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계획을 세웠다.
당분간 즐거워질 예정이다. pfeil chisel 세트를 사고 은퇴 후 목공방 꿈을 꾸게 되었다. 주말사이에 프로젝트 이름도 지었다. 밀리미터 우드워크(millimetre woodworks).
브랜드 작명에 필수인 도메인(mmww.kr)도 남아있다. 빨리 결재해야지. 도메인과 같은 아이디로 인스타그램, 쓰레드 개설했다. 8년 뒤에는 어떻게 되어 있으려나.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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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계획을 세웠다.
당분간 즐거워질 예정이다. pfeil chisel 세트를 사고 은퇴 후 목공방 꿈을 꾸게 되었다. 주말사이에 프로젝트 이름도 지었다. 밀리미터 우드워크(millimetre woodworks).
브랜드 작명에 필수인 도메인(mmww.kr)도 남아있다. 빨리 결재해야지. 도메인과 같은 아이디로 인스타그램, 쓰레드 개설했다. 8년 뒤에는 어떻게 되어 있으려나.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해야겠다.
목표 없는 삶
1. 브리즈번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멜버른에서의 시간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브리즈번에서의 포스팅 숫자는 멜버른 시절보다 눈에 띄게 적다. 평일에 본업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멜버른에서는 훨씬 더 다사다난한 하루하루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비자 문제를 해결하여 최대한 호주에서 오래 버텨내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그 치열한 과정을 기록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 브리즈번에서는 어느덧 그 거대했던 목표가 사라져 버렸다.
2. 지금 브리즈번에서의 삶은 너무나 완벽하다. 아무런 걱정도 없고, 아이들도 정말 바르게 잘 크고 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내 인생에 발레를 하는 딸아이가 있을 줄은 몰랐고, 내 아이가 '마림바'라는 생소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도 몰랐다. 우리 가족이라는 배가 마침내 안정적이고 완벽한 항로에 올랐으니, 이제는 이대로 순항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것이 바로 지금의 내 역할이다.
3. 그런데 요즘은 역설적이게도 목표가 사라진 탓에 모든 일에 심드렁하다. 매일매일 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어느새 삶이 익숙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살짝 무기력해지곤 한다. 앞으로 약 8년 후에 지금의 일이 끝날 예정이라, 새로운 장기 목표를 세우기도 쉽지 않다. 당장 2년 뒤에 어떤 세상이 올지도 모르는 급변하는 시대인데, 8년 뒤의 미래를 바라보며 달린다는 것이 아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4. 그렇기에 지금은 먼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실적인 계획에 집중하려 한다. 조기 은퇴를 위해 착실하게 금융 소득을 올리고,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내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주어야겠다. 그것이 목표를 잃어버린 지금의 내가 찾아낸, 가장 가치 있는 새로운 이정표다.
5월에는
1. 지난 주말인 5월 10일에는 아트 페어에 다녀왔다. 호주 전역의 갤러리들이 소장한 작품을 선보이고 판매하는 행사였다. 마음에 쏙 드는 그림도 있었고, 누가 살까 싶을 정도로 난해하고 독특한 그림들도 눈에 띄었다. 조각 작품도 몇 점 전시되어 있었다. 가격은 A3 용지 정도 크기가 200만 원 안팎이었고, 존재감이 느껴지는 큰 작품들은 500만 원대부터 시작되었다. 몇몇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었지만 더 부자가 된 뒤에 사기로 했다.
나는 해안가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2. 집 뒤편의 빅토리아 파크는 이제 브리즈번 올림픽 주 스타디움 건설로 인해 출입이 제한된다고 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바뀌는 순간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된다고 하니, 그전에 공원을 찾아 가족들과 소박한 피크닉을 즐기며 예쁜 노을을 눈에 담아둬야겠다.
3. 브리즈번 동쪽 끝자락에 있는 클리블랜드라는 지역에도 다녀왔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곳이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동네는 고요했다. 굳이 멀리 골드코스트까지 가지 않더라도, 바다 옆 잔디밭에 앉아 가족들과 편안히 쉴 수 있었다. 아들은 낚싯대를 던지고 딸은 자전거를 타며 각자의 방식으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4. 아들은 중고로 자기 몸집보다 큰 자전거를 하나 장만했다. 본인 생각보다 29인치 바퀴가 너무 컸는지 막상 실물을 보고는 스스로도 놀란 눈치였으나, 안장을 최대한 낮추니 다행히 탈 수 있을 듯했다. 나도 직접 타보니 크기에 비해 무게가 무척 가볍고 매끄럽게 잘 나갔다. 몇 달 전부터 사고 싶다고하던 마운틴 바이크였는데, 막상 사고 나니 그리 자주 타지는 않는다. 사실 우리 동네인 켈빈 글로브는 언덕이 많고 학교도 집 바로 앞이라 자전거를 탈 일이 별로 없기도 하다. 아마도 자전거 자체가 아니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결국 안 타게 될 것을 짐작하면서도 사주었지만, 중고 물건에 만족해서 다행이다.
티;라피(tea;rapy)를 아시나요?_1
1. 회사 근처 브리즈번 아케이드를 지날 때마다 익숙한 찻집의 향기를 맡게된다. 이 매장 앞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오래전 내가 만들었던 '티라피(tea;rapy)'를 떠올리게 된다.
음료를 팔지 않고 찻잎만 팔고 있는 상점, 그 특유의 향기가 있다
2. 티라피의 시작은 이랬다. 나는 늘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어 했다. 다만,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경쟁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당시에는 아마도 치열하게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늘 블루오션을 찾아 헤맸고, '이거다' 싶은 아이템이 나타나면 언제든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3. 발단은 당시 여자친구(현재 아내)의 언니가 프랑스 출장에서 사 온 작은 선물이었다. 잠금장치가 있는 예쁜 유리병에 담긴 차였는데, 꽃잎이 섞여 있어 보기에도 예쁘고 향기도 근사했다. 무엇보다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내 손안에 들어온 그 제품이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충분히 갖고 싶어 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평소 현미녹차밖에 몰랐을 정도로 티 시장에 무지했지만, 이거다 라는 느낌이 들었고 이 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4. 결혼 후 신혼여행지를 로마와 파리로 정한 이유도 라파예트 백화점 식품관에 있다는 그 티 샵에 가기 위해서였다. 막상 찾아가 보니 그곳은 전문 티 샵이 아니라 각종 향신료를 병에 담아 팔기도 하고 봉지에 무게를 달아 파는 상점이었다. 나는 몇몇 샘플을 사면서 대용량 거래를 제안(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했고, 주인으로부터 이메일 주소를 받아왔다.
5.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시작했다. 그저 해외 직구를 하듯 많이 사 와서 예쁘게 담아 팔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프랑스 상점 주인에게 보낸 메일은 끝내 답장이 없었지만, 나는 이미 이 사업에 홀려 있었다.
프랑스의 상점은 이런 느낌이였다.
6. 신혼여행 직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사 다음 날부터 신혼집 방 한 칸에 틀어박혀 사업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무더운 여름, 수입이 끊긴 처지에 에어컨 켜는 것이 아까워 땀을 뻘뻘 흘리며 수건으로 몸을 닦아가며 공부했다. 차에 대한 공부를 시작으로 무역 실무 책을 탐독하고 인터넷의 모든 정보를 긁어모아 이해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찜통 같던 그 여름의 방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눈떠서 잠들기 전까지 오직 이것만 생각했던, 참으로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7. 일단 거래처를 찾기 위해 인터넷으로 차를 파는 업체에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 그 중 괜찮은 업체 1~2곳에서 답장이 왔고, 그 중에 한 곳을 선택해서 거래하기로 했다. 지금 말하자면, '거래처 구하기'는 앞으로 할 일 중에 제일 쉬운 단계였다. 앞으로 줄줄이, 식품수입판매업 등록, 관세신고, 수입 식품 검사 도 해야하고, 알리바바에 들어가서 차를 담아 팔 병을 제공해줄 곳도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8. 진짜 아무것도 몰랐는데 하루 종일 이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하나씩 하나씩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 일을 벌이고 해냈는지 모를만큼 다 해냈다. 식품수입판매업 등록 후에 차 샘플을 받아 식품검사 의뢰를 하고 문제가 없는 걸 확인했다. 차 1종당 수입식품검사 비용이 백만원이라서 꽤 부담이 되었다. 처음에 8개의 차로 시작을 했다. 8개니까 검사비만 8백만원이 나갔다. 식품을 담을 병도 몇 개 받아서 검사를 맡겼다. 중국 제품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 아무 문제 없었다. 모두 문제가 없으니 차도 주문하고 병도 주문했다.
9. 관세사를 쓰지도 않고 직접 수입신고를 했다. 차를 받기로 한 업체가 영국업체라서 한-영 FTA 혜택을 봤다. 녹차를 제외하고는 관세가 0%였다.
병도 주문하고 수입처리까지 했다. 수입통관허가를 받은 뒤 빨리 물건을 받고 싶어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 가서 직접 받아왔다. 이 때 인천공항 근처에 이런 일을 하는 곳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가봤는데 거기에도 다양하고 치열한 삶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관세 신고 사이트 유니패스.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데 일단 하고 봤다.
10. 주문한 모든 제품에는 내가 보낸 '수입식품 한글표시사항'이 붙어있었다. 영국 업체는 해당 내용을 보내면 이걸 붙여서 발송해줬고, 중국 병 업체는 내가 스티커를 제작해서 그 공장으로 보내면 붙여서 보내줬다. 병의 작은 병 1,000개 큰 병 1,000개 였는데 공장의 인부들이 하나씩 붙여서 보내준 것이다. 당시에는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나중에는 스티커를 하나씩 떼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잘 떨어지는 스티커로 제작을 했으면 모르는데 일반 접착력이 좋은 스티커로 하다보니 하나씩 뗄때 너무 힘들었다.
11. 물건과 담을 병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뭔가 실감이 났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도 있었고, 가장 큰 어려움들을 해결했으니 이제 잘 파는 일만 남았다. 병을 담을 패키지로 약간 비스듬한 사다리꼴 모양의 박스를 직접 디자인하고 목업을 만들어서 방산시장의 여러 업체를 다니며 상담받고 견적을 받았다.
12. 그와 동시에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를 만들었다. 패키지도 완성이 되어서 모든 제품이 준비되었다. 내 예상보다 어려웠던 건 제품 사진을 찍는 거였다. 어떻게 찍어도 어설프게 나왔다. 전문가에게 견적을 받아보니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였다. 게다가 이 때쯤에는 사업으로 쓸 돈을 거의 다 쓴 상황이였다. 결국 아크릴과 LED 등을 사와서 제품 촬영 박스를 만들어 그럭저럭 볼 만한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13. 모든 준비 완료. 제품, 인터넷 쇼핑몰 다 만들어 놓고 나니 사업에서 제일 어려운게 뭐지 알게 되었다. 바로 홍보. 어떻게 홍보해야하는지 전혀 몰랐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또 막상 써놓고 나니, 이걸 왜 쓰고 있을까 나 스스로도 이상하다. 하지만 그나마 기억이 남을 때 기록해보려한다. 다음에 이어서 기록해보겠다.
+++
홈페이지 스크린 샷이라도 남겨놓을껄 후회된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네. 그나마 나에게 남은 상품 상세 페이지들.
지금보면 2012년도의 디자인이라 확실히 요즘 감성과 다르다. 이런 디자인들을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건, 어디 확인 받을 데가 없다는 거였다. 이거 괜찮아? 어디가 좀 이상해? 같은 검수를 받지 않고 내 맘에 들면 그냥 만든 것이라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늘 궁금했다.
티 제품 상세 페이지
공병도 팔았다.
티백도 만들었다. 이건 2편에서 기록하기로
중국에서 수입해서 팔았던 티 인퓨져.
선물세트도 만들었다. 선물세트가 생각보다 잘 팔렸던 기억이 있다.
++++
수입에 성공하니 눈에 들어온 다음 아이템은 독일의 과실주였다. 이 독일 회사와 이야기도 잘되고 주문 직전까지 갔는데, 내가 술을 안먹는데 이게 파는게 맞나? 싶고 화물비용도 많이 들어서 중간에 포기했다. 돈도 없었고.
지금와서는 이게 궁금하다. 만약 내가 끝까지 진행했으면 어떤 과거가 있었을까. 어떤 재미있는 일을 많이 했을까.
추억의 아이템, 베를리안 윈터
나는 짠돌이다. 돈을 쓰는 것도 즐겁지만 이왕이면 아끼려고 노력한다. 늘 가성비를 따지고, 새것 같은 중고 물건을 찾아 헤맨다. 샴푸나 바디로션을 다 쓰면 뚜껑을 열어 바닥까지 긁어낸다. 버리는 것 없이 끝까지 써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며칠 전, 딸아이가 치약을 들고 끙끙거리기에 다가가 보니 가위로 치약 튜브를 자르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자르면 안에 남은 치약까지 다 쓸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내가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쓰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모양이다.
요즘은 중고 자전거를 사주려고 매물을 알아보고 있다. 그런데 두 아이의 반응이 참 다르다. 아들은 예산을 정해주면 딱 그 금액에 맞추거나 오히려 예산을 넘기는 상품을 골라온다. 반면 딸은 예산보다 한참 낮은 가격의 상품을 골라 놓는다. 이유를 물어보면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렇단다. 아이는 가장 좋아하는 색의 자전거를 먼저 찾은 뒤, 가격을 확인하고 나서야 위시리스트에 올린다. 좋아하는 색상의 자전거 중 예산이 조금이라도 넘는 것을 보여주면, 비싸서 싫다며 고개를 젓는다.
똑같이 먹이고 입히며 키우는데도 아이들마다 이렇게 성격이 다르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내 딸이 주인공인 것에 대한 이야기
이번 방학에 뮤지컬 학원을 다니겠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 기억 속 딸은 늘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보겠냐고 물으면 무조건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젓던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겠거니 싶어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주었다.
학원에 다녀온 첫날, 딸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다고 말했다. 솔직히 믿지 않았다. 나도, 아내도, 아들도 믿지 않았다. 가족 모두가 반신반의하는 눈치니 딸은 이내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며 토라졌다. 하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딸은 정말로 주인공이었다. 나중에 아내가 전하길, 선생님께서 "엘라가 너무 잘한다"며 방학 기간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했다.
이번에 하는 공연은 '애니'였다. 공고롭게도 올해 아이들과 본 공연이였다.
주인공을 맡은 딸은 집에서도 뮤지컬 노래를 계속 틀어놓고 지치지도 않는지 내내 따라 불렀다. 밤에 자려고 누워도 머릿속에서 음악이 자동 재생될 정도였다.
딸은 큰 이벤트가 다가오면 자신만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한다.
1. 양 갈래로 머리따기
2. 검정색 티셔츠와 반바지 입기
3. 준비물-강아지 인형 챙기기
4. 얼음을 넣은 물 챙기기
5. 화장하기
뒤로 넘겨서,
제발, 내게 행운을!
이런 이벤트를 놓칠 수 없었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 시작 직전에는 내가 다 두근거렸다. 마치 딸이 실수하면 내가 실수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저 무사히 잘 끝나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혹시라도 큰 실수를 해서 이 순간이 엉망이 되거나, 무대라는 공간이 아이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지 않기만을 바랐다.
우리 가족은 맨 앞줄에 앉아 공연을 지켜봤다. 엘라는 우리 가족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최대한 노력하며 연기에 집중했다. 조금은 엉성할지 몰라도, 아이는 일주일 동안 공들여 외운 대사와 노래를 큰 실수 없이 멋지게 해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즐거운 기억을 얻었다.
시드니 여행 3
1. 오늘은 시드니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시드니의 상징인 오페라하우스를 보기 위해 공식 가이드 투어를 예약했다. 다행히 한국인 직원이 있어 한국어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2. 단순히 내부를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무척 유익했다. 기둥 없이 지어졌다는 점과 건물 내부에 또 다른 건물을 짓는 독특한 방식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105만 6천 장에 달하는 스웨덴산 타일로 덮인 지붕 외피의 모습을 가까이서 직접 확인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3. 설명 중에 건축가와 호주 정부 사이의 깊은 갈등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괜히 불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듯 했다. 사실 이 멋진 건축물에 대한 뒷이야기는 꽤나 드라마틱하다. 당시 무명이었던 요른 우손의 (겨우) 12장으로 된 스케치가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는데, 디자인은 아름다웠으나 당시 기술로는 구현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그 누구도 이 형태를 어떻게 지을지 몰랐다는 것이다.
공학적 난제와 설계 변경으로 인해 공사 기간은 14년이나 소요되었다. 착공이 1959년인데 완공은 1973년에 되었다. 결국 예산 초과와 정치적 압박을 이기지 못한 요른 우손은 1966년 프로젝트에서 사임하고 호주를 떠났다. 그 후 그는 다시는 호주 땅을 밟지 않았고, 자신의 최고 걸작이 완성된 모습조차 죽을 때까지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2003년, 그는 오페라 하우스로 프리츠커상을 받으며 세계적 건축가로 재평가되었고, 2007년, 오페라 하우스는 UNESCO 세계유산이 되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노출 콘크리트. 마감을 어떻게 해는지 촉감이 매끌하니 좋다.
4. 오페라하우스 투어를 마친 뒤에는 시드니 대학교로 향했다.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캠퍼스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었다. 자차로 이동한 덕분에 시티 곳곳을 비교적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5. 브리즈번까지 한 번에 운전해 복귀할 자신은 없어, 중간에 위치한 작은 해안 도시 남부카 헤드(Nambucca Heads)에서 하룻밤 쉬어가기로 했다. 작은 마을이라 큰 기대 없이 잡은 숙소였으나 의외로 컨디션이 훌륭했다. 화장실에 욕조가 없다는 점만 빼면 시드니의 웬만한 호텔보다 청결했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전망도 일품이었다.
시드니 여행 2_시드니 미술관
1. 시드니 여행 2일 차에는 도보로 많은 곳을 다녔다. 퀸 빅토리아 빌딩, 세인트 메리 대성당, 시드니 박물관을 거쳐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걸어서 시드니 미술관에 도착했다. 오후 5시 폐관인데 4시에 도착해 남은 시간은 단 한 시간. 우리는 입구에 안내된 론 뮤익(Ron Mueck)의 전시만 집중해서 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평면적인 그림보다 입체적인 조각 작품을 보며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2. 론 뮤익의 특별전시는 유료 관람(아이들은 무료)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깨너머로만 알고 있던 작가였는데, 이번 기회에 가까이서 마주한 세밀한 표현과 찰나에 담긴 깊은 감정들은 놀라웠다. 극사실주의 작품들을 보며 아이들과 풍성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이번 기록을 하며 론 뮤익에 대해 조금 더 공부했다. 그가 멜번 출신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독일계 호주 이민자로서, 대대로 인형극과 인형 제조를 가업으로 이어온 집안 출신이라는 배경이 작품의 정교함과 맞물려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고단함이 느껴진다.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생필품도, 품에 안긴 아기도 모두 무거워 보인다. 이것이 삶의 무게일까.
앞에서 보면 다정한 젊은 커플이지만 뒤에서 보면 둘 사이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뒤에서 보면 긴장감이 느껴진다.
저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발등의 힘줄까지 표현이 되어있다. 발가락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발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조각품을 만들고 옷을 입힐까? 조각을 하면서 옷을 입히는지 작업 과정이 궁금해졌다.
팔꿈치의 주름이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늙은 할아버지와 식탁 위의 닭, 이 3가지 조합으로 무수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론 뮤익의 후반기 작품들은 초사실주의 기법을 덜어내는 대신 군집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집중하는 듯했다. 실제로 마주한 개들의 무리는 압도적인 긴장감을 뿜어냈다.
나가기 직전의 마지막 작품. 해변에서 쉬는 노부부는 무척 편안해 보이면서도 지독히 피곤해 보였다. 남은 생에 대한 고민까지 엿보이는 듯했다.
전시를 나오니 론 뮤익의 작업 모습을 영상으로 틀어주고 있었다. 초사실주의 작품이 아닌 최근의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3D 프린터와 찰흙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3. 론 뮤익 전시가 있는 별관의 지하에는 색다른 공간이 있었다. 건축 폐기물로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어 냈고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가까이서 보면 위트로 가득한 곳이였다. 이들의 미감이란 정말로 대단하다. 쓰레기도 예쁘게 모아놓으니 보물같다.
노티스 보드도 건축에 사용되는 끈으로 고정했다. 천장 조명은 공사현장에 쓰이는 물통이다.
한 때는 어느 건물의 기둥이였던 거대한 돌을 넘어뜨려 벤치로 쓰고 있다. 아래 부분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마감하고 전등을 켜놨다.
나무도 조경을 위해 포장한 그대로 세워두었다. 현대 건축 폐기물로 만든 그리스 신전같다.
4. 저녁에는 호텔 근처 달링 하버에서 불꽃놀이가 열린다고 했다. 매주 토요일 9시마다 정기적으로 하는 모양인데, 일찍 도착했음에도 이미 인파가 상당했다. 하지만 약속된 9시가 지나고 20분이 넘도록 소식이 없자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우리 가족도 호텔로 돌아가기로 하고, 가는 길에 맥도날드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사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받자마자 펑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발길을 돌려 짧지만 강렬한 불꽃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시드니 여행 1
1.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새벽 2시에 시드니로 출발했다. 아내와 교대로 운전하며 어찌저찌 10시간을 달려 도착하니 몸은 이미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힘들게 도착한 시드니인 만큼 곧장 움직이기로 했다. 밀린 잠은 오늘 밤 아주 푹 자기로 마음먹고 말이다.
2.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본다이 비치였다. 최근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던 곳이지만, 시드니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이니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골드코스트의 광활한 해안에 익숙해진 탓인지 본다이 비치는 생각보다 아담하게 느껴졌다. 해안가 한편의 수영장과 모래사장 뒤편의 스케이트 트랙이 이곳 특유의 '힙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았다. 대도시 바로 뒤인데도 물은 무척 맑아 보였다. 날씨만 조금 더 화창했더라면 잠시 물에 들어가 놀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3. 저녁은 시드니 차이나타운에서 먹었다. 늦은 밤인데도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흐릿한 눈으로 보면 여기가 상하이인지 시드니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비교적 한적한 브리즈번에 살다 이런 대도시에 오니 확실히 소란스러우면서도 구경할 거리가 많았다.
4. 호텔 조식을 든든히 챙겨 먹고 오늘은 도보 시티 투어에 나섰다. 꽤 많이 걷는 코스라, 둘째가 어리광 피우지 않고 잘 따라와 주길 바랄 뿐이었다.
퀸 빅토리아 빌딩을 구경하고 세인트 메리 대성당, 시드니 박물관을 차례로 둘러본 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문득 10년 전인 2016년 6월쯤 시드니에 왔던 기억이 났다. 그때 찍은 사진과 지금의 풍경을 비교해 보니, 시드니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우리 가족이 다시 시드니에 놀러 올 일이 또 있을까? 같은 나라 안의 도시들이라 그런지 모든 게 비슷비슷해 보일 뿐이다. 나중에 타즈매니아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시드니 여행을 시작하면서 든 생각
이번 이스터 연휴에 급하게 시드니를 다녀왔다. '급하게'라고는 했지만 사실 빨리 가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4일간의 휴일이 생겼고, 마침 아이들의 스케줄도 비어 있어 떠나기 적당한 때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비행기로 편하게 가면 좋았겠지만 연휴 대목이라 가격이 너무 비쌌다. 게다가 중동 전쟁 여파로 유류 할증료까지 치솟아 네 가족이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해결하면 되는 법. 우리는 차를 몰기로 했다.
출발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평소라면 잠이 쏟아졌을 시간인데 유독 정신이 맑았다. 새벽 4시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침대에서 몇 시간을 뒤척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자고 있던 가족들을 깨워 새벽 2시에 길을 나섰다.
10시간을 달려 도착한 시드니. 컨디션은 엉망이었지만 잠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시드니는 이번이 세 번째다. 한국에 살던 2016년 6월에는 관광차 왔었고, 2024년 7월 멜번에서 브리즈번으로 이사하며 1박하며 잠시 들른 적이 있다. 이번에는 초코도 동료에게 맡겼으니 제대로 시드니를 구경해볼 작정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가 브리즈번 신축 주택 광고를 보게 되었다. 기차역 근처라 시티까지 출퇴근이 편해 보였다. 아이들 학교가 마음에 걸렸지만, 미안하게도 전학을 한 번 더 시켜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전학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멜번은 어떨까. 멜번으로의 이직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멜번으로 돌아가 우리 집에 살자.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굳어졌다. 재미없는 브리즈번을 떠나자. 멜번으로, 우리의 진짜 집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니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단지 '내 집에서 산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이곳을 떠나는 게 맞을까. 사실 브리즈번의 삶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아이들도 적응을 잘했고, 나 역시 직장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만약 이 상태에서 다시 멜번으로 간다면, 아이들이 지금 하고있는 배구, 발레, 체조, 주짓수, 학교 오케스트라 활동을 똑같이 이어갈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환경을 다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이 지금과 같지 않을 수도 있었다.
브리즈번에서의 삶은 충분히 좋다. 멜번으로 간다면 상황이 더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나빠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나빠질 위험이 있다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맞다. 솔직히 지금 우리 가족의 행복도는 100%에 가깝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공연히 마음을 들쑤시며 까불지 말고, 여기서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잘 지내야겠다.
전화가 울리지 않는 삶
전화기가 있긴 하지만,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전화가 올 일도 없으니 내 전화기 벨소리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 광고 전화나 부동산 관련 전화는 지치지도 않고 걸려오지만, 받지 않고 그냥 꺼버린다.
전화가 올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전화가 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건 넓은 평원에 홀로 앉아 있는 것처럼 평화로운 상태라는 의미다.
나는 지금 그 적막한 평화 속을 살아가는 중이다.
3월에는 이런 것을 샀다.
1. 코스트코의 습식 사우나
100불 할인이라는 유혹에 이끌려 장만한 습식 사우나다. 전기주전자처럼 물을 끓여 수증기를 채우는 방식인데, 예상보다 온도가 빨리 올라가고 성능도 확실해 만족스럽다. 바닥에 물이 고이는 단점은 있지만, 욕조 없는 아파트에서 반신욕을 대신해 몸을 데우기엔 제격이다. 현재 가족 중 나만 줄기차게 이용하고 있는데, 다가올 브리즈번의 겨울에 맹활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2. 후회를 남긴 폴로 셔츠
아울렛 마감 한 시간 전, 서둘러 쇼핑을 하다 발견한 녀석이다. 클리어런스 매대에 걸려 79불이라는 가격과 적당한 활용도에 혹해 입어보지도 않고 덜컥 사버렸다. 집에 와서 보니 기장이 애매하게 길어 입을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자수 로고에 최면이라도 걸린 걸까, 아니면 폐점 3분 전이라는 압박감에 눈이 먼 걸까.
굳이 없어도 될 물건을 샀다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왕 내 것이 되었으니 어떻게든 오래 입어보려 한다.
3. 유니클로의 치노팬츠
점심을 먹고 산책하다가 들어간 유니클로에서 치노팬츠를 만져보고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리즈번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사온 바지들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지만 한 번 만져보니 사고 싶었다. 탄탄한 만듬새와 군더더기 없는 기본적인 디자인에 길이와 바지 통도 딱 맞았다. 결국 베이지색 치노 팬츠를 집에 사왔다.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면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쓸데없이 너무 비싸다더가 너무 튀지 않아서 좋다. 적절한 가격으로 최대의 만족이다.
얼마나 좋은 곳에 살고 있느냐
저녁 7~8시쯤 초코와 산책을 나선다. 여러 코스 중 하나는 빅토리아 공원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이 길목에는 자전거 트랙이 있는데, 저녁 시간임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꽤 많다. 대부분은 10대 소년들이다.
한국이라면 학원에 앉아 있을 시간에 여기 아이들은 자전거 묘기를 연습한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내 아이들에게 이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싶어진다. "너희가 만약 한국에 있었더라면 이 시간에 학원에서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고 있었을 거야. 그러니 지금 여기있음을, 이 순간을 감사해야 해." 같은 쓸데없는 말들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다는 것. 아이들은 내 선택 때문에 좋든 싫든 이곳에 와 있고, 여기 나름의 다양한 문제들에 맞닥뜨리며 나름대로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의 입장을 대변해 보자면, "아, 그렇군요. 여기가 좋군요. 그래서요?"라고 되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을테다.
그러니 아이들도 나름대로 이곳에서 살아남느라 분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게다가 여기서 마주하는 고난과 역경은 한국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기에, 내 충고나 조언이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내가 살아온 삶과 너희가 살아가는 삶이 엄연히 다른데 말이다.
이제는 비교를 멈추기로 했다. 한국보다 여기가 얼마나 좋은지를 역설하기보다, 오늘 하루 호주의 낯선 햇살 아래서 아이들이 견뎌낸 무게를 가만히 다독여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그거면 충분하다.
둘은 다르다
아들과 딸에게 '성당'을 그려보라고 했다. 딸은 '성당'이 뭔지 몰라서 영어로 카톨릭 처치라고 말해줬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이 나왔다.
왼쪽이 아들이고 오른쪽이 딸이다.
성당을 그려보라고 했는데 아들은 성당 안에 있는 사람을 그렸고, 외부에 밝게 빛나는 태양을 그렸다. 반면 딸은 성당이라는 건물의 디테일에 집중했다. 구조적인 모습과 아치형의 문을 그렸다.
AI에 물어보니 나와 비슷하게 본 듯하다.
같은 부모 아래서 비슷한 환경에서 키웠는데 이렇게 다르다니 신기하다.
왼쪽: 아들의 그림 (외향적 소통과 서사)
아들의 그림은 성당이라는 공간 자체보다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관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심리 상태: 성당 안에 두 사람이 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현재 아이가 느끼는 사회적 유대감과 행복감이 매우 높음을 시사합니다.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표현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자신감을 보여줍니다.
성향: 스토리텔러-사물의 형태를 완벽하게 묘사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사람, 감정, 상황)를 전달하는 것을 즐기는 타입입니다.
개방성: 성당의 내부를 훤히 들여다보게 그린 '투시화' 기법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주변에 솔직하게 드러내는 개방적인 성격임을 나타냅니다.
오른쪽: 딸의 그림 (내면적 집중과 과업 지향)
딸의 그림은 성당의 외형적인 구조와 질감을 완성하는 데 큰 공을 들였습니다.
심리 상태: 벽돌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쌓아 올린 표현은 현재 아이의 집중력이 매우 높고 차분한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외부의 자극보다는 스스로 정한 목표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향: 완벽주의 및 성실성-면을 촘촘히 채우는 방식에서 인내심과 꼼꼼함이 돋보입니다.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끝까지 책임감 있게 해내려는 성향이 강할 수 있습니다.
체계적 사고: 사물을 구성 요소로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관찰력이 뛰어납니다. 감정적인 표현보다는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미학에 더 관심을 두는 타입입니다.
3월 13일부터 사흘간 호주 비치발리볼 대회에 참가한 아들과 함께했다. 학교 배구팀 소속인 아들은 이번 2인제 경기에 출전해 2승 4패라는 성적을 거뒀다. 나는 여전히 아들의 학교생활을 의심과 걱정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작년에 성적 우수상을 받으며 스스로 능력을 증명해 보였음에도, 부모로서의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처럼 아들이 친구나 선배들 사이에서 어울리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는 일은 내 마음속 의심을 어느 정도 걷어낼 좋은 기회가 된다. 사람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나와 달리 아들은 타인에게 참 쉽게 다가선다. 내가 신중하게 생각한 뒤 움직이는 편이라면, 아들은 일단 다가가 보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선배들에게도 서슴없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는다.
무엇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을 아들이 가졌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지금의 성향이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변해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살면서 배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 공을 만져본 기억은 있어도 배구라는 종목 자체에 관심을 두거나 직접 해볼 생각은 못 했다. 게다가 비치발리볼이라니. 비록 내가 직접 뛰는 건 아니지만, 살다 보니 참 별걸 다 경험해본다 싶다. 그저 실수로 점수가 나며 시시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랠리가 이어지고 점수도 엎치락뒤치락했다. 물론 아이들 간의 실력 차가 커서 대부분의 경기는 다소 싱겁게 마무리되곤 했다.
아들은 경기에서 지면 몹시 분해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 졌다며 울먹거리다가도, 몇 시간만 지나면 어느새 다시 헤헤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열세 살 아들은 이제 아버지보다 친구들 곁이 더 편할 테다. 나는 그저 멀찍이서 경기를 지켜보다가, 시합이 끝나면 조용히 다른 곳으로 자리를 비워주었다.
대회 내내 날이 흐려 다행이었다. 어쩌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내리쬐는 몇 시간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으니까.
행사는 퀸즐랜드와 뉴사우스웨일즈주의 경계에 있는 쿨랑가타(Coolangatta) 해변에서 열렸다. 최근 이란 전쟁 여파로 호주의 기름값이 매일같이 치솟고 있다. 전쟁 직전 코스트코에서 저렴하게 채워 넣었던 기름을 이번 3일 동안 모두 써버리고 말았다.
아들은 모든 경기가 끝난 마지막 날 시원하게 바다에 몸을 던졌다. 너도 나도 멋진 삶이다. 그렇지?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It ain’t what you don’t know that gets you into trouble. It’s what you know for sure that just ain’t so.) 영화 빅 쇼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