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읍성 답사 다녀왔다. 혼자 하는 국내여행도 꽤 재미있다는것, 자본의 논리가 도시계획의 논리를 앞서갈때 형성되는 경관이 얼마나 소화불량적일것인가에 대한 감상, 여름에 걸을땐 코타로 오시오 음악만큼 청량한것도 없다는것, 옛어른들이 명당으로 정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유난히 바람이 시원했다) 등을 수첩에 적어왔다. —- 촌락지리의 읍성경관 보러 간 답사였는데, 해미읍성은 전형적인 읍성경관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읍성이었다. 보통 읍성경관의 중심에 왕의 위패를 모셔두는 객사가 있는데 반해 , 해미읍성은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이 중심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옆에 수령의 관사인 내아가 있다. 수령의 경관이 모두 완결된 다음에야 동헌의 왼쪽에 객사가 위치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동헌이 객사보다 먼저 건축되지 않았을까 싶다. 건축물의 입지와 배치를 보면 이런 순서를로 지어졌을거라고 다른이들도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왜 동헌을 우선적으로 지었을 것이냐를 생각해 본다면 이곳이 행정적인 기능보다는 군사적인 기능을 담당했기 때문 아닐까싶다. 내포 안에 9개정도의 읍성이 존재하는데, 해미읍성은 군사적 기능을 우선시해서 동헌을 입지시키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참고로 이곳에 충무공 이순신장군도 10개월 정도 근무했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 해미읍성에서 읍성의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건물은 실제 들어선 건물 중에 몇개 되지 않는다. 동서남북의 성문, 동헌, 내아, 객사, 감옥 이정도. 나머지 관광객 대상의 교육용 세트장은 과거 경관을 상상하게 하기에는 방해가 된다. 과거에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과 상당히 다른 경관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고 구경하기에 잘 꾸며놓았다. 나 역시 매우 즐거웠으니까. 특히 화장실이 매우 깨끗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향기도 났다!!) 근처에 있는 서산읍성도 들를까 했는데 난데없이 비가 내리는 바람에 포기했다. 그래도 운좋게 서산 돌아가는 버스 타니까 비가 쏟아져서 비에 젖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