 그래 주겠다는 것처럼. 나가려는 심덕의 뒷모습을 보고 우진은 결국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말해준다. 죽어. 배 안에서. 우리 둘 모두.’ 심덕이 충격 받아 비틀거리는 사이 우진은 새로운 종이를 찢어 급하게 휘갈겨 쓴다. 그리고 힘없는 다리를 겨우 일으켜 심덕에게 기어간다. 그 기이한 모습에 심덕은 무서운 듯 몸을 뒤로 물리지만 우진은 가까스로 심덕에게 종이를 건네준다. ‘제발 이대로 해줘. 내 마지막 부탁이야.’ 이때 안심덕이 울음기 서린 목소리로 ‘…약을 가져올게.’라고 말하고 달려나가는 게 좋다.
문성우진은 가까스로 벽을 잡고 일어나서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저 바다에 쓴다.’는 참 안쓰러우면서도 문성우진의 결심이 돋보인다. 특히나, 저번에도 말했지만 ‘절망 속에서 생명을 노래하라.’ 부분은 들을수록 좋은 것 같다. 문성우진의 그 표정과 떨리지만 힘있는 목소리 때문에 처음으로 여기서도 울컥했네요. 연기 잘해…
그렇게 다짐한 우진이 짐을 챙겨놓고 방을 나가고 나면 약을 가지고 심덕이 돌아온다. 숨이 가쁜걸 보니 뛰어 갔다 온 모양이다. 우진이 걱정되긴 되었나 보다. 그새 사라진 우진을 찾는 시선이 흔들린다. 이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안심덕은 방안을 둘러본다.
엉망진창이 된 방안은 마치 김우진의 현재 모습처럼 보인다. 심덕은 널부러진 문성우진의 넥타이를 주워 안고 운다. 한번은 자켓을 끌어안고 울었다. 그나마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삼키기만 하다가 금세 마음을 추스른다. 심덕은 엉망이 된 방안을 조금씩 치운다. 의자가 넘어져 있으면 세워주고, 가방이 날라가 있으면 가져와서 닫아주고. 그러다가 조금 전에 우진이 준 종이를 펴서 읽어본다. 종이를 읽던 심덕의 표정은 불안하게 바뀌고, 다시 우진을 찾아 나가려 한다. 그때 구둣발소리가 들린다.
심덕은 그게 단박에 사내인 걸 알아채고 황급히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아 지운다. ‘안녕.’ 사내는 마치 어제도 본 것처럼 등장해 인사한다. 심덕은 무표정한 얼굴을 가장하고 인사한다. ‘안녕.’
규형사내는 여기서도 조금 무감정한 톤을 낸다. ‘놀란 표정이 아니네?’ 그래서 되게 무섭다. 심덕이 숨기는 걸 들킬까 봐. ‘올 줄 알았으니까.’ 안심덕은 아닌 척 대답하고 계단을 내려가며 화제를 돌린다. ‘이제 어떻게 하면 돼?’
이 부분이 조금 혼란스럽다. 사내가 왜 놀라지 않느냐고 묻는 말은 곧 심덕이 몰랐을 거라는 얘기가 아닌가?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마치 심덕과 사내가 같이 계획한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조금 생각을 길게 해보자면, 아마 심덕이 우진과 배에 탄 것까지는 사내와 같이 계획한 일이 맞는 듯. 하지만 사내도 배에 같이 타는 건 계획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사내는 ‘놀라지 않냐’고 말했던 거고, 심덕은 천연덕스럽게 ‘올 줄 알았다.’고 대답을 한 것이다.
그런데 또 사내는 자신을 채근하는 심덕의 말을 끊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널 더 가까이 보고 싶었어.’ 이 대사를 칠 때의 사내는 아주 진지하게 보인다. 마치 오래 떨어져 있던 연인인 것처럼. 그리고 규형사내의 대사톤은 뭔가 무미건조하면서도 집착이 느껴져서 좋다. 사내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심덕의 얼굴을 쓸어 내리려고 하지만 심덕은 모르는 척 손을 피하며 웃는다.
사내는 분명하게 심덕이 자신을 피하는 걸 느낀다. 그래서 잠깐 침묵하지만 굳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는다. 그것보다는 눈 앞에 다가온 결말에 정신을 좀 더 빼앗긴 듯한 모양새다. 규형사내가 부르는 ‘완벽한 결말’의 도입부는 꿈을 꾸는듯하다. 노래하는 음성도 다정해서 심덕을 홀리는 것 같다. ‘조선 최고의 스타와 유명 천재 작가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오사카에서 밀회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관부연락선에서 동반 자살하다.’ 여기서 ‘밀회’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부른다. 그리고 ‘동반 자살하다.’라고 말하고선 심덕을 돌아보지. 마치 둘이 같이 계획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라는 듯. 이런 기사가 나면 재미있지 않겠냐는 것처럼. 심덕은 웃어주며 사내가 그리는 청사진에 현혹된 척하지만 이미 의심을 품고 있다. 사내가 심덕의 미소에 만족한 듯 다시 앞을 보고 노래하면 안심덕의 표정을 어두워진다.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되겠지. 일본과 조선 전역에 음반이 발매될 거야.’ 사내는 한 손을 들어올리고 이미 발매된 음반을 본 것처럼 이야기 한다. ‘조선 최고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유고 음반!’ 규형사내는 ‘유고 음반!’을 강조해서 목소리를 긁듯이 노래한다 그리고 가끔 음반을 잡아다가 찰지게 던져버린다. 바닥에 철썩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안심덕은 깜짝 놀라지. 사내는 마치 사납게 굴지 않았다는 듯 심덕의 앞으로 돌아와서 달콤한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우린 그 시간에 이태리에 있을지도, 모르지.’
근데 5일에는 거짓말 같지가 않았다. 진짜 진심같이 보였음. 정말 심덕을 데리고 이태리에 가고 싶은 것처럼 목소리에 아련미가 터져서 내 눈과 귀를 의심해야 했다… 아직 어떻게 할지 결론을 못 내린 것 같았다.
심덕은 아무렇지 않은 척 우진이 말했던 ‘결말’에 대한 진실을 물어보려 한다. ‘5년 전에 김우진과 함께 작업했던 희곡, 결말이 뭐였어?’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은 실패하지. 제 할말만 하는 사내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마니까.
사내는 천천히 돌아 심덕을 쳐다본다. 그리고 목소리도 완전히 바뀐다. 방금 전까지 흥분하며 떠들어 댔던 건 없는 일인 것 같다. ‘그게 왜 궁금해?’ 심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냥… 궁금해.’ 사내는 심덕의 말을 그대로 받아 넘기려고 한다. ‘그냥 흔한 러브 스토리였어.’ 본래의 말투로 돌아와서 흘리듯이 말하지만 심덕이 다급하게 ‘그게 다야?’ 라고 물으면 다시 무미건조한 톤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되묻는다. ‘그것, 뿐이냐니.’ 규형사내는 이 대사를 칠 때 안심덕의 대사 끝을 가로채듯 잡고 바로 이어서 말한다. 게다가 한자 한자 누르면서 강조해서 말하는데 진짜 무섭고 무슨 일이 날 것만 같다. 결국 심덕은 흔들리고 사내를 추궁하듯 자신이 아는 얘기를 마구 늘어놓는다. ‘모두 니가 말한 대로 되고 있잖아,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그런데 여기서 또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지. ‘그를 잘 아니까!’ 안심덕은 정말 겁을 먹은 듯이 말을 멈춘다. 그런데 규형사내는 그걸 또 기민하게 눈치챈 것처럼 연기한다. 바로 이어서 대사를 할 때 ‘내가!’ 까지는 큰 소리를 그대로 이어가다가 잠시 멈칫한다. 마치 ‘여기서 화내면 안돼, 거사가 눈앞이야. 쟤는 잘 달래야 돼.’라고 생각한 것 같다. 정말 잠깐 사이에 목소리가 확 죽어서 그 다음 대사를 말한다. 그래서 ‘너를 잘 알듯이.’는 화내는 게 아니라 심덕을 설득하려는 것처럼 들린다.
여기서 노선이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심덕에게 애정을 가진 노선, 하나는 장난감 눈 가리고 아웅하는 노선. 5일의 규형사내는 심덕에게 진짜 애정이 있어 보였다. 5일의 감정치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게 특히 이 씬에서 잘 보였다. 규형사내는 심덕을 몰아붙이는 것도 희롱하는 느낌이 아니다. 뭔가 어디서 맞고 들어온 내 애를 보고 왜 맞고 다니냐고 화내는 느낌?... ‘남들이 너한테 뭐라 그럴 때 니 옆에 누가 있었어! 나야! 나만 너를 생각해!’ 이걸 진짜 솔직하게 표출한다. 또 대사 칠 때도 강조하는 부분이 좀 달랐다. ‘내가 너의 유일한 탈출구야.’ 여기서 원래는 ‘유일한’에 강세가 들어가 있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내가’에 확실히 강세를 팍 줬다. 한 호흡 쉬기도 했고.
규형사내는 양손으로 안심덕의 얼굴을 단단히 잡아 눈을 맞추면서 대사를 쳤는데, 그러면서 정말 본인도 몰랐던 진심이 나온 것 같았다. 끝내 울며 무너지는 심덕을 조심스럽게 받쳐주며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다정했다. 그 어떤 절제 없이, 그야말로 흘러 넘치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 같은 느낌. ‘내 심장을 치고 간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 이런 느낌. 이 다음에 붙는 규형사내의 대사가 그날은 너무나도 진심이었다. ‘어떻게 할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원래는 심덕을 잔뜩 흔들어놓고서 달래듯이 하는 말이었는데, 5일에는 되게 진심으로 그렇게 해줄 것처럼 말했음. 심덕이 안 한다고 하면 정말 관둘 것 같았다. 그렇게나 다정한 사내였는데…
그런데 6일에는 완전히 반대였다. 앞부분은 뭔가 비슷하게 흘러가는 구나 싶었는데, 우는 심덕을 안고 머리를 쓰다듬던 규형사내가 조용히 웃었다. ‘!?... 뭐 이 씨발!?’ 이런 느낌이었지. 사내가 내 뒤통수를 거하게 치고 갔다. 너무나도 다정한데, 차가웠다. 그것조차 계획되어 있었다는 듯이. 5일의 규형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이성을 넘어선 느낌이 들었는데, 6일은 끝까지 이성을 놓지 않고 우진과 심덕을 조종하려는 그림자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5일이 더 취향이었음…
아무튼, 심덕은 사내의 입에서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현실에 결국 흐느끼고 만다. 그래! 드디어 울었다, 안심덕이! 강한척하다가도 결국 무너져 우는 심덕을 보러 내가 그렇게 가고 또 가고… 난 안심덕이 흐느끼는 걸 보고 싶었다! 근데 이 언니가 특공 이후로 지난 공연 동안은 ‘완벽한 결말’에서 울음을 제대로 터뜨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오열.ㅠㅠㅠ 그날그날 상대 사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길래 오죽하면 종구사내도 보러 갔었다. 하지만 그날도 안언니는…흡… 사내에게 비수 같은 말을 듣고서는 오히려 넋이 나간 듯 멍해지는 표정이었다. 시선조차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울음을 터트릴 기력도 없는 그런 느낌.
뒤이어 내뱉는 ‘날 배신하면, 김우진이 아니라 널 죽여버리겠어.’ 이 문장에서 되게 여러 버전의 안심덕을 보았다. 읊조리듯 시작해서 독기 가득하게 끝내는 버전이나, 정말 허망하게 사라질 듯이 내뱉는 버전도 있었다.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시작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마무리 짓는 버전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이를 악물고 말을 시작했다가 끝내 흐느낌으로 무너지는 안심덕이 가장 취향이었다. 앞에서 사내의 온갖 말에 상처받아 울다가 어떻게든 감정으로 추슬러서 독하게 말을 시작하지만 저를 바라보는 사내의 얼굴을 보고 끝내 여린 내면을 드러내며 무너지는, 그런 심덕이었다. 아마 특공 때의 안심덕이었던 듯. 하지만 그 이후로 못 봤는데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 보게 되었네요. 그리고 안심덕이 울어야 규형사내가 달래주는 듯한 다정함을 보여주니까 그게 또 좋았지. 딱 요 합이 내 취향이었으니 이건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심덕이 사내에게 총을 겨누면 사내는 오히려 총의 잠금쇠를 풀어주면서 말한다. ‘이렇게.’겉으로만 허세를 부리는 여자에게 실제로 총은 ‘이렇게’ 사용하는 거라고 직접 알려주는 남자라니. 여기서 심덕이 감정적으로 완벽하게 무너지는 게 보인다. 김우진하고 너무나 다른, 자신에게 끝없이 다정한. 아마 우진이 없었던 시기에도 옆에서 쭉 다정하게 있어줬을 남자.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여전히 속을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심덕은 마지막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사내는 이 장면에서 무너진 심덕을 확신한다. 그게 그의 오만이었고, 패착이었다.
사내는 다시 다정하게 계획을 말한다. ‘내가, 김우진의 자리를 대신 할 거야.’ 왜 때문에 이런 대사죠. 5일의 규형사내는 정말로 김사내가 되고 싶은 느낌이었는데 왜죠. 대사를 너무 안타깝게 뱉는 거다. 심지어 말끝에서는 심덕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외면했음. 그러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진짜 머릿속에서 감정과 이성이 격돌하는 느낌이었다!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일단 계획대로 진행은 하는데, 정말 심덕이 자신에게로 온다면 처음으로 김사내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그런 내 취향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흘렀는데요! 망붕폭발.
게다가 ‘다시 보자’고 안녕을 고하는 장면에서, 심덕을 뒤돌아보는 사내의 얼굴은 여전히 혼란과 갈등투성이였다. 그럼에도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쪽에 무게가 더 실려 있어서 넘나 안타까운 것… 심덕은 방을 나가는 사내를 돌아보지 않는다. 완전한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마무리하지.
심덕이 방을 나가면 드디어 결말이다. 방안으로 들어선 우진은 ‘시간이 다가와’ 넘버 동안 방안을 치우고 결말을 준비한다. 이게 넘버도 강이고 되게 몰아치는 느낌인데, 우진이 방을 치우고 있다는 걸 안 뒤부터는 방 정리에 정신을 빼앗길 때가 있었다. ㅋㅋㅋ 방 치우다가 노래 부르고, 가방 들어다 놓고 다시 노래 부르고 한다. 심덕도 무대 위아래를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노래하는지라 보고 있으면 엄청 급해 보인다. 와중에 오직 사내만 ㅋㅋㅋㅋㅋ 망루를 빙글빙글 돌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규형사내는 노래를 들으며 지휘하는 모션을 취하는데, 허공에 긋는 선이 되게 직선적이고 힘이 들어가있다. 이것도 좋지…
모두에게 시간이 다가오면 마침내 책상에 앉아 엄숙하게 결말을 준비하는 우진과 문안으로 탁 들어서는 심덕이 보인다. 이때 안심덕의 등장이 너무 좋다. 표정도 그렇고, 넘버 끝에 딱 맞춰서 문에 그림처럼 서있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서 우진에게 총을 겨누면 그제서야 우진이 입을 연다. ‘그 총 내려놔.’ 이 부분은 뭐라고 해야 되나… 안심덕의 감정은 진짜 끝까지 올라오는데 우진이들은 엄청나게 절제한다. 반쯤 포기한 사람 같기도 하다. 심덕이 자신을 선택하지 않을 거라고 어림짐작한 것 같다. 심덕은 총을 겨눈 채 우진을 추궁하면서 점점 감정이 격해진다. ‘날 떠나지 말았어야 했어. 날 버리지 말았어야 했어!’ 거기에 맞춰 대답하는 우진의 목소리는 고요하다. ‘내가 잘못했어. 널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거의 읊조리듯이 작게 속삭이지.
심덕은 그 동안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던 본심을 울부짖으며 죄다 털어놓는다. 끝내 잘못을 시인하는 우진을 보며 흐느끼다가 겨우 내뱉는 말이 ‘날 사랑했던 적은 있어?’ 였다. 아, 이 대사를 칠 때의 안심덕은 어찌나 위태로운지. 아이처럼 훌쩍이면서 이어지지 않는 목소리로 띄엄띄엄 내뱉는다. 우진을 겨눈 총을 꽉 쥔 채로. 마치 그게 자신의 방패막이라도 되는 듯이. 이 얼마나 연약한 여성이란 말이야. 우진도 아마 많은 생각이 오고 갔을 것 같다. 심덕만은 살리겠다는 의지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긴 했는데 더 이상은 안되겠던 모양. 진짜 굳건하게 일어서서 심덕을 똑바로 쳐다보며 너무나도 진심으로 대답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거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심덕은 울면서 힘이 빠진 듯 총을 겨누고 있던 손을 내린다. 문성우진은 그 모든 걸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다가 심덕에게 한발짝 다가선다. 그런데 그때 심덕이 다시 팔을 들어올려 우진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총을 겨눈다. 이때 음향 효과도 적절하게 들어가서 좋다. 우진은 다시 제게 총을 겨눈 심덕을 보며 그게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얼굴로 다시 의자에 앉는다.
심덕은 굳게 마음을 먹긴 했지만 역시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까지도 혼란스러워한다. ‘잘가, 김우진!’ 우진이 책상으로 풀썩 쓰러지면 심덕은 총을 쥔 손을 떨어뜨린다. 미동 없는 우진을 바라보며 흐느끼다가 끝내 정신을 놓을 듯이 소리치고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몰아치는 3중주 끝에 적막이 흐른다.
이 부분 되게 좋다. 안심덕이 미쳐가는 것처럼 연기하는 부분도 그렇고 끝내 바닥에 풀썩 쓰러져서 팔에 고개를 묻고 마치 정신을 읽은 듯 움직이지 않는 것도 그렇다. 혼자 감정의 폭풍을 보여주다가 순식간에 고요해지는 게 아주 좋음. 그리고 ‘사의 찬미’다.
이 첫소절은 정말 소름이다. 처음 봤을 때는 원곡 LP판을 틀은 줄 알았다. 근데 안심덕이 직접 부르는 게 맞았다! 안심덕은 고개를 파묻고 그 적막 속에서도 거의 들릴 듯 말듯이 조용하게, 감정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톤으로 ‘광막한… 광야를’ 을 시작한다. 이때의 집중도가 엄청나다. 게다가 의도한 건진 모르겠지만 딱 저 부분까지만 정말 원곡하고 비슷한 목소리가 들린다. 소오름.
심덕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일어선다. 사의 찬미를 부르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풍성해진다. 안심덕의 빵빵한 성량을 있는 대로 느낄 수 있는 부분. 심덕이 사의 찬미를 부르는 동안 왼쪽에서는 사내가 등장한다. 사내는 심덕이 총을 들어 제 머리를 겨누는 모습을 보지도 않고 똑같이 따라 한다. 총성과 함께 암전되면 사내는 라이터를 꺼내서 담배에 붙을 붙이려고 한다. 그러다가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돌아본 뒤, ‘칙쇼’ 한마디 하고 라이터를 꺼버리지.
한쪽에서는 다급하게 우진과 심덕이 도망치고 있다. 결국 심덕은 우진이 손에 쥐어주었던 대본대로 하길 선택했다. ‘다시 널 믿다니.’ 라는 말에서 심덕이 끝까지 갈팡질팡하다가 마지막에서야 마음 가는 대로 선택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우진이 가짜 총에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손짓에서 애정이 묻어난다. 우진은 심덕의 두 팔을 다잡고 말한다. ‘나를 선택해줘서 고마워.’ 이 말을 하는 우진의 얼굴에는 단호한 결심이 돋보인다. 조금 전까지 심덕의 손에 죽겠다던 무기력한 김우진이 아님. 자신을 선택한 심덕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그녀와 함께 행복해지고 말겠다는 의지가 빛나는 얼굴이다.
배 안에서 둘 다 죽는다는 결말을 바꾸기 위해 배 바깥으로 뛰어내리려는 두 사람. 그 뒤로 사내의 허밍이 들린다. 허밍으로 듣는 ‘사의 찬미’는 굉장히 무섭다. 미친 듯이 주변을 경계하다가 심덕의 손짓에 따라 사내에게 총을 쏘지만 사내는 이미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다. 사라진 사내를 뒤로 하고 우진은 배 밖으로 뛰어내리길 망설이는 심덕을 설득한다. 근데 사실 여기서 우진이들의 대사가 조금 무미건조하다고 해야 하나,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든다. 특히 ‘우린 선구자야.’ 이 대사는 뭔가 살짝 핀트가 어긋난 것 같기도 하다. 와중에 ‘지금은 그저 여자이고 싶어.’라며 우진에게 기대듯 안기는 심덕은 여성여성하고요… 그걸 질투하듯이 등장하는 사내는 또 굉장히 무섭고요..
‘오랜만이야, 김우진!’ 이 대사에는 에코도 빵빵하게 들어가서 무대를 울린다. 게다가 6일에는 규형사내가 ‘오랜만이야, 우진아.’라고 해서 또 소오름이 돋았지… 뭐 한 5년 만에 보는 친구 부르듯이 친근하게 대하는데, 분위기는 긴장감이 엄청나다. 아무렇지 않게 올라오는 사내를 향해 우진은 총을 전부 쏜다.ㅋㅋㅋ 이번에는 제대로 맞췄는지 사내가 우당탕쿵탕하며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우진은 총알이 없는 빈 총을 버리고 심덕을 자신의 뒤로 숨긴다.
사내는 역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죽지 않고 다시 올라온다. 이번에는 더 무섭게 손부터 등장해서 난간을 턱! 잡는다. 이거 진짜 무서움. 특히 규형사내는 음악 소리에 맞춰서 난간을 탁!탁! 잡고 올라오는 게 좋다. 그리고 올라오면서 노래를 부를 때 또 사람같이 않은 목소리를 낸다. 조용조용하게 일부러 음을 다 잇지 않고 끊어서 부르는데, 그게 오히려 ‘사람 같지 않음’을 배가시킨다. ‘둘러봐. 사방으↗은↘ 모↗두↘’ 이런 식으로 음 다 집어가면서 부름. ‘너흰 가로 막혔어!’ 까지 이렇게 부르다가 그 뒤부턴 다시 본래대로 돌아와서 또 소리 빵빵하게 질러준다. ‘이 배에 모두 갇혔어! 너흰 도망칠 수 없어!’ 사내는 심덕과 우진을 지배하려는 듯이 소리친다. 하지만 심덕이 재빨리 받아 쳐서 망. ’아냐! 속지 않아!’ 심덕 덕분에 정신을 차린 우진도 노래를 받아 이어 부른다. 그러면 사내는 정말 이상하다는 듯 말한다. ‘너희가 그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게 대체 뭐야?’ 안심덕은 먼 바다를 날고 있는 물새를 보며 꿈꾸듯 말한다. ‘자유’. 우진은 그런 심덕을 보며 다시 손을 꽉 잡는다. ‘사랑.’ 둘은 아마 마지막일지도 모를 입맞춤을 나누고 바다로 뛰어든다. 사내는 그들을 저지하려고 하지만, 그때 총에 맞은 통증이 왔는지 비틀거리고 만다. 물론 실제로 뛰어내릴 수는 없는지라, 암전 후 셋이 쪼르르 갑판을 내려가는 모습이 종종 보여서 조금 웃기긴 했음.ㅋㅋ
그리고 나면 다시 배 안. 가장 처음의 오프닝 장면이다. 항상 처음 죽음의 비밀을 건너뛰는 이유는 그게 딱히 반복해서 나오는 것에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수미쌍관의 형식으로 극의 마무리를 알려주는 장치가 맞지만, 딱 그 정도의 역할이기 때문에 후기에서 같은 장면을 굳이 두 번 서술할 필요는 없는 듯.
사내는 구둣발 소리를 크게 내면서 등장해 옆모습 그대로 서서 잠시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한걸음씩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다가 마지막에 힘이 풀린 듯 앞으로 넘어지려는 걸 가까스로 책상을 부여잡고 버틴다. 사내는 겨우 책상에 걸터앉아서 총을 맞을 부위를 확인한 뒤 고통을 참는 듯 한번 고개를 들었다가 내린다.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리려는 것처럼 급하게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담배를 한 모금 피우고 나면 사내의 분위기가 변한다. 마치 고통이 사라진 것 같다. 사내는 여유를 되찾고 담배를 피우다가 벌떡 일어나서 축음기로 향한다. 근처에 있는 술을 병째로 들이마셨다가 반쯤은 내뱉고 거칠게 축음기를 돌린다. 그리고 심덕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마치 노래에 빠진 듯 두 팔을 펴고 천천히 움직인다. 본인도 지금의 모양새가 꽤나 웃긴 것 같다. 헛웃음을 짓던 사내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발견하고 주워 든다. 이때 규형사내는 한차례 머뭇거리는데 아직 총맞은 상처가 그대로 있음을 보여줘서 좋다. 그리고 우진이 바꿔치기 한 결말을 읽기 시작한다.
바다로 뛰어 내린 우진과 심덕은 며칠 뒤 이태리로 향하는 배 안에서 발견된다.'‘다신 날 떠나지마.’ ‘그럴게.’ ‘다신 날 버리지 마.’ ‘그럴게.’ 키스. 막.’ 남자와 여자 목소리를 내가며 심덕과 우진을 흉내 내는 사내의 모습은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다. 그 와중에 ‘막’ 을 외치고 나서 종이를 구기며 ‘지은이, 김우진…’하고 작게 되새기는 것은 또 조금 무섭기도 하다.
규형 사내는 마지막 넘버가 끝나고 나서 침묵을 길게 가져가며 하나를 더했는데, 바로 눈물이다. 사내는 죽음의 비밀을 부르고 나서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눈가를 닦아낸다. 마치 눈물을 닦는 것처럼 보이는데, 재미있는 건 사내본인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라는 점이다. 사내는 제 손에 묻은 물기를 확인하고 의아한 표정이 된다. 그 전에는 한번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역시 사내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무게를 더해주는 디테일.
사내는 배 안에 남아있던 우진의 가방과 대본을 챙겨서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우진과 심덕의 결말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개의치 않고 또 다른 희생자를 찾으려는 듯, 잠시 뒤돌아 객석을 보며 웃는 사내의 얼굴은 서늘하다. 다음 번에는 더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돌아올 것만 같다. 그리고 진짜 막.
‘사의 찬미’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낚여서 열심히 본 극이었다. 너무나도 내 취향으로 판을 다 깔아 놓은 것… 4연이나 기다려야겠다. 팬텀 이후로 후기 이렇게 길게 쓴 것도 처음인 듯. 틈틈이 쓰다 보니 이 후기만 4달을 붙잡고 있었네요. 징하다… 이후로도 본 건 많았는데 딱히 후기 쓸만한 건 없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맨 오브라만차]는 너무 명작이라 감정이 벅차서 힘들었고,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그냥 적당히 재미있었고. [베르테르]는 내가 원작 팬이라 그런지 내용이 생각보다 재미없었다. 그러니까 한번만 더 봐야지.
아무튼 이제 정말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