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래. 하기 싫어도 하는 게 공부야.
이렇게 딸에게 말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그맘때 꽤나 공부를 좋아했던 것 같다. 뭐가 됐든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걸 맞히는 재미가 있었고, 그 결과 일정한 보상이 따라오지 않았던가. 설령 처음엔 틀렸다 해도 그걸로 게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으며 재도전 끝에 장벽을 뛰어넘는 것도 성취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말하자면 긍정의 피드백.
또한 굳이 보상이 아니었다 해도 이른바 답이 주어져 있는 세계가 주는 안온함이 좋았으며, 비록 내 스스로 그 경계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 고립계 속에서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이 별로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공부가 재미 없다는, 그래서 그놈의 공부가 영 내키지 않는다는 딸들에게 그것을 강요할 명분이 없다. 나와는 달리 공부가 재미 없다잖은가. 나로부터 나왔으나 엄연히 나와는 다른 존재들에게 처음엔 어리석게도 화가 났었고, 나중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이런 나의 생각은 길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누군가와 다를 바 없다. 그런 말에 내가 낚이지 않았으니 내 유전자를 절반은 가지고 나온 그들이, 하기 싫어도 공부는 해야 하는 것이라는 내 말에 낚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 그리하여 그들이 무탈하게 이 터널을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일로 결론을 내려야 내 맘이 편해지지 않겠나.
근데 그들은 그렇다면 무엇을 재밌어 할까. 자기들끼리만 알고 내겐 알려 주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그들 자신도 아직 모르는 건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알게 되면 나중에라도 내게 알려 줄까.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