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이젠 완연한 겨울인가 싶다. 눈도 이미 왔고, 길목은 이미 돈 듯 하다.
새벽에 잠이 잘 오지 않아 영화를 보았다. “화양연화”… 16년 전에 개봉했다는 영화다. 개봉했을 땐 사회 생활을 시작 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었던 초임 때였고, 난 홍콩 영화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때였던 것 같다.
60년대의 홍콩… 잘 차려 입은 기혼의 두 남녀가 각각 이웃 집에 방 하나를 세 들어 살게 되었다. 장만옥이 먼저 와 방을 차지했고, 이어 온 남자가 양조위… 결국 양조위는 이웃 집에 세 들어 살게 되었다.
둘은 다 결혼을 해서 각각의 배우자가 있지만, 단 한번도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간혹 목소리만 나올 뿐이다.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은 장만옥은 혼자서 저녁을 먹는 날이 대부분이고, 종종 양조위와 마주친다. 우연히 양조위의 넥타이가 남편의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양조위는 장만옥의 핸드백이 아내의 것과 같은 것이라는 걸 눈치챈다. 종종 우연히 만날 일이 있던 두 남녀는 결국 가끔씩 저녁을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고, 서로의 배우자들이 같이 외도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이 정도 가면, 당연히 이 둘도 비슷한 외도의 길로 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고, 색계에서 보던 양조위의 벗은 몸을 떠올리지만, 그런건 이 영화에선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영화제목의 ‘한 때 좋았던 날'의 이미지 그대로, 좋았던 그 때로 묘사하고 싶었던 것이 감독의 의도였던 것 같다.
각각의 집에서 방 하나씩을 세를 내어 살고 있어, 우연히 한 방에 같이 있다, 바깥에서 집 주인들이 마작 게임을 하면서 장만옥이 양조위의 방을 나가지 못하게 되어 같이 밤을 새기도 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밖에 집 주인들이 있고, 거실에 가까운 복도에 있는 방이라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었을 지 모른다.
영화 내내 외도에 대한 걱정은 있으나, 둘의 외도는 일어나지 않고, 왕가위 감독의 절제된 구도와, 화면이 제목을 돋보이게 만든다.
2005년에 개봉한 우리나라 영화 '외출'에는 배용준과 손예진이 나온다. 여기서도 둘은 우연히 각각의 배우자가 외도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화양연화에서는 심증만 있었지만, 외출에서는 각각의 배우자가 같은 차에 있다 교통사고를 당해 둘 다 의식 불명에 빠져 있는 상태여서 둘의 외도는 꽤 명백하게 나온다.
역시 손예진과 배용준은 각각의 배우자를 간호하다 자주 스치게 되고,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사랑에 서서히 빠져 들게 된다. 화양연화에서 처럼 이 둘은 결국 한 방에서 밤을 새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난 가족들 때문에 방을 나가지 못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나, 화양연화와 다른 점은 있다… 둘은 결국 섹스에 까지 이른다는 것…
두 영화는 그래도 결말은 비슷하다. 둘 다 남녀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외출'쪽이 조금 더 슬프다. 아마도 그 차이는 '섹스'에 까지 이르렀던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의 차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