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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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lifeee
이태리 여행
#o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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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14 문래
디터 람스의 제품들은 하나 같이 미학적으로 완벽한데, 그 제품들로 집을 채워 나가는 삶은 아름답기보다는 서글플 것 같다. 그의 제품은 그렇게 생겼다.
출근길
힙스터 요정 (2015)
군대 얘기로 시작해서 미안하지만, 군대에 있을 때 스캇을 만났다. 스캇은 5살에 미국으로 이민 간 뒤 부모님을 따라 영주권이 자동으로 주어져 한국 국방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몸이었다. 그는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마리화나를 피웠다. 그리고 혼자 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리화나를 유통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그는 경찰에 적발되었다. 급한 마음에 변호사에게 자문한 결과, 영주권을 박탈 당하기 전에 일단 한국으로 피신해 있으라는 답을 받았다. 답을 받은 그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짐도 챙기지 못한 채 출국했다. 바다 건너 거의 처음인 듯 생경한 한국에 상륙한 그는 모텔에서 콘돔을 치우고 -가끔은 어찌된 영문인지 바닥의 똥도 치우며- 종업원으로 지내다 영장을 받고 한국군에 입대했다는 참으로 기구한 이야기. 그와 나는 말이 잘 통했는데 그는 나보고 항상 힙스터라고 했다. 한국에서만큼은 힙스터의 개념이 생소했던지라 나는 그에게 힙스터가 무엇인지 물었고, 그는 서툰 한국말로 “음 그건 있지, 존나 특이한 사람들. 옷을 희한하게 입고, 영화나 음악 등에 있어서도 서브컬처를 즐기며 음식도 킨포크스러운, 굳이 채식은 아니어도 아무튼 독특하게 먹는 새끼들이야"
“그래서 칭찬이야? 욕이야?”
“좋은 의미일 땐 칭찬, 나쁜 의미일 땐 욕. 마치 요정 같은 존재지.”
내가 힙스터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역사입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올해에 올 것이 왔다는 듯 갑작스럽게 여기저기서 ‘힙스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딱 그만큼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그래서 힙스터는 왜 흥했을까, 왜 망했을까? 에 대한 단편적이고 사소한 단상.
힙스터의 특징 중 하나는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완벽히 숙지하고 통달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로 인해 자신의 지적 수준에 자부심이 대단하며 그건 곧 당연하게도 타인에 대한 멸시로 이어진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보듯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내가 죽으면 내가 가지고 있던 SNS 계정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같은 시시콜콜한 -그러나 일단 궁금해지면 답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질문을 던지면 일단 정상인이라면 이런 쓸 데 없는 것에는 당연히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알리가 없다. 정상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순식간에 질문에 몰입한다. 눈동자는 마치 공중에 답이 텍스트로 새겨지기라도 한 듯 허공을 골똘히 응시한다.
힙스터는 그 틈을 파고든다. ‘아 당연히 모를 겁니다. 왜냐하면 이건 웬만큼 힙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알기 힘들어서’라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안경을 고쳐 쓰며 마치 인터넷이나 책 따위의 외부 수단으로부터 얻은 정보가 아닌 마치 원래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어서 그 정보가 DNA에 새겨져 있던 것처럼 능숙하게 답을 알려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힙이 외부 수단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도 힙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힙'하게 만드는 모든 작업은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뒤에서만 이뤄진다.
(그건 그렇고 질문이 나온 김에 답은 무엇이냐 하면, 페이스북의 경우에는 후견인 제도가 있어서 내가 죽기 전에 후견인을 지정하면 내가 사망한 후에도 그 사람이 쭉 이어서 관리한다. 또는, 내가 죽은 뒤에 포스트 될 수 있게 생전에 예약 포스트를 수두룩하게 작성해놓으면 된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 일단락되고 나면 힙스터의 내적 세계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걸 나는 알지롱'하는 만족감이 한층 더 깊어진다. 반면 일반인은 ‘음 이 새끼 힙스터라며 이상한 짓 하고 다니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하고 생각하며 입으로는 “참으로 새롭군요. 역시 힙스터 성규 씨는 모르는 게 없다니까!”하며 성급히 상황을 면하고 급하게 자리를 뜬다. 이런 식으로 힙스터적 태도를 통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하나씩 걷어내면, 고도화된 사회 속 현대인의 소외를 몸소 체현하게 된다.
아 그리고, 이런 사소한 정보만으로 자신의 힙스터 됨을 공고히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본인이 즐기는 음악이나 영화, 소설 등을 통해 자신의 힙을 높여간다. 이윽고 이런 태도로 일관한다 : 홍상수 영화도 안 본 것들이 일상의 굴레를 알기나 할까! ‘비포선라이즈'도 안 봤으면서 사랑 타령이라니! ‘테임 임팔라'도 안 듣는 것들이 무슨 음악을 듣겠다고! ‘호밀밭의 파수꾼’도 안 읽었으면서 무슨 청춘의 불안함을 안다고 저렇게 떠들어!
힙스터의 고립은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눈치채셨겠지만 홍상수 영화나 테임 임팔라 같은 취향은, 힙스터 본인은 그걸 상당히 독특하고 힙하다고 여길지 몰라도 실은 누구나 좋아해서 전 세계 사람이 다 아는 되게 보편적인 취향인 것이다. 힙스터는 그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DNA에 새겨져 있는 척 지적 정보를 마구 분출하며 자신의 고매하고 현학적인 취향을 애호한다. 취향을 애호하고 소비하고, 밤에는 거리로, 낮에는 집에 틀어 박힌다. 이렇게 2015년의 힙스터 요정들은 눈 깜짝할 새 증발했고 그 누구도 더 이상 힙스터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자기소개였습니다.
무인양품 라이프 ⠀ ⠀
나중에 이렇게 살지 않기 위해 지금은 이렇게 산다, 라는 일념으로 젊은 우리는 자신을 혹독하게 세상에 기투한다. 이를 테면 김밥 한 줄, 900원짜리 아메리카노, 귀에 꽂힌 이어폰, 무인양품, 이케아에서 산 3만원 가구, 유니클로의 39,900원 의류, 현대백화점 간판, 유튜브, 인디 록, 힙스터, 2호선, 맥북, 와이드 팬츠, 내겐 없고 남의 머리와 발에만 각인된 ‘Balenciaga’ 또는 ‘Vetements’ 등으로 그 세상은 점철되는데, 그 안에서 나는 궁극적으로 행복한가, 묻는다면 우리는 버티고 버티던 눈물을 왈칵 쏟아낼 수밖에 없다. ⠀ ⠀
우리가 버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홍상수’ 영화 감상하고 시네필인 척하기, ‘맥 드마르코’ 듣고 인디 문화 통달한 척하기, ‘쇼미더머니777’에서 가사 뭐라고 지껄이는지 모르겠는데 심사위원이 오진다니까 그러려니 하고 나도 오져버리기, 모바일게임에 현금 결제를 할까말까 고민하기, 책 읽어야 되는데, 라고 생각만 하고 연간 독서량 0권에 수렴하기, 등 뿐인데 이런 것들은 고작 대증요법일 뿐이라 가끔 왈칵하는 눈물을 붙잡아주진 못한다. 또한 그런 것들은 내 삶의 견지를 책임져주지도 못한다. 왈칵. 그리고 우리는 7평 원룸에 누워 어떻게든 내일을 맞는다, 오늘을 마칠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버닝 2018
교묘히 숨어있는 악한 타자에 의해, 우리는 소중한 것을, 정확히 말하면, ‘소중하다고 인식한 것’을 탈취당한다. 그런 부조리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그 분개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악한 타자가 된다. 비닐하우스를 불태우고, 사랑하는 이를 창녀라 힐난하고, 비윤리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결국 우리니까.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타자의 악은 희미하지만 우리 자신의 악은 무엇보다 선명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