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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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4
2019.12.04 夕ごはん
2019.12.04 お昼
@銀座
2019.12.04 朝ごはん
정량
파스타. 그중에서도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먹기로 한다.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은 시간이다. 파스타에 첫걸음마를 떼었던 지난여름에는 요리와 식사를 마치는데 20분 정도가 걸렸다. 숱한 실패와 단련을 거쳐온 요즘은 느긋한 요리와 식사를 하는 데 45분이 걸린다. 귀찮고 번거롭지만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과정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몸에 익는 법이다. 여타의 작업은 그러한 경우에 시간이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요리에서만큼은 그렇지가 않다. 요리를 가르쳐주는 A가 말했다. 정성을 쏟는 만큼 좋은 요리가 나온다고. 정성은 곧 시간이라고. 빠르게 요리를 마치는 사람도 많지만 그것이 자신의 철학이라고. 요리는 자신의 철학을 찾는 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요리는 수학과도 같았다. 정해진 공식이 있고 외우기 어려우며, 여러 번 문제를 풀면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반년동안 겪어본 요리는 앞서 말한 특징과 정반대에 가까운 성질의 것이라고 체감한다. 시간에서도, 양에서도, 맛에서도 정해진 게 없다. 즉, 요리에는 정량이 없다.
소금물의 농도를 바닷물 정도로 잡고 면을 삶는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주 약한 불로 마늘이 구워지고 있다. 정확히는 엑스트라 버진에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우리는 일이다. 표면이 익혀져 골든 브라운 빛이 돌면 불을 끄고 열심히 익고 있는 면을 기다린다. 우리 집 가스레인지 화력으로는 4분이 걸린다. 기다림을 이겨낸 끝에 딱딱함이 조금 풀어진 면을 팬 위에 볶고, 면수를 끌어와 면을 젓는다. 면에서 미처 다 나오지 못했던 전분이 마늘과 오일, 면과 치즈를 끈끈하게 엮어준다. 면 중심의 딱딱함이 수그러질 즈음 생치즈를 그라인더로 갈아 완성된 파스타 위에 뿌려주고 곧바로 설거지를 마친다. 기분 좋은 식사의 끝에 귀찮음이 자리하는 것이 싫어서다. 마늘의 개수와 오일의 양, 소금의 정도는 그날의 느낌에 의존한다. 단순한 즉흥이 아니라 이전의 파스타를 곰곰이 떠올리는 과정이다. 그때 넣었던 재료의 비율과 부족하다고 느꼈던 일련의 결과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전을 곰곰이 떠올리려면 지금 이 순간 역시도 꼼꼼히 기억해 두어야만 한다. 이전의 실패는 그래서 소중하고, 지금과 앞으로의 파스타는 그런 의미로 사랑스럽다.
마늘 향을 맡은 치치가 금세 옆자리에 앉아 고개를 내민다. 마늘을 먹어본 적이 없을 텐데. 이게 음식의 향인 줄은 어떻게 아는 걸까. 어쩌면 저런 걸 왜 먹는지가 의아해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치치와 나는 서로의 의문을 가진 채 양껏 식사를 마친다. 금색 빛 마늘을 바삭하게 오물거리다 보면 삶과 요리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삶에는 늘 실수가 있다. 여태까지의 실수를 떠올려 본다.
너무 부끄러워 가슴 깊숙이 묻어둔 실수와 언제 탄로 날지 모르는 불안한 실수,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던 실수가 스친다. 그런가 하면 지친 나를 더욱 단단하게 단련시켜 주었던 실수 또한 있었다. 그 모든 실수는 한 데 엮일 수 없으면서도 ‘실수’라는 단어 하나에 얼기설기 설켜있다. 단어가 주는 불쾌와 불안을 굳게 모아 느리게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여러 번의 45분이 그 연습을 조금씩 더 쉽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여태껏 정량이 있는 것처럼 삶을 대했다. 정해진 순서와 마음의 양으로 공식을 만들고 정석에 이르지 못하면 또 다른 공식을 만들었다. 이제는 나의 모든 실수와 실패를 사랑하기로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역시나 시간을 정하는 일이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과 기간을 상정해 두었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우러르는 금색 빛이 아닌, 아직은 모르는 어떤 빛을 찾아서. 아주 긴 시간과 실패를 당당하고 단단하게 직면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