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 빨리도 간다. 재작년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게 어제같은데 벌써 작년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고, 시간은 2013년 1월 1일 1시 54분을 가리키고 있다. 매년 그렇게 느끼지만 2012년은 더욱 빨리, 덧없이 흘러간 듯 하다. 분명 2012년 1월 달력을 넘기고, 날짜를 표시했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미국에 계신 한 지인께서, 현대카드 달력이 창의적이라고 궁금해 하셨고, 현대카드에 다니는 다른 분께 부탁해 달력과 다이어리를 받아 미국으로 송부했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은 것만 같다. 어느새 2012년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다. (이미 지났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한 해를 어떻게 보냈나, 의식적으로라도 되돌아보게 된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떠나, 성장했는지, 정체해는지, 후퇴했는지를 반추해 보게 된다.
아팠다. 생명에 직결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매년 그러하듯, 나는 몇번을 앓았다. 병원에 가는 일이 익숙해지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서글픈 일이다. 그만큼 겁이 없어지고, 초연해지는 것이리라. 아픈만큼 성숙해진다지만 올해의 부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말도 안되게 다쳤기에 주변사람들도 걱정시켰으며, 덕분에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 뼈저리게 깨닫고, 더위가 지나갈 때가 다 되어서야 흉터가 옅어지기 시작했으며, 미련하게도 과로로 인한 염증들로 링겔양의 도움을 몇번이나 받았다. 혈관에 약물을 가득 넣은 주사가 흘러들어가기 시작해야 가라앉는 증상들. 외부의 도움 없이는 왜 과로를, 혹은 욕심을 자각하지 못하는지.
내년에는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내 가족도,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무엇보다 그대도.
달력에 표시된 붉은 글씨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유독 올해들어 그 생각에 크게 휩싸인 것을 보면 필시 꽤나 지친것이리라. 매년 그랬거늘. 크리스마스도, 2013년의 첫번째 날도, 일터에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지 않다. 과연 잘 살고 있는것일까 끊임없이 의문이 든다. 욕심을 조금 버리고 자유로운 시간이 더 보장되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있는 곳에서 더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에 매일 빠진다. 하루는 이만하면 여기에선 최선을 다 한거야. 이제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가, 그 다음날은, 아니야. 곧 공부도 시작하고, 변화할 일들이 많으니 1-2년만 더 버텨야해 라고 얘기한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같은 일을 반복하면 즐거움도 반감되는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더우기 회사에서 계속적으로 직원에 대한 동기부여를 줄이며, 많은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그래도 잘 버텨왔다고, 발전도 했고, 성장도 했다고 토닥인다. 더불어 이곳에 있는 동안, 푸념만 늘어놓는, 부정적 메세지를 전달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다른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자고 다짐한다.
올해들어 더 익숙해지거나 더 잘하게 된 것은 과연 어떤것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삶 자체가 스스로의 길을 조향해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운전은 오래전부터 일종의 로망이었다. 생각보다 면허를 너무 늦게 따게 되었고, 내 손에 합법적으로 핸들이 쥐어진것은 2011년 4월.
겁이 없는 편이라고, 빨리 배운다고 강사가 얘기했지만, 정작 차를 몰아보기 시작한 것은 2012년에 들어서였다. 그것도 제주도에 혼자 여행을 불쑥 떠나면서.
텅빈 길을, 혹은 정신없이 엉켜있는 공항 근처 도심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속도의 쾌감을 즐기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다른 차량의 끼어듦에 놀라기도 했다. 홀로 운전대를 잡는 경험은 마치 세상에 나 혼자 남겨져 알아서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달려가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운전과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그의 등장 덕분에 몇번이고 운전 교육을 특별하게 받을 수 있었고, 지금도 초보 딱지는 떼지 못하지만, 전보다 운전자체를 즐기게 되었으며, 익숙해 졌다. 조금 싱거운 계획일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안전하면서도 나만의 궤적을 만들어가는 드라이버가 되고싶다. 어느 길을 가든. 조향과 제동을 현명하게 하게 되길.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부르기는 성대결절이 악화되며, 의사에게 그만두라는 경고를 받는다.
심지어 노래방도 안되고, 술도 마시면 안되며, 커피도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 있었다.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 처럼 의사에게 떼를 써, 커피는 억지로 허락을 받았지만, 이는 사실 유익한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노래와 술은 허락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아마도 내가 이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는 목상태가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
함께 곡을 준비하던 밴드멤버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했으며, 행복하게 노래를 불렀던 지난 3년간의 시간에 일시정지를 눌러야 했는데, 처음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사실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원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며 원하는 음역까지 올라가지 않는 것은 설명할 수 없이 슬픈 일이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다 갖고, 움켜쥐고 있을 수 있을까도 생각한다. 결국은 내가 자초한 일이기에.
내년 가을경에 학기가 시작되니, 그 전부터는 정말 일을 조금 줄여서 내 몸을 더 돌보는데 신경을 써야 할 듯 하다. 몸은 정직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얼마전 밴드 리더오빠에게 안부를 전하다, 언제든 목소리가 원상태로 돌아오면, 함께 곡을 만들자고.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다고. 자신도 마흔이 다 되어서야 처음 원하는 음악을 하지 않았냐는 소리에 또 왈칵 눈물이 났다.
적어도 나를 응원해 주고, 나의 열정을 기억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아기 엄마가 되어서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노래를 부르는 일련의 행위는 소녀다웠으면 좋겠다. 혹은 잘 여문 과실같은, 30대의 노련함을 간직하기를. 그 상태로 일시정지 되어있기를. 다시 열기 전까지.
그리고 올해의, 아니 이미 지난해의,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
몇년간, 서로 애틋한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서 친구 이상으로 거리를 좁히지 않고 주저주저 하던 그가, 용기를 내어 다가와 준것.
친구라는 관계의 궤도만 평행하게 돌 줄 알았다. 다행히도, 그가 나에대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를 다시 만나며 진심을 받아들이고, 관계의 변화를 시작한지 어느덧 여섯달 째.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전체 만나온 나날은 길지만, 서로 미쳐 나누지 못했던 속마음과 진심들을 확인하며 얼마나 벅차올랐는지, 고맙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아쉽고 속상했던 마음은 고이 접힌지 오래. 이 사람을 만나게 해주셔서 다행이라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인연이 어떻게 흩어지고, 이어지고, 맺어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가 소중한 사람이며,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아껴주는 그의 마음 덕분에 내 마음도 따뜻하게 차올랐음을 고백하고 싶다.
앞으로 오랜시간, 서로의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주고, 아픔을 매만져 주고, 좋은일을 함께 기뻐하며, 내일을 꿈꾸는 그런 연인이 될 수 있기를.
어디에 있든, 어떤 곳에 쓰임을 받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나의 모자란 부분은 타인으로 채워지고, 혹 다른사람을 상처준 모난 부분은 둥글게 다듬어지길 바란다. 해가 거듭할 수록 예뻐지기 보다는 아름다워지기를, 똑똑해 지기보다는 현명해지기를, 날을 세우기 보다는 완만한 능선을 그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