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낸 기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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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tablackroses
조낸 기엽다
사주 재미따
현아와 대화하다가 알게 된 것
대부분의 엄마들은 딸을 귀여워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서 무척 신나서 엄마에게 어릴 때 나를 얼마나 귀여워 했냐고 물었다
엄마는 딱히 나를 귀여워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알고 있던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내 유별난 성격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오늘은 정말 정신 없는 하루였다
새벽 내내 비가 오자 늘 그랬듯 정신병이 터졌고 구조요청을 들은 J가 나를 구하러 왔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세이브했다고 J는 엄청 좋아라 했다 식은땀 범벅에 바닥을 겨우 기어다니는 나의 입 안으로 J가 물을 조금 흘려넣어 준다 좀 살 것 같았다 좋은 꼴 보여 주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늘 극단의 직전에 오는 사람이라서 좋다고 했다 집에 있기 싫어 J의 집에서 잤다 J의 집에서는 늘 머스크 향이 난다 J가 먹여 주는 밥을 먹고 이불을 덮고 잠에 들었다 오랜만에 꿈을 꾸지 않은 것 같다
J가 출근길에 강남에 데려다 줘서 카페에서 책을 읽고 과외를 하다 정신과에 갔다
오랜만에 선생님을 뵀다 선생님 방에 들어가면 선생님은 늘 어깨와 고개의 긴장을 풀고 방을 둘러보라고 하신다 뭐가 변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이 방의 무엇도 연우씨를 해치지 않는다는 걸 믿으라고 하셨다
나는 더 밝아졌고요 많이 극복한 것 같아요 이제 나아진 것 같아요 말하자
선생님께서 그런데 눈빛은 더 불안해졌네요 하셨다 제스쳐도 불안의 제스쳐에 가깝다고 그랬다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혀깨물고죽고싶은기분
이놈의 불안장애는 언제쯤 괜찮아질까요! 나아진 것 같은데요! 애써 웃으면서 물었다 선생님은 정말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서 내 질문의 의도를 금방 파악한다 선생님의 그런 점이 좋다 선생님은 내가 나아지는 과정 속에 있다고 하셨다
천 번의 밤
천 번의 체위
천 번의 두드림
집앞 사거리에서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 기분으로 내내 살고 있다 그런데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를 몰라서 찾을 수가 없어요… 나의 불안장애는 보통 이런 식이다 그를 찾아서 안아 줘야 해요 다 괜찮아졌다고 꼭 말해 줘야 돼요 아직 세상도 삶도 망하지 않았다고 알려 줘야만 해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사람을 구해야 해요
병원 진료가 끝나자 반차를 쓴 J가 데리러 왔다 한참을 J의 차에서 숨죽여서 울었다 누군가가 마중 나오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J는 정말 약은 여자다 내가 가장 약하고 무너질 때 불쑥 나타나서 나의 모든 걸 다 받아 준다 내 두서없는 이야기를 말 끊지 않고 다 들어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나 의견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언제나 자신의 말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준비 자세를 보면 어딘가 맥이 풀리고 지쳐 버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좀 참으면 된다 어차피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몇 없다 난 참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니까 참고 견디면 되는 것이다
무당팔자라서 사람들의 말을 들어 주며 살아야 한다고 했던 신괘가 생각난다 다들 나를 보면 하소연을 하고 싶어한다 다들 이러고 사는 거 아닌가? M은 그럼 너는 누가 보살펴 주냐고 정신 똑자러 차리고 살라고 내게 욕을 했다
그런데 그냥
사거리에 밤 내내 서 있는 나를 누가 안아 주러 올 때까지 이제 다 괜찮아졌다고 달려와서 말해 줄 때까지 영영 견디면 된다
사랑해 그렇지만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내리기
나보다 크고 힘도 세고 인생에 남은 거라곤 자존심밖에 없는 애가 사랑해달라고 울면서 빌면 너무너무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구 으깨 버리고 싶자나
아름다웠던 그 사람이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지옥에 살고 있다
요즘엔 지친 상태로 지내는 것 같다 지친 상태로 일어나고 지친 상태로 생활하다 지친 채 잠들고 지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렇게 잔뜩 소모되고 나니 남들의 말이나 반응에 무뎌진 건 장점 같다 난 더 이상 타인들에게 조심스럽지 않다 그들 역시 나에게 조심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기쁜 소식은 아껴쓰던 물질적인 것들을 막 다루기 시작했다는 거다 잔뜩 모아둔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이고 르라보 바디로션을 매일 밤 온몸에 바른다 빗은 더 비싸고 좋은 걸 사기 위해 이전의 것을 버렸고 4년동안 갖고 싶었던 침구를 결제했다 예전에 왜케 악착같이 사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는 천천히 다 내려놓고 있다
아름다웠던 그 사람이 어린 여자아이의 뺨을 그 새벽에 내려쳤다는 말을 듣고
수 년 전 강남역에서 전연인에게 맞고 있던 내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그날 세상이 멸망한 줄 알았는데 나만 망했고 모두가 멀쩡했다 그날의 배신감이 오늘날에 밀려온다 평생 내가 맞고 있던 모습을 도무지 그려 볼 수가 없었는데 눈앞의 어린아이가 맞았다는 말을 듣자 모든 광경이 건축물의 설계도처럼 그려지기 시작했다
매질하는 사람들의 현상이 모두 선명해졌다
아름다움은 다 개구라고 허상인가?
내가 전연인의 개로 시 쓴 거 지금도 말하고 다닌다는 거 듣고 헛구역질했다
중첩되는 얼굴의 이미지
두 개의 어린 얼굴
망한 얼굴
피해자인 아이는 계속 계속 운다 그치지 않는다 그날 앉아 있던 술집이 그 아이의 눈물로 가득 차서 모든 게 떠내려갈 것 같았다 안녕 악착스러웠던 20대 안녕 여름 안녕 개같은 전연인아… 헤어지고 집에 왔는데도 그 어린아이는 계속 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울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지 그래도 선해야지 그래도 사랑해야지 다짐하고
작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보고 있으면 무해한 시를 나도 한 번쯤 써 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제로 써 보기도 했다 친구들이 보면 온갖 욕설과 패드립을 박을 만한 그런 시였다 그리고 쓰면서 엄청나게 불행했다
순진한 이미지를 그리는 동안 한 아이가 맞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쓰자 한 아이가 망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선하다고 말하는 순간 시가 무너진다 세카이노 미라이… 쓰는 순간 미래가 완벽히 암전된다
햐얗고 구김없는 사람이 여전히 무섭다
밝은 것도
모두가 보고 있으면서 못 본 척할 수 있다는 게 참
근데 천국은 왜 늘 희고 밝은 곳으로 그려질까?
글을 쓰는 동안은 조금 덜 지친다 삶이 풍족할 땐 글쓰는 게 지치는데 삶이 지칠 땐 글이 즐겁다 세상이 아름답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쓴다던 최승자 시인은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친구들과 최승자 시를 읽으며 좋은 구절을 읽었는데 그게 다 망해가는 풍경이었다
사랑 받고 자란 걔
가만히 보니 너는 엄마가 필요한 얼굴이구나 엄마는 많을수록 좋다고 네가 말하고 그래 우리는 서로에게 엄마가 되어 주어야 해 나는 너를 안아 주고 싶어 쏟아지는 얼굴을 쓸어담아 주고 싶어 하지만 엄마가 필요한 얼굴이 무엇인지는 알아도 엄마의 얼굴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엄마한테서는 자주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런 소리를 듣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지 그것이 들릴 땐 발꿈치를 세워 걷고 방문은 살살 닫아야 해 망가짐을 방해하면 안 돼 망가지는 모든 것들은 고귀하거든 그건 창의적이다 완성된 생일 케이크를 주먹으로 내리치는 순간처럼 환상적으로 벽지와 얼굴에 튄 생크림의 비언어처럼 흰 빛을 핥아먹는 축축한 혀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찌르는 꿈을 꾼다
가지각색으로 처음엔 칼처럼 일차원적인 물건이었다가 점점이 다채로워진다
유리나 잘린 혀 잘린 도마뱀의 꼬리 가끔은 잘린 귀로 서로를 찌르고 있길래 너희는 정말 상처 주는 법을 모르는구나! 외치며 한참 웃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법도 모르는구나
이 모든 게 나의 꿈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전쟁 직전에 있다 물론 꿈의 이야기다
무엇을 챙겨야 하지
헤매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집에서 죽었다는 걸 깨닫는다
원룸
하나의 방에 하나의 침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빈 집에서 길을 잃고
엄마 엄마 하고 울었다
그리고 이것 역시 나의 꿈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해가 진 거리에서 우리는 여전히 엄마가 필요한 얼굴이다 버림 받은 것과는 다르지만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얼굴
나는 네게 나를 산책 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너는 응한다
여전히 네가 서 있는 횡단보도의 건너편에서
누가 건너오라고 손 흔들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는다
엄마의 얼굴을 연습한다
우리는 깨지면서 다른 무언가가 되어 가는 중인데 그런 건 남들한테 들키지 않게 안쪽으로 쏟아진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의 일기들을 쭉 봤다 마음에 드는 글을 발견했고 그때의 나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왔다
라감: 입학 그만해
숨막혀~~~
1 막학기 졸작과 학원 운영과 부업 병행은 졸라 힘들었다 동기들이 대체 어떤 금지된 힘을 끌어다 쓰고 있는 거냐고 물었지만 해파리 마법소녀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악마와 계약했다구 했다 종강과 동시에 무료해진 나… 혐오해… 응원해… 끔찍해… 기특해… 다 때려치울래… 작업할래… 꿈쩍 않고 있을래… 어디든 나갈래… 대학원 안 갈래… 논문 쓸래… 절필할래… 시 쓸래
2 그런데 유일하게 양가적이지 않은 건 다 살았으면 하는 마음임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해 봤다
3 극악 난이도의 데일리 퀘스트를 반복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수면장애를 앓는 나에 대하여… 다시 혐오해… 아니 응원해…
4 그래도 전시는 잘 끝났다 올해도 꼴초락스존은 작업을 하기로 했고
그간 노력해온 것들에 대한 보상. 그리고 먼 미래의 나에게 다른 보상을 주기 위한 노력.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자주 고민한다. 결국 논문을 쓰게 됐구나 하고 헛웃음이 나오고 도망도 치고 싶었는데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연세대 교수님들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울렁거렸다. 꼭 수업을 듣고 싶은 교수님들이 벌써 세 분이나 생겼다. 그분들이 살아온 세상을 듣고 싶다. 지금보다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시 쓰겠다고 까불며 서울예대에 입학했던 나에게 교수님들이 해 주셨던 말들은 내가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세계의 일들이었다. 공부는 여전히 힘들고 내가 이 지긋지긋한 대학을 더 다닐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배운다는 것은 내 세계를 확장하는 일. 이전의 세계를 허물어뜨리는 일. 그리고 다시 태어나 보는 일. 내가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뭔가를 하고 있어서 다행인 것 같다.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거다. 빛이 무섭지 않은 사람이 될 거다.
사람이 고장나는 순간은 슬픔과 직면하지 않으려 할 때예요 슬픔과 맞닿아 그 고통을 온전히 느끼지 않으면 겉만 멀쩡하고 속은 부패되어 갑니다 회복탄력성이 떨어지고 결국 가슴 안쪽은 썩어 문드러지는데 겉으로는 무미건조한 얼굴을 가진 괴물이 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마음 속에 경첩을 모두 젖혀놓고 목놓아 울지도 못 하며 꺽꺽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감히 “추모가 시끄럽게 수백 명 우르르 몰려가서 텐트 치고 촛불 켜야만 추모냐”(서이초), “국가로부터 돈 뜯어먹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세월호) “옆에 여자가 있는데 남자를 찌르네 여자 찔렀으면 스코어 더 올렸을 텐데”(신림역칼부림)라는 괴물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거예요 본인이 고장났음을 인정하세요 더불어 슬픈 자신을 돌보지 못했음을 아세요 슬픔은 인간이 사건을 통해 가장 마지막으로 느끼는 감정이며 이별의 과정이자 새로운 재회의 문입니다 그것을 외면하지 마세요 슬픔의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다음의 세계 역시 없어요
가끔 생각한다
지은 선생님의 이름에 마음 심이 두 개나 들어간다는 것을
속상할 땐 쇄골 밑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라고 알려 주시던 것을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것도 용기라고 정정해 주시던 날을
과제와 일과 투고에 지쳐 있을 때 야위었다며 식사를 대접해 주시고 내가 먹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봐 주셨던 그 여름을
사랑이 많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슬픔의 문을 통과해왔는지를
오빠 왜 잘 먹고 잘 살아요 왜 잘 자요 왜 숨도 잘 쉬고 걷는 것도 잘하고 사람도 잘 만나요 오빠 왜 애를 개 패듯이 팼어요 페이스북에 며칠 전에 올린 프로필 사진 뭔데 얼굴에서 빤들하게 광이 나요 오빠 왜 키가 150밖에 안 되는 애가 애를 낳고 왔는데 돈 한 푼 안 주고 한여름 에어컨도 없는 데서 식당일 시켰어요 왜 18살밖에 안 된 애가 새벽 4시에 신발도 똑바로 못 신고 우리 집까지 걸어오게 했어요 왜 애가 시어머니한테 미친년 시발년 온갖 욕 다 들을 때 룸싸롱이나 다녀왔어요 오빠 왜 10년째 지옥 안 가요 왜 오빠가 살아 있어요
언어를 잃은 자들을 위해서라도 문학은 계속돼야 한다
내가 정신과 약을 일정기간 복용하다가 알아서 딱 끊는 걸 보며 주변 지인들이 어케 끊냐고 물어보는데… 난 그냥 어릴 때부터 먹어서 조절이 되는 줄 알앗음… 오늘 보니 개쎈 약 먹고도 꾸역꾸역 안 자려고 버티는 나를 보면서 의학기술을 이길 정신력이면 머든 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이제 이것을 조은 방향으로 써야 하는
엄마는 죽고 싶은 사람한테 죽지 말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살아 줬으면 좋겠다는 말은 해도 되는 거 아닐까
모두 살았으면 좋게따 정말정말루
지난 일요일엔 5년만에 고향 친구랑 전화했다. 제주도를 벗어나 천안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고 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로 꼭 병원에 가라고. 아프지 말라고 했다. 6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다. 친구는 분명 또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오늘 새벽 2시에 부고를 들었다.
친구에겐 동생이 있었다. 언젠가 10년 전쯤 들었던 이야기다. 돈 많이 벌고 성공해서 똑부러지고 야무진 동생 데리고 지긋지긋한 제주도 뜰 거라고. 잘 살 거라고. 친구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 친구가 온몸에 멍을 달고 온 날에 돈이 좀 있으면 24시 카페에 데려가 뭐라도 먹였다. 돈이 없으면 새벽 동안 삼무공원 그네에 앉아 말을 들어 줬다.
그렇게 작은 몸에 멍이 다닥다닥 가득 찬 걸 보며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어 주저하던 새벽이었다. 나는 네가 진심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기를 바랐다. 오늘 새벽, 10년 전 친구에게 말로만 들었던 동생한테서 연락이 왔다. 10년 전에 상상했던 어린 아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성숙했다. 네가 그 똑부러지고 야무지다는 동생이구나, 싶었다. 밥은 먹었는지부터 걱정됐다.
친구가 사흘 전 먼저 전화를 할 수 있냐고 물어 봤던 이유가 뭐였을까. 내가 더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던 거 아닐까. 마지막 통화 목록 중 하나가 나였을 텐데. 그 애는 어떤 종말을 맞이하기 직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정말 티가 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 애는 어떤 슬픈 말도 울면서 한 적 없었다. 개처럼 맞고 온 날에도. 개같은 인간과 살 때도. 불길한 조짐 같은 건 끔찍하게 투명하구나. 가이아의 품으로 돌아간 너는 이곳에서의 아팠던 기억을 모두 잊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