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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to the people's princess <3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것같아요. 난처하시지 않게 잘 말씀드릴게요."
여자는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듯 남자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리고 다시 1열람실 7번 자리로 돌아와 읽고 있었던 책에 다시 줄을 그었다. 다시 책을 읽고, 다시 동그라미로 표시하고 빈종이에 책의 내용을 정리했다. 과연 이렇게 한다고 머릿속에 남는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할 수 있는게 이것뿐이라는 체념의 마음으로 기계적인 움직임을 계속했다. 책을 읽고, 목적어가 오는 자리에 형광펜을 칠하고, 작년 기출문제에 나왔던 내용에는 별표까지 쳤다. 그리고 다시 빈 공책에 베껴쓰고.
그러다가 문득, 여자는 기시감을 느꼈다. 몇년째 반복해 오는 기계적인 노트정리 말고, 아까전에 그 상황에 대해서. 아까전에 그 남자 어디서인가 본것 같은 얼굴이었다. 여자에게 짓던 난처한 표정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언젠가 여자에게 그 남자는 똑같은 표정을 어디선가 한번 더 지었던 적이 분명히 있는것 같았다.
남자의 난처한 표정이 기시감이라는 느낌으로 여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책을 베껴쓰는 여자의 손은 뇌와 분리되어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머릿속으로는 그간의 기억들을 뒤지고 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에서 봤더라... 그 표정을 좀더 상세하게 하기 위해서 여자는 좀전의 일을 다시 떠올려보기로 했다. 주인아저씨가 싫어서 고집스럽게 다니지 않기로 한 독서실이었다. 시험이 얼마남지 않아 공부할 만한 장소를 찾다가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한달만 쓸거라고 독서실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한달이요? 현금으로 내시면 7만원이에요. 카드로 하시면 7만 5천원이구요..."
데스크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서 남자는 회유와 전도의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여자의 목구멍에는 '카드로, 2개월 할부로 끊어달라'는 말이 아직 장전되던 참이었다. 여자의 말이 발포되기전에 여자는 깨달았다.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남자는 여자가 싫어하는 주인아저씨가 아니라는 걸. 남 좋은일 시키는일 없는 아저씨가 웬일로 알바를 쓰나 하는 생각에 작은 구멍 속에 들어있는 데스크의 남자가 누구인지 들여다 보았다. 어떤 마른 남자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친절한 미소라기보다는 쑥쓰러운 미소를 입에 묻히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 저 카드로 끊을건데.. "
여자는 그 쑥쓰럽고 마른 남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그럼 7만 오천원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카드를 가져간 남자는 카드기계를 작동시키려는것 같았다. 기계음이 몇번 삐빅거렸다.
"아.. 근데, 저 2개월 할부로 해도 되나요?"
남자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듯 했다. 한달 있는 사람이 독서실비를 2개월로 끊는다니. 그러고나서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긴히 이야기 해야겠다는 투로 여자에게
"저기, 여기 잠깐 들어와보실래요?"
하더니 데스크 안쪽으로 여자를 불렀다. 그리고 쑥쓰러운 미소만큼이나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저기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은 경우라서요."
"아.. 그래요? 아 저 사장님 잘 아는 분이에요. 저 고3때부터 알던 분인데.."
여자는 마치 그 쑥스러운 남자가 나름브이아이피고객인 자신을 못 알아보는냥 거드름반 의아함반을 섞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그럼.. 사장님 좋은 분이시니까, 그리고 잘 알던 분이라고 하니까 어쩌면 직접 하면 할인해주시고 그럴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일단 저는 결제 안하고 있다가 사장님 오시면 하시는게... 그형 좋은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남자의 미소가 쑥스러운 것에서 난처한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 알겠어요. 그럼 사장님 오시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여자는 더이상 당신 골치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남자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예전에 앉던 그 자리, 1열람실 7번자리를 등록했다. 오랜만에 왔는데도 행동은 손에 익다. 물통에 물을 채우고, 가방을 서랍에 넣고 교육학 책을 연다. 기자수첩을 열어 오늘 해야할 목표량을 적어놓는다. 그리고 초시계를 맞추고 시작.
지능에서 인성에 대한 파트로 넘어가려는데 열람실 문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기, 잠깐만요.."
남자가 잠깐 보자고 불러낸다. 여자는 독서실비를 내지 않은게 찜찜해서
"네-"
하는 대답과 함께 오른쪽 주머니에 카드를 챙겨가지고 나갔다. 남자는 아까전과 같이 데스크 뒷편에서 여자에게 더할나위 없이 죄송하고 쑥스럽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전에 사장이 할인해 줄지도 모른다는 말씀은 괜히 드린것 같아서요. 저도 잘 모르는데 괜히..."
여자는 말하는 남자 뒤로 보이는 책상을 슬겻쳐다보았다. 두꺼운 한국사강의교재가 펼쳐져 있고 교재 오른쪽으로 색색별 하이테크펜이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다. 교재가 형광펜에 점령당하지 않은 것을 보아, 그리고 색색의 가지런한 하이테크펜으로 보아 이 남자는 조심성있고 꼼꼼한 스타일인갑다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것같아요. 난처하시지 않게 잘 말씀드릴게요."
여자는 앞에있는 남자가 불쌍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쑥스럽고 난처한 표정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안심하라는 미소를 도장처럼 꾹 찍어주었다.
조금 전의 상황을 다시 복기하고 나니 여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의 기억에서도 남자는 여전히 난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드디어 기억이 났다. 남자의 난처한 미소를 처음으로 목격했던 그 때를 기억해낸 여자는 끝내 기억해냈다는 사실보다도 사람의 이어짐이 이렇게나 알수없다는 생각에 묘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여자가 대학교 1학년때. 여자는 친구를 기다리려 약속장소인 C대학교 정문 근처 벤치에서 시시껄렁한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멀리서 말끔한 차림의 여자 한명과 남자한명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여자에게 공대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여자는 그 학교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친절한 미소를 띄며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말끔한 여자는 인상이 좋으시다며 사실은 자신이 공부를 하는게 있는데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니 몇마디 드리고 싶다고 했다. 옆에 있는 말끔한 남자도 거들었다. 나이가 몇이냐, 고등학생인줄 알았다, 공부 잘하지 않느냐, 걱정은 없느냐, 걱정없는 사람이 어디있느냐- 는 질문의 폭격을 가했다. 여자는 시간도 있는 터라 이 두사람을 가지고 놀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이 두사람의 소속이 어디든 간에 여자가 믿는 종교를 부정하고 말끔한 그들의 종교에 귀기울이라는 의도로 다가온 것을 알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끔한 여자는 말하는 솜씨가 제법 숙련되어 있었고 말끔한 남자는 아직 견습생인 모양이었다. 여자는 말끔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지금 가지고 계신 믿음을 어떻게 처음 갖게 되신거에요?"
종교에 깊이 귀의하려면 그 사람은 삶의 고난과 어려움을 갖기 마련이라는 여자의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남는동안 다른사람의 인생극장을 좀 들어보자는 의도기도 했다. 여자의 질문에 그 말끔한 남자는 좀체 알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슬픈것 같기도 하고 쑥스러운것 같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한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요...."
말끔한 남자가 묘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하려는 찰나, 말끔한 (그리고 숙련된) 여자가 말을 가로막았다.
"바쁘신데 시간빼앗아서 죄송합니다. 좋은하루 보내세요."
그렇게 쎄-하게 말끔한 여자는 말끔한 남자를 데리고 떠나버렸다. 그때의 그표정, 그 난감하고 알수없던 그 표정의 그남자.
7년 이 지난 오늘, 독서실 데스크에서 만났던 그 남자의 표정이 말끔했던 그 남자의 표정과 동일한 것임을 여자는 몇분의 복기끝에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은 정말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런지 모른다. 그 사람은 이제 그 곳에서 나온것일까, 이제는 낯선 사람 앞에 그 난처한 미소를 더이상 강요당하지 않아도 되는것일까.
이십여일밖에 남지 않은 시험이라고 머리를 때리면서 다시 기계적인 노트필기를 시작하는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