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4 夕ごは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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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4 夕ごはん
2020.01.24 またおやつ
2020.01.24 おやつ
2020.01.24 厄払い(夫の)
2020.01.24
2020.01.24 お昼
@恵比寿
2020.01.24 朝ごはん
오르막길
일전의 글에서 동생이 ‘람보르기니 아이스 볼트’를 피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보다 네 살이 어린 그녀는 근래에 들어 다른 담배를 피우고 있는 듯하다. 주변 사람들의 담배 이름을 기억하는 버릇을 가진 내가 동생의 바뀐 담배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은, 몇 달 전 그녀가 독립 선언을 하고 나의 엄마 명옥이 거주하는 인천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동생을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담배 이름을 빌려 기니라고 칭하겠다.
혼자 살아보겠다고 당차게 아버지의 집을 나갔던 기니였다.
기니의 다짐과 변명은 생각보다 여러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 그동안 가족에게 시간을 많이 쓰지 못했다며 노력을 쏟기 시작한 아버지 훈에게도, 그 노력에 힘이 되고 싶다던 나의 새엄마 미정에게도.
기니는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 밀린 월세와 관리비는 고스란히 명옥의 몫이 되었다. 일을 하지 않았는지 못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12월의 인천에서, 내 눈앞에 앉아있는 명옥과 기니 사이에서 벌어졌다. 어느 쪽의 말이 더 합리적인지를 따지던 머릿속이 생경하게 하얘졌다. 나에게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여성 두 명이 저렇게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있는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둘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꼬여있는 듯했던 실타래는 사실은 어딘가부터 묶여있는 상태였다. 고작 벽 하나를 넘기면 아무도 듣지 못할 그 대화가 한 편의 호기롭던 추억으로만 남겨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허무하게 들었다.
애초에 명옥은 독립 자금 중 보증금을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세 가지를 말했다.
월세는 자신의 힘으로 낼 것. 거기에 5만 원을 더해 본인 명의의 적금을 들 것.
평소에 읽지 않는 엄마의 카톡을 이번만큼은 잘 읽어줄 것.
위의 조건을 잘 지키면 엄마 역시 딸의 공간과 사생활을 동의 없이 침해하지 않음.
혼자 사는 데 필요한 것은 기니의 당찬 다짐보다도 꽤나 많은 명목의 돈이었다. 짐을 옮기는 용달비부터 월세와 관리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용품들, 그것들을 사서 가져다주고 설치해주는 훈의 노동력까지. 명옥은 편의점 밤샘 근무를 마치고 도시락을 싸 기니의 집 앞에 두는 일을 매일 했다. 기니는 그걸 먹고 출근을 잘했다며 매일 거짓말을 했다. 주변 사람들의 진심을 가볍게 여기는 기니가 믿기지 않을 만큼 미웠다. 한 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모의 삶보다는 나의 삶이 우선이라고 강조하던 철학가의 강연을 수백 시간 들었어도 얻지 못했던 용기였기 때문이다.
기니는 그간 불편하다고 말해오던 훈과 미정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명옥은 늘 그래왔듯 현명하고 힘 있는 결정을 내려 강제로 방을 뺐다. 명옥을 집으로 돌려보낸 후에 기니를 마주하고 앉았다. 내일이면 타인의 집이 될 차가운 마룻바닥 위에서였다. 돌이킬 수 없는 큰 강을 건넌 거라고 말했다. 강을 건널 거면 조금 더 가서 아예 다른 섬에 정박하라고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물살을 거슬러 힘겹게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기니의 대답은 없었다.
조금 울었던 기니의 눈에서 명확함보다는 모호함이 흘렀다. 마음속 빗장은 무언가에 의해 굳게 닫혀있었다. 사람들은 나와 기니의 관계를 부럽다고 말했다. 친구 같은 남매, 싸우지 않는 남매. 그 타이틀이 좋아서 기니에게 더욱 그렇게 대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기니가 살아온 삶의 기간과 일치하는 시간이었다. 불현듯 그 시간 동안 남들이 하는 많은 것을 하지 않았다는 소회가 스쳤다. 남매는 친구 같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싸울 줄 아는 남매가 더욱 건강한 남매가 아닐까.
일찌감치 용달을 불러둔 훈과 나는 짐 정리를 마치고 명옥을 만났다. 둘의 이혼 이후로 10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기니가 인천에서 독립하게 됐던 것은 명옥이 권유한 일이었다. 명옥과 그녀의 새 남편 대리님이 거주하는 집 근처이기에 안심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명옥은 그간 훈이 해왔던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니를 대했다. 10년 동안 훈의 방식으로 자라온 기니였으니 어머니인 명옥에게도 그렇게 할 권리가 있었다. 훈과 명옥은 방식이 달랐을지언정 결과적으로 실패하고야 말았다는 공감 앞에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날의 커피 값은 누가 내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나 역시 무언가에 대한 허탈함이 있었다.
한 사람이 먹기에 많은 양을 저렴하게 담아주는 메가 커피의 한복판에서 셋은 10년 만의 대화를 했다. 샷과 물이 많이 들어간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는 것만큼이나 억지스럽고 힘겨운 대화가 이어졌다. 명옥과 훈은 서로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조언을 나누는 과정에서는 어김없이 의견 차이를 보였으나 차이가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로의 삶을 모르는 만큼 존중해야 할 타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옆 테이블에는 중학생 즈음이 되어 보이는 남학생과 그의 부모가 앉아있었다. 가족 앞에 놓인 디저트는 허니브레드였다. 부모는 아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대화의 주제로 삼았다. 사춘기가 왔을 아들의 표정에서 귀여운 반항심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입 끝에 생크림을 묻히고 빵을 먹는 사춘기 특유의 이중성이 분위기에 맞지 않게 흐뭇한 표정을 짓게 했다. 그가 간간이 보이는 웃음은 단순히 생크림이 부드러워서만은 아니겠다는 생각과 함께 카페에 가면 꼭 허니브레드를 시켜달라고 말하던 청소년 시절 기니의 앳된 목소리가 겹쳤다.
훈이 피치 못할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하루 전.
기니의 독립을 멈추게 된 그 날의 나와 명옥은 대리님과 함께 인천의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근처 삼계탕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난 뒤였다. 밤새 편의점 일을 마치고 나서도 이 모든 풍파를 겪어내야 했던 명옥은 막걸리 한 병을 힘겹게 주문했다. 명옥과 술을 같이 할 수 없던 나의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젊었을 때의 명옥은 술을 곧잘 마셨다. 독하고 쓴 양주를 마셔도 좀처럼 취하는 일이 없었는데, 술을 같이 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는 막걸리 한 병에도 비틀거리는 걸음을 걷는다.
요즘 들어 명옥은 나와 걸을 때면 문득 손을 잡는다. 팔짱을 끼는 날도 있다. 여태까지는 없던 일이라 조금 당황하지만, 용기를 냈을 명옥을 위해 더 가까이 붙어 걸음을 함께한다. 그날 역시 비틀거리는 명옥을 꼭 붙잡고 있었다. 불편한 정적을 깰 말을 찾다가 한마디를 뱉었다. 나는 잘살게. 부모를 못 챙기는 한이 있더라도 나 하나만큼은 걱정시키지 않고 잘살아 볼게.
대답이 없는 명옥의 옆에서 하늘을 봤는데 눈인지 비인지 모를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눈에는 어떤 의성어를 써야 하는지 고민했다. 펑펑, 소복히.. 같은 단어를 떠올렸지만 애초에 눈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질 않는가. 옷에 닿은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모습이 그저 천천히만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앞에서 걷고 있는 대리님도 하늘을 보더니 담배를 꺼내 피웠다. 비흡연자인 나에게도 담배 냄새가 달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눈발에 겹쳐지는 연기가 좋아서 그날만큼은 힘껏 간접흡연을 했다. 수명이 몇 분 단축 된다고 하더라도 감수할 만큼의 깊은 호흡이었다.
다음날 배치된 용달 아저씨는 서툰 글씨로 원당 어딘가의 주소를 적어두고는 3만 원의 추가비용을 요구했다. 애초에 말했던 가구보다 몇 개의 품목이 더 있다는 명목이었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과 오천 원 짜리 두 장을 건네준 훈의 자동차 조수석에서 언젠가 선곡해둔 노래 리스트를 틀었다. 정적 속에서 우연히 재생된 노래는 정인의 오르막길이었다.
누구지?
정인 이에요.
훈은 말없이 볼륨을 키웠다. 이후에 이어진 몇 곡의 노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미하게 들렸다. 고속도로가 막히기 시작할 즈음에는 침을 흘릴 정도로 깊은 졸음을 가졌다.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거리가 11만 킬로미터를 이제 막 넘던 시점이었다. 높게 떠올랐던 해는 어느덧 저녁을 향해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