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그 플러스펜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누가 먹기라도 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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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누가 답해야 할까?」,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109쪽
—
포스터 디자인: 한경희(일상의실천)
—
이 문장에서 ‘플러스펜’은 권력과 그에 따른 책임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문장은 권력자의 책임 부재에 대한 피권력자의 외침입니다. 펜이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공허한 아우성에 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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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플러스펜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누가 먹기라도 했단 말인가!”
—
배명훈, 「누가 답해야 할까?」,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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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디자인: 한경희(일상의실천)
—
이 문장에서 ‘플러스펜’은 권력과 그에 따른 책임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문장은 권력자의 책임 부재에 대한 피권력자의 외침입니다. 펜이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공허한 아우성에 그치고 있습니다.
“ 구조는 없었다. ”
—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49쪽
—
포스터 디자인: 김경철(일상의실천)
—
전부 거짓말이었다. 구조는 없었다.
문서세단기를 통해 잘려져 나오는 종이처럼 시끄럽고 무의미한 변명들 뿐이었다.
“ 질문 없는 삶, 상상하지 않는 삶, 무감한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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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 가까스로, 인간」,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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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디자인: 김종소리(물질과 비물질)
“당신들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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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디자인: 김어진(일상의실천)
“그러니 우리는 물어야 한다”
—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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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디자인: 이윤호(김가든)
“우리는 우리가 본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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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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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디자인: 서정민(오디너리 피플)
“그대가 바로 그대가 찾고 있는 범인이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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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중 테이레시아스의 대사 (김연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42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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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디자인: 김강인 (김가든)
사진: 박정근, 박수환 (조광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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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범인들은 아직도 다른 범인들 뒤에 숨어 자신의 죄를 숨기고 있다. 책임 질 사람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누군가가 범인이 되어야 했다. 그 범인이 최대한 많은 양의, 최대한 많은 종류의 죄를 짊어지길 모두가 원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질 책임의 무게가 줄어들고, 덜 미안해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누군가가 범인이 되어야만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보일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건에서 떨어져 나온 여러 죄의 조각들을 맞춰가며 몇몇 범인들을 지목하거나 만들어냈고, 그들이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는 것을 보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그 범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아낸 이들 또한 사실 범인이기 때문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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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그날」,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 지성사, 2008, 63쪽
(김행숙, 「질문들」,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25쪽에서 재인용)
—
포스터 디자인: 권준호 (일상의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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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원망하는 사람, 혹은 그것이 단순한 사고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그들 모두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그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광장과 거리에서, 그리고 70m 높이의 굴뚝 위에서 물대포와 무관심에 맞서는 사람들과, 길 맞은편 카페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어 아득하기만 합니다. 모두가 이 사회의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푸념하지만, 그 병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 아픔을 느끼는 이는 여전히 소수입니다.
1인 시위는 한 개인이 사회를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입니다. 반면 포스터를 들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래픽디자이너가 선호하는 작업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1인 시위와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위한 사진 촬영은 같은 표현 방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 행위의 목적 사이의 거리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광장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과 안락한 카페 사이의 온도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2014년 성탄절, 서울 도심의 거리는 분주하고 활기찼습니다. 8개월 전의 참사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 기억 속에서 이미 잊혀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가 병들어 버린 이 사회를 살아내는 최소한의 양식일지도 모릅니다. 그 아픔을 잊지 않는 사람이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병들게 했던 원인의 형체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4. 12. 25. 명동
“모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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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10쪽
—
포스터 디자인: 강진 (오디너리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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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우리의 관심을 끊어지게 만든 말을 통해, 지금 우리의 관심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모두 살았다”라는 문장의 수는 세월호에 탄 승객의 수와 같고, 중간에 비어져 글자의 줄이 끊어져 보이게 하는 공간은 실종자의 수와, 좌우로 흔들린 단어는 사망자의 수와 같습니다. 끊어진 끈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실종자들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48쪽
—
포스터 디자인: 일상의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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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사월의 바다로부터 304명의 목숨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중 아홉명은 여전히 생사의 여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어느덧 반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설명하기 힘든 좌절감을 껴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비정했습니다. 힘없이 스러진 인명을 눈앞에 두고도 지리한 변명과 거짓된 눈물 그리고 말라버린 침묵으로 억누를 수 없는 숱한 좌절감을 외면했습니다. 모두 잊고 경제나 살리자는, 침묵보다 못한 정치깡패들의 발언은 추잡함의 극치였습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유착과 비리, 경찰과 언론 그리고 정부의 무능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민낯 그 자체였습니다. 과거에 멈춰버린 사회를 바라보며, 시간은 단지 육체의 퇴화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루 셀 수 없는 삶들이 수면 아래로 저물어 갈 때, 우리는 함께 절망하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두려움에 가까운 산 자의 슬픔은 매일을 대항해야 할 고통으로 남겨졌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그것이 결코 나의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끝을 헤어릴 수 없는 분향소 앞 조문객의 행렬은, 마치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가슴 아픈 애도의 끈과 같았습니다.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모든 삶의 존엄성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허튼 죽음도, 가벼이 여겨질 목숨도, 돈으로 환산될 운명도 어디에 없음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삶의 무게는 같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스러져 간 인명은, 어쩌면 외면할 수 없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숭고한 모든 삶이 서로 닿아있음을 바로 보며, 이 모든 비극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길 바라봅니다.
삼가 돌아가신 모든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빌며,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이 명백하게 이뤄지기를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