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7 연극 <엘리스를 찾아서> theatre 'in search of al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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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7 연극 <엘리스를 찾아서> theatre 'in search of alice'
[공연 후기] 복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
최근 개봉한 영화 <사도>에는 ‘왕’이어야만 했던 아버지와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가 등장한다. 끊임없이 왕위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렸던 아버지 영조는 아들만큼은 신하들 눈에 창피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려고 세자를 혹독하게 공부시킨다. 그러나 언제나 아버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죄인’ 세자는 숨 막히는 아버지의 사고의 틀에 갇혀 비극적인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우리나라 학부모는 교육열이 높은 게 아니라 출세열이 높은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적이 있다. 두산아트센터 <복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는 고등학생인 서경이와 시은이, 이 두 여학생을 중심으로 그 말을 뜯어보는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다. 학부모도 ‘부모’이고 ‘사람’일 텐데 그들이 특별히 무서운 사람이라든가 나쁜 사람이어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영화 <사도>에서처럼 서로 통하지 않아 어긋난 사랑에 가깝지 않을까?
청소년들의 상실과 불안을 그려냈다는 작품 소개와 달리 나는 <복도에서>라는 작품을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관람하였다. 세상으로부터 상처 입기 전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순수한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작품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상담실 앞 복도에서 선생님이 어떤 질문을 할지 궁금해하고, 혼자만의 생각 속에 맴돌다 혼란스러워하고, 옆에 있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 모두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또한, 성별이 달라서 동상이몽에 빠지게 되는 장면은 어찌나 웃기던지.. 그들은 청소년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다시 남자와 여자로 나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정이 있어서 “같이 가자.”는 여학생의 말이 남학생의 번역기를 거치면 “널 좋아해.”가 되고, 평소에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었기에 “너랑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라는 여학생의 말도 남학생의 번역기를 거치면 “널 좋아해.”가 되었다.
더 재미있는 건 그다음부터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다 싶으면 바로 자기 마음 전부를 줘버리고, 당황해하는 상대의 모습에 실망했다가, 먼 훗날 함께할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덕분에 쓸데없이 진지한 말들을 꺼내기도 했다. 좋아해도 좋아하지 않는 척, 싫어해도 싫어하지 않는 척에 익숙한 어른에게선 분명히 찾아보기 힘든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마음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사과하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관객들에겐 무척이나 오랜만에 마주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기에, 선생님이 있다는 저쪽 상담실에서 지금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는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무대 세트가 바뀌고 <美성년으로 간다>라는 작품으로 넘어가면서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는다. 남과 끝없이 비교하면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보여주면서 구름 위를 걷던 나는 추락하여 맨땅에 부딪힌다. 부딪혀서 아픈데, 창피해서 티를 못 내겠는 상황이 주인공인 시은이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어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아?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야.”라는 말은 사실 시은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말이다. 마음의 병은 ‘틱장애’라는 몸의 병으로 표출되고, 이는 ‘비교사회’에서 남들이 파고들기 딱 좋은 약점이 되어 시은이를 괴롭힌다.
연극은 ‘외계인’, ‘혼혈아’, ‘고아’, ‘왕따’ 등 정상인이어도 살아남기 어려운 사회에서 먼지에 불과한 존재들을 무대 위에 소환한다. 그런 와중에 부모는 자녀가 세상의 끝 모를 비교에 베이지 않도록 자신들을 희생해가며 자녀를 강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미 너무나 순수하고 완벽한 아이들로 태어났는데, 부모의 이러한 언행은 그들을 한없이 부족한 아이들로 만들어버린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상처받아 불행했던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의도치 않은 유산이 바로 똑같은 상처와 똑같은 불행인 셈이다. 정작 시은이가 아빠, 엄마에게 원했던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저 “얘기하고 싶었어요.”였다.
연극은 시은이가 마음의 병을 집어 던지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서 끝이 났다. 그래도 내 마음은 왠지 괜찮지 않다. 뭐랄까, 그냥 우리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눈엔 많이 부족한 나를 창피해 하지 않는 부모님처럼, 나도 훗날 내 아이를 절대로 창피하게 쳐다보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공연 후기] 이종공간
창작국악그룹 ‘비빙’의 신작, <이종공간>을 관람하였다. 이종공간은 커다란 배를 타고 제물로 팔려가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소리, 조명, 몸짓으로 풀어내는 공연이다. 대개 공연이란 배우의 대사를 전해 받고 이야기를 이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공연은 연극도, 뮤지컬도 아니라서 막연하게 ‘어려운 공연이 될 것 같다.’는 겁을 먹었던 게 사실이다. 무대에는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기다란 물결 모양의 반투명 유리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악기 연주자들의 자리가 무대를 감싸듯 배치되어 있다. 무대 왼편에는 배우들이 입장할 수 있는 출입구가 있다. 이러한 무대에 조명을 비추면 자연스럽게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해금과 가야금, 피리, 그리고 각종 악기를 연주할 연주자들이 먼저 공연을 시작한다. 이윽고 3명의 출연진, 그러니까 3명의 ‘사람 악기’가 서로를 맴돌며 빙빙 도는 걸음으로 등장하는데 마치 휘몰아치는 바다 파도를 보는 듯하다. 이러한 몸짓은 반투명 유리와 어우러져 이곳의 배경이 바다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게 전달한다. 이후 펼쳐진 공연에서도 적잖이 놀랐던 게 바로 이런 전달 방식이다.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게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본능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한다. 대사가 없어 어려울 것만 같았던 공연은 언어를 몰라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공연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것도 최소한의 시각적, 청각적 자극으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소통해본 적 없는 나는 가없는 예술의 한계에 소름이 돋았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게 가능하다는 걸 확인하면서 내 고정관념의 한 꺼풀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 공연의 경이로움은 소리의 시각화에 있다. 소리는 얇고 굵다가, 밀어내고 당기다가, 흐르다가 끊기고,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미묘한 공기의 떨림을 이렇게까지 세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가령 소리가 얇게 흐르면 위로가 느껴지고, 굵었다가 끊겨버리면 슬픔이 느껴진다. 더군다나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목소리는 인간의 한(恨)을 담아낼 수 있는 최상의 소리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으러 가는 걸 알면서 배에 오르는 소녀의 슬픔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단순하면서도 세분화되어 있는 이 소리의 세계에 몰입하자 내 감각은 매우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배우의 작은 몸짓도 눈에 들어오고, 미세한 소리의 변화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여배우가 자신의 손으로 다리를 잡은 채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자신의 의지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환희 맑게 치는 피 찢겨 용솟음치는 심장 비릿 물 퍼덕 바람 긁어 놓은 물 희게 흩어지나니 혀에 녹는 달큰 물 내 탓 아니려니와 모래바람에 옮듯 아인 죽어 철없이 가끔 어쩔 수 없는 후회 고개를 젓고 설움 술에 말아 꿀꺽 (이종공간 ‘725’ 곡 中)
황천길에 이르기까지를 공연의 전반부라고 본다면, 황천길로 들어서면서부터는 공연의 후반부가 진행된다. 이에 따라 황천길로 가는 길에서는 소녀의 심란한 마음을 달래주려는 소리가 있더니, 황천길로 들어서면서부터는 가성과 종소리를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넋을 위로하는 소리로 변해간다. 배우들도 전반부에는 소리와 몸짓을 같이 사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후반부에는 목소리와 방울종을 연주하는 완전한 ‘사람 악기’로서만 무대 위에 존재하게 된다. 이제 서서 반투명 유리의 앞뒤를 오고 가다가 바닥에 뒹굴었던 배우들의 몸짓은 없다. 육신을 두고 혼이 날아오르듯, 몸짓은 사라지고 소리만이 피어오른다. 그 소리는 내 머릿속에 뭐라고 딱히 표현할 수 없는 선들을 느리게 그려나간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꿈에서 깬다. 굽이굽이 흐르던 감정선 모두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꿈 말이다. 아마 꿈을 꾼 것 같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듯싶다. 꿈 같은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