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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나를...?
영화가 상영관에 걸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평가와 의미는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그건 영화적 경험이 자신에게 귀속된다는 뜻이지 그것이 절대적이고 옳은 평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자신과 다르다면, 그리고 그 이유가 합당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냥 무시하거나 개인적 의견을 표현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 무논리에 여성혐오적이며 악의만을 표출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영화 리뷰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안에서도 악플을 달 사람들일 텐데 자신의 밑바닥을 굳이 보여주려는 그 마음이 궁금하다. 인상적인 댓글 몇 개를 소개한다.
"여성혐오와 인종차별은 또 뭐야....전혀 느끼지도 못했구만. 전형적인 pc충"
"네 다음 프로불편러~ 오늘은 또 뭐가 심술이야?ㅋㅋㅋㅋㅋㅋㅋ 베베 꼬여가지고"
"글쓴분 여자라는데 내 코딱지 겁니다" "글쓴이분 영화 커뮤니티에 공유했습니다~ 댓글로 비꼬는거 잘봤구요. 앞으로 좋은평듣긴 힘드시겠네요. 제말이 뭔소린지 알고 잘생각하세요. 블로거님."
"페미새끼에요?"
첫 번째로 냉소다. 냉소는 ‘잉여'라고 불리는 청년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전 사회적으로 퍼져 있는 일종의 기류가 되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현실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성찰'과 '참여'가 아니라 '냉소'다. 이들은 현실의 서사 가능성에 대해 냉소하며 냉소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방어한다. 냉소주의는 “마음의 철갑옷"이다. 실패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상처를 덜 받는다. 냉소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는 단단한 결심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냉소하는 사람들일수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냉소를 통해 큰 상처를 준다는 점이다. 이들의 냉소는 소극적이지 않다.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모든 제안을 냉소하고 거부한다. 이들의 냉소는 협력에 대한 거부다. 협력을 통해 공동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를 거부한다. 자기 삶의 서사 가능성에 대한 부정은 곧 이 서사성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공동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부정이며, 공동세계의 가능성을 믿고 제안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냉소는 세계와 세계를 지으려고 하는 일체의 노력을 파괴한다. 주변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을 때 냉소적인 사람을 꼽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냉소하는 이들은 공동세계를 지으려는 의지와 기운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냉소적 주체는 그저 '잉여'가 아니라 공동세계를 파괴하는 괴물이기도 한 셈이다. 두 번째로는 유예다. 불가능해진 삶의 실재성과 대면하기를 끊임없이 유예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부 중독자'다. … 이런 공부 중독은 자기계발과 비슷한 것 같지만 위상이 다르다. 자기계발은 현실에서 불가능해진 서사성을 주술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다. 그러나 공부 중독은 현실과 대면하는 것을 유예하는 알리바이에 가깝다. 자기가 현실을 대면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며, 현실과 대면해서 실패하면 그것은 다시 자기의 준비 부족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공부에 중독된다. 이들은 자기 삶의 공간을 좀 더 잘 돌보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공부하는 것 자체가 중심이 된다. 삶의 도구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삶이 공부의 식민지가 되어버린다. … 공부 중독은 포스트-자기계발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계발이 삶의 서사성을 더욱 강하게 믿고 공부로 돌파하려는 헛된 몸짓이라면, 공부 중독은 이 불가능성을 공부로 때우고 회피하려는 주체의 무능에 다름 아니다. 세 번째로 도피가 있다. 요즘 유독 '큰 사회'에는 관심이 없고 '작은 사회'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큰 사회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대신 '마을'이라든가 '소 공동체’ 등의 이름으로 세계를 축소하고 있다. 그 너머의 바깥은 매우 소극적이거나, 냉소적이거나 혹은 무감각하게 대한다. 작은 사회라는 게 바우만이 말한 대로 사회를 만들어내는 안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연결되지 않은 채 뜯어져 홀로 존재하는 안감에 머무르는 것이다. 이들에게 세계는 '바깥'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소박한 관계 그 자체다.(27~29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셋이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자아 동일성의 가능성이 봉쇄된 이 세계에 대해 극단적으로 과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이 세계에서 성장-생애라는 자아 동일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정념은 무엇보다 현존하는 세계에 대한 혐오, 증오, 즉 원한resentiment이다. 이들이 보기에 이전 세력은 무능하거나 부패했다. 좌파건 우파건 '기득권’ 세력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경제적으로 기득원이거나 혹은 '정의'justice에 대한 관념, 언어를 독점했다는 점에서 기득권이다. (30쪽)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그 정도 쓰레기는 아니야
엄마 : 누가 1층에 토를 해놨다고 그러더라. 너 혹시 이틀 전에...
나 : 안 먹었어
엄마 : 술 먹었....
나 : 아니라고
엄마 : (눈으로 의심하는 중)
나 : 나 아니야!!!
Artist : Mariya Takeuchi
Album : Variety
Song : Platic Love
Style : J-pop, City-pop, Funk
불안이란 자유가 느끼는 현기증이다.
장 폴 사르트르
문재인…당신의 술 따르는 방법은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나의 기준에서는 대통령 결격사유로써 충분.
'성'을 규정하기
1.나는 이성애자다. 그 점에 대해 어느 정도는 확신한다.
2.왜 '어느 정도'라는 표현을 했냐 하면 나의 성정체성을 굳이 명확히 해야하나 하는 생각에서다. 그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고.
3.동성과 스킨쉽을 해본 경험이 있다. 술기운 반, 호기심 반이었는데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쾌한 경험도 아니었다. 그냥 그 정도기 때문에 다시 동성과 재미를(?) 볼 생각은 없다. 나는 이성과 연애하고 섹스하는 것이 좋다.
4.가끔 그런 생각도 해봤다. 사귀는 사람이 양성애자라고 고백하거나 트랜스젠더라면 어떨까 하는. 실제로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게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5.나의 경험을 통한 생각들의 종착지는 성별의 이분법적인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무지개색을 정확히 일곱 가지로 나눌 수 없듯이, 100% 남성, 100% 여성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니까. 우리 모두는 소주 아니면 맥주가 아니라 비율이 각자 다른 소맥이 아닐까.
5.어떤 성을 사랑하는지도 정확히 나눌 수 없을 것 같다. 평생을 이성애자로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이 70살이 넘어서 동성과 사랑에 빠졌다는 뉴스도 본 기억이 있다. 나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나의 무의식은 나도 몰랐던 정체성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할 트리거를 기다리는 지도 모른다.
6.나는 이성애자다. 그 점에 대해 어느 정도는 확신한다.
문득 든 무서운 생각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정말로 그가 내뱉은 말대로 행동하고 있다. 크고 아름다운(?) 벽을 세우려고 하며 이민자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미국 내부에서 큰 반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백악관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트럼프를 시위로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고 저지한다 하더라도 미국 사회를 관통한 균열을 메우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미국의 대통령이자 세계의 대통령이 저 모양이라 한국에 사는 나도 불안함을 느낀다. 내가 미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거나 이민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국내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고 다음 대선에 트럼프같은 정치인을 뽑으려고 하는 대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다. 특히 우리나라도 조선족들 저렇게 내쫓아야 한다고 소리치는 기사 댓글들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 제국의 독재자가 한반도에도 도래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반대한다. 이유야 다양하겠으며 나 역시 반대하지만, 요즘 드는 궁금증은 몇몇 진보주의자들이 트럼프의 이민정책에 반대할 수 있는 이유는 본인들이 이민자를 경쟁 상대로 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고학력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도덕가치를 말할 여유가 있다. 마치 패션좌파를 비판하는 우파의 주장을 인용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현실과 투쟁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입을 피해를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도덕적 우월감을 지닌 진보주의자들은 존재하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사람이 대다수일지, 내가 위선적인 인간은 아닌지 문득 궁금해졌다.
카드도 받나요?
실제로 처음 본 타입의 사람들
책임자로 들어간 회사에게 연봉협상과 이를 통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호의를 빌미로 사람을 이용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일을 하러 온 거고 당연한 절차를 요구한 것인데 누군가는 이걸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함께 할 수 없음을 서로 인지하고 퇴사 절차를 밟고 있는 와중에도 심지어 전화로 소리를 지르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는 소리까지 들었는데…사실 이해가 잘 안 된다. 나는 일정이 궁금한 것인데 상대방은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진행되냐면서 자기가 화난 부분을(솔직히 내 잘못도 아닌데) 나에게 다 폭발시키는 건 왜일까. 나에겐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일찍 본 모습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카페 옆자리에 있는 분이 "촛불집회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왜 저런 생각을 할까 하는 궁금증에 살짝 엿들었더니 "자기가 박근혜 뽑아놓고 왜 저러는 거냐."라고 하더라. 세월호 유족을 모욕하던 사람도 저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하기 전까지는 절대 눈치챌 수 없는, 보기엔 평범한 사람이었다.
혼자도 사치인 세상
'혼자'가 주목받고 있다. 여전히 한국에서 혼자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한국화된 자아를 깨고 타인의 눈치를 견뎌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혼밥러와 혼술러를 측은함, 연민으로 바라보는 사람보다 혼자에서 느끼는 편리함과 자기만족을 읽어내며 "그게 뭐 어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혼자 식문화를 즐기기 위한 욕구는 소셜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 있으며, 혼술환영이라는 문구로 모객을 하는 음식점이 생겨나는 등 솔플(?)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는 점차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이렇게 혼자에 관한 관심과 유행이 생겨난다는 것은 시류가 변했다는 걸 의미한다. 개인의 대두와 '함께'를 불편함으로 느끼는 세대들의 증가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렇기에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혼술, 혼밥이라는 단어는 '종결자'나 '킹왕짱'처럼 일시적인 유행어가 되진 않을 것이다. 혼자라는 단어가 그간 한국에서 지니는 부정적 어감을 고려해본다면 미디어가 보여주는 '외로워 보이지만 괜찮아.' 식의 태도도 자못 생소하다.
하지만 나는 혼자라도 좋은 또는, 혼자라서 좋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을 탈집단주의 현상, 바쁜 현대인의 일시적 힐링으로만 보는 것이 영 마땅치가 않다. 아직 세상은 혼자가 되고 싶은 사람보다는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돼버린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혼자서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는 직장인도 있지만, 화장실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까먹는 사람도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시장과 그 경제규모에 관해서 이야기하지만, 왜 1인 가구가 증가했는지, 자립하기 위한 고정비를 지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과연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만으로 설명 가능할까. 너무 바빠 급하게 식사를 때워야 하는 택배 노동자, 새벽일을 마치고 혼자 소주 한 병이라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는 일용직 노동자도 보이진 않지만 존재한다. 이들이 자신의 취향과 자기만족을 위해 혼밥과 혼술을 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혼자에 대한 긍정적 사회분위기의 조성은 개인적으로도 환영한다. 인간관계의 피곤함을 피하고 싶고, 자신의 취향을 충족시키고 싶고, 때로 이기적이고 싶은 사람은 혼자를 즐기고 싶다. 하지만 자력으로 혼자를 즐길 수 있는 여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도 혼자지만, 그걸 즐길 수가 없다. 어쩌면 혼자를 즐긴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사치가 돼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게 혼자는 낭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외로움과 처량함이라는 현실이다.
뭐 어때
어차피 서로 잘 모르는데,
어차피 자주 볼 것도 아닌데,
어차피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기에도 바쁜데,
오해 좀 하면 어떤가 싶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어느 포털, 어느 커뮤니티, 어느 정당 게시판을 가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거의 일치된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하지 마라." "남녀 갈등을 조장하지 마라." "그것은 진정한 추모가 아니다."
결국, 여성혐오 문제에서 보수냐 진보냐의 정치적 성향은 결국 자지가 오른쪽으로 휘었냐 왼쪽으로 휘었냐의 차이뿐이다.
서글픈 현실. 하지만 받아들이고 바꿔나가야 할 지독한 현실.
You don't need to speak the same language. You don't even really need to have anything to say. Because now you can just bark with Bark app.
마치 개처럼, 짖는 것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SNS 앱.
생각보다 재미있다.
Artist : Tangerine
Album : Sugar Teeth EP
Song : Tender
Style : Rock, Pop, In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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