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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파스
동전파스는 내 어깨에 붙어야할 것 같다. 나는 오늘도 걸었다.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끊임없이 걸었다. 노트북과 충전기, 카메라, 물, 책 한 권이 든 천가방은 너무 무거웠고, 나는 계속 걸었다. 아침에 커튼을 쳤는데 하늘이 파랬다. 그 순간부터 좋았다. 나는 오늘이 좋은 하루가 될 거라고 예감했다. 맞다, 행복했다. 아침에 나가면 출근하는 분주한 사람들을 마주쳐서 좋다. 걷다가 마가렛 호웰 런던과 메종 키츠네 매장을 발견했다. 어제 찾을 때 그렇게 보이지 않던게 보이다니. 가는 길에 신주쿠 역도, 돈키호테도, 109 빌딩도 봤다. 어릴적 만화책에서만 보던 신주쿠와 하라주쿠 아닌가. 신기했다. 궁금했지만 찾지 않았던 것들을 우연히 마주쳐 나는 걷다 계속 멈췄다. 관광객 답게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첫번째 목적지는 푸글렌 도쿄다. 푸글렌 도쿄에 갔다. 일본은 우유가 맛있어서 그런가 라떼가 다 맛있다. 설탕시럽을 넣지 않았는데도 달콤한 맛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먹었던 커피 중에는 푸글렌 도쿄의 라떼가 가장 맛있었다. 그리고 모노클에서 (서울에서도 봤던) 명함 지갑을 하나 샀다. 사려고 했는데 마침 있어서 다행이었다. 길을 걷다 캐멀백 샌드위치에서 브리치즈 사과,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진짜 맛있었다. 바게트는 바삭함이 적당했다. 입천장이 까질 정도가 아니었다. 스냅랩커피에서 커피도 테이크아웃했다. 나는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지만, 여행지에서 커피 맛을 볼 때는 왠지 라떼를 마셔야하는 이상한 버릇때문에 역시 라떼를 주문했다. 요요기 공원에 앉아 먹었다. 원래 분수대 옆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까마귀가 너무 크고 서울의 비둘기처럼 사람 주변을 어슬렁 거려, 그곳 벤치에 앉았다가는 까마귀 떼의 습격을 받을까 무서웠다. 요요기 공원이 제일 좋았다. 햇살이 좋아서 더 좋았을 것이다. 소풍나온 유치원생 아이들과 웨딩촬영을 나온 무리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일본인 아저씨, 요기를 하는 노란 머리의 외국인 아저씨, 벤치에 앉아 낮잠을 자던 할아버지 등 나는 나무와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일 때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낀다. 그리고 하라주크로 갔다. 복잡했고 사진만 찍고 스쳐지나갔다. 파피에르에서 슈퍼 바인딩 노트를 샀다. 하얀색도, 검정색도 갖고 싶어 둘 다 샀다. 외국에 나왔을 때 나는 아주 조금 과감해 지고, 나는 문구류 욕심이 많다. 그리고 템베아에 갔다. 가방을 계속 손에 들어봤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나왔다. 안 되는 영어와 일본어를 동원해 직원을 귀찮게 했는데, 날씨가 더워서 땀도 뻘뻘 흘리며, 빈 손으로 나오는 게 괜히 미안했다. 마음에 드는 게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타스 야드에서 카레를 먹었다. 스몰사이즈로 주문했는데, 넓은 접시가 아니라 볼에 담겨 나왔다. 카레는 진하고 감칠맛났다. 한 이틀에서 3일 정도 묵히면 저런 맛이 나오는 걸까. 그릇 한 구석에 콕 찍은 카레 소스는 더 진했다. 붉은 색의 무 같은 거랑 함께 먹으니 맛있었다. 나무로 이루어진 내부 분위기도 좋다. 역시 나는 나무와 숲이 좋다. 샌드위치와 카레 사이에 시간이 3시간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래도 먹었다. 먹고 싶었으니까. <언어의 정원>의 배경인 신주쿠 공원이 보고 싶었다. 4시 40분 정도에 도착했는데, 입장이 종료됐다. 해가 져서 그런 것 같다. 초여름에 여행을 해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5시 반만 되도 깜깜하다. 입구에서 사진을 몇방 찍고 이치란 라멘을 먹으러 갔다. 카레를 먹은 지 2시간 정도가 지났을 거다. 이치란 카레를 찾으러 가는 길에 외국인 두 명이 내가 찍고 있던 시계탑을 찍었다. 관광객의 눈으로 보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여행이란 그런 거겠지, 보이지 않는 일상에 틈을 만들고 보는 것. 이치란 라멘은 맛있었다. 국물은 아빠가 끓여주는 등뼈감자탕의 3배 정도의 진함이었다. 차슈는 그냥 그랬고, 얇은 면발에 국물이 잘 베어있어서 면발만 먹어도 맛있었다. 처음 먹어본 일본 라멘. 맛있다. 매콤한 소스를 넣지 않은 게 더 좋았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나는 신주쿠에서 나카메구로까지 걷었다. 중간에 마가렛 호웰의 시계를 샀다. 여권이 없어서 세금을 냈다. 해외에서 큰 돈을 주고 뭔가를 사본 적이 없어서, 여권을 들고다녀야 하는 지 몰랐다. 잃어버릴까 봐 맨날 숙소에 두고 다녔는데. 나는 바보다. 예전부터 사고 싶어서 여러번 봤던 시곈데, 알바 한 돈으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0만원, 나에게 거금의 소비다. 또 열심히 걸어서 8시에 문을 닫는 왈츠에 갔다. 문 앞에서 사진 한 방을 찍었는데, 핸드폰 밧데리가 나갔다. 극적이게도. 시간만 더 있었으면 천천히 음악도 듣고 나왔을텐데. 아쉽다. 굉장히 구석진 곳에 있었는데, 예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나는 진짜 너무 힘들었다. 이때까지가 8시 정도다. 숙소에 돌아와 가방을 놓고, 카드 결제를 많이 했다는 죄책감에 영수증을 확인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어제 갔다 사루타히코인가, 카페에 다시 갔다. 아쉬웠다. 내일이 노동절이라는 일본은 오늘 저녁이 주말 분위기였다. 어제 한산했던 가게들 앞에 줄이 서있는 것을 보고, 여기도 맛집인가 싶었다. 그런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니, 그냥 휴일 전날 이어서 그런 것도 같다. 어제 봤던 멋진 아저씨, 왠지 주인 같은 분이 스탬프 카드를 줬다. 내일 저녁 마지막으로 들려서 도장을 한번 찍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카페에 앉아서 낯선 소음들 사이에서 나는 또 영수증을 정리하고 내일 루트를 짰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세븐일레븐에 들려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키리치즈가 들어간 콘이었는데, 그냥 하겐다즈를 먹을 걸 그랬다. 나는 치즈의 새콤함이 싫다. 그래, 그 아이스크림은 새콤했다. 그치만 다 먹었다. 나는 내일도 많이 걸을 것이고, 지금은 조금 힘들다.
오늘 이상한 꿈을 꿨다. 누군가 내 몸에 들어와있는데, 그 아이를 얼른 뱉으라고 했다. 조금 무서운 꿈이었다. 휴대폰을 하기 위해 충전기와 가까운 곳(원래 자던 것과 반대로)에 있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 꾼 꿈이다. 그때가 새벽 5시 30분 즈음이었다. 악몽이었던 것 같은데 무섭지 않아 이상했다. 다시 잠들었을 때 바닥이 몇번 울렸다. 뭔지 몰랐는데, 그게 지진이란다. 처음 느껴보는 진동이었다. 꽤 컸다. 하지만, 나는 잘 잤다. 그리고 오늘은 좋은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한 게 참 많다. 한 것만 나열했는데도 힘들다. 나는 이제 잘 거다.
아, 타워레코드를 지나다가 ‘방탄소년단 앨범이 잘 있나 구경 해야겠다’ 하고 K-pop 코너가 있는 4층에 갔는데, 남자 애들 3명이 노래를 부르며 춤추고 있어서 신기했다. 신인 아이돌 가수 인 것 같았다.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