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nging Lights> Stacey Kent
스테이시 켄트는 미국 출신의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하지만 그녀의 곡들은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보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녀는 불어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런던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고 소호의 카페에서 라이브 무대에 오르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니, 그녀의 음악의 출발점은 유럽 무대였던 셈이다. 속삭이는 듯한 낮고 섬세한 음색과 단정한 기운이 상쾌함을 부여하는 그녀의 곡들에선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가 감돈다. 화려한 테크닉보다 정제된 감각으로 여백을 채우는 듯한 재즈 보컬 음악을 들려준다.
그러한 특색은 보사노바라는 장르에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스테이시 켄트의 앨범들 가운데 2013년 나온 <The Changing Lights>는 보사노바에 대한 오마주를 콘셉트로 한 작업이었다. 그런 만큼 이 앨범에는 보사노바의 선구자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곡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의 앨범을 프로듀스하거나 자주 연주에 참여해온 색소포니스트 짐 톰린슨(Jim Tomlinson)은 그녀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는 가사를 쓰기도 하는데,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와 함께 가사 작업을 한 부분이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이 앨범에서 가즈오 이시구로가 참여하거나 직접 쓴 곡은 The Summer We Crossed Europe in the Rain, Waiter, Oh Waiter와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한 The Changing Lights까지 모두 세 곡이다. 이 곡들은 보사노바와 재즈 스탠더드 원곡들에 대한 재해석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데, 디테일한 묘사가 그려내는 풍부한 이미지들이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The Changing Lights에서는 과거의 경험을 공유한 연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일상의 이미지들과 희미한 기억들을 병치하고 있다. 가사는 명확히 그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흔들리는 불빛들, 거기에 가려진 듯한 얼굴, 흔적들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Waiter, Oh Waiter는 낯선 나라에서 읽어낼 수 없는 언어로 쓰인 메뉴판을 보며 웨이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유쾌한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서는 마치 짧은 극 같은 연출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사 참여는 스테이시 켄트의 이전 앨범 <Breakfast on the Morning Tram>에서부터 이어졌다. 그 곡들은 대개 여행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이 앨범에도 그 잔상이 남아 있었다. 그러한 그의 가사들이 그녀의 음악을 더욱 세련되고 품격 있게 만드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보사노바 테마이다. 첫 번째 트랙은 조빔이 작곡하고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icius de Moraes)가 가사를 쓴 This Happy Madness이다.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던 곡 The Girl from Ipanema도 바로 이들의 작품인데, 시기적으로 This Happy Madness가 그 곡보다 더 먼저 쓰였다. 그러니까 이 앨범에서 스테이시 켄트는 보사노바 태동기에 만들어진 이 곡을 첫 번째 트랙으로 수록해 앨범의 색깔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인상을 준다. 모라이스가 쓴 것은 포르투갈어였기 때문에 나중에 영어로 된 가사가 붙었고, 영어 버전의 노래는 조빔과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등의 뮤지션들이 불렀다. 마찬가지로 조빔과 모라이스가 함께 만든 How Insensitive도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전주에 이어 스테이시 켄트는 담담하게 노래하고 색소폰과 피아노가 그 아쉬움을 더욱 짙게 채색하는 느낌이다. One Note Samba는 모라이스가 아니라 뉴튼 멘돈카(Newton Mendonça)라는 작사가가 쓴 것이다. 이 곡도 재즈 스탠더드 중 하나로 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불렸다. 조앙 질베르토를 비롯해 프랭크 시나트라, 엘라 피츠제럴드 등의 뮤지션들은 원곡의 특색을 가져와 저마다의 개성으로 노래함으로써 원곡의 탁월함을 이어갔다.
O Bêbado e a Equilibrista/Smile은 조빔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조앙 보스코(João Bosco)의 곡이다. 이 곡은 1979년 만들어졌을 당시 브라질의 군부 독재와 사면법에 반대하는 뜻에서 민중가요로 불려졌던 이력이 있다고 한다. 이 곡의 원형은 1936년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 가사 없는 연주곡으로 수록되었고, 나중에 존 터너(John Turner)에 의해 영어로 된 가사가 붙었다. 냇 킹 콜(Nat King Cole), 베티 에버렛과 제리 버틀러(Betty Everett & Jerry Butler),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등의 가수들이 이 곡을 불렀다. 스테이시 켄트의 곡에서는 소란스럽게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피아노 건반 위에 떠 있는 듯한 플루트 연주가 인상적으로 들려온다. 피아노가 거리의 소란을 의미한다면 플루트는 공중에 뜬 새를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의 위치에서는 삶들이 더 선명히 보일 것이다. ‘가슴이 아파도, 부서지는 듯해도' 웃으라는 메시지를 듣는다면 누구나 쉽게 ‘맞아’ 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래, 웃자'는 메시지를 망각하며 지내기 때문에 ‘맞아' 하는 깨달음은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앨범은 깊이 있는 보사노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편, 단편 소설집 한 권을 읽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 책 속에는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하고 보사노바 음악들과 유럽의 장소들이 하나로 얽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