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사랑하고 있을까, 어떤 이름의 사랑이라도 좋다, 사랑하고 있다면. 갑자기 사랑 타령을 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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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사랑하고 있을까, 어떤 이름의 사랑이라도 좋다, 사랑하고 있다면. 갑자기 사랑 타령을 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차근히 지나가는 시간과 취향, 유행, 가끔 영원한 것.
날씨가 따뜻해져서 잠시 머스크를 멈추고 다른 향수를 쓰고 있는데 벌써 머스크가 그립다. 차가운 날 코트 속에서 머스크를 맡고 있는 정취.
머스크가 계속 계속 잘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지금 마음이 아프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이 마음을 이 공간에 쓰고 싶다. 여기에 두고 잊어버리고 싶은 기분.
이거 또 그 기분인가 싶을 때,
너무 너무 얇은 아이스픽으로 찔리기라도 한 것 처럼 시작되는 서늘하고 성가신 통증, 이내 광광 진폭을 그려나가다가 통증이 세상이 되어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끔찍해.
찾지 않는 동안에 문단이 마음대로 나뉘어져 버리게 되었다. 낯설다.
+) 아직도 읽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해.
취향과 취미생활이 20년 쯤 뒤쳐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의심이 많아 그런지 뭐든 손에 쥘 수 있고 명확히 기록되어있는 것들이 좋다. 그래서인지 종이에 쓰여진 것, 그려진 것, 인쇄된 것에 환장한다. 그 기능이 오피셜 할 수록 더욱 집착하는 편, 특히 티켓 같은 건 꼭 손에 쥘 수 있는 편이 좋다. 인터넷 예약을 싫어하는 건 모바일 티켓이라는 이 미적지근하고 미덥잖은 놈이 싫기 때문이다.
김진영, <이별의 푸가> 중에서
어느 날 비오는 것 같은 글씨로 베껴둔 구절. 푸가라는 형식은 이별 후 마음의 행적들과 잘 어울린다.
숫자를 셀 줄 안다는 것은 하나 이상의 슬픔을 알게 된다는 뜻, 시간이 영원한 불가산명사인 것을 알면서도 숫자를 세어보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습성이다. 그것이 가련한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습관처럼 숫자를 세고 조급해지다가 허무해지다가 한다.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본격적인 주제를 꺼내지 않아도, 어떤 신상명세를 묻지 않아도 아주 가벼운 제스쳐와 인사만으로 결정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은 그리 특별한 단어를 쓰지도 않는다. 특별히 인상적인 행동을 하거나 튀지도 않는다. 단어는 자극적인 데도 꾸민데도 없다. 다만 내 몸 어딘가 나도 모르게 달려 있었던 촉수 같은 곳을 자극하는 호르몬이, 마침내 그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 처럼 정신을 못차리고 이끌려 가게 된다. 무어라고 설명 할 수 없는 이 사람의 느낌, 외면을 감싸고 있는 이 보통의 포장을 벗겨내면 근사한 무언가가 있을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드는 때가 있다.
그 포장은 흔한 크라프트지이며 색깔도 감촉도 보통의 그것이다. 그것을 접고 풀을 붙인 모양새가 묘하게 세련됐지만 거의 티가 나지 않는다. 알아 볼 사람은 알아보라는 듯한 배짱,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되고 싶었던 어떤 모양으로 접혀져 있는 모서리와 날렵한 직선, 섹시하다. 애초에 그것의 모양이 어떠한지는 별로 상관 없고 그렇게 무심히 오랜 고집으로 그것이 생겨났다는 것에 나는 더 관심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궁금해지는 것이다. 여기는 왜 이렇게 접혔을까, 분명 어떤사색과 버릇으로 여기가 이렇게 되었을텐데, 그렇게 이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지곤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단지 인사를 했을 뿐인데도 맛이 없어 뱉고 싶어져 버리는 인물들도 있다.
갈수록 하고 싶은 말이 줄어드는 것 같다. 형체 없는 것들을 어떤 형체와 상징으로 붙잡으려니 그 사이에 삭제된 몸짓의 조각들이 폐사한 산호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게 느껴진다. 중요하지 않아서 삭제 된 것이 아닌데. 정말 그건 아닌데. 치밀하게 기록하려 할 수록 성기게만 느껴지는 것은 본래 내 생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게 비워져 하얗게 페이드아웃 된 그 지점들이 만들어내는 공백의 형체를 바라보고 있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게 생각보다 풍경처럼 자연스러워서 괴롭지는 않다.
어떤 감정은 소리도 없이 어떤 예감도 징조도 없이 가장 중심부터 삭아져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감정이라는 것은 그 껍데기에서부터 가장 단단해져 들어오는 것이어서 가장 연약한 속이 어떻게 물러지고 상해가도 티가 나지 않는다. 매일 매일 감정의 표면을 닦아 윤을 내고 그것의 반짝임에 입을 맞추는 동안에도 눈치를 채기가 힘들다. 그래서 감정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는 어떤 수를 써도 재건 할 수 없게 된다. 남은 표면 한겹으로 버텨내기에 감정이 견뎌내야 하는 자극과 충격들은 그 강도는 얕지만 집요하고 계속적이다. 고도로 반복적이다. 그렇게 껍데기에 크랙이 생기는 순간 삭아 무너진 감정이 엄청난 악취를 내며 쏟아지기 시작한다. 대게 그것이 끝물 감정의 싸이클이다.
비가 되었다가 눈이 되었다가 하는 것이 내리는 밤, 포근하지도 그렇다고 그리 우울하지도 않은 기분이 이어졌다. 뜨거운 커피랑, 발을 집어 넣고 있는 슬리퍼의 부드러움이 주는 위로가 잘 어울렸다. 자작하게 졸아들도록 뱅쇼를 끓이고 싶었지만 와인이 없었다. 푹신한 가구에 영혼과 몸을 묻고, 그리고 창밖의 하염없는 것들을 바라봤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기분들이 어딘가 닿으면 투명하게 사라졌다. 그 때 책을 들고 있었던 것은 그 어떤 적절한 무게가 손 안에 있어야만 진정이 될 것 같았다. 나란히 이어지는 페이지들은 쓰다듬을 뿐, 넘길 생각이 없었다. 활자는 그 자리에 당연한 듯 있고, 간신히 서로를 잇고 있는 영혼과 몸 사이의 무언가를 조심 조심 걸어다녔다. 누군가 안아주어서 와르르 무너져버렸으면 싶은 묘한 멜랑콜리가 흐르던 이국에서의 밤. 그 밤 영영 저편으로 넘어가버린 내 안의 어떤 조각이 있는 게 틀림없다. 날씨가 사무치면 그 날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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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게 다 그리움이 되는 걸까.
그땐 생각지도 못해서 마음에 새겨두지도 않았던 것들이 문득 떠올라버리면 그 감각이 너무 생생해서 괴롭다. 그저 그런 날씨, 모두가 잠겨 있던 게으른 분위기, 실없이 시작되는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 그래도 그땐 쓸데없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태연히, 느릿하게 움직이며 대처 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짱이 있었다. 사소한 변화나 동요에 이렇게 쉽게 멘탈이 나가버리지도 않았다. 편안히 웃고 편안히 슬프고, 깊이 신경쓰지 않아도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 단어들을 쉽게 골라 낼 수 있었다. 지금은 조금 날카롭게 벼려야만 내 영역을 여유롭게 지킬 수 있는 느낌이랄까.
딱히 사랑받지 않아도 좋았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따뜻하고 풍족했기 때문에. 왜 지금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는지, 알면서도 남에게 물어 얻고 싶은 답. 누가 내 머릿속을 객관적으로 읽어 줬으면 좋겠다. 어디쯤인지, 이제 이 서사 가운데서 어떻게 나아가야 바람직한 결말에 닿을 수 있는지. 혹은 조금 비극적이라도 극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는지.
이 단락이 너무 길고 지겹다. 책을 읽을 때처럼 몇 장 떼어 넘겨 버릴 수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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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많이 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지를 쓰고 싶어요. 이유는 없어요. 용건도 없구요,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지내왔던 이야기들을요.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 당신의 것도 그렇겠듯이 많이 단조로웠으니까요. 버티며 지내온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눈길을 끌만한 다채로움은 없지요. 하지만 가끔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지 않나요? 아무런 의심도, 배려나 위로도 없이요. 멀리서 바라보면 단조로운 것들이 미시적인 경험 안에서는 그 어떤 비극들보다 통렬하기도 하니까요.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그럴 수 있는 상대가 많지 않다는 것이 요즘 들어 깨닫는 슬픔이예요.
비교적 최근에 <벌새> 라는 신작을 보았어요.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잊고 있었던 격언이 영화를 보고 나니 마음에 가득해지더군요. 어쩌면 늘 하고 있었던 생각들이 구체적인 단어로 쓰여진 것을 보니 더욱 그랬는지도 몰라요. 위로라곤 기대하지 않았던 교과서에서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시를 발견한 마음처럼, 그런 기분이었어요.
너무 많은 슬픔은 타인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여태까지 살아오던 중에 자연스레 쌓게된 현명함이겠지요. 생각보다 사람들은 슬픔을 좋아하지 않고 어쩔 줄 모르는 위로로 무마하고 싶어하니까요. 그게 때로는 더 큰 슬픔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여서 그냥 간결히 마무리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일이 있었어, 이젠 괜찮아, 뭐 이런 말들로요. 그러고나면 상대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지니까요.
편지는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상대에게 가 닿기 전에 지워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인 도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은 상처주기에 가장 좋은 도구인 것에 반해 편지는 문자라는 매개를 이용하고 있으니 훨씬 유순하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그 사람을 위해 단어를 고르는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마음먹기에 따라서 한없는 상처를 줄 수도, 한없는 다정함을 줄 수도 있지요. 맥락은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그게 상처가 될 지, 다정함이 될 지는 편지를 받는 대상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있는 것 같아요. 그 의도를 화자가 정할 수 있는 힘이 편지 쪽이 더 강하기는 하지만요.
재미없게 편지의 기능에 대해 너무 한참 떠들었네요. 날씨가 좋아지면 무언가를 마시며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요. 커피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하며 마음이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곤 합니다. 어디로 흘러갈지, 여기서 머물다 그저 소멸할지 알 수는 없어요. 다만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참을 수 없이 좋아요. 그렇게 오롯이 집중 할 수 있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는 계절입니다. 날씨가 좋잖아요, 햇빛은 바삭하게 따뜻하고, 바람은 조금 시린 정도, 때때로 내리는 비는 퍽 감상적인 소리를 내지요. 오늘 처럼 바람이 많이 불고 강한 비도 좋아요. 물을 머금고 조금 짙어진 색채들의 흐릿한 우울함, 뭐 그런 것은 언제까지고 헤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나네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당신이 너무 많이 젖은 날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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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나는 갉아 먹히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내게, 언제나 나 자신을 갉아 먹히는 일이다. 그 슬픔이 어찌나 달콤한지, 나를 갉아 먹고 자신의 공간을 만든 사람들이 그곳을 자신의 질량으로 채워 줄 때 그 온기들은 어찌나 다정한지. 그렇게 기워진 내 마음들은 알록달록 다양한 색채를 띄고 나를 풍성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먹히기만 하고 유실되어버린 자리는 영원히 예전처럼 차오르지는 못하게 된다. 내 질량은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가 조금 무디게 반질거릴 수는 있어도 다시 새것처럼 차오르지는 않는다. 참을 수 없이 슬프고 그 사람이 밉다. 그러나 어쩔수는 없어서 흉터처럼, 오래된 친구처럼, 그 자리를 데리고 갈 수 밖에 없다.
가끔 나를 갉아먹지 않고, 자연스레 타인이 남긴 공동에 자신의 질량을 부어 채워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자리는 이상반응이 일어 난 것 처럼 기이하게 부풀어 오르거나 염증 상태가 되기도 한다. 보통은 그런 사람과 애인 사이가 된다. 오래 지속되는 이상 반응을 견디고 나면 본래 나의 것과 색깔은 조금 다르지만, 매끄럽게 맞물려들어가서 눈을 감고 표면을 만지면 전혀 이질감이 없는 때가 온다. 아주 이상적인 상태다.
요즘, 태초에 내가 가지고 있던 질량과 빛깔이 궁금하다. 이 모든 과정이 일어나기 전에 유심히 살피고 무게를 달아보았어야 했는데. 영원히 손상만이 남아서 조금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의 내 질량을 사랑한다. 살아오고, 견뎌 낸 흔적이 되어준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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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넘기고 있으면 아직 살지 않은 날들도 다 살아버린 것 같다. 몇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끝장, 손 끝에 남아있는 서너장의 두께와 기분이 참을 수 없이 얄팍하다. 어떤 하루도 의미 없이 쌓이지는 않았다. 집에 드러누워 하루종일 빗소리를 들었던 그날에도, 덜컥 사랑이 시작되어 버렸던 그날에도 시간은 쏟아져 오늘을 지탱한다.
숫자를 쓰고 셀 수 있다는 것은 하나 이상의 슬픔을 더 알게 된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수를 세면서 자꾸만 얄팍해진다. 맥주 마시면서 왕가위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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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 생일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온생이네, 하고 아주 다정히도 말해주었다. 1년을 꼬박 채워 살아낸 나는 1월생, 그리고 하루를 저어 낼 수록 다시 그 마침표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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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니까요, 버릇처럼 그렇게.
계절을 느끼는 방식
한국에 오고 몇개의 계절이 지났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과일의 종류도 몇가지가 지나갔다.
겨울이 깊을 적에는 귤이었고, 가을을 재워둔 사과였다. 2월에 들어서자 햇익은 딸기들이 들어있었다. 낮이 길어질수록 그의 색과 향이 짙어졌다. 이번 여름은 날이 가물어 단단히 여문 과일들이 자주 들어있었다. 한동안은 꾸준히 수박이었다가 부드럽게 무른 복숭아였다가 갈수록 껍질이 달콤해지는 포도였다. 같은 과일이 반복되는 중에도 그들의 빛깔과 맛이 계절을 통과해 지나가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제는 다시 어떤 이들의 끝물이다. 흔들림 없이 달고 물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