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낸 후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겼다. 나는 너를 잃은 4월이 오는게 두려웠는데 이제야 너를 만난 7월 1일도 못지않게 괴로운 날임을 알게됐다. 너의 생일이었던 일요일 아침에 전날 저녁 사용하고 그대로 싱크대 위에 두었던 컵 따위를 닦다가 울컥하고 울어버렸다. 이게 뭐야
아직도 너가 떠나가던 그 날, 살려고 발버둥 치던 그 시간들이 선명하다. 앞으로 사는 동안 잊을수도 없을것만 같다.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걸 보면 말이지-
Today's Document
TVSTRANGERTHINGS
Sade Olutola

No title available

izzy's playlists!
Noah Kahan

Origami Around

if i look back, i am lost
Stranger Things

pixel skylines

★
The Stonewall Inn
Show & Tell
let's talk about Bridgerton tea, my ask is open
2025 on Tumblr: Trends That Defined the Year
Misplaced Lens Cap
Monterey Bay Aquarium
Mike Driver

No title available

oozey mess

seen from Netherlands
seen from Ecuador
seen from Malaysia
seen from Brazil

seen from France
seen from Mexico
seen from Uruguay
seen from United States
seen from Malaysia

seen from Türkiye

seen from Germany

seen from Italy

seen from France
seen from Spain
seen from Colombia
seen from Türkiye

seen from Türkiye

seen from Indonesia

seen from United States
seen from Australia
@scribbleshn
너를 보낸 후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겼다. 나는 너를 잃은 4월이 오는게 두려웠는데 이제야 너를 만난 7월 1일도 못지않게 괴로운 날임을 알게됐다. 너의 생일이었던 일요일 아침에 전날 저녁 사용하고 그대로 싱크대 위에 두었던 컵 따위를 닦다가 울컥하고 울어버렸다. 이게 뭐야
아직도 너가 떠나가던 그 날, 살려고 발버둥 치던 그 시간들이 선명하다. 앞으로 사는 동안 잊을수도 없을것만 같다.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걸 보면 말이지-
문득 달력을 보니 오늘로 꼭 두달째다. 너를 떠나 보낸것이.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순간 그리고 문득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네 흔적에 흠칫 놀라고 또 한편으로는 반가워 하며 하루를 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남은 세월이 참으로 처연하다 싶다. 그 엄청난 일을 겪고도 웃을 일이 생기고, 아무렇지 않게 욕심을 부리고 식사도 한다는 게 처참하다.
선우야, 누나는 여전히 슬프다. 이 슬픔을 감당하는 방법도 나는 배운적이 없고 여전히 우리의 부모는 피를 토하는 얼굴로 하루를 산다. 그들은 이제 견뎌내는 삶이 아니라 하루 하루 스러지는 삶을 살기로 한 것만 같다. 그 모습을 지켜 본다는 것이 나는 너무 슬프다. 이리 빨리 갈 줄 내가 알았던가. 언젠가 내 부모를 떠나보내고 우리 둘만 남을 세월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었다만, 이런 건 나 정말이지 상상을 해 본적이 없어서 그래서 당황스러웠고 또 정말너무 두려웠다.
지난 목요일 새벽, 나는 선우를 떠나보냈다. 밤 12시가 막 넘어 목요일이 되던 그 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소은아, 선우 방금 떠났어 하고 말을 전해 듣자마자 나는 생전 느껴본 적 없는 슬픔을 마주했다. 그리고 내 동생이 경험한 죽음의 공포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아 한동안은 멍했다.
시간은 정말이지 무심하게도 흘러만 간다. 벌써 5일이나 흘렀고 나는 말로, 글로 슬픔을 천천히 덜어낸다.
스스로에까지 공감할 수 없는 감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하루는 지겹도록 동일하고 슬픔은 묘연하다. 슬픔이라는 건 분명 가슴 한 구석 묵직하게 자리잡고는 목구멍으로 슬며시 울음을 밀어내면서도 ‘쳇, 뭘 그렇게 유난이람’ 하는 또 다른 감정에 사로잡혀서는 그 처절한 마음 마저도 내뱉을 수 없게 만들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미래를 기약하는 마음이 어떨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선우는 매일매일 다급한 어투로 메세지를 보내온다. 빨리 나 수술해야해, 하고. 이미 우리는 그 처절한 현장에서 손을 떼고 안타까이 발만 동동 구른다. 딱히 사실을 말해 줄 용기도 없으면서 어쩐담, 저 살고 싶어 애가 타는 마음을 어쩐담. 나는 눈물을 참는 것 외에 지킬 예의가 없었다.
녀석의 몸은 이미 죽음의 능선을 넘어섰다. 얼굴은 암에 모두 괴사된 채 검게 변했다. 매일 뽑아져 나오는 수치는 참담하다. 그럼에도 이 미친년은 내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지 않을 변명거리를 매일 만들어 낸다. 다른 그 무엇보다 무서워서. 목격자 마저도 몸을 얼게 만드는 죽음이라는 걸 마주하고 선 내 동생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는다. 하기사, 화면 저 너머에 나오는 귀신도 무서워 하는 주제이니 오죽하랴.
지난 주 금요일 선우에 대한 모든 치료가 종료되었음을 전해들었다. 통곡을 해도 모자랄 내 어미는 눈물조차 말랐는지 생각보다 덤덤히 말을 전해왔다. 소은아, 더 많은 고통 주지 말고, 우리 선우 더 힘들게 하지 말고, 우리 보내주자고. 저 어린것이 어미가 안타까워 가지도 못하고 마지막 남은 끈을 악착같은 의지 하나로 붙잡고 있는 모습을 욕심내지 말자고.
다른 말이 떨어지지 않아 그저 울었다. 왜인지 모르게 떠나가는 이가 내가 아니라는게 내 어미에게 서럽고 미안했다. 이역만리 미국땅에 홀로 떨어지 지내는 딸과 역시 그 만큼의 거리에 덩그마니 스러져가는 아들의 마지막을 지키는 어미가 두런두런 그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 했다.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 우리의 울음소리가 밤 공기에 스며 처참하기만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정리하고 준비해야하는지 그런 건 배운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어 막막하다. 다만, 아프고 힘겨운 삶의 끝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선우의 의지만큼은 지지해줄 수 없어 지금 친구들을 백방으로 찾고있다. 되도록, 의식이 남아있을 때 친구들을 찾아 가는길이 외롭지 않게 해 주고 싶은 나와 어미의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다.
선우, 내 동생. 우리만한 현실남매가 없었다. 7살의 나이차가 무색하게도 우리는 처절하게 다퉜다. 나는 꽤 지랄맞은 누이였고 선우는 쇠심줄같은 고집에 요령마저 좋은 얄미운 동생이었다. 다른 집 남매들만큼 싸웠고, 무심했다. 우리는 앞으로 몇 십년을 보게 될 가족이었으니까. 연인은, 남편은, 친구는 그 누구든 돌아서면 남이되어도 가족은 결국은 내가 돌아갈 그 한 자리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무심했다. 류승범처럼 길게 머리를 기르는게 맘에 들지 않아 ‘대갈뻬기 좀 싹 밀었음 좋겠네’ 하는 말의 뒤켠엔 ‘저 녀석은 두상이 고와 민머리가 이뻐’ 가 진심이었다.
죽음에는 몇 가지의 단계가 있다. 사고 혹은 병의 발병 - 병변의 진행 - 위독 - 그리고 결국 안타까운 사망. 유명인의 경우에는 특히나 이 과정이 대중에게 생생히 전달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나름의 이별을 맞이하는 준비를 한다. 이 사람이 설마 떠나려나, 그렇게까지야 되겠는가, 일어나지 않겠는가 사이를 쉼없이 오가며 결국 전해지는 소식에 ‘아이고, 어쩌나’
아마, 위독의 과정만이라도 거쳐 줬더라면 이 이별이 이렇게 허망하지만은 않지 않았을까? 은은한 허브향 같은 이 배우의 날벼락 같은 죽음에 나는 괜스레, 삶과 죽음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실감한다.
인생이 그 얼마나 허무하고 허망한가. 바로 어제까지 숨을 쉬고, 웃고, 행동했던 이가 단 한순간 만에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된다니. 뜬구름 같던 죽음이 순간 현실로 성큼 들어온다. 웃고있는 사진 속 그의 얼굴이 자꾸만 모노톤으로 탈색되어 간다.
부탁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이기적이게도
이봐요, 혹시 가능하다면 가지 않으면 안되요? 아니면, 혹시라도 다시 돌아올 순 없나요?
글을 쓸수가 없어
흘러가는 마음의 가닥을 그 누가 잡을 수 있을까? 마음이라는 게 손에 잡히지 않는 한가닥의 바람이기도, 연기이기도 해서 우린 떠나버린 그 마음을 바람이라고 하고 서운하게 남은 피우다, 라는 동사를 붙여 사용하나보다.
꽃같이 예쁜 여배우와 자유와 여유를 가진 한 영화감독의 사랑, 그리고 그 사이에 얇은 종이짝처럼 끼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가 연일 시끄럽다. 우린 언제나 그렇듯이 남의 이야기에 참 관심이 많고 알 수 없는 그 뒤의 이야기들은 상상의 한계가 닿는 만큼 꾸며낸다. 그 중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다. (또 실제가 상상의 한계를 넘어버릴 땐 환호한다.)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선 자도- 또 이 논란을 이야기 하는 우리도 뭐 하나 더도 덜 할것도 없이 비슷한 처지라는 건 부정하기가 참 힘들다.
아쉬운 것이라면 그 감독의 영화 제목이 지금이 맞지만, 그 때는 그게 맞았다고 해 주었으면 떠나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지 않았을까? 수십년을 살을 맞대고 살았던 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 연민 그리고 남녀의 것을 뛰어넘는 최소한의 인류애적 사랑- 그런걸 보여줄 순 없었을까? 지나가는 타인에게도 남겨진 자의 허망함과 절망의 깊이가 까마득한데 당사자의 자존심은 과연 어디로 가야할까. 타인의 자존심을 가치있게 소중히 여겨줄 수 없는 이의 사랑에 박수를 쳐 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성 있다라던가, 존중을 받고 싶다라던가 하는 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 둘의 욕심으로만 보였다.
애증이라고 하면 아주 딱 맞는 말이었다. 18살 떠나오던 그 순간부터 내 나라 대한민국은 나에게 흐드러지는 벚꽃이었고 찌는 여름의 햇살이었으며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가련했고 또 살을 에는 추위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리적으로도 결코 편치 않은 기록과 위치를 가졌기에- 민초인 나에게 마저도 위태롭고 가련했던 그런 나라였다.
그런 내 나라가, 썩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 걸음을 더 나아가려 한다. 우리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함에도 유전자에 새겨진 선한 마음에 적폐를 매몰차게 도려내지 못 해왔고 민주화를 이룩한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돈 보다도, 권력 보다도 정의가 앞서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옳은 것에 대한 선한 자들의 갈망과 그간 낮은 곳에 유독 엄정해왔던 법의 짜릿한 일치. 이 것이 어제 우리가 내 나라의 만세를 부르짖은 단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정말이지, 이제 꽃 길만 걷자. 내 나라, 대한민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