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혈 남 아 : 旺角卡門, As Tears Go By, 1987>
-갑자기 일어난 모든 것들-
왕가위의 작품은 처음이다. 익히 들어본 <화양연화>, <아비정전>, <중경삼림>을 접해보기도 전에, 그의 온전한 데뷔작부터 입문해보았다. 하지만, 정말 생마초도 이런 마초가 없었다. 영화 내에서의 모든 기,승,전,결이 그의 성격대로 흘러갔다. 왕가위 감독은 배우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기로 유명한데, 그것이 그 배우들만의 스타일과 성격대로 흘러가길 바란다고 하였다. 하지만 무엇하나, 결국 그 예쁜 선물들을 자신의 포장지로 감싸고 자신의 리본으로 완성을 하는걸. 하지만, 왕가위의 스토리 전개방식과는 달리 색감은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홍콩을 보여주었는지 동양적인 색감이 돋보였다. 거친 말투 안에 섬세한 배려심이 돋보이는 한 컷 한컷이었다. 그의 전개방식은 정말이지 일방적인 폭력에 불과했다. 감정선에 우리를 개입시키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공감성이 떨어진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을 첫 데뷔작품이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바빴다.
아화와 소화의 정식적인 데이트나, 연애씬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전 애인을 잊지 못하는 소화가 그 상태에서 아화에게 달려가는 장면은 ‘어?’라고 혼잣말 하기에 충분했다. 정말이지 소화의 원맨쇼는 날 소화 안되게 했다. 단순히 아화라는 여자는 남자들의 의리, 우정, 파들간의 대립구조 속에서 소화의 도피처로밖에 사용이 안된다. 굳이 아화와 마벨을 이 마초들의 영화에 집어넣어서 흐름을 깼어야 속이 소화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만약 이 둘을 통해서 소화의 성격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면 모르겠지만 마벨에게는 화를 내며, 아화에게는 애틋한 남자친구의 면모를 보여주고 결국엔 남자들의 세계에서 의리만을 외치는 소화를 누가 이해할 수 있는고.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화에겐 도피처가 필요했고, 그 도피처는 영화에서 여성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힘들때 찾아간 마벨에겐 낙태 소식을 듣고 격분하고, 두 번째 마벨과의 만남에서는 마벨의 결혼 소식을 듣고 낙담한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강인하고 어떠한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념을 가진 사내지만 마벨의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가슴이 아프고 감정이 변하는 여린 남자이다. 다시 기댈 곳이 없어진 방랑자 소화에게 아화가 생각나고 곧바로 발목을 접지른 소화에게 목발이 되어줄 것만 같은 아화에게 달려간다. 그렇게 둘의 행복한 연애가 지속된다면 왕가위 스타일이 아닐 것이다라는 내 예상은 적중하였고, 그놈의 의리로 인해 다시 소화는 아화를 떠나 창파를 도와주러 가고 당연스럽게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또 당연하게 아화에게 몸을 기대러 간다. 이렇게 소화의 여성의지적인 행동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된다.
이 영화의 흐름은 온전히 소화의 관점에서 흘러 창파의 행동이 이상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중후반부로 흘러갈수록 창파의 관점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창파의 “난 차라리 30분이라도 영웅이고 싶어!”라는 말은 그동안의 창파가 지니고 왔던 분출할 수 없는 활화산과 같은 마음을 보여준다. 그의 광기와 흥분의 이유는 그렇게 집약적으로 응축되어 있던 폭발적인 욕망이었던 것이다. 물꼬를 틀어줬으면 미친듯이 달려나갔겠지만 그러한 것들을 자제 시킨 것은 물론 소화였다. 잘한 행동이지만 결국엔 이것이 이 둘을 죽음으로 몰아냈다. 그리고 아화는, 영화에서 그렇듯이, 마지막까지 수단으로밖에 사용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본 홍콩판은 소화의 죽음으로 나쁘지 않은 엔딩을 보여주며, 홍콩식 엔딩을 보여주며 마무리 한다. 하지만 내가 본 대만판 엔딩은 고구마 냄새가 물씬 나는 엔딩이었다. 소화를 죽음으로 몰아내지 않고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된 바보로 설정하며, 끝-까지 아화를 소화가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설정해 과일을 먹여주는 씬으로 마무리 된다. 영화에는 남자영화, 여자영화 라는 것이 없다고 본다.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고, 더욱 없도록 노력해야 하는것이 영화관계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스타일의 영화들을 만들고 싶은 감독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조심스러운 터치가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렇게 마벨과 장만옥을 이런식으로 소비하는 소비자인 왕가위는 차라리 강아지나 고양이로 설정했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었고, 오히려 소화의 여린 구석과 의지적인 면모를 더욱 강하게 보여줬을 것이다. 남자들의 격투씬과, 의리가 대두되는 장면처럼. 1시간 39분동안 너무나 당황스러운 전개들이 이어졌지만, 동영상 시청시 자주하는 skip과 같은 기능을 왕가위식으로 보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지금까지 <열 혈 skip> 평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