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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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
바라는 것이 내게 끝끝내 당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혹은 내가 그곳에 다다를 수 없을 거라는 확신 .... 염원은 실체가 될 수 없으리라 믿는, 희망은 환상으로 변해가는 계절이 내게도 찾아왔다.
오래전 관계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한다. 자꾸 들여다보는 미치광이 같은 습관은 여전히 삶에 배어있고 화가 나거나 가슴이 쓰리다. 그런 감정에 대해서는 부아가 치민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만 하지? 질문이 앞서고 뒤따르는 건 체념과 침묵.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는 나태함과 아둔함. 노력조차 해보지 않는 겁쟁이. 그게 현존하는 나다.
글을 쓰고 있지만 어느 문장도 가슴에 남지 않고 모든 단어가 가볍게 느껴진다. 그렇게 겨우 모아 한 편을 완성하면 회의감이 앞선다. 좋은 평을 받아도 이대로 걸으면 잘못된 길로 갈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나. 내 자리가 준비된 곳이 있긴 할까. 다른 자리, 정해진 곳, 타인의 것 주변을 부유하고 떠다닌다.
몸이 부쩍 안 좋아졌고 할 수 있는 게 많이 줄었다. 끈도 겨우 잡고 있으며 글도 꾸역꾸역 쓰는 날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릿속에 구름이 낀 것처럼 몽롱하고 무상하다.
이 모든 상태가 나를 나타낸다. 정리할 수도 없는 얽힌 실타래 같은 하루의 단상들. 태어나기엔 생명력이 부족한 생각들. 내 안에 있기엔 불쌍한 발화들. 이제 우울이 삶을 갉아먹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울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의 한 부분으로서, 내 모습으로서, 돌보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고 돌아 나는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안타깝지만 견디고 버텨야 하는 일이다. 내 자신에게 말을 자꾸 걸어야 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미운 상대를 그냥 미워하고 누군가에게는 정말 나쁜 사람이 되는 것. 좀 나쁘게 살자.
지리멸렬한 감정을 깊은 곳에 밀어놓고 살아가는 나는 가끔 나에게서 지루한 위선을 보게 된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되뇌이고 다짐하면서 잊지말아야 할 것들과 잊어야할 것들의 경계를 허물면서. 모든 감정을 그냥 지나치는 일은 참으로 쉽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일기를 쓰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것들 때문이었다. 지나쳐야 하는 감정을 그대로 고스란히 남긴다면 훗날의 나에게로부터 오는 질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시도 쓰지 않았다. 시 속에서 자꾸만 죽어가는 나를 발견한 뒤로부터는.
글을 쓰는 사람들을 남몰래 질투하고 부러워하면서 하루들을 보냈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누구에게도 미움의 감정을 비추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을 얻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에 경의를 표하며, 헛되고 헛된 하루의 끝에서 무의 경지란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이 가장 보람찬 생각이었으리라.
잃어버린 친구를 자주 떠올린다. 감정을 기만하지 않았더라면, 조금만 위악적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위선적인 나로서 존재했더라면, 깊지도 얕지도 않은 관계로 계속 내 옆에 있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너무 감상적이고 유치했다. 감정의 늪에 빠지면 다른 어떤 것은 눈에 보이지가 않아서 온 몸을 던져야만 후련하게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그 감정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다치게하고 혹은 불쾌하게 하는 것이라면 내 선에서 절제하고 다듬을 수 있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원하는 대답과 질문 사이를 오가며 친근한 손길과 친절한 눈빛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미련하게도 아직도 후회가 앞선다.
이곳에 다시 일기를 적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에 따분함을 느끼거나 다시 감상적인 인간이 되고자함은 분명 아닐테고, 글을 쓰기 위한 연습도 아니니, 어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라는 이유를 들기에 적합한 듯 싶다.
꿈에서 자주 악을 지르는 사람을 만난다. 그것이 안내방송을 하는 여자일 때도 있고, 나 자신이나 주변의 가까운 사람일 때도 있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다음에선 곧장 잊어버리지만, 잊지 못하는 비명 소리가 한참이나 하루의 끝까지 남아 나를 괴롭히는 날도 있다. 아직도 나는. 끝나지 않을 고통과 씨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마음을 다 털어놓는 일이 꽤나 어려운 일이었음에도 과거의 나는 뭐가 그리 쉬웠길래 사람을 방패삼아 감정을 방패삼아 모든 것을 털어놓고 문장을 써댔을까. 후회한다.
책이 도무지 읽혀지지 않는다. 글자들이 눈 앞에서 현란하게 움직이고 어떤 문장도 한 자리에 앉아 깊이 느끼며 읽을 수가 없다. 이런 나 자신이 애처롭고 때론 원망스럽다.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하는 의욕도 사라진지 오래다.
듣고 싶은 강의 앞에선 돈을 생각하고 벌려놓은 사업에선 열의를 다하지 않는다. 가장 큰 밧줄인 글조차 내게서 어떠한 열정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쓸쓸하고 비참하다. 자기연민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 누구와도 대화하기를 꺼려하는 나 자신이 조금 싫어지고 미워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를 미워하기로 한다. 약속을 어긴다.
애인은 이런 나를 보며 속으로 운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소리내어 울 수가 없다. 그의 앞에서는 건강한 사람인척 하는 것이 나의 최선이라는 생각이 가장 앞서고, 그것 또한 그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상처를 숨기고 눈물을 삼킨다.
내가 괜찮은 건지 모르겠고 괜찮지 않으면 또 어떻게 해야할지 그조차 모르겠으니 내가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선생님을 뵙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고 다시 병원에 간다면 어떻게 지냈냐는 말에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용기내어 적는 이 글은 다시 꺼내보지 않을 작정이다. 그래도 시는 써야 하고 그래도 끈은 잡아야 하고 그래도 애인에게 전화를 해야 하고 그래도 엄마 아빠와 함께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 무겁다. 모든 것이. 나로서 살고 싶으면서도 내가 아니었음 싶다. 내가 누구인지 너무 오래 잊고 산 듯 하다.
모든 게 그립다.
@etranger.macrame
작품들!
에뜨랑제 작업 !!
오랜만이에요. 텀블러가 선정적인 게시물 차단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아직도 이곳에 머무르고 계신 분들의 기록을 천천히 읽으며 지난 날을 기억해요. 이곳에서 받았던 위로와 동질감 같은 우리들만의 향기를요.
저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어요. 마크라메 기술로 팔찌 발찌 목걸이 반지 귀걸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에뜨랑제는 이방인이라는 뜻이에요. 스스로에게로부터 이방인이 되어 살고자 떠난 여행에서 마크라메를 배웠고 그 이후 이 모든 작업을 통해 휴식과 인내와 끈기를 기르게 되었어요. 마크라메는 실로 고리를 만들어 그 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묶는 작업이에요. 이제는 제가 손수 엮어 만든 작품으로 여러분께 수줍게 다가가려 합니다! 모든 작품은 핸드메이드고 작품에 들어간 실은 물에 강해서 손 씻을 때나 샤워할 때에도 착용이 가능해요. 원석과 실의 조화가 어우러진 마크라메 악세서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특별한 선물이나 하나뿐인 나만의 악세서리를 가지고 싶다면 연락주세요. 마크라메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etranger.macrame 인스타에 검색해서 들어오시면 구매하실 수 있어요. 계속 응원해주고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
미지님 잘 지내시나요? 요즘 인스타그램도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네요.
지금은 잠시 비활성화를 한 상태입니다! 다른 곳에 소소한 글을 쓰고 있어요안부 물어봐주셔 정말 감사합니다
이장혁 공연 다녀왔다 행복했고 너무 행복해서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울의 기록
커튼을 젖히니 오래된 빛이 있었다 눈동자와 속눈썹 눈동자 옆 눈물샘 그 안에 깊이 파고들도록 모두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아침에 벌어진 일이다 하늘에는 실구름 땅에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잿빛 건물들 한 집을 나눠 몇 칸에 세 들어 있는 삶들 길 건너 불 꺼진 가로등 그 아래 버려진 담배꽁초 굴러다니는 처절함 절박함 허기 허기 허기들 창문에서는 그것만 보였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더러운 비둘기와 비둘기의 날갯짓 그 소리가 온 몸 구석구석을 찔러댔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 나는 영영 네가 될 수 없어 아침에는 당신이 저만치 멀어졌다 당신이 되려 할수록 밤이 오지 않았다 냉장고 속 상한 우유처럼 아침은 버리기도 두려웠다 완성된 행복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했던 말이다 전 날에는 거짓말을 했다 그래야만 밤이 올 것 같았다 당신의 거짓말을 사랑했다 사랑해야만 살 것 같았다 버렸던 단어 몇 개를 주워 두었다 그것들을 아침으로 먹었다 소화되지 않은 밤을 밀어내고 싶었다 다시 오해하고 있었다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날 밤이었다 우리는 옷을 두껍게 껴입고 만났다 왜 이리 얇게 입었니 다음부터는 더 따뜻하게 입어 서로에게 말했다 볼이 붉어지고 숨 쉴 때마다 입김이 났다 바람이 불어 머리칼이 입술에 붙었다 그것을 떼어 귀에 넘겨주는 찰나에 다시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웃었고 웃는 얼굴을 마주 보며 더 환히 웃었다 손을 잡고 잡은 손을 한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걸었다 따뜻한 날이 오면 함께 떠나자고 말했고 좋아 하고 대답했다 누가 먼저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입을 맞추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서로의 눈 우리가 담겨있는 어둡고 깊은 곳 이것을 사랑이라고 믿으면 이것이 사랑이 되는 세계 우리는 그곳으로 갔다 시간을 등진 채 며칠이 지났는지 몇 해가 지났는지 그런 것쯤은 잊었다 원하는 것을 함께 원하고 내 안에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너의 눈과 입술과 손과 엉덩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얘기하고 무서워하면 꼭 안아주고 누군가 서로를 다치게 하면 감싸주었다 같은 기분을 느끼고 그것을 나눴다 지금 느끼는 것은 행복이야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쳐주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어떠한 강압도 외압도 없이 우리는 너와 내가 되었고 우리보다 내가 우리보다 네가 중요해질 때쯤 서로를 미워했다 미움이 커져 원망이 되었고 원망 속에 담긴 모든 단어는 말이 되어 서로의 가슴 속에 자리 잡았다 그것은 보통 혼자 있는 시간에 스스로 자라났다 누가 물을 주지 않아도 바라지 않아도 저절로 뻗어 나가 더는 묻어둘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같이 있는 시간이나 곁에 없는 시간에도 날카로운 가시처럼 찌르고 상처를 만들었다 울었고 울었고 다시 울었다 그러나 대부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우리는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같이 아침을 맞았다 그것을 반복했다 어느날 밤이었다 우리는 옷을 두껍게 껴입고 만났다 춥진 않니 물었고 별로 하고 대답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무들이 가지를 떠는소리가 거리에 가득했다 우리는 말이 없었고 그래서 가지들의 소리를 들었다 조금 떨어져 걸었다 오래라고 생각했지만 먼 거리는 아니었다 발걸음 소리가 어색하게 들렸다 누가 먼저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만 헤어지자고 말했다 누군가 훌쩍였다 우리는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가 사라진 때는 지금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였다가 우리가 아니었을까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어느 날 밤 일어난 일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어느 날 밤
세상에 귀찮은 게 너무 많은 저는 이곳에 글을 쓰는 것도 귀찮았던 적이 참 많았고 동일한 이유로 다른 공간을 만드는 것도 미뤄왔어요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면서 어느새 들어와 내일이면 버려질 글을 쓰고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이의 글을 읽으며 어느 밤에는 질투를 또 다른 날에는 존경심을 느꼈어요 어제오늘 사이에 많은 분들이 이곳을 떠나네요 여긴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저의 대나무숲이기도 했는데 돌연 예고 없이 대나무들이 다 잘려버린 숲을 마주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요 오늘 밤엔 당신들의 블로그 주소를 메모장에 적어두고 인스타에 들어가 팔로우를 조심스레 누릅니다
쓸쓸하네요 당신들의 단어와 문장이 계속 제 하루를 덮쳐주기를 바랐는데 말이죠 생각해보면 지금껏 저를 버티게 해주었던 것은 크고 거대한 사건이나 거창한 말이 아닌 작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였던 것 같아요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요
둘이서 마주 앉아, 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말없이, 서로의 눈썹을 향하여 손가락을,
이마를, 흐트러져 뚜렷해지지 않는 그림자를, 나란히 놓아둔 채 흐르는
우리의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 오른뺨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둘이 앉아 있는 사정이 창문에 어려 있다 떠올라 가라앉지 않는,
생전의 감정 이런 일은 헐거운 장갑 같아서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더 갈 수 없는 오늘을 편하게 생각해 본 적 없다 손끝으로 당신을 둘러싼 것들만 더듬는다
말을 하기 직전의 입술은 다룰 줄 모르는 악기 같은 것 마주 앉은 당신에게 풀려나간,
돌아오지 않는 고요를 쥐여 주고 싶어서
불가능한 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뒤를 돌아볼 때까지 그 뒤를 뒤에서 볼 때까지
/내일, 내일, 유희경
작고 하얀 겨울이 흩날리는 밤 눈을 뜨면 겨울이 온 세상을 덮었으면 좋겠다 차곡차곡 겨울이 쌓여 걸을 때마다 겨울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겨울을 손에 뭉쳐 더 단단한 겨울을 만들고 그걸 네 손에 쥐여주고 다시 그 겨울이 녹는 동안 뜨겁게 울었으면 좋겠다 길을 걷다 겨울이 그렁그렁 한 눈을 건드렸으면 좋겠다 뺨에 닿는 겨울의 온도를 잊을 만큼 슬펐으면 좋겠다 뜨거운 눈물이 없어도 겨울은 녹을 테지만 간절한 절규가 없어도 겨울은 물러날 테지만 쓸쓸한 탄식이 없어도 겨울은 사라질 테지만 나는 조금 주저앉고 싶다 겨울이 녹는 동안에 겨울이 녹는 동안에
경주의 조각들
새벽 동틀 무렵의 동해. 하늘과 산과 바다, 그리고 태양.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들. 늘 바라봐도 무심하다. 계속 그리다 보면 저 하늘 끝에 닿을 수 있을까. 부르다 보면 저 바다 끝에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