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에게 - 2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해줄까 하다가 작년 생일 편지를 읽어봤어. 편지의 말미에는 ‘어찌 됐건 시간은 참 빨라서 벌써 우리가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야’ 라는 말이 있더라. 돌이켜보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네. 공익을 끝내고, 학교를 다녀오고, 재회를 하고, cgv를 다니고..
서른에 가까워질 수록 시간이 빠르다는 말은 결국, 동일한 시간 내에 많은 일이 정신없이 쏟아진다는 말과 같다는 걸 깨닫는 중이야. 이런 생각들을 언제든지 어색하지 않게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너여서 감사해. 앞으로도 무수히 겪어야 할 여름의 한 편에 너의 존재가 꾸준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선물해주는 책은 시집이야. 사실 서점에 가면 시집보다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사게 되잖아. 그래서 조금 특별하게 시집을 선물해주고 싶었어. 몇 편의 시가 워낙 좋아서 내 돈으로 처음 산 시집이기도 해. 책 중간의 44페이지는 일부러 접어뒀어. 언젠가 너에게 보내준 적이 있는 ‘사람이 온다’라는 시가 나오는 부분이야. 시는 한 번에 툭툭 쉽게 읽기보다는, 하루에 한 편을 읽더라도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어 작가의 함축된 생각을 찾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나는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라는 부분이 무척 좋아서 아직도 이 시집을 읽어. 시의 제목이 ‘사람이 왔다’가 아닌 ‘사람이 온다’라는 점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언젠가 너의 느낌이 어땠는지도 듣고 싶다.
일도, 사업도, 연애도 잘 하고있는 Z야.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허무하게 하루가 끝나는 날도, 생각하고 계획했던 대로 큰일들이 해결되지 않는 날들도 허다하겠지만 자기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누가 뭐래도 멋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늘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면접을 못 봐서 울상이었다가 합격 문자를 받고 나한테 자랑했던 날 길거리에서 서로 막 웃었던 거 기억하지? 혹시라도 까먹었다면 매일매일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좋겠어.
사람이 살면서 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기회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기회가 몇 시에 오면 되는지를 말해주면 된대. 우리 둘 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서로 위로하고 힘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자. 길거리에서 막 웃는 날이 훨씬 더 많아질 수 있도록.
2020.07.27
너의 생일이 나흘 지난 아침
구태여 연락하거나 자주 보지 못해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나의 친구 Z에게.
사람이 온다 / 이병률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 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길 한가운데로 쏠리 듯 들어와 있을 때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다가 갑자기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등짝을 훑고 지나가는 지진의 진동
밤길에서 마주치는 눈이 멀 것 같은 빛은 또 어떤가 마치 그 빛이 사람한테서 뿜어 나오는 광채 같다면 때마침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탁자 위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멀쩡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누가 왔나 하고 느끼는 건 누군가가 왔기 때문이다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 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 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잎들을 매단 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는 이 저녁 내 손에 굵은 실을 매어 줄 사람 하나 저 나무 뒤에서 오고있다
실이 끊어질 듯 손목이 끊어질 듯 단단히 실을 묶어줄 사람 위해 이 저녁을 퍼다가 밥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