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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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 독도
간만에 카메라 외출시켜준날
시몬스 테라쓰!
모험을 떠나보자
막바지 꽃놀이
라티 텀블러에 내가 올린거 쭉 보다가
4년전에 쓴 글을 봤는데,
4년전에도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네 ㅎㅎ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고
새로운 거에 항상 도전하면서 살고 싶다 했었던 나인데
그동안 뭘했나 싶긴 하다.
더 늦기 전에
마음먹은 것들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요일 저녁입니다.
다들 화이팅!
냥냥
몽글몽글한 날씨에 커피와 술, 그리고 친구
주말을 잘 보내는데 이만한게 있을까.
※ 주의 ※
이 글은 개인적, 종교적 가치관에 따라 논쟁이 될 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과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개인적 견해를 적은 것이니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이 혹시라도 불편하시다면 읽지 않고 넘어가 주세요.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남긴 말이다. 그는 회의론자로서 모든 것을 끊임없이 의심했지만, 내가 이렇게 의심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나는 여기에 분명히 있다’ 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과연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의식에 관한 여러 과학 연구에 따르면 의식이란 뇌의 전기적 신호에 의해 생겨날 뿐이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이 의식을 만들어낸다고 보는 관점과는 다르다. 연구들에 따르면 뇌에서 전기적 신호가 활발하게 발생할수록 의식이 또렷해진다고 한다. 결국 뇌의 기능이 저하되고, 최종적으로 정지하면 의식도 같이 없어지는 것이다. 뇌에 영향을 주는 약물들에 의해 의식이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 본다면 이는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또한, 내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행위 역시 모두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전기적 신호일 뿐이다. 그러므로 의식은 육체가 기능을 정지함과 동시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한다(의식이 있다)고 해서 내가 존재한다기보다는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지 않을까.
의식의 존재 여부에서 더 나아가, 나의 육체 자체도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해볼 수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물질은 관측되기 전까지는 파동(에너지)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모든 물질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지니는데 양자역학이 미시세계에서만 적용된다고 생각했던 예전과는 달리, 관측되지 않는다면(다른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거시세계의 물질도 양자역학을 따른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즉, 나라는 존재도 관측 전에는 결국 파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상당히 허무하고 공허한 결론이다. 진리를 얻기 위해 우주를 계속 탐구해서 얻은 결론이 결국 우리는 파동이다 라는 사실이라니..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내 삶 자체가 무의미하고 공허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아니, 애초에 나는 예전에도 삶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산다기보단 살아 있으니 산다는 자세에 더 가깝다.
하지만 죽는 것은 두려워했다. 의식의 상태에서 영원한 무의식의 상태로 전환된다는 그 자체가 무서웠다. 그런데 어차피 내가 관측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런 두려움이 조금 해소되었다. 의식이 있고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도 전 우주적인 관점에서는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니까. 결국 죽는다는 것은 물질의 속성에서 원래 존재하던 에너지의 속성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니까.
그렇다고 당장 죽겠다는 말은 아니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단순한 전기 신호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내가 파동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지금 있는 그대로가 좋다. 그저 주어진 하루 하루를 느끼며 살아가야지.
존재의 근원을 따질 때는 한없이 이성적이었다가 삶의 이유를 찾을 때는 한없이 감성적이게 되는 이 아이러니.
그래서 인간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