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겁이 많았다. 5살인가 7살 때였나. 정확하지 않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것 같다. 누나랑 함께 동네 아래쪽에 있는 어느 소품샵 앞에 비치해 둔 크리스마스 엽서를 보았다. 왜,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설레지 않나. 모든게 예뻤고 신기했다. 아무튼 엽서가 신기해서 구경하고 있는데 그 곳 사장이 나와서 우리에게 다짜고짜 호통을 냈다. 무슨 큰 잘못을 한 것 마냥 목소리 큰 아버지처럼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는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누나와 함께 정신 없이 집으로 도망치듯이 왔다.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 앞에서 누나와 동시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서럽게 울었다. 그 때인가부터 나는 멀리 나가는 게 무서웠고 어른(특히 남자)을 포함해서 많은 존재들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다음은 이상한 두려움에서 나온 회피 성향에 관한 이야기.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중학교 입학을 머지 않게 두던 어느 계절이었다. 남학생과 여학생들은 서로 앙숙같이 굴다가도 서로 좋아하는 사람을 하나씩은 두었을 것이다. 어느 날은 어색하다가도 때로는 함께 무리지어 잘 돌아다니고 그랬던 것 같다.
수업시간이었다. 평소처럼 우리반 애들은 수업에 집중할 생각이 없었고 지역 국회의원같이 생겼던 중년의 엄했던 남자 담임에게 걸리지 않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내 자리는 뒤쪽쯤이었다. 놀던 애들끼리 뜬금 없이 서로 마음 속에 두었던 좋아하는 사람을 이야기하자는 말을 했다. 나는 몇년 동안 좋아했던 여자애가 다른 반에 따로 있었는데 그 애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려했다. 그냥 부끄러워서였다.
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대고 놀리듯 웃고 그랬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나였다.
누군가를 대답해야할 것 같은 부담이 가득했다.
당시에 친하게 놀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이쁘장하고 키가 꽤 컸던 걸로 기억한다. 그 여자애는 이전 학년에도 나와 똑같은 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서로 정이 들었던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얼머부리며 그 애 이름을 말해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 애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애들의 반응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의외의 인물 쯤으로 받아들이면서 지나가버렸는데 애들은 안 믿었던 것 같다.
그 후에 언젠가 나를 포함하여 친하게 놀던 네 명이 있었는데(여자 둘 남자 둘) 그 중에 여자애가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고백이었다. 사귀자고 말했다. 나는 그 당시에 알겠다고는 했는데 사실 나는 그게 되게 부담스러웠다. 장난같기도 했고 내 눈에는 예쁘지도 않고 키가 나보다 한참 컸다는 이유로. 그런데 나는 거짓말을 한거다. 이성친구가 생긴다는게 현실감이 없었나. 그런 기분이 이상하고 무서웠는지 계속 피하고 살았었다. 그때도 나는 회피만 하면서 살았다.
왜 갑자기 그 이야기들이 생각나나 싶다. 확실한 것은 성인이 되서도 그런 기질이 남겨진 일들이 여럿 있었다. 그렇게 나는 솔직하지도 못하고 도망만쳤다.
지금은 그런 행동들이 잔병처럼 독으로 남아 나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아니까 그러지 않으려고 하고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덧 누군가를 내가 먼저 책임져야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이 싫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멀리 두고 싶어질 때가 종종있다. 왜 사람은 원래 모습으로 자꾸 돌아가려할까. 더 단단하고 강한 누군가가 내가 흩어지지 않게 꾹 잡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