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모호함, 그 속에 추상이란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추상적임'으로써의 모호함이 정의 내려질 수 있는 것. 그 것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서정적 추상이든, 시적 추상이든, 기하학적 추상이든 예술이라고 정의 내려질 수 있는 한 갈래의 범주일 뿐이 아닐까한다. ‘정의 내려질 수 있는 것'의 정의는 무엇인가? 우리가 피수용자가 되어 수용자의 '정의'를 정의 내려 해석하려고 다가설 때마다 부딪히는 난해함이란 한계와, 개념적이기만 한 오브제는 확실히 난관이고 모순이다. 충분히 개념적이며, 비정형적인 œuvre들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기 이전에 하나 둘 동반해야하는 생각들과 개념들이 수고스럽기까지 하다.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생각함으로써 그쳐야 하는 것일까, 그쳐진 후 정의 내려져야 함일까? 피수용자의 입장에 서보자면, 확실한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결국 하이데거의 예술론에서처럼 예술작품의 근원은 작품이나 작품의 근원은 예술가인 것이다. 이 양자의 상관관계는 결국 '예술'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듯이 관계적 시각보다 방향을 바꾼 접근이 필요한 듯하다. 현대미술 작품들의 이해성을 고취시키는 방법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 새로운 시각들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 인가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