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8일
나는 아직도 어려서 모든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해주길 바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러한 '잃음'들에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 수천 번 정도 생각했고,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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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8일
나는 아직도 어려서 모든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해주길 바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러한 '잃음'들에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 수천 번 정도 생각했고,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다.
2017년 1월 29일
나는 내 친구에게 <과거에 머무르지 말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요.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까닭은 물론 내가 나아갈 이유를 아직 찾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과거에서 나오는 방법을 아직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를 없애려 노력하던 시절의 나는 너의 열여덟에 나라는 조각이 꼭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지만 오늘 처음으로 그 시절의 나를 원망했어요. 나는 아직도 너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네가 만든 작은 일렁임이 나한테는 해일로 다가온다는 거예요. 나는 그것에 잇따라 흔들리고 침몰해요. 해일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쩍부쩍 다가오는 파도를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맞아요. 침몰하게 돼도 ‘아, 잠겼구나’라는 탄식을 끝으로 눈을 감아요. 어쩌면 나는 수면이 존재한다는 것마저도 망각한 게 아닐까 싶어요.
탈피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과 열등감에서 기인하는 정말 치기 어린 미움들이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나는 나대로 만족하고 싶고 그냥 물 흐르듯 살고 싶은데 왜 그게 안 될까. 나는 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 사는지, 정말 수백 번도 더 했던 생각인데 오늘 또 한 번 더 생각했다. 나는 대체 뭘 위해서? 뭘 하기 위해? 뭘 가지려고? 미래에 대체 어떻게 살고 싶길래 나는 지금 내 곁을 지나치는 수많은 기회들과 경험들과 추억을 자의적으로 다 거절하는 걸까. 이게 그만큼 가치 있는 짓일까? 미래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사는데 미래에는 그걸 더 후회할 것만 같아. 이러면 어떻게 해야 돼. 그냥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마음이 하라고 하는 대로? 근데 내 마음이 '미래에 후회하지 않을 행동을 하라'고 시키면 어떻게 해. 해답이 없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자문한다. 정말 인간적인 감정들 혹은 대인관계나 주변 것들에 임하는 자세가 점점 결여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처음 사람을 사귀고 처음 대인관계에 임하는 사람마냥 부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응해야만 하는 것들이 점점 더 생소해지고 있다.
2017년 3월 21일
모든 대인관계에 초연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자기 얘기를 너무 많이 하는 사람도 무섭고, 자신을 숨기기만 하는 사람도 무섭다. 물론 내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숨기는 게 별로 없는 편이라 생각하는데 글쎄. 딱히 그렇지마는 않을 수도. 누군가가 내게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아도 아무렇지 않고 싶고, 나를 향한 누군가의 태도가 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껴도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소외된 것 같아도 상처받고 싶지 않고, 친했던 관계가 일방적으로 변해가는 걸 살갗으로 느껴도 덤덤하게 반응하고 싶다. 뼛속까지 혼자여도 아무렇지 않고 싶다. 시시각각 변하는 것들이 두렵고 또 밉지만 나 또한 변하는 존재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이것도 모순이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뀌지 않을 불변의 사실을 원망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절망적이다.
가끔은 영원한 굴레처럼 지금의 나날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열아홉이고 싶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자주 했다. 매일같이 학교에서 숙제와 시험에 절어 사는 것 물론 괴롭고 좆같지만 나는 그것보다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부대껴야 한다는 사실이 더 괴롭다. 새로운 것에 대한 확신, 나에 대한 확신이 없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가 부쩍부쩍 다가오는 것이 무섭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벌써부터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에게 이건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화를 버럭 냈더니 아무 말도 못하는 게 우스웠다. 현재도 무섭고 미래도 무서우면 나는 언제나 과거에 안주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이런 일상의 굴레에 좀 더 익숙해지고, 무의식적으로 입는 또는 스스로 입히는 상처들에 무뎌지고 싶다. 아무도 내게 상처를 입히려 하는 것 같진 않지만 나는 상처를 받게 된다. 모든 관계들에 초연해지고 싶다. 그저 지나가는 인연들이라 생각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여태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렇겠지.
영원에 매달리지 않고 그걸 바라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다 보면 그제야 비로소 영원할 수 있지 않을까. 진정 갈망하지 않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모든 것이 유한하고 또 변화하는 세상이 두렵다. 나는 아직 그런 변화들에 익숙하지 않다. 누군들 익숙할까. 실재하는 것들이 무로 돌아가고 실존하지 않던 것들이 창조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고, 떠돌고, 변질되고, 부스러지는, 정말 말 그대로 하나의 파편. 빠져나가려 하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도 붙잡으면 안 되고 변화를 막으려 발버둥 쳐봐도 결국 정해져있는 결과에 순응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그래도 우린 영원할 수 있을까?
6월10일
생각이 차고 넘치는 나날의 반복이다. 여러 주제를 동시에 생각한다. 길을 걸으면서, 하교 버스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서, 멍하니 책상에 놓여진 사탕 껍질을 보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 광범위한 주제들에 대한 고찰을 이어간다. 내가 미술을 좋아하는 이유, 그러나 나는 미술을 전공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이유. 내가 음악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이유. 나의 미래.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우리 집이 갑자기 부도가 났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내가 설계해온 나의 인생이 부득이한 현실에 의해 무너졌을 때 내가 자살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건강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미술 선생님에 대해. 내가 아주 좋아하는 나의 정신적 지주 윤하에 대해. 아빠의 희생. 엄마의 후회. 자유로운 성격의 내가 나의 자유만을 고집하다가 얼마나 내 주변인들을 외롭게 했었는지에 대한 자책감.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나의 매 순간들을 다른 매개체를 통해 기록하기 위함이란 것. 1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의 차이점. 허무주의와 낙관주의의 묘한 공통점. 내 여름방학. 11학년 때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현실에 굴복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손에서 잃었을 때 난 그것을 후회 없이 선택할 그릇이 되는지.
미처 철자화되지 못한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추상적인 존재로 둥둥 떠다니고. 얼른 집에 가서 블로그나 노트에다가 생각을 정리해야지-하는 생각마저도 추상적인 존재로 변해버리고.
정말이지 이 거대한 우주에 도망칠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고 나만의 장소는 나만의 장소가 아니다. 감시 카메라가 24시간 우리를 지켜보는 이 감시성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감정들은 기계로부터의 쉼터가 되어야 마땅하건만 우리는 서로를 감시하고 시기하며 모든 언행을 계산한다. 오로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단 한 개도 없다. 다들 이렇게 살고 있으니 나도 그에 맞춰가야 한다는 자기희생적인 사고방식은 버린지 오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시간이 지날 수록 타인의 기대에 나를 더 욱여넣고 있다. 가장 나다워야 할 공간에서마저 나는 내가 될 수 없다.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카메라도, 사람도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의 나는 정말 순결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진실한 자신을 정의할 수도 없는 한 인간에게 과연 남의 태도를 논할 자격이 주어지는가.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세계는, 거미줄 마냥 서로 얽히고 설켜있는 이 세계는, 밖을 볼 수도 없을 만큼 촘촘히 짜여 있어서 숨이 막힌다. 모든 연결 수단을 끊어도 끊어진 것이 아니다. 설령 내가 목숨을 끊어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세계에 아직 존재한다. 나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사람들의 곁에 존재한다. 감사하고도 애달픈 현실이다.
열 일곱의 마지막
일 년이 지나갔고 한 해가 저물었다.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밤이다. 나이가 한 살 많아지는 것, 달력이 2015년이 아닌 2016년을 가리키는 것, 학년이 높아지는 것, 책임이 조금 더 전가되는 것 외에 한 해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일 년은 시간적 단위일 뿐이라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통념일 뿐이라고. 그래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고작 하루 차이지만 우리는 “새해에는-“ 으로 시작하는 약속들을 열거한다. 달리 말하면 그것들은 “내일은-“으로 시작하는, 우리가 절대 지키지 않는 그 약속들과 다를 게 없다. 정말 여느 나날처럼 하찮고 또 하찮은 하루일 뿐인데 왜 그것이 재시작으로 여겨지는 걸까. 이렇게 규탄하는 나마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수고했다.아무도 나를 토닥여주지 않으므로 나는 스스로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기로 한다. 잘 살아남았고, 잘 버텼다. 잘 견뎠다. 잘 참았다. 잘 살았다. 마냥 즐거웠다고는 절대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수고했다. 잘 살아남았다. 언젠가는 탈출하자. 지나친 현실에서 자동으로 거부하게 되는 비현실적인 말들을 누군가는 품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탈출을 고이 쟁여두며 현재에 돌아가기로 한다.
새벽녘의 그 빛을 기억한다.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사물이 보이고, 굳이 불을 끄지 않아도 암순응이 보이던 새벽을 기억한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면 천장에 부딪혀 내게 되돌아오던 중얼거림을 기억한다. 차마 철자화되지 못해 목구멍에서 나오지 못한 생각들을 기억한다. 잡을 것이 없어 마주잡은 두 손바닥에서 전혀 전해지지 않던 온기를 기억한다. 감지 못하여 뜬 눈으로 본 무늬 없는 천장을 기억한다. 내가 내는 소리만이 유일한 존재였던 세계를 기억한다. 내가 내뱉는 나의 이름 석 자만이 나의 증명이었던 순간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