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시리즈는 어느 날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알게 된 소년 해리 포터가 마법학교 호그와트에 입학하면서 겪는 마법세계에서의 모험 이야기로, 우리 시대에서 모르는 이가 드문 유명한 판타지 소설이다. 해리가 열한살이 될 때까지 그를 키운 이모 내외는 그를 학대했다. 그들은 해리를 ‘정상적’으로 키우고자 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게 했다. 어떻게든 해리를 마법세계와 차단하려는 그들의 시도가 결국 실패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만약 해리가 끝까지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누구도 그에게 호그와트 입학 안내서를 건네주지 않았다면? 그렇더라도 이 모든 이야기들이 시작될 수 있었을까?
계단 및 벽장에 갇혀있던 해리와 같이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무성애자Asexual는 성적 끌림*1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성소수자들이다. 가시화가 부족한 만큼 스스로가 무성애자임을 알지 못하는 무성애자들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디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무성애 인식에 대한 현주소와 가시화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해리를 위해 방 안 가득히 휘날리는 마법 세계로부터의 초대장.’
정체화는 자신이 무엇인지 정의 내렸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동성애자이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다면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정체화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성소수자다. -비록 지금은 재정의 중이지만-나는 스스로를 남녀 양쪽에 성적으로 끌릴 수 있는 양성애자로 여겼다. 뚜렷한 계기는 없었지만 내 정체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아무도 내가 양성애자 혹은 그 외의 것이라고 알려 준 적이 없었지만 나는 자신이 무엇인지 또렷이 알고 있었다. 이성이나 동성에게 끌리거나 사귄 경험이 없었을 때에도 말이다. 인류는 반드시 이성에게만 사랑에 빠지지 않으며 남성과 여성으로만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운 명확한 시점이나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부터 양성애자라는 이름이 내 것임을 알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사춘기를 겪으며 실제로 끌림을 느낀 경험은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정의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대부분의 퀴어*2들은 정체화 직후 큰 갈등을 겪는다. 세상이 끊임없이 퀴어를 부정하고 공격하며 그들의, 아니. 우리의 존엄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퀴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와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을 수 있다.
누군가는 성소수자를 인정하면 대한민국은 에이즈 천국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3 그들은 동성애, 양성애를 찬성하지 않고*4 정체성과 지향성을 고칠 수 있다*5고 주장한다. 종교적 교리*6나 저출산 문제*7를 동성애 배척의 근거로 드는가 하면 동성애자를 싫어하지 않지만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했으면 한다*8는 이들까지 있다. 세상이 아직 퀴어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많은 편견, 차별, 혐오가 산재해 있다. 자신의 모습을 부정당하고, 깎아내려지고, 왜곡당하고, 상처 입는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가 커밍아웃*9과 아웃팅*10에 있어 극도로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이러한 것들을 고민했다. 정체화 자체는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무성애자들은 경우가 조금 다르다. 정체화에서부터 문제를 겪기 때문이다.
한 지인과의 일이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그는 또래나 주변인과 달리 성적 컨텐츠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끌림을 느낀 적 역시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무성애자로 정체화 한 상태가 아니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자신이 무성애자가 아닐까?’하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 때 이런 말을 했다.
“그렇다면 사춘기 즈음해서 아셨을 텐데요? 이상하네요. 아직도 정체성을 모르실 리 없으니 무성애자일 리는 없을 것 같아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결국 에이섹슈얼 에이로맨틱*11으로 정체화했다.
다른 지인 이야기를 해 보자.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떠한 이성에 대한 관심이나 두근거림을 느끼지 않았다. 타인이 자신에게 가지는 성애적 호감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기대와 욕망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주목받거나 배척받는 게 두려웠던 그는 한 번도 그 사실을 말하거나 드러낼 수 없었다. 대중매체는 연애와 유성애에 대한 아름다움만을 그려놓기 바빴고 많은 이들이 책, 영화, 노래, 만화를 통해 쏟아지는 사랑과 그 미화를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었다. 누구도 그에게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거나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당연히 자신이 언젠가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을 바라고 찾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결혼하는 자신을 상상하는 것은 극심한 공포와 혐오감을 불러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무성애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성애자에 대해 알려진 것과 다르게 자신은 성욕이 있었고, 성적 컨텐츠 역시 즐겨 소비했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를 무성애자의 한 갈래인 오토코리스 섹슈얼*12로 정의할 수 있었던 건 한참 뒤였다. 그제야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모든 불안과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우리는 2차 성징 시기에 몸의 변화를 겪으며 끌림에 눈뜨고 정체성을 깨닫는다고 여긴다. 그러나 누구나 스스로의 성적 정체성 및 지향성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은 비교적 가시화가 잘 된 퀴어로서 어려움 없이 정체화했던 내가 가졌던 편견에 불과했다. 내겐 당연한 일이었던 퀴어로서의 정체화도, 가시화가 부족한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며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즉 가시화가 부족한 성소수자들이다.’
이렇듯 무성애는 가시화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수는 적지만 무성애 단체 및 커뮤니티들이 있고 이들은 무성애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AVEN은 북미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무성애 커뮤니티이며, 세계 최대 규모의 무성애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AVEN 위키를 통해 무성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기간을 정해 AAW(Asexual Awareness Week, 에이섹슈얼 가시화 주간)라는 캠페인을 열고 있다. 이 캠페인은 특정 주간동안 집중적으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무성애 및 무로맨틱, 데미섹슈얼*13, 회색무성애*14에 대해 가르치고 이를 위한 자료를 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성애 가시화를 위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 : 대(ACEtage)는 2015년 활동을 시작한 한국 무성애자들의 주체성 확립 및 무성애 가시화를 위한 단체이다. 무성애 관련 정보와 지식이 담긴 자료를 제작 및 배포하고 있으며 퀴어 퍼레이드 및 퀴어 문화축제에 참가하여 무성애를 알리는 등 가시화에 앞장서고 있다. 국내의 무성애 커뮤니티로는 승냥이 카페, 에이스그라피가 있다. 무성애자들이 서로의 고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에이브리원 역시 무성애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무성애 단체 및 커뮤니티들은 각자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무성애자들의 경험을 나누고 무성애 가시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어려움을 겪곤 한다.
16년 초, 에이브리원의 대두는 무성애 가시화를 위해 무성애 우산*15에 속하는 정체성 몇 가지를 각각의 프라이드 플래그와 함께 보기 쉽게 소개한 자료를 만들었다. 이 자료는 기대 이상의 반응을 불러왔다. 트위터에 게시한 자료는 7천회 이상 리트윗되었고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정체화를 위해 작성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등 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무성애자로 정체화할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반응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해당 자료를 보고 ‘이건 특이한 성정체성 덕질에 불과하다.’, '꼴릴 때도 있고 안 꼴릴 때도 있는 거지 무슨 헛소리냐.’, '혈액형이나 별자리 점과 같은 것이다.’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해당 발언을 한 유저들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지칭하는 사람들이었다. 차별과 억압의 의미를 알고 그로 인한 고통을 그 몸으로 체험하였기 때문에 그것과 싸우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 다른 소수자를 배척하고 지우려 하는 모습에서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은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려는 노력 역시 드물다. 타인의 입장에 이입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고 오해와 편견도 많은 무성애는 그만큼 더 쉽게 배제되고 지워지는 상황에 처해 있다. 권력에 있어 우위를 점하는 자들, 즉 기득권자들은 소수자들을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약자들이 실제로 겪는 고통에 접할 기회가 적으며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해도 살아가는 데 있어 아무런 곤란도 겪지 않기 때문이다. 이 권력차는 무성애 가시화를 위해 힘쓰는 이들의 노력에 쉽게 찬물을 끼얹는다. 약자이며 소수자인 성소수자들 안에서조차 배제되는 것이 무성애의 현주소이다. 그리하여 누구도 그 실체를 파헤치거나 생각하려 하지 않는 무성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해소될 일 없이 더욱 굳건해지고 확산되어 실제로 아직 정체화하지 않은 무성애자들의 정체화를 방해한다.
‘무성애와 무로맨틱은 끌림의 정도와 양상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성애자들로서는 놀랍게도, 무성애도 끌림의 정도와 양상에 따라 많은 종류가 있으며 그에 따라 하나하나의 이름이 있다. 각각의 정체성에 그 이름을 부여하는 것을 라벨링이라고 하며 이는 중요한 가시화 활동 중 하나이다. 라벨링이 필요가 없는 비퀴어들은 여기에도 역시 많은 비판과 의혹을 제기한다. ‘이런 식으로 구분하다 보면 70억 인구에 맞는 정체성들을 다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라벨링의 의의와 그것이 가져올 것에 대해 먼저 말해보자.
정체화되지 않은 무성애자는 이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다. 무성애가 가시화되지 않은 세상에서 무성애자는 풀 수 없는 중요한 과제와 씨름하며 살아간다. 자신은 어쩐지 남들과 다르고 서로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은 이상하고 뭔가 문제가 있다. 정말로? 그건 내 쪽이 아니라? 어쩌면 나는 정신질환자인걸까? 이 질문의 답을 쉽게 내릴 수 없는 이유는 무성애자의 정체성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으로선 그것을 알아차리기도, 입증하기도 어렵다. 결국 의문과 성찰, 비난의 화살은 무성애자의 내면을 향하게 된다.
그러나 가시화를, 라벨링을, 정체화를 통해 무성애자는 비로소 그저 무성애자일 뿐인 자신을 그대로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이상한 사람도, 별난 사람도, 고자나 정신병자도 아닌, 그냥 무성애자. 유성애자에겐 필요 없을, 그러나 누군가에겐 절실한 구원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라벨링은 퀴어에게 이름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름을 가짐으로서 비로소 자신이 무엇인지 안다. 이름과 언어라는 깃발이 세워지면 그동안 흩어져 있던 많은 사람, 생각, 경험과 의미들이 그 아래 모여 묶기고 정립된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모여 가시화되고 형태를 이룬다. 퀴어가 퀴어로서의 힘을 가지게 되는 첫걸음이자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
다시 좀 전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확실히 70억 인구를 위해서는 70억 개의 정체성 라벨이 필요할 것이다. 그 방대한 수의 정체성에 대해 구분하고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이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70억의 정체성이 하나하나 동등하게 존중받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다. 지금도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는 어떤 정체성은 새로이 정립되기도 하고 논의 끝에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없어지는 정체성과 이름도 있다. 이것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찾아가려는 노력과 과정이지 필요 없는 이름을 선별하여 삭제하는 철퇴가 아니다. 우리는 이름이 필요하다. 그 이름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고,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 앞에 선다.
언젠가는 이런 라벨들이 자연스레 그 필요를 잃고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무성애와 무성애자의 존재가 인정받기는커녕 정체화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라벨링의 무의미함을 주장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저 퀴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퀴어 혐오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가시화가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혐오를 피할 수 있는 것인데 굳이 알리고자 노력해야 할까?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무성애자들 역시. ‘무성애는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고자면 조용히 지내지 뭐가 당당하다고 자랑하고 다니느냐’, ‘당신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남성/여성에게 돌아가세요’와 같은 무수한 혐오발언과 손가락질 앞에 서게 될 텐데? 비교적 덜 알려진 퀴어들이 ‘반대’받는 경우는 드물다. 가시화에는 혐오가 동반되리라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것 같다.
그러나 혐오는 형태만 다를 뿐이지 애초부터 존재했다. 무성애자 역시 혐오와 직면하고 있다. 그 혐오가 비교적 가시화된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향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뿐이다. 무성애자는 주로 패션 퀴어라는 오명을 쓴다. ‘진정한 성소수자’가 아니라 독특해 보이고 주목받기 위해 무성애자를 자칭한다는 뜻이다.(일부 퀴어들조차 이런 이유로 무성애 혐오를 하기도 한다! 비교적 혐오를 덜 받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무성애자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커밍아웃한 무성애자는 ‘연애경험, 성경험이 없어 그리 생각하는 게 아니냐’, ‘아직 어려서 모르는 것이다. 곧 자연스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와 같은 말을 흔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더러운, 혹은 사악한 것으로 여겨져 모욕받는 것만이 편견과 차별이 아니다. 무성애자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다. 성소수자 혐오자들에게 있어 무성애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존재를 지우려는 시도를 마주하는 것 역시 불쾌한 경험이다.
물론 무성애가 가시화된다면 무성애자를 향한 혐오 역시 새로운 양상을 띠고 더욱 만연할 것이다. 가시화에 따라 생산된 혐오 해소가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가시화는 혐오의 원인이 아니다. 퀴어를 혐오하는 자들은 우리가 그들의 앞에 나서기 전부터도 우리를 혐오할 준비 만만인 이들임을 잊지 말자.
가시화가 부족하면 정체화가 어렵다. 세상이 알고 있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퀴어라는 이름을, 언어를 접하기 전에는 정체화가 매우 어렵다. 해리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해그리드가 찾아오기 전까지 그것은 결코 구체화되지 못했다. ‘너는 마법사다’라고 누군가 말해주고서야, 덤블도어의 편지와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라는 가시화 후에야 비로소 그는 스스로를 마법사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해리는 마법 세계로 나아가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배우고, 싸우고, 때로는 상실을 겪고 또 승리하기도 한다. 계단 및 벽장을 나온 일 같은 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자신에 대해 알고 난 다음에 비로소 가능했다. 바로 정체화라는 시작을 통해서.
우리는 마땅히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가 무엇인지가 어떻게 우리의 삶과 무관할 수 있겠는가?
‘정체화되지 않은 퀴어는 마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있는 것과 같다. 결국은 누구든 자기 발을 위한 신발을 신을 수 있어야 한다.’
정체화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자신을 정의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다양하며 각자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이 세상에서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정체화되지 않은 퀴어는 마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모두가 신고 있는 신발이기 때문에 이 신발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불편함을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본디 신발이란 불편하기 마련이라고 여기곤 평생을 고통을 견디며 미련하게 입고 살아갈 수도 있다. 내게 맞는 신발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그런 이들에게 몹시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신발 대신 맞는 신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편안한 신을 신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구원이고, 자유인지. 자기 발에 맞는 신발만 신어왔던 사람들은 알기 어려울 것이다.
정체화한다 해서 바로 내게 꼭 맞는 신발을 신을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의 어떤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더 편한 신을 지을 수도 있다. 다양한 발을 가진 사람들이 똑같은 신을 신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외칠 수도 있다. 결국은 누구든 자기 발을 위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 편안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이 무엇인지 알고 정의내리는 정체화를 통해 우리는 무성애자로서의, 퀴어로서의 행보에 첫걸음을 내딛는다. 아직 출발선에 서지도 못한 퀴어나 무성애자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정체화 이전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알기에, 우리는 미정체화 무성애자들이 가시화를 통해 정체화의 기회를 얻기를 원한다. 그걸 위해서라면 가시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1끌림attract : 무언가에 관심이 가거나 마음이 간다는 의미로 관계적 측면에서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정신적이거나 정서적인 영향력을 뜻한다. 타인에게 매력을 느끼고 신체접촉을 하고 싶은 것은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좋아한다.’혹은 ‘사랑한다.’가 사용되고 있으나 이 표현들은 본디 ‘당신에게 성애적 호감을 갖고 있고 그러한 관계를 맺고 싶다.’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의미의 혼동이 일어날 요지가 다분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만 이 마음이 연인으로서 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친구로서’좋아한다고 사족을 다는 기괴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퀴어queer : 기묘한, 또는 이상하다는 의미의 단어. 현재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3 HIV 바이러스는 혈액을 매개로 감염된다. 주된 감염경로는 오염된 혈액(90-100%)이며 다음 순으로 임신, 분만 및 모유수유를 통한 모자간 수직감염(25-30%), 오염된 주사기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0.5-1%)가 있으며 예방조치 없는 일회성 성관계 시 감염확률은 0.001-0.1%에 불과하다.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남성이 HIV/AIDS 취약집단인 것은 사실이나 특정 질병에 대한 취약성이 해당 집단을 비난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동성애자 혐오를 위해 AIDS를 근거로 드는 이들은 질병의 사회적 맥락이나 역학적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동성애자를 공격하는 도구로 에이즈를 악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동성애 및 동성애자 혐오일 뿐만 아니라 HIV 감염인 및 AIDS 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4 개인의 정체성은 찬성이나 반대의 대상이 아니다. 누구도 타인의 존재를 반대할 수 없다.
*5전환치료는 성소수자의 정체성 및 지향성을 질병으로 보고 강제로 전환시키려 하는 것이다. 의학계에서는 오래 전 성적 지향이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연구와 성명을 통해 이 사실을 공고히 하고 있다. 전환치료는 의학 및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효과 또한 입증되지 않은 비윤리적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과 다르다 하여 교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천박하고 폭력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6동성애를 악으로 규정하는 성서적 근거는 매우 빈약하다. 이러한 기독교적 관점은 성서의 극히 일부 구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맥락을 무시한 채 문자 그대로 접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자신의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하느님과 그 교리를 팔아먹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7저출산 문제는 성소수자들이 이성과 성교하지 않아 생긴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수익 및 임금, 주거, 육아환경 및 교육정책 등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나타난 사회 구조적 현상이다. 국민은 국가 시스템 유지에 기여하기 위해 교배시켜야 하는 가축이 아니며 성소수자를 비롯해 누구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할 의무는 없다.
*8얼핏 보면 덜 보수적이고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온건한 반응으로 보이나, 엄연히 그 존재를 지우고 감추고 없애려 드는 성소수자 혐오적인 발화이다. 혼동하지 말자.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역시 자신이 성소수자를 존중하는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9커밍아웃: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히는 것.
*10아웃팅: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 및 젠더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이 없이 밝히는 행위.
*11무로맨틱Aromantic : 로맨틱한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
*12오토코리스섹슈얼Autochorissexual : 성적 자극을 느끼지만 자신을 성적 행위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
*13데미섹슈얼demisexual : 성적 끌림을 느끼기 위해서 강한 감정적 관계가 필요한 사람.
*14회색무성애자greysexual : 성적 끌림을 느끼는 빈도가 드문 사람
*15무성애 우산Asexual umbrella term
기존의 무성애적 정체성들을 설명할 때 무성애 스팩트럼Asexual spectrum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으나, 끌림의 양상들이 한 연장선 위에 놓여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현재는 다양한 정체성들을 하나의 우산 아래 감싼다는 의미에서 에이섹슈얼 엄브렐라, 에이 엄브렐라 등으로 사용되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