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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brunch.co.kr/@scintiller 로 이사했습니다. 파리에서의 이야기를 담은 글과 메모는 다시 다듬어 브런치에서 발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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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brunch.co.kr/@scintiller 로 이사했습니다. 파리에서의 이야기를 담은 글과 메모는 다시 다듬어 브런치에서 발행할 예정입니다.
돌아온 이후
그렇게 미처 자각하지 못할 새에, 혹은 준비하지 못한 새에 나는 한국으로 도착했다. 항상 미리 상상하고, 준비하는 것보다는 맞닥뜨리는 거에 익숙했던 나이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좀 더 낯설고 부유하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내게 프랑스에서 어떻게 지냈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곧장 우리들의 대화는, 아니 일방적인 물음은 그래서 내가 앞으로, 아니 당장 이제 뭐를 할 것인지로 넘어온다. 몇몇 사람들이 얼굴이 확 폈다든지, 인상이 달라졌다든지 지적하듯, 나는 지난 6개월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그 모든 순간순간을 힘껏 끌어안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것들의 끝을 제대로 음미하기도 전에, 혹은 향을 더 느끼기도 전에, 사람들은 내게 직구를 힘껏 내리꽂는다.
파리에서 나는 돌아간 이후, 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혹은 할 수 있을지 잠깐 고민했었다. 이제는 그게 다 헛걱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나의 삶에 관심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개인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게, 여기로 돌아오니 확연히 빨라진 삶의 속도 속에서 다들 그저 제 앞가림만 겨우겨우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친구들은 이번에 졸업을 (어떻게든) 했고, 그 중 많은 경우는 (어떻게든) 취직, 혹은 대학원 등으로 진로를 잡았다. 또 많은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었다. 새로 생긴 도서관의 엄청난 시설과 넘쳐나는 문학 책들이나 영상 자료에 감탄하면서도, 정작 그 도서관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책상에 널린 책들을 봤을 때 느껴지는 어떠한 씁쓸함.
6개월의 간격을 두고 오랜만에 만난 어떤 이는 내가 이리 소소한 것들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했고, 어떤 이는 듣고픈 문학 강의 들으러 간다는 나의 말에 요새 무슨 지적 유희하는 거냐 물었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놀다와서 아직 정신 못 차렸네라고 일갈했다.
이쯤되니 나 역시 지난 6개월의 생활이 그 이전과 혹은 지금과 달랐던 이유에 대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금전적인 걱정없이, 어떠한 진로에 대한 고민도 없이, 그저 매 순간순간 내가 하고픈 것들에 충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장소의 차이가 이와 같은 차이를 빚은 게 아님을 의미한다. 즉, 그 곳이 프랑스여서, 파리여서 한국에서와 달랐다기보다는 내게도 어떤 예외적이고, 특수한 시기였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많은 경험과 시간들이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맞닥뜨림들을 경험할 때마다 기분이 꿀꿀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작년에 나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의도치않게 많은 죽음들을 마주하면서, 고작 몇 년 사이에 새로운 변화들을 너무나 두려워하는, 안정을 추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게 너무나도 소스라치고 놀라웠다. 그런 나를 바라보게 되자, 내키지않음에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강화되었고, 결국 그 곳에서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리고 잊으려했던 감각들을 다시 배우고, 자극하고 온 느낌이다. 스스로를 옭아매지않고, 보다 마음이 가는대로 표현하고, 또 움직이기.
이제 이 원칙을 '예외'적이었던 시공간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또 간직하며 살아갈 지가 일종의 숙제인데, 그에 앞서 자꾸 얻어맞고만 있는 기분인지라 의욕을 잃게 된다.
<마리는 파리를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잠시 파리에서 살아본 일이 있다고 말했더니 어떻냐고 물었다. "더러워. 비둘기들이 많고 안뜰들은 어둡도 사람들은 모두 피부가 희지."> #albertcamus #L'Étranger #thestranger #까뮈 #gallimard(LIBRAIRIE DE PARIS에서)
#placedeclichy #truffaut #lesquatrecentscoups #400번의구타 #wepler(Place de Clichy에서)
그가 scholarship을 위해 지원했던 이력서의 마지막 문단이다. 마지막 문장은 여기선 생략되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I cannot accept my conclusions, and so I must continue this photographic investigation further and deeper. This is my project. 사진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던(a picture could neither change the world nor even explain it) 이의 시선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winogrand(Jeu de Paume에서)
"Sometimes I feel like . . . the world is a place I bought a ticket to. It’s a big show for me, as if it wouldn’t happen if I wasn’t there with a camera." #winogrand(Jeu de Paume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정도로 묘사할 수 있을까? Vishniac의 사진들은 강력했다. 평범한 길거리 사진 속에 휘날리는 나치의 깃발과 문양들은 당시 시대를 증언하고 있었고, 특히 전쟁 이전 중부유럽 및 동유럽 일대에서 Jews의 삶을 포착해냈다. 지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 학교에서 어린이들의 모습,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은 묵묵히 시대를 증언하고 있었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 하에서 유대인들은 카메라를 드는 것조차 금지되기도 하였는데, 때문에 그는 그의 딸에게 사진기를 쥐어주기도 했다. 전쟁 이후에는 폐허가 된 베를린부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및 난민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시회 내내 그의 사진들은 열렬히 시대를 증언하고 있었고, 나는 그 조용하지만 강력한 울림이 마음에 들었다. 하나하나의 사진들을 통해 아래의 설명과 함께 내가 전혀 몰랐던 세계를 배워갈 수 있었다. 워낙 다양한 종류의 사진을 찍었다보니 전시 공간이 빽빽하여 설명을 읽으려면 허리를 숙여야한다는 난감함이 있긴 했지만 -_-;
한편, 전시회를 나오면서 나는 오히려 한국 및 아시아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페북을 통해 한국 전쟁 및 직후 당시 미군들에 의해 찍힌 사진들을 보았는데 매우 생경했다. 정말 생경 그 자체. 더불어 이 곳에서 다양한 아시아에서 온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정작 그들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음을 체감한다. 간혹 내게 한국인들은 중국, 일본인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잖아, 혹은 미안한데 너네는 영어를 쓰니 같은 물음에 이들의 유럽 및 서구중심주의적인 생각에 코웃음쳤다가도 정작 내가 주변의 아시아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삶에 대해 온전히 무지함을 깨달을 때에는 어떠한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언어를 쓰는지, 어떠한 종교를 많이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느 정도 크기의 땅에 사는지. 어릴 적 호돌이 만화 시리즈를 볼 때면 젤 뒷장에 그 나라에 대한 이러한 개괄 정보를 보며 이게 대체 뭐가 중요하다고, 따위의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면서도 매번 체감하듯 - 우리의 사고 및 인식의 한계 속에 우리는 가장 뭉텅그린 형태로 ‘낯선’ 것들을 처음 접하고 소화한다. 이렇게 거칠게 뭉텅그려진 정보들은 많은 한계들이 있음에도 일정 부분 큰 역할을 하는데, 적어도 미지의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아시아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이들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음을 체감하고, 동시에 생각보다 내가 한국의, 혹은 한국 사회의 과거 또한 잘 모름을 깨닫는다. 분명 Vishniac의 몇몇 사진들과 같이, 의도하지 않은 평범한 거리의 풍경 속에 당시 시대상이 담긴 사진들이 있을 거다. 아니 그냥 그 사진들을 통해 당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거다.
한국에 돌아가면 하고픈 일들이 이렇게 조금씩 생기고 있다. #Romanvishniac
모름지기 이런 것은 가장 투어리스틱한 곳에서 해야한다는 생각에... 오늘 동선을 짤 때 오랜만에 루브르를 들렀다. 원래 목표는 에펠탑이었지만 너무 멀어서.. 그나저나 다음 지목할 세 명을 아직 못 정했다 @@ #힘내라 #김정욱 #이창근 #응답하라 #쌍차(Louvre Pyramid에서)
상설 전시를 집중해서 보고나니 피곤해서 다음 전시는 간단히 볼 요량이었는데.. 인트로를 읽는 순간부터 정신이 팍 들더니 건물을 빠져나올 땐 이미 밤이 되었다는...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은 많은 카메라 병을 파견했었는데, 그들이 찍은 사진 및 영상들은 당시의 참상을 알리는데 그 당시에도, 그리고 이후인 지금까지크게 기여하게 된다.(이래서 소련군은 미워할 수가 없다...ㅋㅋ) 아우슈비츠 외의 많은 비극은 소련군 카메라에 담긴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적국인 독일군의 잔인함을 보여주기 위해 찍은 영상들이 이후에는 이에 맞선 자국 군대의 사기를 올리고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영화의 역사, 프로파간다), 또 이후에는 미국 중심의 동맹 질서에 맞서기 위한 차원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목적들이 있다보니, 많은 희생자들이 유대인인 것을 언급하지 않거나, 일부러 누락하는 방식으로 보도하였다.(다양한 여권들을 보여줌으로써,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식으로 나레이터가 말하지만 정작 대부분 유대인) 이후에도 동구권 내에서조차 자료들이 쉽게 릴리즈되지 않다보니 이 자료들은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것들인데 - 만약 이 자료들이 진작에 보다 널리,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졌더라면 오늘날 사람들의 집단무의식 속에 각인된 홀로코스트의 원형 또한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방식이었을 것이다 -고 전시는 말한다. 그리고 나는 만에 하나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내게 닥쳤을 때, 카메라를 들어야겠단 생각을 잠깐 했다. #memorialdelashoah #filmerlaguerre(Mémorial de la Shoah에서)
매일 이렇게 전시회와 박물관들을 다닐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싸도 5유로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 내 기억에 남는 건 트뤼포 전시 딱 한 번이었다. 학생 할인을 받아 3유로인 경우가 조금 있었고, 사실 대다수는 공짜다. 돌아가는 날짜가 눈에 들어오니, 꼭 가보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미뤄뒀던 곳들을 틈나는대로 찾아가고 있다. 오늘은 쇼아 기념관에 갔다. 프랑스에는 이스라엘,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유대인이 현재 살고 있으며,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나치와 비시 정권의 틈 사이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 1995년에 이르러서야 시라크 대통령은 유대인들을 독일의 수용소로 넘긴 비시 정권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고, 이는 2005년의 이 기념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많은 글들과 이야기 및 영화들을 접했지만, 그 당시의 직접적인 사진들 및 서류들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느낌을 가져다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참혹한 심정에 사실 더 보탤 수 있는 말도 없어 그저 놀라고 압도당하기만 했다. 동시에 다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상대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 너무나도 쉽게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수용소 생존자들의 사진들, 당시 국가별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통계에서 폴란드 89%, 300만명 사망, 그리고 마지막의 7만 6천명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벽.
별개로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전시나 자로는 항상 아카이빙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갔겠지만.. 나는 미시사 및 개인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이었는데 막상 감상자의 위치에 들어섰을 때 많은 이야기들을 패스하게 되었다. 곳곳에 여러 개인의 스토리들이 책으로까지 묶여있었고, 많은 생존자들의 증언 및 회고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으며, 마지막 벽에서는 특정 이름을 검색하면 그 사람의 사진과 출생년월, 사망년월 및 기타 개인 정보들을 볼 수 있었는데 - 이 방대한 자료들과 거기에 녹아있는 태도 및 이념에 경탄하면서도 정작 감상자로서 이 모든 정보를 수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적고나니 결국 역사가는 미시사의 발굴을 넘어 해석과 집약된 서술 및 재배치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르포르타주와 구분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유럽에 오면서 꼭 가고 싶었던 곳 중에 하나가 아우슈비츠와 그 일대였다. 한 친구가 홀로코스트와 메모리얼 관련한 장소들을 쭉 다녔는데 그 곳에서 보고 듣고 느꼈을 것들이 어떠했을지 궁금했다. 이미 아우슈비츠 등은 못 가겠지만(파리에서 일요일에 출발하는 프로그램을 이 기념관에서 주관하던데, 350유로다...) 오늘의 기억과 다가올 독일에서의 방문이 조금이나마 그때의 궁금증을 푸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memorialdelashoah
오늘 산 엽서들 - 정작 유럽 사진 박물관에선 쏙 마음에 드는 게 없었고(original 사진으로 구성된 건 한 장에 무려 8유로라 패스...퓨ㅠ) 파리 매그넘에서 3장, 샹젤리제 거리 근처의 가판대에서 4장 샀다. 보통 에펠탑이 그려진 엽서는 피하게 되는데, 1900년 당시 만국박람회 포스터랑 다른 한 장도 톤이 마음에 들어서.. 아직까지 이전 집주인에게 보낸 엽서를 제외하고는 한국으로 엽서 한 장 붙이지 못했는데 수집만 열심히 하는 중(--)(__) ㅎㅎㅎㅎ
기록용 - 집주인이 일하는 유럽 사진 박물관에 갔다. 사진 역사가 Michel Frizot가 여러 시대에 걸쳐 알려지지 않은, 잊혀진, 혹은 아마추어 사진들을 모아 재구성한 <Toute Photographie fait enigme; Every photograph is an enigma>를 중심으로 봤다. 인상적이었던 사진 및 문구는 추후 업로드
겨우 며칠 만에 홈랜드 시즌 3가 끝나간다. 이번 주는 왠지 모르게 의욕이 없다. 지난 금요일 이후 목이 약간 아프면서 쌀쌀함을 느껴서일까 같은 생각도 했다.
어제 오늘 학원에서는 멍 때리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내가 이미 알고, 배웠던 것을 다시 듣고, 생각보다 더딘 진도 속에서 나는 처음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을 아마, 아니 확실히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체감한다. 그러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애초에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같은 생각도 하게 됐다.
연말 연초의 연휴가 끝난 뒤, 알람없이 일어난 게 겨우 그제, 일요일 하루였다. 나는 밤새 뒤척이다 혹은 다른 것들을 하다 늦게 잠들고, 아침 10시에 겨우 눈을 뜨며 다시 10분 알람을 연장한다. 그러고는 일어나 부랴부랴 씻고, 아침을 먹으며 나갈 준비를 하고는, 집 문을 열고 나와 걸으면서 휴대폰으로 어느 station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지 앱을 확인한다. 걸음걸이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다행히도 학원까지는 쭉 내리막길이어서 자전거만 구한다면 5분, 경찰 눈치를 보며 신호를 지키더라도 8-10분 안에는 도착한다. 아침 11시에 시작한다던 학원은 워낙 사람이 붐벼 11시 10분이 되어서야 겨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지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12월의 한 주를 제외하고 연휴가 끝나고는 이제 겨우 3주차에 접어드는 것인데, 매일 아침마다 내가 왜 이렇게 지내고 있는건가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처음에는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나의 레벨에 상관없이 많은 수업들을 들어갔지만, 이내 큰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파리의 건축물과 관련한 아뜰리에를 들어가더라도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의 10분의 1도 못한다. 그럴 때마다 언어를 더 배우고 왔더라면 같은 생각과 동시에 같은 시-공간에 놓여있으면서 옆 사람이 느끼는 것들의 반의 반도 못 느낀다는 생각에 갑갑함을 느낀다.
처음에는 내가 시험 결과 얻은 레벨보다 한 단계 아래의 반에 왔으니, 그만큼 그동안 공부한 것들을 더 열심히 복습하고, 말하는 연습도 열심히 해서 돌아가기 전에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반에 들어가야지 같은 생각을 했다면 - 지금은 같은 라틴어 계열의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아무 것도 몰라도 단어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듣기, 말하기를 하더라도 나와 천양지차가 나는 것을 보면서, 동시에 2달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짧은 시간임을 체감하면서 체념만 늘게 된 것 같다.
여기에는 분명히 (몇 년 사이에 프랑스가) 영어만으로도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는 것도 있을텐데, 어떻게 표현할 지 불어 단어를 떠올리다가 이내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영어로 말하게 되는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을 거다. 다시 말해, 내게는 어떤 절실함이 없고, 그에 앞서 내 태도는 이미 체념적인 부분이 있다. 이런 생각과 감정들이 내가 그동안 무엇이든 함에 있어 보였던 태도와는 다르기 때문에 낯설고, 또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나는 이 학원에서 1주일에 20시간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사실상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업들의 한계 속에 1주일에 학원에 있는 시간은 15-17시간이다. 처음의 나는 이렇게 덜어내지는 시간들이 안타까워 어떻게든 아둥바둥하였는데, 오늘은 이렇게 멍 때리고 있을 바에는 그냥 밖으로 나오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5분 안에 주파하는 게 목표인, 돌아갈 때는 추위를 피해 20분 안에 돌아가는 게 목표였던 Rue de Crimée를 오랜만에 천천히 걸었다. 운하의 다리에 처음으로 올라가봤고, 있는 줄도 몰랐던 작은 피자집에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며 다음 밥집으로 점 찍어뒀다. Soldes 표시의 옷 가게 안에 처음 들어갔고, 운하 옆 숙소로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처음 봤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라하는 장소 중에 하나인 뷔트 쇼몽 파크에 오랜만에 가게 됐다. 매일 지나치면서 정작 늦었거나 춥다는 이유로 공원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곳.
오늘은 새가 참 많았고, 나는 오랜만에 숨을 틀 수 있었다.
이 사진에는 내가 있다.
(Parc des Buttes Chaumont에서)
+
그동안 언어에 대한 한계를 느낌과 동시에, 나는 재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 이내 내가 프랑스에서 가장 자주 마주하는 풍경은 정작 Monoprix, Franprix와 같은 곳에서 가격을 비교하며 음식 재료를 고르는 것임을 깨달았다. 가고 싶었던 곳들은 항상 미뤄두고, 바에 가서 외국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도 돈이 드니까 자꾸 술을 잔뜩 사서 집 안 냉장고에 넣어놓게 되고.
그렇게 나는 여행을 안 가는 대신에, 남은 기간을 파리에서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다시는 없을 이 곳에서의 기회를 집 안에서 자꾸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꼭 가고 싶었던 뷔트 쇼몽 파크의 가게를 들렀고, 돌아오는 길에는 집 근처의 '400번의 구타'라는 찻집 겸 음식점을 들렀다. 그리고 이들이 목요일부터 일요일 사이에만 문을 열고 있음을 알게 됐다. 오랜만에 큰 결심을 했는데 참 도와주지 않네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오픈 시간을 알게 됐다는 것에 큰 수확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로... 잠도 잘 자고 다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기간을 잘 보내려 할 것이다.
진상이 되고나서
페북에도 올렸던 사진들을 굳이 선별하여 다시 올린 것은, 사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함인데 -
지난 일요일 프랑스 전역에서 <샤를리 엡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집회가 열렸을 때
(어떤 사람은 이를 프랑스 정부에 의해 기획된 '국가적 스펙터클'이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테러가 발생한 당일의 자발적인 집회와 달리, 정부가 시간과 행진 경로를 공지한 측면은 있지만 이러한 반응은 집에 앉아서 미디어를 접했을 때나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길 거리에 지나가면서 마주하게 된 까페 등의 TV에서는 올랑드를 중심으로 카메라가 돌아가긴 했으니까. - 그런데 적어도 희생자들의 가족이 선두에 섰다는 것을 보면서, 다시 세월호가 떠오르며 적어도 프랑스의 이 상황이 '부러웠다'. -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거리에 있는 수많은 당사자들은 지도자들이 뭘하는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각자 함께 온 사람들과 거리를 함께 걸으며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였다는 것. + 사족으로 덧붙여서. 나는 현장을 겪어보려하지 않고, 무조건 앉아서 판단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불신을 한다. 굳이 허지웅의 말을 인용하자면 "티비만 보면 테이스트가 없는 사람이 되고, 인터넷만 보면 자기가 해보지 않은 모든 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틀렸다고 말하게 되며, 경험만 많이 쌓으면 주변 세계와 격리된 꼰대가 됩니다. 종류가 무엇이든 책을 읽으세요.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지혜입니다." 요새는 두번째 부류의 사람이 너무 많은 건 아닌가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마지막 Nation 광장에서 <라 마르 세예즈>와 여러 구호들을 부르고, 또 외치는 모습들 속에서 사람들의 어떤 광적인 열기를 느끼며 거기에 일체화되지 못하고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선약을 위해 이동하였는데 나는 거기서 술에 꼴았고 -_- 여기서 처음으로 필름이 진짜 제대로 끊겼는데(+숙취)... 보아하니 엄청 혼자서 말을 많이한 것 같았다.
나는 테러 발생 직후에 프랑스인이 아님에도 끊임없이 거기에 감정이입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 또한 피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인들과의 만남을 피했는데, 이 곳에서 살아가는 혹은 유학하는 사람들은 (방점은 후자에 찍혀야 할 것 같다) 생각보다 이 사건에 감정 이입하지를 못했고, 멀리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반응과 비슷한 부류의 반응들을 보였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이들에게 프랑스라는 곳이 단지 유학을 하는 곳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만.. 나는 그래도 다른 한국인들처럼 적당히 시간이 지난 뒤에 사안을 판단해야 된다, 지금의 쏟아지는 말들과 행동들에 대한 경계 등 같은 반응들을 직접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공감과 위로였는데, 여기서 더 외로워지는 느낌을 받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여기까지 적으니 - 모든 유학생의 분위기라기보다는, 프랑스가 좋아서 프랑스에 매료되어서 오지 않은 이들, 특히 내가 다녔던 학교와 연결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런데 어찌됐건 그렇게 만남을 피하다가 겨우 일요일에 사람들을 만난건데.. 거기서 내가 술을 엄청 마시면서, 그리고 또 마시고 난 뒤에 하고팠던 혹은 묵혀뒀던 말들을 끊임없이 했던 것을 보면서 너무 놀랐다.
어찌됐건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시간이 침묵과 함께하는 것인데, 내가 그동안 정말 말을 많이 하지 못하고 지냈구나, 내가 정말 외로웠던 것일까 같은 생각들 등등.
나는 이 곳에 오기 전 <사회 철학의 이해>에서 지금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더 중요하다고 방점을 뒀었고. 특히 그나마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내 의견을 고수하기 보다는 타협의 여지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도 있었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정말 좋아라한다면서, 너네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면서, 취해서 혼자 열라 떠들었을 생각을 하면... 나 역시 '이 판'을 벗어났을 때 내 의견이 꽤나 강하고, 표현하기를 꽤나 좋아하는 사람인가보다 같은 생각이구나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술자리 최고 진상을 부렸다는 게 -_-... 아오... 한동안 술은 당연히 자제하겠지만, 뭔가 스스로를 잘 돌아보지 않는 내게 내 안의 무의식을 마주하게 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서.. 도대체 고삐를 놓으면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거지, 내가 정말로 속 깊은 데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뭔지 같은 생각에 당황스럽다.
2015.01.11.
Paris Grand March 'Unity Rally'
- 언론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온 지도자들을 조명했을지 모르지만, 150만이 넘는 사람들이 쏟아져나온 거리의 현장에서는 적어도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양한 방식으로 내뿜었고(한국의 집회 문화와 너무나도 다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또 테러의 위협에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내가 있는 이 곳이 프랑스 '공화국 République'임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
2015.01.10. & 2015.01.14.
기억의 장소(Les Lieux de Mémoire, Realms of Memory)
<Charlie Hebdo>와 관련한 글들 - 아카이빙용
<Charlie Hebdo>와 관련한 글들 - 아카이빙용
1. https://www.facebook.com/younguka/posts/400163186815112 : 테러 발생 직후의 풍경 (김영욱 님의 글)
"사건이 발생한 건 1월7일 수요일 오전이었고 곧 뉴스가 전국에 퍼졌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국립도서관 휴게실에서 나와 수다를 떨던 친구가 8대학 철학과로부터 단체메일을 받았다. 모든 수업은 중단되었고, 오후 5시부터 레퓌블릭 광장 그러니까 공화국 광장으로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건 발생 단 몇 시간만에 시민들의 자율적인 집회가 조직되고 예고되었다. 그날 저녁 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고, 전국적으로는 십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즉각적인 행동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직 테러범들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안전'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파리에 지내는 한국친구들의 sns에서는 쉽게 한국의 지인들이 안부를 묻고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광장에 나가는 시민들, 경찰, 언론은 안전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프랑스 전체가 진심으로 공화국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행동했다. 공화국의 운명이 자신의 안전이나 입장보다 우선이라는 듯이 행동했다. 그리고 이 위협에 맞서 프랑스는 단결해야 하고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자동적인 명령으로 하달된 듯 보였다. 올랑드와 사르코지는 손을 맞잡았고 그것이 정치인의 제스처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손을 맞잡게 하고 공화국의 가치와 '단결'을 말하도록 하는 가치체계는 실제적이고 강력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을 광장으로 모으고 그들 모두가 분노에 찬 얼굴을 맞대고 구호를 외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는 비록 그것이 이데올로기일 뿐이지만 강력하고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한국의 시민들에게 이와 같은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통일성, 정체성을 관찰할 수 있을까? (...)
"정치체의 운명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것을 증명하고 함께 싸울 의지의 표현으로서 말을 다듬고 모으는 이런 행위들을, 나는 일단 조심스럽게 '-듯이'라는 수사를 통해 묘사해야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순수함같은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공화주의의 실체는 어떤 사회구조나 경제적 역학이 만들어낸 역사인 것만큼이나 이런 이데올로기의 구체적 작동과 효과를 본질로 삼는다. 이 밑에서 돌아가고 있는 사회적, 물질적 관계에 대한 분석 혹은 이 이데올로기가 감추고 있는 숨겨진 전략, 위선의 폭로는 곧장 과학적이고 안심시키는 결론으로 성급하게 가려고 애쓴다. 나는 우선 프랑스인들이 이렇게 행동하도록 하는 신념, 감정,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 이상을 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것이 아무리 위선적이고 정치적인 전략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정당하고 필요하다고 믿는 이념 혹은 위선을 지키려고 하는 프랑스인들의 순수함 혹은 순진함이 약간은 부러웠다. 그런 것을 모두 걷어버리고 모든 것이 결국은 힘의 대결이고 생존투쟁이 아니냐고 반문하기 시작할 때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한국사회의 경우를 통해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프랑스 공화주의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나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고, 프랑스 사회를 규정하는 해석의 장이 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멜랑숑부터 르펜까지, 프랑스의 정치인이라면 '자유, 평등, 박애'의 해석을 시도할 뿐 이 세 주제를 부정하거나 벗어나진 않는다. 한국 또한 공화국이다. 나는 오늘 이곳의 정치인과 시민들이 끊임없이 말하는 '자유, 평등, 박애' 혹은 '톨레랑스'를 들으며, 한국이라는 공화국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통일성을 부여하는가 하고 자문했다. 떠오르는 것은 '홍익인간' 뿐이었다. 그러니까 청동기시대의 이념과 20세기 신생 공화국의 이 기묘한 조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늘도 나는 국립도서관에 앉아서 하루를 보냈다. 그곳에서 매일 보는 사람들은 모두 몇겹의 해석과 비판을 다시 해석하고 비판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오쯤 안내방송에서 테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정당성을 지지하기 위해 로비에 모여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갖자는 제안이 나오자 단 몇 명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이 공부를 멈추고 로비로 나갔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앉아 있었다. 수많은 자리에 수많은 책들이 읽는 사람 없이 펼쳐져 있는 광경이 섬뜩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우리의 정치체는 우리 공동의 운명을 표상하며, 그 운명을 규정하고 개선하기 위한 우리만의 방법이 있고 모두가 그것을 가지고 나와 대화해야 한다 - 이틀 동안 내가 받은 인상은 전혀 복잡한 것이 아니다. '큰일이 나면 일단 모두 나와 얼굴 보면서 얘기하자'가 아직은 먹히는 곳, 자신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가치들을 계속해서 해석하고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기억하려고 애쓰는 곳, 정치적 올바름과 역사적 과오는 따로 묻더라도, 한국인으로서 이런 광경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 진짜 프랑스빠 아니다."
2. http://slownews.kr/36230 : "테러는 테러다: 프랑스 vs. 이슬람 관극틀의 문제점" (김주원님의 글)
"1월 9일 자 경향신문 1면은 “과격한 표현 자유”와 “호전적 근본주의”를 두 개의 극단적 대립항으로 놓았다. 같은 날 이택광 교수의 경향신문 칼럼은 샤를리 엡도의 만화가들과 한국의 극우를 유추의 같은 항에 놓았다. 이들의 글에 따르면 총격 사건은 비판을 겪지 않은 전통적 가치들이 정면으로 충돌해서 생긴 결과인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이 사건은 테러다. 굳이 슬픔에 빠진 프랑스인들보다 먼저 이론적 성찰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가치들의 방정식을 짜는 것보다 이 ‘프랑스적’인 가치들이 어떻게 하나의 신화를 이루고 있는지 보아야 할 것이다.
테러에 맞선 추모와 연대의 목적은 한겨레 조일준 기자의 기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기로에 선 톨레랑스”를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국가적 특수성의 위기로 가공하는 것은 무고한 희생과 절박한 애도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사회적 위기를 겪는 이들에 대한 연대의 태도도 아니다.
쿠아치 형제가 프랑스에서 자라났다는 것은, 그들의 좌절과 분노가 프랑스에서 배양되었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내에 이미 그들을 극단주의의 광기로 이끌 수 있는 시스템이 안착했다는 것, 나아가 그들의 무서운 성장을 프랑스 사회 주류의 담론과 치안 당국이 방치했다는 것을 뜻한다.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는 이슬람 극단주의의 용서할 수 없는 도발이지만, ‘문명의 충돌’인 만큼이나 프랑스 사회 내의 정치경제적 갈등의 폭발이다. 차라리 이렇게 묻는 게 낫다.
9·11 때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조종사들이 미국으로 비행기를 몰았다. 샤를리 테러에서는 이라크로 가려다 잘 안 된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에서 테러했다. 14년 동안 서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파리의 테러와 관련해서 연대를 표하고 교훈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개념들의 이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분석이다. 프랑스인이 가치를 먹고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프랑스를 소비하는 방식이었다. 프랑스라는 기호, 프랑스에서 연상되는 의미망과 이미지가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세련된 개념과 문제적인 가치들이 있고, 이를 통해 프랑스는 서구의 다른 나라들과 차별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 글에서 인용한 기사들은 프랑스에 대한 한국인의 스테레오타입에 사건을 끼워 맞추고 있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라는 스테레오타입을 제시하는 순간, 스테레오타입에 맞지 않는 사람, 프랑스 사람이 아닐 것 같은 프랑스 사람들, 다수인 소수자들은 배제된다.
표현의 자유와 종교적 극단의 대립이라는 프레임은 현재 프랑스 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이 프레임에 머무는 한 우리의 이해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될 것이다. 그 프레임은 프랑스 사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국민 정체성과 이슬람의 문화적 정체성 사이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계급적 정체성 문제가 매몰되는 한, 프랑스가 테러의 악몽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를 좀 더 유물론적으로 봐야 한다."
3. https://www.facebook.com/eunha.park.9406/posts/690099544435714?fref=nf : 테러 직후 표현의 자유에 관한 프랑스 언론의 반응과 미국·영국의 태도는 또 결이 조금씩 달랐는데 이에 대한 실마리를 주는 박은하 님의 글
"샤를리 에브도 총격테러 사건 이후 BBC는 무함마드의 묘사를 금지한 내부 규정을 개정했고 뉴욕타임스(NYT)는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을 싣지 않기로 했다. NYT는 사설을 통해 "테러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는 의견도 밝혔다. “비겁한 결정”이라는 언론학자의 비판에 NYT편집장이 나서서 반박했다고도 한다. ‘미국에서라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강박 때문에 한 마디도 못할 것’이라고 누군가 언급한 것을 봤다. 미국 진보의 교조주의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 말이겠다만 그 교조주의에도 역사적 맥락이 있다. 프랑스에서 (왜곡과 날조를 포함한) 풍자와 조롱할 권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것은 절대왕정이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시민사회가 칼날을 빼앗아 온 역사 탓인 것이고 (프랑스 혁명 전야 위력을 발휘한 전단지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이런 것이 아니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동성애 및 근친 포르노그라피였다!) 미국사회가 언어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강박을 가진 것은 이 나라가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서 성장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른 표현에 대한 집착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작정 타도 혹은 수호할 대상으로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이 개념이 왜 등장했는지부터 생각해야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4. 한편 이와 관련하여 논쟁이 되었던 <나는 샤를리 엡도가 아닙니다> 라는 NYT의 글 http://www.nytimes.com/…/david-brooks-i-am-not-charlie-hebd… 뉴스페퍼민트 및 외신번역프로젝트에서 한국어로 소개된 후 많은 공유가 되기도 했다. (각각 http://newspeppermint.com/2015/01/11/i-am-not-charlie-hebdo/ ,https://www.facebook.com/TranslationProject/posts/784802144890401)
하지만 두 글 모두 번역의 뉘앙스와 관련하여 공통된 지적이 있는데, "샤를리 엡도 작가들은 지금 표현의 자유를 대신하는 순교자로서 마땅히 올바르게 추앙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미국)을 돌아봅시다." 라는 첫 문장에서 보듯, 그동안 미국 언론의 표현과 관련하여 규제 및 검열이 있는 상황을 이야기함으로써 이 상황에서 갑자기 'Je suis Charlie'를 외치는 모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읽어야하는 것이 보다 맞는 것 같다.
몇 가지 댓글을 인용하자면, "사실 브룩스 글의 의도는 단순히 '생각이 다른 것을 테러와 법으로 제거하는 것이 억압적 방식'임을 지적하는데 있지 않고, 좀더 노골적으로 '프랑스에 비해 미국은 아직도 혐오발언 등에 대한 규제가 너무 심하다 (그러니 혐오발언에 대한 규정과 법을 없애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있습니다. 브룩스의 보수적인 정치색을 생각하면 단순히 '시민사회의 몫'을 얘기하는 것을 넘어, 지금까지 미국사회 속 인종주의를 극복하고 인종적 소수자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민간/공공 영역에서 다양한 혐오발언 규제 문화와 규칙을 만들어온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Public reaction to the attack in Paris has revealed that there are a lot of people who are quick to lionize those who offend the views of Islamist terrorists in France but who are a lot less tolerant toward those who offend their own views at home. 파리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대중(미국인들을 지칭)이 보이는 반응을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대중은 프랑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관점에 대해 공격하는 이들은 발빠르게 떠받든다. 그런데, 같은 대중은 자기안방(미국 지칭)에서 자기 자신들의 관점을 공격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관용적이다." ( Sungwon Yoon 님의 담벼락 댓글에서 인용)
뉴스페퍼민트는 듀나 게시판에서의 번역 지적(http://www.djuna.kr/xe/board/12123326)을 통해 일부 수정한 듯.
5. http://slownews.kr/36221 : "나는 샤를리다"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Nara Lee 님의 글
"400만 행진에서 ‘반이슬람’을 읽지 마라
그러니 오늘 집회에 운집한 사람들에게서 프랑스에 확장하는 반이슬람주의를 읽어내려는 시도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더불어 프랑스 시민의 용기를 서구의 한가한 부르주아 윤리로 냉소하는 일에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차별과 공포에 맞서는 시민의 참여와 연대, 용기에 관해 우리는 이야기해야 한다.
수백만 인파가 운집하는 집회 현장은 질서정연하거나 평화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평소 적대하는 이들끼리 생각의 차이가 묻어나는 구호를 외치다 주먹질을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화가 나면 분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분별없이 쓰레기통을 걷어찰지도 모른다.
이곳에 살면서 프랑스가 톨레랑스의 나라라거나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라는 말을 실감하며 감격에 겨워하는 일은 그다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는 이들을 쉽게 수상하거나 피곤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사회, 어디에서나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제일 먼저 강조되는 사회에서 자란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프랑스 사람들의 불평불만, 일사불란함이라곤 모르는 프랑스 사람들의 행동에 금방 짜증을 느끼게 된다.
“나는 샤를리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프랑스 사람들의 자유분방함은 집회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뜬금없이 이 사태에 대해 이 질문에서 시작해본다. 몇 명이 난동을 부렸다고 해서 어떤 집회현장에서 집회를 여는 이들이 주장하는 바의 가치가 훼손을 받아야 하는가? 시끄럽고 통제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정치적 주장을 할 가치가 없는 이들인가?
이 질문은 사실 민주주의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질문과 일치한다.
시끄럽고 서로 달라 통제하기 힘든 사람들, 곧 시민의 자유를 제약하지 않는 것, 자유를 훼손하려는 치안주의자에 맞서는 것, 생각이 다른 이를 처단하겠다고 주장하고 실행했던 이들, 또는 이들의 배후가 조장하는 공포에 맞서는 것, 적어도 이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집회에서 방어하려고 하는 가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샤를리다”는 함께 거리에 나서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되어야 한다."
(...)
"이민자 급증 = 프랑스의 이슬람화?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 언론은 ‘프랑스적 가치의 시련’이라는 틀로 많은 보도들을 내 보냈다. 이 테러를 프랑스적 가치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는 편은 극우정당과 그 지지자들, 우파 강경세력이다. 프랑스에 이슬람 이민자가 급증하며, 프랑스는 점점 더 “이슬람화”되어 가고 있다는 (실제 통계와 꼭 맞아 떨어지지 않는) 소문을 지속해서 확장하며, 유권자를 끌어모으는 이들은 극우세력이다.
‘이민자 급증 = 프랑스의 이슬람화’라는 극우파 선동에 대해 올랑드 대통령이 이민의 장점과 이민자의 기여를 언급한 후 프랑스 언론은 “이민 통계에 대한 편견에 찬 열 가지 오해”라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테러 사건 이후 계속 “우리는 샤를리다”,“나는 샤를리다”,“자유를 위한 투쟁”,“저항하라” 같은 제하로 편집하는 리베라시옹은 테러 사태가 일단락된 다음 날 사설(“민중이여 일어서라”)에서 테러범을 지칭하며 단 한 차례도 “이민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6. http://slownews.kr/36224 : 샤를리 엡도와 이슬람을 모두 존중하는 방법: 바람난 유태인 유부녀와 유목민 청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샤를리가 터번을 쓰고 턱수염을 기른 남자를 그림으로써 궁극적으로 조롱했던 대상은 이슬람이 아니라, 그 이미지만 보고도 자동적으로 이슬람을 떠올렸던 사람들이었다. 샤를리는 터번과 턱수염의 남자를 그려놓고 “난 유태인이라고!”라고 써놓기도 했다.
터번 안 쓰고 턱수염 안 기르는 무슬림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만 보고도 자동적으로 이슬람을 떠올리는, 그런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마음 속에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차별주의자가 아닐까?
[사우스파크]나 [보랏]도 샤를리와 비슷한 유머 기법을 사용한다. 그 두 작품을 두고도 차별적이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그 두 작품이 진짜로 ‘풍자’하는 대상은 바로 그 사람들 자체다."
(...)
"“살인은 용서받지 못할 가장 큰 죄”라고 하는 것은 서구의 세속화된 가짜 윤리가 아니다. 바로 이슬람의 하나님이 이슬람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직접 그렇게 말한 것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살인을 저지른 그 테러범들을 이해하자는 태도야말로 가장 이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진정으로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테러범들에게 서구 제국주의의 피해자, 약자라는 이름의 방패를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열린 문화와 관용을 옹호한다’는 윤리적 지위를 가지려고 이슬람을 영원한 타자성의 감옥에 두고 싶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테러리즘을 계속해서 이슬람에 결부시킨다는 점에서 이슬람 혐오라는 동전의 다른 한 면이다. 테러범들은 그저 광적인 범죄자일 뿐, 종교적 영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테러리즘은 이슬람이 아니다. 바로 샤를리 테러 사건은 그 둘 사이에 헤엄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진정 이슬람을 존중하는 자세는 이슬람의 이름을 빙자한 끔찍한 범죄를 면죄하지 않는 것이다."
7. https://www.facebook.com/coline.merlo/posts/10152604918478388?fref=nf&pnref=story : "우리는 샤흘리다 "와 관련한 한 프랑스인의 글, 아래 마지막 문단 번역은 최엄윤님
Parce que si « nous sommes Charlie », depuis hier, ce n’est pas que nous nous crisperions sur une identité où vin et saucisson tiendraient la première place, c’est que nous croyons qu’il est possible de parler sans se laisser impressionner par quelque pouvoir que ce soit. C’est parce que nous nous efforçons de garder l’esprit clair, et l'action cohérente - ce qui est une façon de mener le djihad intérieur. Autrement dit, si on peut affirmer par les temps qui courent que «nous sommes Charlie», c'est pour ajouter immédiatement après : "car nous sommes musulmans".
어제부터 시작 된 <우리는 샤흘리다>는 우리가 와인과 쏘세지로 대표되는 정체성으로 축약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영향 받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밝은 영혼과 모순 없는 행동을 지켜 나감을 의미한다. - 그것은 내면의 성전으로 이르는 한 방법이다. 달리 말하자면, 만약 우리가 현재의 <우리는 샤흘리다>를 표명한다면, 다음 즉시 "우리는 무슬림이다"를 덧붙이기 위함이다.
8. http://www.lemonde.fr/…/comment-avons-nous-pu-laisser-nos-e… : 현재 프랑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글. 샤를리 뿐만 아니라, 테러를 일으킨 자들 또한 프랑스가 낳은 아이들이었음을 말하며,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집단적 책임감을 촉구한다.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 한글 번역은 http://pariscopain.fr/archives/1502에서 인용. 사건 발생 직후 교외 생드니 지역 학생들의 반응을 통해 프랑스 사회 내에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에 대해 조명했던 르몽드의 기사(http://www.lemonde.fr/…/a-saint-denis-collegiens-et-lyceens…, 한글 번역은 http://kk1234ang.egloos.com/3018629) 가 화제가 되었음을 상기한다면, 매우 적실한 시점에 적합한 방법으로 문제제기를 한 글이 아닌가 싶어 무척 반갑다.
"샤를리 에브도를 죽인 테러리스트들이 가증스러운가. 문제는, 그들이 그 흔한 방리유의 젊은애들의 억양을 갖고 자유롭게 불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이 두 살인범들은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다. 우리는 바로 그들과 똑같은 목소리와 억양과 단어들을 매일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듣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이 사건에 책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샤를리 에브도가 우리의 형제였고, 우리는 그들의 죽음 앞에 울고 있다면, 그들을 죽인 자들은 프랑스가 낳은 아이들이다. 고아였고, 시설에 방치되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의 형제들을 죽었다. 비극이다. 이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 이제, 수치심과 그리고 분노를 말하자. 고통과 분노보다 훨씬 더 불편한 심리적 상황.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말해야 한다. 대체 이럴 땐 어찌해야 할까? 우리가 살인범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해 수치를 느낀다면.
그 어떤 미디어도 이 수치를 말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이 사건에서 우리가 나눠가져야 할 책임을 말하지 않는 듯 하다. 이것은 바로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이다. 어리석은 자들과 광기에 휩싸인 자들을 그저 감옥에 쳐 넣고, 거기서 그들을 사악하게 조종할 구루들을 만나 그들의 장난감이 되도록 방치하는 저 국가. 학교에 들어갈 재정을 삭감하고, 지원을 없애는데 혈안이 된 저 국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체류증도, 선거권도, 이빨도 없는) 을 방리유의 빈민촌에 쳐 박아 놓는 저 국가. 그리고 우리가 부르짖는 사회적 가치는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이 정신에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정치인들.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이다.
이 나라의 지식인들, 사상가들, 교수들, 예술가들, 그리고 언론인들이여.
우리는 우리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죽은 것을 보았다. 그들을 죽인 사람들은 바로 프랑스의 아이들이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처한 이 상황 앞에 눈을 똑바로 뜨자. 어떻게 우리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보다 더 세속적이고(종교적임의 반대의미로) 더 교양있으며, 더 정의롭고, 더 자유로우며, 더 평등하고, 더 박애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희생자들과의 연대하는 마음으로 <우린 모두 샤를리다>를 외치는 것은 우리가 이 테러리스트들에게 지고 있는 집단적인 책임감을 배제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샤를리다. 그리고 우린 또한 세 명의 살인자들의 부모이기도 하다."
9.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98478 : 프랑스 테러, 가치의 양극화와 사회의 이중성
"사건이 벌어진 책임이 <샤를리 에브도>에 있는지 아니면 이슬람 (극단주의)에 있는지에 대한 논쟁과 표현의 자유와 종교에 대한 논쟁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정작 범인들이 놓여 있는 처지와 상황, 근간에 대한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동시에 왜 이슬람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렸는지에 대해서도 찾기 어려운 마당이다. 그렇게 모두가 도저히 답이 나올 수 없는 논쟁을 벌이는 사이에 편견과 혐오는 계속 늘어나고, 다시 그것들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준비를 하고 있다. 대체 무엇이 또 다른 테러와 범죄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확실한 답은 내리기 어렵지만, 최소한 확실한 것은 지금의 논쟁들로 답을 찾기엔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지금 진정으로 필요한 시각은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놓여있는 환경과 원인을 직시하는 것이 아닐까."(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436) 에 가장 걸맞는 답이 되는 글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