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가 싱글싱글 웃으며 카이에게 말을 던진다. 그가 어깨를 가볍게 들썩였다. 잘 모르겠지만 웃은 것 같았다.
"늙을 때까지 살 생각도 없다. 어디 용병이 제 명에 죽는 거 본 적 있나."
"음, 그렇게 미간에 주름을 잡다간 미간에 때가 낄 거에요."
"때가 끼어서 만화 캐릭터처럼 미간에 주름이 그려질 거라구요."
"날 세수도 안 하는 사람으로 만들 셈이냐."
인상 펴 봐요, 자, 이렇게. 그녀는 다가가서 카이의 얼굴을 아예 손으로 감싸려고 했다. 늘 사냥감이라도 훑는 듯 흔들림없는 그의 동공이 잠깐 빨려들 듯한 빛을 보인다. 어, 하는 사이에 이비는 거의 던져지다시피 밀쳐졌다.
테이블 모서리에 등허리를 박고 아우우우... 하고 주저앉은 이비를 흘끔거리던 카이는 곧 미안, 하고 짧은 한 마디를 뱉는다. 미안. 한 번 더 그의 입술이 들썩였다.
평소와는 달리 분명 동요한 듯한 카이의 눈빛이 신경쓰여, 이비는 선착장 근처를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피오나가 어깨를 툭 건드리자, 화들짝 놀라 어깨를 건드린 방향을 쳐다보려다 피오나의 턱에 머리를 부딪힌다.
허둥지둥. 사태가 마무리된 뒤 피오나는 이비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이비의 말을 들은 그녀는 어른이라면 역시 술 아니겠냐고, 멋대로 손 댄 데 사과하면서 조용히 술을 권하라고 한다.
저녁이 되기를 기다려, 해가 지고, 금세 어두워진다. 커튼을 젖힌 창문 밖으로 빛이 새어나오고, 부엉이 소리와 발정난 고양이들 울음소리로 시끄럽다. 이비는 여관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1층의 주점과 식당을 겸하는 테이블에 그가 앉아 있다. 카이 씨. 그녀는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멋대로 옆에 걸터앉는다.
작은 새우를 바짝 튀겨낸 요리를 곁들여, 그가 마시고 있는 것은 꽤나 독한 술이라는 걸 라벨을 보고 알았다.이미 제법 취해 있었는지, 그의 구릿빛 피부 밑으로 엷게 드러난 붉은 기운이 눈에 띄었다. 이비는 푹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젖혔다. 아저씨, 더 마시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녀가 묻는다.으음. 그가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든다. 이비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란 모양이었다. 괜찮으니까 들어가. 난 조금 더 있겠다. 자못 걱정이 되어, 이비는 고개를 젓는다.
두 사람은 한참 말이 없었다. 카이가 이따금 술을 따라 들이키는 소리 외에는, 그 날따라 여관에는 사람도 없고 조용했다. 나무 테이블에 술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적막한 홀 안에 울렸다.먼저 침묵을 깬 것은 놀랍게도 카이였다.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다. 연인, 그래. 연인 말이지."
술에 취했음에도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그의 낮은 목소리가 이비의 귀를 휘감아 꽂혔다. 그리고 그 뒤로 다시 조용해졌다.
옆에 앉아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순간 가까워졌다. 알코올 냄새가 훅 끼쳐와서 인상을 찌푸릴 뻔 했지만, 어쩐지 그럴 타이밍이 아니라 이비는 간신히 참아냈다.좋아, 10점 만점에 태도 점수 8점. 속으로 되도 않는 생각을 했다. 낮에 이비가 그랬던 것처럼, 카이가 이비의 뺨을 양손으로 감쌌다. 혼란스럽다. 앗, 잠깐만요. 잠깐. 술을 마신 건 카이일텐데, 그녀의 심박이 빨라진다.입술과 입술이 맞닿으려던 순간, 카이가 다시 멀어진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비가 양 뺨에 제 손을 가져다대고 후, 하, 하고 심호흡을 한다.
그가 또 한 마디를 짧게 뱉었다.잘생겼잖아요. 솔직히 한 번쯤은 키스해도 좋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두근거리니까. 카이 씨쯤 되는 미남이 그렇게 가까이 얼굴을 대면 제가 먼저 머리를 이케 움직여서 쪽 해도. 응. 이비는 생각했다.사고, 사고인 거죠. 앗 깜짝! 에헷 저질러버렸네. 머릿속을 계속해서 이상한 생각의 편린이 빙글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무 다리로 된 의자가 마룻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그러게, 그의 술 냄새만 맡고 취했던 걸까. 그 뒤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왜 따라갔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비는 뭐라도 홀린 듯 그의 뒤를 따라 그의 방 안까지 기어들어가 버렸고-방문이 닫힌 순간 카이는 그녀를 붙잡고 짐승 같은 키스 세례를 퍼부었고, 침대까지 갈 시간도 없이 물어뜯을 듯 거친 동작과 섬세한 감각으로, 키스는 턱선과 목을 타고 쇄골, 그리고 그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저지할 틈도 없었고, 사실은 저지할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이비는 그를 받아들였다. 침대 위로 기어오르면서, 몇 번이고, 거의 동이 트지 않을까 싶을 때까지 두 사람은 계속해서 엉켰다.
카이가 겨우 정신을 차린 건 다음날, 낮도 아니고 해가 다 져 갈 때쯤이었다. 미묘하게 뻐근한 기분에 숙취까지 겹쳐,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그 와중에 방문이 벌컥 열려서, 전라인 상태였던 그는 당황해 이불을 추스렸다. 이비였다. 그녀는 생선 살을 넣은 스튜를 들고 와, 방 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세르하 씨가 직접 가져다주겠단 걸 제가 가지고 왔으니 칭찬해 주세요.복잡미묘한 표정을 얼굴에 띄운 카이를 빤히 보다가, 이비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없던 일로 할 테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좋아요."
그럼 식기 전에 알아서 드시길 바라요. 이비는 쪼르르 방문을 닫고 나간다.카이는 다시 침대 위에 풀썩 쓰러졌다. 없던 일로 한다고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 그는 이불로 머리를 둘둘 감고 허공에 괜히 발차기를 날렸다. 엿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