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해야할 것이 많아졌다. a
나의 안부는 둘째치고, 사실 말이 둘째치고이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둘째쳐도 0순위로 들어갈 것이 뻔할 게,
요즘 문뜩, 끊임없이, 계속해서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온다.
매주 당연한게 만났던 교회 꼬마 아이도, 내 신앙심을 곁에서 지켜주던 집사님도, 취업에 지쳐보여 내 꿈에까지 나타나 내 걱정을 산 친구도, 늙어만 가는 할머니까지. 아 참, 겨울만 되면 날 아프게하는 이모부까지가 진짜 끝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지.
그래야 나중에 받을 상처의 농도가 얕을테니까. 그런데, 이제는 굳이 관심의 척도를 일어나지도 않을 무책임한 미래의 결과에 던지고 싶지 않아졌다. 어쩔 수 없이 계속 생각나고, 안타깝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 교회만 가면, 나날이 커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어른들은 “내가 너 갓난아기때부터 봤는데, 언제 이렇게 컸어? 기억 안나지?” 라는 멘트를 무책임하게 던져댔다. 인간은 어느 순간까지 당시에 했던 생각을 기억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때도 성격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인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진짜 날 많이 보긴 한건가?’ 라는 생각으로 일관하며 창의력 없는 어른들의 말을 지루하게만 느꼈다.
그리고, 뭐 나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어른이 된것이다.
오늘은 a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자 한다. a는, 내가 정말 최고로 지루한 어른이 되고싶다,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많이 봐왔다. a의 누나가 갓난아기였던 시절부터 나는 a의 가족들과 친했고, 특히 a네 아빠와 절친이었을 정도이다. 나에게 선물해준 ‘탈무드 이야기’는 내 인생에 있어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읽고, 또 읽으며 화장실이나 이불 위에서나 늘 나와 함께했다. 그러던 a네 아빠는 어느 새인가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왜 나오지 않느냐며 순진하게 물어봤지만, 한 번도 명확하고 깨끗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대상은 바로 나였다.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는 경로와 루트를 접한 나로서는 어렵지 않게 답을 찾고 스스로 납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너무나 당연하게 a와 a의 누나, 그리고 엄마와 교회에서 만나는 시간은 많아졌다.
내가 아동부의 설교를 맡게됨과 동시에 아동부에 있던 a의 누나는 나의 제자 아닌 제자가 되었다. 교회가 작은 탓에 유아부와 아동부를 나누기란 쉽지 않았고, 초등학교에 입학조차 하지 않은 아이들과 a의 고학년 누나는 같은 예배실에서 예배를 드렸다. 내가 지나온 길을 똑같이 지날 a의 누나. 또래 한 명 없는 교회에서의 시간은 의미도 사랑도 없다. 사춘기는 다가오고, 교회는 별 볼 일 없고, 나의 관심사는 온통 교회 밖에 있는 듯한 시간들의 연속. 그렇게 a의 누나가 그 가정에서는 두 번째로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내가 더 다가가고 싶었다. 그 시간을 겪은 선배로서, 얼마나 공감되지 않는 공동체에 섞여있는 것이 힘든 것인지 아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a의 누나는 이별을 예상 못한 사람처럼 마음의 준비만 수백번 한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a의 아빠에 이어 두 번째로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된것이다. 물론, 내가 중학생이었을때 날 강압적으로 잡아주지 않은 엄마가 없었다면 나도 지금쯤 집에서 유일한 무교인으로 살았을 것이다. a의 누나와 아빠는 단지 강한 의지마저 꺾어버릴 신념이 잡혀있을 것이다.
나는 또 그렇게 a의 누나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해 자문자답하며 a를 바라보았다. a는 설교시간마다 딴 짓하기 일쑤이며 이상한 질문들을 쉽게 일삼던 아이였다. 나는 설교를 할때마다 a의 행동들은 방해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매일 예배가 끝날때면 다음주에는 꼭 장난치지 않고 설교에 집중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새끼손가락들의 만남은 매주 계속됐었다. 그리고는 티 없이 맑은 미소로 그 주에 새로 산 장난감을 자랑하거나 나와 함께 하려고 집에서부터 가져온 색종이와 종이접기책을 들이밀며 작디 작은 이빨들을 보이며 수줍게 웃었다. 생긴 것이라곤 어린 주제에 똘똘이 안경을 쓴 탓에 나보다 종이접기에 더 능할 것 같은 애가 종이접기를 배우고자 집에서 챙겼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져온다. 우리 교회 아동부는 공과공부 시간도 없었으며 예배만 끝나면 아이들에게 지루한 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른들의 예배가 끝날때까지 알아서 놀 거리를 찾아야하며 동갑 한 명 없는 교회에서 애쓰며 시간을 보낸다.
엄마가 말했다. “속상해하지 말고 들어. a가 이제 안 나온대”
전혀 속상하지 않았다. 그저 “왜?”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위에서 말했듯 난 누군가 갑자기 나오지 않으면 자문자답으로 질문을 마쳤다. 왜라는 말은 멍청한 말이었다. 당연한 이유가 있지만,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입에서 나올 뿐 사실은 하나였다. 그랬던 나의 입에서 왜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유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슷하였지만, 그 이후 그들의 상황에 나는 속상하고 화가 났다. 믿음이라는 얄팍하기도 하고, 쓸데없이 굳건하기도 한 것 때문에 아이는 의지 없이 엄마 따라 나서게 된 것이다.
난 꽤나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다. 원래 그렇지 않나, 본디 거센 폭풍이 몰아치기 전야는 고요하다는 것. 내 마음 저 멀리에서 꽤나 큰 폭풍의 언덕이 형성되고 있어서 몰랐나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a의 빈자리를 느꼈고, 또 다시 남겨질 아이들을 바라보며 악순환의 연속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교회에 남아 같이 성탄절을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며, 한 해를 보냈던 이들을 남겨진 채로 보내기만 하는 삶에 대해 회고를 시작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림이 이상하다. 내가 결국 교회에 남아 믿음을 지킬 수 있던 이유는 나의 내적 신앙심의 위대함이 아니라 사소한 주변 사람들의 사랑 덕분이었다. 아동부때부터 열정으로 인천에서 수원까지 오가시며 사랑을 주신 전도사님, 어른 예배의 따분함을 같이 달랬던 언니오빠들, 사소한 것 하나하나 귀엽게 여겨주던 청년부 선생님들, 과분한 사랑과 애정을 매일 주시던 집사님과 권사님까지. 그때는 일주일에 한 번 잠시 스쳐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관심과 사랑이 나를 키웠다. 일종의 강박관념이 생겼다. 나도 누군가에게 내 어릴적 전도사님과 같은 사람이, 언니오빠가, 선생님이 되어야한다라는 관념말이다. 받은 것이 너무 커서 나도 나눠야한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 마음에 6년째 아동부 선생님을 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나는 이 마음이 이타심에서 온 것인지 이기심에서 온 것인지 혼돈하기 시작했다. 이런 자리라도 해야만 나의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고 죄책감이 없어지기에 맡는 자리인지, 정말 교회의 아동부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그들이 조금이나마 더 단단한 믿음을 가진 청년으로 자랄 양분을 제공하기 위해 맡는 자리인지 말이다.
그 이빨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색 똘똘이 안경을 쓴 채, 위풍당당하게 가방 속에서 종이를 꺼내며 나에게 보인 그 선홍빛 잇몸이 보이는 작은 이빨 말이다. 그 이빨 사이에서 나를 향한 정답이 튀어나왔으면 좋겠다. 어떠한 헛소리여도 그렇구나! 하고 수긍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