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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철문 뒤로 여전히 노란색의 건물은 우두커니 서있었다. 한 번도 열려있지 않던 문은 모든 사람을 환영한다는 듯한 느낌을 주며 열려 있었다. 그 순간 노란색이 날 압도하는 기분이 들었고 밝았던 노란색은 색이 바래버렸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노란색을 밝았었는데, 다시 마주한 오늘, 내가 그 색을 바래버렸나보다.
항상 빳빳하게 다려진 검정색 옷을 입고선 바른 자세로 인사를 하던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는 그 사람이 어디선가 군복으로 갈아입고 행군을 떠났을 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때문인지 따뜻하기만 했던 녹색 철문은 차가웠다. 할아버지가 직접 썻다는 현판은 그대로였다. 변하지 않았다. 나는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 현판은 변하지 않아도 되었나보다. 아버지가 직접 고른 최고급 원목으로 만들어진 문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저 문에 나의 이야기가 반쯤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생각에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되었다.
옆에 있던 손자는 아무런 표정없이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저 아이를 데리고 이 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자격이 있는걸까? 오랜만에 돌아온 나의 고향 집은 따뜻함을 주는 곳이기 보다는 나를 짓누르는 죄책감을 체화한 공간이었다.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던 장소는 선전용 회화로 가득차버렸고, 집안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그 일을 달성했을 때의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성취감에 설렜었던 나의 공간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그림들만이 걸려있었다. 사이공에서 처음 설치되었던 집안의 엘리베이터는 굳게 닫혀있었고 항상 밝게 켜져 있었던 샹들리에는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이 집을 버리고 떠난 뒤, 나는 파리에서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지내왔다. 수없이 호치민을 왔었지만, 일부러 이 집에 오지 않은 것도 있었다. 삶을 마감할 날이 얼마남지 않은 이 시점에 이 집에 오면 나는 예전의 추억만 생각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노란색의 이 집이 나에게 “너가 버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가 혈혈단신으로 베트남으로 넘어와서 견뎠던 인고의 시간들, 아버지가 그 시간들을 이어받아 앞만 보며 달려갔던 노력의 시간들, 나는 그 시간들을 저버렸다. 하지만, 내가 노력한다고 했더라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태어난 이 공간은 국가의 재산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팔십이 가까워진 나이에, 여전히 이런 합리화로 죄책감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내 모습에 내가 가여워졌다. 하얀색 옷을 입고 어린 나에게 어머니가 무슨 말을 했다고 끊임없이 말하는 유모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며 나는 혼자 뒷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뛰어놀던 정원에는 호치민의 어린이들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프랑스어에 더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내가 쓰는 말이랑 너무 달라서 그런지 어린 아이들이 서로에게 깔깔 거리며 말하는 것이 완전히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저 아이들은 성취감, 아니 그게 무엇이 되더라도, 완전한 행복을 느끼길 축복했다. 파리로 떠나기 전까지 한 번도 앉아본 적 없던, 어린 하녀들이 물을 길어오던 구석진 곳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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