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에 보낸 달 중, 시월은 내게 수많은 에피소드로 기억될 것이다.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아파트를 계약했고, 기뻐야 한다는데 어쩐지 자꾸만 마음이 무거웠다.
아마도 내가 점점 한국과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인 것 같다.
새 아파트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서, 열쇠를 받았을 때. 나는 그곳에 가서 오래도록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머릿속으론 이 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더러운 신발 자국이 떠올랐지만, 아무것도 불편하지 않게 느껴졌다. 넓은 창밖으로는 요란한 소음이 부산스럽게 몰려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새 몇마리가 날아와 창틀에 앉았다가, 떠나기를 반복했다.
고향도 아닌 이 곳에 기어코 내 집이 생겼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모든 과정을 정리하기까지, 구질구질하게 엮여있던 인연들이 떠올랐고 지난 베를린에서의 몇년의 시간이 스쳐지나가서 눈물이 났다. 내가 나아가고 있는건지, 멈춰서 있는 건지 헷갈린다. 그래서 눈물이났을 테다.
*슬픈 이야기들이 몰려오면 어쩌겠느냐만은. 술에 취해 말하지도 못할 이야기들을 대상 삼아서 미친사람처럼 화를 내고 다녔다. 그런데 내가 정말 최악인 게 뭐냐면, 나는 분명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분노하며 활개를 쳐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을. 나만 계속해서 망가질 뿐.
요즘에도 계속 술을 마시느냐며, 일주일에 며칠을 취해있냐는 질문을 던지는 M에게 나는 자꾸만 거짓말을 했고 창피함이 몰려와 바쁜 척 전화를 끊었다. M은 내게 문자를 보냈다.
힘들어도 견뎌야한다는 말이 그렇게 슬픈 말인지 처음 알았다. 하루종일 그 텍스트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넘나들었다.
살면서 이렇게나 누군가를 온 힘을 다해 싫어해 본 적이 있을까? 인생의 많은 경험이 있지도 않은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이 자꾸 죄지은 것처럼 불편해서 자꾸만 그 마음을 회피하고 싶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싫은지 생각했을 때, 여러가지 이유중 하나는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매우 잘알고 있다고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오래 봤으니까. 그 사람의 성격과 습관을 아니까. 우리가 정말로 가까웠으니까. 그런 대답으로 그 사람의 행동과 상황을 받아들이려했던 내 잘못도 분명 있었다.
나도 내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데, 내가 뭐라고 그를 안다고 확신을 했을까. 살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전부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내 스스로가 그 사람을 싫어하게끔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정말 싫은데, 사실 나는 가끔 그 사람을 걱정했다. 그 사람을 걱정하는 나를 보고 남들이 나를 한심하게 보며 모두가 입모아서 “나쁜 놈. 걔는 망해도 싸.” 라며 말을 했더랬다.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그 사람의 추락을 고대한 적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망한다면 나는 가슴이 조금 아플 것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을 그 사람은 평생 모를 텐데. 어쩌면 우리가 평생 오해하고 살게 될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떨떠름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를 싫어하지만 그가 잘 살았으면 하는 것. 분명 우리가 좋은 친구인 때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을 한적 있다.
그랬다면 정말 우리가 꿈꿨던 대로 살아갔을까? 그 기억을 조용히 베를린 어딘가에 묻어두기로 했다.
*찰리가 완전히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쌓여 한달이 지났고, 나는 그 마음을 해명하지도 못한 채로 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체감했다.
그가 보고싶었다. 만약 그를 다시 본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화를 내야할까 아니면 그를 기다렸다고 말해야하는 걸까. 그는 돌아오지 않을텐데. 이런 고민들이 의미가 있나? 복잡했다.
그리곤 한달만에 대뜸 찾아온 그를 마주한 나는
쉽게 울지도, 화도 내지 못하고 그저 목석 처럼 서있었다. 그가 미안하다며 나를 안았지만 나는 그를 안을 수 없었다. 내안에 그를 향한 아무런 힘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미스터리한 남자를 좋아했다니. 그를 좋아하면 좋아할 수록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를 계속해서 찾고있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말이 와닿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에 대해 권태를 느꼈다. 그에게 대충 알겠다고 얼버무리며 나는 마음으로 또 한번의 실패를 겪었다.
내 연애는 늘 이런식으로 흘러갔다. 미스터리하거나 비정상이거나.
우리가 같은 도시에서 엇갈렸다고 생각하니 단순히 그와 내 이야기만이 아닌, 이 도시의 모든 사람이 너무 쉽고 간단하게 내 곁에서 새어나갈 것만 같다는 감정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무책임 하게 떠나기 바쁘니까. 남겨진 사람은 울지도 화내지도 못한다.
*한사람이 죽었다. 그 사람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내 한국 번호가 정지되어서 내게 직접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건 아마도 12년도 더 된 기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신문과 바둑판 따위가 널려있는 방. 담배 냄새가 자욱하게 베어버린 뿌연 그 방은 항상 추웠다. 얇고 정갈하지 않은 목소리와 나의 뺨을 후려 치던 투박한 손아귀의 충격도 기억이 난다.
어느날 그가 쓰러진 이후에 뇌졸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어기능을 상실했고, 한쪽 눈을 찡그리고 지낸다고. 그런 그에게 내 이름을 말하면 그는 알수 없는 의성어들을 내 뱉었다고.
그에게는 어릴 적 동네에서 제일가는 수재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살던 지역에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학생들만 가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었다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어릴적엔 모두가 그 사람 처럼은 되지 말라는 말을했다. 어린 나는 무엇이 그를 망쳤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가 안타까웠다. 그도 분명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나의 이름을 듣고 내 뱉던 음성은 어쩌면 후회와 미련이었지 않았을까. 그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으니까.
그와 나는 가깝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엮여있다.
그 기나 긴 두려움이 하루 종일 내 마음을 들 쑤셨다.
나는 조용히 더이상 그가 없는 세상에서 그를 기렸다.
*오랜 침묵을 깨고 H가 메세지를 보냈을 때, 청승맞게도 눈물이 터져나왔다. 계속해서 내가 언젠가는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불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답장을 하려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를 쓰며 맞는 말만 하려하는 내가 별로이게 느껴졌고, 그녀에게 내 과거를 설명하는 게 괴로웠다. 결국 그 끝엔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이야길 남겨두고 나는 다시 H를 한번 더 믿어보기로 결심했을지 모른다. 나는 그녀를 믿고싶었던 마음만은 진심이니까.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 진다더라. 상처도 아물기 마련이고, 패인 홈도 평평하게 깎이거나 채워지거나. 정상으로 다 돌아올 거라고. 걱정말라는 말을 남겼던 사람을 떠올리는 중이다. 그 말을 믿고 싶었던 시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