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몇 해를 더 살아온 형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다. 예의를 지킨다는 개념보다는 반말로 인해 넘기게 되는 선들이 무척이나 거슬린다는 이유에서다. 넘어간 선을 되돌리려 노력하는 에너지가 버겁고, 좋았던 만남 이후에도 사소한 부분에 꽤 오랫동안 신경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은 늘 달갑지가 못하다.
우리는 2015년의 한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알게 된 사이다. 군대를 갓 전역한 그와 나는 좀처럼 친해질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군대 생활 때문인지는 몰라도 따분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첫인상이 선입견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매우 짧은 나로서는 욱에게 흥미를 가질 이유와 배려가 좀처럼 없었다.
멀리서 지켜보게 될 줄만 알았던 욱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삶에 스며들어 있다. 극장 일을 같이하는 5년 동안 서로의 굴곡을 자주 목격했기에 그렇다. 이제는 그 굴곡의 그래프를 서로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욱에 대한 내 느낌을 정의하는 것은 아직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열심히 고민한 끝에 내린 판단은, 표정으로 속이 다 드러날 만큼 순수하지만 그것만으로 판단하기엔 훨씬 깊은 구석이 있는. 이를테면 거대한 빙산이 작게 드러날 정도의 큰 심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쉬운 만큼 회복이 어려운 법이다. 2년 전 어느 저녁 욱에게 했던 말실수는 여전히 후회스럽다. 그 때를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워지는 대화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상기한다.
“형. 버스 기사들이 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손님들을 막 내려주곤 하잖아요. 정작 자기들은 손님들이 정류장을 조금만 벗어나서 탑승 하려고만 하면 인상을 찌푸리죠. 진짜 이해가 안 가요.”
공감을 바랐던 말에 무미건조한 반응이 나오면 과장부터 하려고 하는 버릇이 있었던 때였다. 아주 작은 접촉 사고에 택시 기사님이 드러눕는 바람에 몇 십만원의 위로금을 물어준 일이 있었던 나의 과장은 더욱 심해졌다.
계절이 바뀌고 나서야 욱의 아버지가 택시 운전을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끄러움과 후회로 가득찬 몇 달은 고통스럽게 흘러갔다. 욱은 한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나를 대하는 행동과 말투에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욱이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미웠다. 사과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가. 욱보다 나이가 많은 다른 형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다음부터 실수하지 않으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가벼운 답이었지만 그 해답을 따르며 굳은 다짐을 하는 것으로 감히 사과를 대신하기로 했다.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말도 누군가에게 어떠한 이유로든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내 생각과 경험은 티끌이고 남의 감정 또한 나의 기분처럼 소중하다고. 말을 내뱉기 전에 생각하는 습관이 늘 있었지만 중요한 필터 몇 개가 추가된 이후의 삶을 보냈다.
최근의 가장 낯선 일은 욱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한 형들이 꽤 있지만 유독 욱에게만 그렇게 한다. 선을 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다가 욱에게 문득 고마운 감정을 느낀다. 편하게 대해도, 실수를 해도 불편하지 않게 노력해주는 그의 심해가 따뜻하게 느껴져 또 하나의 다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일만큼 남의 실수에도 관대해질 수 있는 관용을 배우기로 한다. 욱이 1년 전에 겪었던 나의 스물일곱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극장의 터줏대감이 된 욱과 나는 1월의 어느 목요일에도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집 방향이 같은 우리는 그날의 술자리 후기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가십을 말하며 보폭을 맞췄다. 욱의 집은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린다. 조금 더 먼 거리에 살고 있는 나는 자전거를 타야만 했다. 택시를 타는 방법도 있지만 느린 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학자금 대출 이자를 생각해 그날도 무인 공용자전거를 빌렸다. 날이 춥고 일까지 마친 터라 힘들게 같이 걸을 자신이 없노라고 양해를 구한 뒤였다. 작별 인사를 마치고 자전거 안장 높이를 높였다. 어느새 욱은 혼자서 걷고 있었다. 괜스레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어김없이 에어팟을 꼈다. 노이즈 캔슬링 모드를 키면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델이었다. 페달을 세게 밟아 멀어진 욱을 손쉽게 지나쳤다. 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오른쪽 뒤에서 들렸다.
“――가!” (아마도 조심히 가! 였을 것이다.)
얼마 못 가 뒤를 돌아보니 왠지 모르게 열심히 뛰고 있는 욱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나를 따라 뛰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나를 따라잡아 본다고 장난을 쳤을 수도, 날이 추우니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 형을 한참이나 뒤에 둔 채 허벅지에 힘을 주는데 불현듯 지금 이 순간이 꽤 좋았던 순간으로 기억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힘껏 뛰다가 금세 지쳐서 느리게 걷는 욱의 모습이 멀어지는 만큼 선명하게 뇌리에 남았다. 시큰거리는 눈은 술 때문이거나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페달을 더욱 세게 밟았다. 전문가들이 극찬하던 에어팟은 자전거를 탈 때의 바람 소리 마저도 묵음으로 상쇄시키고 있었다. 묵음 속에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소라였다. 차가 한 대도 없는 새벽 도로에 제법 잘 어울리는 무게감이 얹어졌다. 집에 도착했을 즈음엔 빨갛게 얼어버린 얼굴에 온기 있는 숨김이 닿아 약간의 아려움이 번지고 있었다. 한 곡 반복을 해둔 노래는 시간 마저도 반복 시킬 수 있다는 듯 무심하게 귓 속을 채우기만 했다.
사랑이 그대 마음에
차지않을 땐 속상해 하지 말아요
미움이 그댈 화나게 해도
짜증내지 마세요
사랑은 언제나 그 곳에
우리가 가야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