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피(tea;rapy)를 아시나요?_1
1. 회사 근처 브리즈번 아케이드를 지날 때마다 익숙한 찻집의 향기를 맡게된다. 이 매장 앞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오래전 내가 만들었던 '티라피(tea;rapy)'를 떠올리게 된다.
음료를 팔지 않고 찻잎만 팔고 있는 상점, 그 특유의 향기가 있다
2. 티라피의 시작은 이랬다. 나는 늘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어 했다. 다만,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경쟁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당시에는 아마도 치열하게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늘 블루오션을 찾아 헤맸고, '이거다' 싶은 아이템이 나타나면 언제든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3. 발단은 당시 여자친구(현재 아내)의 언니가 프랑스 출장에서 사 온 작은 선물이었다. 잠금장치가 있는 예쁜 유리병에 담긴 차였는데, 꽃잎이 섞여 있어 보기에도 예쁘고 향기도 근사했다. 무엇보다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내 손안에 들어온 그 제품이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충분히 갖고 싶어 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평소 현미녹차밖에 몰랐을 정도로 티 시장에 무지했지만, 이거다 라는 느낌이 들었고 이 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4. 결혼 후 신혼여행지를 로마와 파리로 정한 이유도 라파예트 백화점 식품관에 있다는 그 티 샵에 가기 위해서였다. 막상 찾아가 보니 그곳은 전문 티 샵이 아니라 각종 향신료를 병에 담아 팔기도 하고 봉지에 무게를 달아 파는 상점이었다. 나는 몇몇 샘플을 사면서 대용량 거래를 제안(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했고, 주인으로부터 이메일 주소를 받아왔다.
5.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시작했다. 그저 해외 직구를 하듯 많이 사 와서 예쁘게 담아 팔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프랑스 상점 주인에게 보낸 메일은 끝내 답장이 없었지만, 나는 이미 이 사업에 홀려 있었다.
프랑스의 상점은 이런 느낌이였다.
6. 신혼여행 직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사 다음 날부터 신혼집 방 한 칸에 틀어박혀 사업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무더운 여름, 수입이 끊긴 처지에 에어컨 켜는 것이 아까워 땀을 뻘뻘 흘리며 수건으로 몸을 닦아가며 공부했다. 차에 대한 공부를 시작으로 무역 실무 책을 탐독하고 인터넷의 모든 정보를 긁어모아 이해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찜통 같던 그 여름의 방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눈떠서 잠들기 전까지 오직 이것만 생각했던, 참으로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7. 일단 거래처를 찾기 위해 인터넷으로 차를 파는 업체에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 그 중 괜찮은 업체 1~2곳에서 답장이 왔고, 그 중에 한 곳을 선택해서 거래하기로 했다. 지금 말하자면, '거래처 구하기'는 앞으로 할 일 중에 제일 쉬운 단계였다. 앞으로 줄줄이, 식품수입판매업 등록, 관세신고, 수입 식품 검사 도 해야하고, 알리바바에 들어가서 차를 담아 팔 병을 제공해줄 곳도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8. 진짜 아무것도 몰랐는데 하루 종일 이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하나씩 하나씩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 일을 벌이고 해냈는지 모를만큼 다 해냈다. 식품수입판매업 등록 후에 차 샘플을 받아 식품검사 의뢰를 하고 문제가 없는 걸 확인했다. 차 1종당 수입식품검사 비용이 백만원이라서 꽤 부담이 되었다. 처음에 8개의 차로 시작을 했다. 8개니까 검사비만 8백만원이 나갔다. 식품을 담을 병도 몇 개 받아서 검사를 맡겼다. 중국 제품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 아무 문제 없었다. 모두 문제가 없으니 차도 주문하고 병도 주문했다.
9. 관세사를 쓰지도 않고 직접 수입신고를 했다. 차를 받기로 한 업체가 영국업체라서 한-영 FTA 혜택을 봤다. 녹차를 제외하고는 관세가 0%였다.
병도 주문하고 수입처리까지 했다. 수입통관허가를 받은 뒤 빨리 물건을 받고 싶어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 가서 직접 받아왔다. 이 때 인천공항 근처에 이런 일을 하는 곳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가봤는데 거기에도 다양하고 치열한 삶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관세 신고 사이트 유니패스.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데 일단 하고 봤다.
10. 주문한 모든 제품에는 내가 보낸 '수입식품 한글표시사항'이 붙어있었다. 영국 업체는 해당 내용을 보내면 이걸 붙여서 발송해줬고, 중국 병 업체는 내가 스티커를 제작해서 그 공장으로 보내면 붙여서 보내줬다. 병의 작은 병 1,000개 큰 병 1,000개 였는데 공장의 인부들이 하나씩 붙여서 보내준 것이다. 당시에는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나중에는 스티커를 하나씩 떼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잘 떨어지는 스티커로 제작을 했으면 모르는데 일반 접착력이 좋은 스티커로 하다보니 하나씩 뗄때 너무 힘들었다.
11. 물건과 담을 병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뭔가 실감이 났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도 있었고, 가장 큰 어려움들을 해결했으니 이제 잘 파는 일만 남았다. 병을 담을 패키지로 약간 비스듬한 사다리꼴 모양의 박스를 직접 디자인하고 목업을 만들어서 방산시장의 여러 업체를 다니며 상담받고 견적을 받았다.
12. 그와 동시에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를 만들었다. 패키지도 완성이 되어서 모든 제품이 준비되었다. 내 예상보다 어려웠던 건 제품 사진을 찍는 거였다. 어떻게 찍어도 어설프게 나왔다. 전문가에게 견적을 받아보니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였다. 게다가 이 때쯤에는 사업으로 쓸 돈을 거의 다 쓴 상황이였다. 결국 아크릴과 LED 등을 사와서 제품 촬영 박스를 만들어 그럭저럭 볼 만한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13. 모든 준비 완료. 제품, 인터넷 쇼핑몰 다 만들어 놓고 나니 사업에서 제일 어려운게 뭐지 알게 되었다. 바로 홍보. 어떻게 홍보해야하는지 전혀 몰랐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또 막상 써놓고 나니, 이걸 왜 쓰고 있을까 나 스스로도 이상하다. 하지만 그나마 기억이 남을 때 기록해보려한다. 다음에 이어서 기록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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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스크린 샷이라도 남겨놓을껄 후회된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네. 그나마 나에게 남은 상품 상세 페이지들.
지금보면 2012년도의 디자인이라 확실히 요즘 감성과 다르다. 이런 디자인들을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건, 어디 확인 받을 데가 없다는 거였다. 이거 괜찮아? 어디가 좀 이상해? 같은 검수를 받지 않고 내 맘에 들면 그냥 만든 것이라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늘 궁금했다.
티 제품 상세 페이지
공병도 팔았다.
티백도 만들었다. 이건 2편에서 기록하기로
중국에서 수입해서 팔았던 티 인퓨져.
선물세트도 만들었다. 선물세트가 생각보다 잘 팔렸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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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에 성공하니 눈에 들어온 다음 아이템은 독일의 과실주였다. 이 독일 회사와 이야기도 잘되고 주문 직전까지 갔는데, 내가 술을 안먹는데 이게 파는게 맞나? 싶고 화물비용도 많이 들어서 중간에 포기했다. 돈도 없었고.
지금와서는 이게 궁금하다. 만약 내가 끝까지 진행했으면 어떤 과거가 있었을까. 어떤 재미있는 일을 많이 했을까.
추억의 아이템, 베를리안 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