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야기
초등학교 때였다. 그날은 가창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믿지 못하겠지만 초등학교 시절 나는 다른 사람 앞은커녕 혼자 있을 때도 소리 내서 노래를 부르지 않을 정도로 부끄럼이 많았고, 그렇기에 그날 난 정말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연한 분홍색의 페인트칠이 되어있는 기다란 음악실 의자에 앉아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나는 그 의자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다. 음악실 의자 내지는 교회 의자, 지금 나에게는 ‘신도시 옥상 의자’. 모양은 예쁜데 화장실이라도 한번 갈라치면 아주 고역인 의자. 나는 불안함에 다리를 달달 떨었고,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손까지 저려왔다. 제발 내 앞에서 끊기게 해주세요.. 대체 왜 내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해야 하는 거야? 제발 노래 안 하게 해주세요! 내 기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차례가 왔다. 나는 서른몇 명의 아이들과 무시무시한 음악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해야만 했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선생님이 넌 대체 뭐냐고 소리를 지를 때까지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옆에 앉은 친구가 여기부터 부르면 된다고 조용히 악보 한 귀퉁이를 가리켰고, 그제야 나는 떠듬떠듬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선생님은 ‘잘 하지도 못하는 게 질질 끄냐’고 화를 냈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 뒤로 엄마 앞에서도 노래를 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중학교 시절 노래방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사귀었다. 좁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이라도 친구들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제 조금 떨려도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다. 아직도 가끔은 가창 시험날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한문을 배웠다. 한문 선생님은 나이가 많은 여자였는데, 빨간색 한복을 주로 입었다. 한문 선생님은 애들이 하품을 할 때마다 ‘하품!’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자 쓰기 숙제를 매일 내주고 숙제를 안 해오면 손바닥을 때렸다. 애들은 다 한문 시간을 싫어했다. 나는 도덕 시간도 싫어했다. 중학교 2학년 담임이 도덕 선생님이었다. 비쩍 마르고 새까만 뿔테 안경을 꼈던 도덕 선생님. 어느 날 교실 청소를 하던 중 그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흥분해서 말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맹세코 그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도덕 선생님을 꽤 좋아했다. 나는 참 그가 싫었다. 하필 2학기 첫날 아침, 나에게 친할머니의 부고를 전하는 그가 미워서 괜히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싫어했다.
무엇보다 제일 억울하고 야속한 점은 이걸 다 나만 기억할 거라는 거다. 나만 알고 있을 것이다. 나와 만났던 선생님들은 나를 다 잊었을 거고, 이제 와서 화 내봤자 허공에 주먹질하는 격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자려고 누우면 생각이 나는 걸.. 난 아주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고 어떤 어른들은 나에게 큰 상처를 줬다고.. 하지만 이제는 나도 꽤 닳은 어른이고, 가끔 그 고약한 어른들이 떠오르면 베개를 쾅쾅 내리치며 내일부터는 노래를 더 많이 하고, 그렇게 해야 할 때는 꼭 바른 말을 하고, 하품을 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맘껏 하품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바로 오늘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