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을 쏟을 다른 존재가 필요해... 그게 강아지든 고양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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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을 쏟을 다른 존재가 필요해... 그게 강아지든 고양이든...
다시 돌아갈수 있을까
한 사람이 자꾸 공원을 헤매는 장면을 상정해 본다 두 사람이 물 위에서 노를 젓는 장면을 병치해 본다 한낮의 공원, 하고 떠올리면 떠오르는 것들을 한낮의 공원이라는 말이 대신해 주고 있다. 고수부지의 두 사람, 바글대는 여름의 날벌레들, 모두가 내린 버스에서 홀로 내리지 않는 한 사람 같은 그러한 장면이 이 시엔 없고 영화를 보는 장면이 갑자기 끼어든다 영화 속에서는 사람들이 죽는다 원래 죽기로 되어 있던 사람들이 죽는다 영화 밖에서도 사람은 죽지만 거기에는 자막이 없다. 이 시에는 다른 어떤 시들처럼 사람이 등장하고, 그 사람이 아프거나 슬프거나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공원으로 나오면 잔디를 밟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보인다 그것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쓰인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 현대의 한국어 문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진행된다. 한낮의 공원, 이쯤에서 시선이 멀어지는 것이 좋다 새가 날아갈 수도 있고, 공원을 둘러싼 도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삽입되기도 한다 아니면 더욱 멀리 가거나,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채 시를 끝낼 수도 있지만 잔디를 밟지 않으려고 어디로도 가지 않고 잔디의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이 슬프지 않다. 그렇게 써도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을 조르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사랑을 베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인, <사랑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1 두려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 중 사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어떤 '존재'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어떻게 생겨먹은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어떤 면에서 끙끙대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랑하기 전까지 '나'를 중심으로만 살던 사람이, 이제 나 밖의 '다른 나'를 생각하고 그와 '함께하게' 됩니다. 자전과 공전이 통째로 달라지죠. 그렇다고 상대가 달이 되거나 해가 되어선 안 됩니다. 달이 된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얽매일 테고, 태양이 된다면 내가 그 사람을 맴돌 테니까요. 사랑은 또다른 지구의 탄생입니다. 그래서 서로 끌어당기면서도 충돌하지는 않을 만큼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며 존중하는 관계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연인도 수단처럼 사용되곤 합니다. 천동설에 세뇌된 사람이 지동설을 이해하기 쉽지 않듯, 아무리 뜨거운 사랑을 해도 자아중심성은 단박에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아중심성은 끈덕지게 남아 상대의 자유를 짓뭉개며 내 수단으로 써먹으려 듭니다. 나의 '자아'는 사랑으로 열린 '둘의 나'를 '하나의 나'로 합치려 들죠. 그래서 자아중심성에 틀어박힌 사람을 만나면 관계가 힘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목적으로 대해주지 않고 오로지 수단으로 써먹으려고만 하니까요. 서로를 목적으로 대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아프게 배우고 차갑게 고민하며 뜨겁게 실천하는 성숙한 사람만이 상대를 목적으로 대할 수 있지요. * '낯선 이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마주하며 나의 곁에 너의 자리를 비워둘 때, 비로소 우리는 성숙한다.' 사랑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나를 끊임없이 비우며 상대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절절한 마음으로 땀 흘려야 하는 노동입니다. 상대를 나의 수단으로 대하는 순간, 나 또한 상대의 수단이 되어버립니다. 상대를 내 외로움이나 성욕을 푸는 수단으로 쓸 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둘의 자위'일 따름입니다. 누가 되었든 별 상관이 없기 때문에 상대를 바꿔가며 사랑이라 불리는 자위를 하는 꼴이죠. 사랑의 적은 경쟁자가 아니라 바로 이기주의입니다. 내 사랑의 주된 적, 내가 쓰러뜨려야만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차이에 반대되는 동일성을 원하는, 차이의 프리즘 속에서 걸러지고 구축된 세계에 반대하여 자신의 세계를 강요하려 하는 '자아'입니다.' - 알랭 바디우, <사랑예찬> '2 방황, 참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사랑' 중 나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나'라는 존재와 관계 맺기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누군가와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나를 아는 만큼 남과 소통할 수 있고, 소통해야 사랑할 수 있지요. 그러니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더불어 그동안 머물렀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다른 사람의 삶에 다가가려고 애써야 합니다. 나는 '나'들을 두루 아우르며 삶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자아는 '낯선 나들'에 질겁하여 이를 감추려 하는데, 그럴수록 삶의 응달은 넓고 짙어집니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만 신경 쓸수록 그 안에 짓눌린 감정으로서 나, 무의식으로서 나는 소외되고 외로워집니다. -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Ⅱ. 행복으로 가는 길 / 12. 사랑의 기쁨' 중 * 사람들이 열정을 잃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데 있다. 반대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의 열정을 크게 북돋워준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사람은 여러가지 태도를 취하게 된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유달리 친절한 행동을 하는 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그렇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그 동기가 상대방에게 간파되기 쉬운데, 인간의 본성은 사랑을 조르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사랑을 베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절한 행동의 대가로 사랑을 사려고 애쓰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인간의 배은망덕을 경험하면서 환멸에 빠지게 된다.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심한 절망에 빠져 가끔씩 질투와 적대감을 분출함으로써 이런 절망감을 누그러뜨릴 뿐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람의 생활은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는 본능적으로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철저하고 완전하게 지배하는 습관을 들인다. 자진해서 변함없는 일과의 노예가 되는 태도는 대개 냉담한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면 그런 세계와 부딪히지 않으리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베푸는 사랑의 두 가지 종류 ㅡ 삶의 열정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표현으로서의 사랑, 또는 두려움을 드러내는 표현으로서의 사랑이다. 전자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지만, 후자는 기껏해야 위안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맑게 갠 날,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는 사람은 해안의 장관에 감탄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이러한 즐거움은 오직 밖을 보는 데서 나온 것으로, 그 사람의 간절한 욕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바람직한 사랑은 안전한 배에 탄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견줄 수 있고, 배가 난파당해서 헤엄치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그보다 못한 사랑에 견줄 수 있다. 첫 번째 사랑은 어떤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고 있거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경우에만 가능한 사랑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랑은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사랑이다. 불안감으로 인한 사랑은 안정감으로 인한 사랑에 비해서 훨씬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상대방을 본질적인 특성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이 베푸는 봉사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가장 바람직한 사랑은 서로 생명력을 주고받는 사랑이다. 두 사람은 애쓰지 않고도 기쁨으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둘 다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결국 세상에 대해서도 더 큰 흥미를 느낀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랑, 서로를 단순히 자신의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결합체로 보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자아를 철벽 속에 가두어놓아서 자아를 확대할 수 없는 사람은 설사 직업에서 성공한다고 해도 인생이 베푸는 최고의 행복은 놓치게 되기 마련이다. 세상을 완전히 즐기려는 사람은 지나치게 강한 자아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난 사람이 가진 특징 중에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된다.
피곤....😭
춥다 몸도 마음도.
지겨워 질린다 지친다
언제나 그 끝엔 사랑이 버텨주고 있어주기를..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헤어지진 않기를..
말하는것도 지겹고 피곤하다. 화내고 말해야만 알아주면 어쩌라고.
지치닷
2015.09.17 탑동 맥도날드 with. 콩💕
마음에 있던 모든 기대를 내려놓으니 홀가분 하다
누구나 살면서 자존감이 흔들리는 순간과 만난다. 다만 그 진동의 크기가 각각 다를 뿐이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가 일어날 때 작지만 가장 효과가 있는 연습이 있다. 바로 자존감을 강하게 느꼈던 순간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다. 최대한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좋다. 그때가 언제였고 당신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또 맡은 일을 성공시켰던 때인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유대감을 느꼈던 때인지 기억해 보라.
우리는 결핍감을 주입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에는 점점 더 좋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와 쓰고 있는 것들을 낡아 보이게 만들고 TV에선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연약한 사람들이 출연해 살을 빼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거라고 겁을 준다. 그러나 세상에 일정하게 정해진 행복의 표준 지표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이러한 것들을 갖추면 행복하고 없으면 불행하다는 조건표도 없다. 다만 지금의 나보다 더 즐거워 보이고 자신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그런 기준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삶이란 다른 사람을 흉내 내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누가 채워주나
시작할때 처럼 구질구질 질척거리지 말고 쿨하고 깔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