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 보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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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보이게
밤공기가 가을 날씨 같다. 시원한 바람에 동네 두바퀴 걷고 마지막 코스로 그네에 늘어져서 하늘을 보면 북두칠성이 보인다. 네번째 별도 보였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이어폰을 꺼내니까 엄마가 그냥 틀어놔 엄마도 듣게. 아니 엄마 들려줄려고 가지고 나온거야-하고 노래를 재생해서 귀에 꼽아줬다.
그러곤 멀찌감치 가서 나무도 보고 놀이터 의자에 누워서 그냥 눈을 감았다. 밤공기에 세상 모르고 누워있으니 복잡했던 마음이 다 편해졌다. 5분정도 지나고 다시 그네로 갔는데 엄마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도 언젠가 노래 가사 같은 마음을 흘려보냈으리라.
우리는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고, 서로 잘자라고 인사를 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나와 부엌에서 일기를 썼고, 엄마방에선 한참동안 코 훌쩍이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요즘은 분명히 아침이었는데 어느새 밤이다.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5월의 한강, 자전거
약속한 듯이 회색후드에 흘렁한 청바지 입고 만났던 혜지와 나. 혜지집 앞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문이 열리고 강아지가 왕왕-거리는 소리 위로 나갔다올게요-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망한 영화감독 같다거나 드라마 작가같다며 킥킥대고, 같이 아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성산대교를 지나 난지 즈음까지 갔다.
라면에 맥주, 노래에 한숨에. 기분 좋았던 밤의 추억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 속에 그런 장면들이 남아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월스러운 바람이 불고 자전거가 타고싶을 때면 항상 떠오르는 장면들.
베란다에 있는 자전거 언제꺼내지.
시작에서 끝에서 시작
고개 숙이는 꽃.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적어서 보내기.
THE FAVOURITE, 2018
영화 시작 10분 전까지 상영관에 나 뿐이어서 뭔가 좋기도 무섭기도 했지만 시작하니 관객 다섯명.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영화는 랍스터밖에 안봤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번 작품이 가볍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영화를 보고나니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생각보단 무거움) 여왕역의 올리비아콜먼의 압도적인 감정 표현과 레이첼와이즈의 존재감, 엠마스톤의 새로운 이미지와 발음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이 미쳤다. 의상도 공간도 하나하나 너무나 아름다웠다.
전쟁을 둘러싼 이념, 지주들의 밥그릇싸움같은 것들은 흘려흘려 보고 세 여자의 감정선만 따라다녀도 마음이 바빴던 두시간. 거칠 것 없는 욕망도 끝이 있기 마련이고, 그 어떤 사람도 발을 들이면 가속도가 붙어 절대 멈출 수 없다는 깨달음.. 아직도 귀에 맴도는 저음의 삐걱거림이 인상적이었다.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지만 내가 사는 현실에도 얼마든지 있는 일이라 웃펐다. 무튼 올 해 몇 편의 영화를 보게 될 지 모르겠지만 올해의 영화!
1월 첫째주.
머릿속에 가득해도 글로 적지 않는 생각들, 비워내지 않아 뒤죽박죽인 생각들.
반반이 일기장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보여지게 될 거란 가정을 하고 적는 일기라서 그런가. 기대와 설렘을 제외한 감정들은 글 밖의 눈물과 한숨으로 표출되고, 바르고 진취적인 글만이 그 종이에 남았다. 모든 것들이 걱정과 불안이었던 시기를 지나 비교적 안정이라는 것을 되찾았다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와 미궁의 숙제가 기다린다는 사실이 조금은 두렵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생명체. 점점 투박해지는 움직임을 눈과 피부로 느낄 때마다 만감이 교차하는 새 해의 날들이다. 한 생명체로 인하여 나의 모든 것이 멈출 것만 같아 불안해하는 날들을 앞서간 이들의 책으로 달래본다. 깎여나갈 것은 미련없이 놓아버리고 남은 것들을 잘 주워 담자.
백색 도화지가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한 날을 기억한다. 망치면 어쩌지, 평가하는 선생님 마음에 안들면 어쩌지 두려워하던 중학생의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기준을 의식하고 잘 하고 싶은 마음으로 튼튼한 벽을 쌓고 있다.
지금은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도, 평가할 수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잘'해야한다는 압박에 눌리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간혹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까지 생겼고. 그래도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저 내가 만들 방식대로 하면 되겠지
반반이의 처음을 우리가 잘 만들면 되는거겠지?
부모라는 알을 깨고 나온지 십년이 넘었는데도 나갈까말까를 고민하고 있는 나. 무의식적으로 따르거나 맹목적으로,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따르려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가끔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내심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 설렌다.
알 수 없는 미래에 숙제가 더해졌다.
꽤나 괜찮은 B
또다시 까마득한 여름.
그러고보니 올해는 영화를 많이 못본 것 같다. 마음 속에 남은 영화가 몇 편 없어서 조금 아쉬운 한 해인 것 같다. 십일월인데 벌써부터 한 해를 돌아본다.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못하고 지나친 일들을 시도해볼까하는 마음으로 부산스러운 십일월.
준비해야할 것들도 많고 예측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불안함도 크지만 어떻게든 될거라.
가늘고 기다란 향이 연기와 재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먹먹하다.
하얗게 재가 된 부분이 툭 떨어지길 기다린다. 그 때마다 시야에 들어온 물건 하나씩 어쩌다 지금 여기, 함께하고 있나.. 생각한다. 항상 저 소파에 널부러져서 반대편을 바라봤는데 며칠전 반대편에서 바라본 소파를 그렸다.
북유럽문화원에서 중고로 사온 소파. 생각보다 작고, 낡아 싫었었는데 몇 년을 함께하면서 정이 많이 들어버렸다. 매일 우리로 인해 해지고 더 깊이 주름지고 애틋해져버린 친구, 낡고 오래된 것들은 시간내어 바라볼 때 더 좋다.
여름밤 돗자리 차가운 와인한모금 이야기 모기 풀밭 풀냄새 슬리퍼 몽롱한 불빛 꺼진 다리밑 노래 연인 맥주 컵라면 자전거 남색 달리는 불빛 바람 한숨 인사
인체의 신비 그리고 집중력.
강남가는 길은 항상 귀찮았지만 그래도 티켓을 찾고, 에스컬레이터 오를 때 설렘이 늘 좋았다. 어제의 서커폴리스- 반반이와 함께 본 일곱편의 공연.
엇갈림 속의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 곳에 가려고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