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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dayz
좋아하는 것들로 구석구석 채운 5,6월의 기록.
아기가 내게 쌓인 불만이 많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느껴지는 “엄마 왜 이제온거야” 라는 원망이 현관으로 들어올 때부터 발바닥에 가시처럼 콕콕 박힌다.
엄마도 많이 보고싶었다고, 이 순간을 위해 오늘 하루도 거뜬히 버텼다고 말해주어도 아직도 마냥 아기인 너는 모르겠지.
마음이 풀어질때까지 기다려준다고 하는데도 그 시간이 아기에겐 부족한가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일수도 있겠다. 워낙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 나니까.
나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끌어안으며 “나낭해 나낭해”(사랑해 사랑해) 하며 내 품에 안기면서도 작은 반발심으로 나에게는 말을 안하는 모습을 보니 속상했다.
실은 아기를 낳기전부터 고민을 했었다. 평생간다는 세 살 버릇이 자리를 잡을때까지 엄마로서 곁에 있어줘야 할까, 돈이 있어야 그나마 유복하게 키울 수 있을테니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할까. 물가는 오를때로 올라서 둘이 나가서 벌지 않으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사회가 되었고, 다행히 목표했던 기간 내에 재취업을 했지만 일과 육아의 양립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다.
잘 키워내고 싶은 욕심은 굴뚝같은데 벌써 보이는 아기의 정서적 공백을 어떻게 채워줘야 할까. 마음에 결함이 있는 내가 그걸 잘 품어줄 수 있을까. 겹겹이 쌓이는 고민들이 이마에 패인 주름 속에 깊이 박히는 오늘.
고등학생때부터였던가. 통학과 통근의 물리적 거리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멀다’ 라고 느껴지는 정도의 거리를 오가며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했다. 이쯤이면 역마살과도 더 이상 안녕이구나 싶었는데, 거처를 회사 근처로 옮기면 먼 곳으로 이직을 하고, 또 거처를 옮기면 또 다시 멀어지고.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가 일찍일어나는 것보다 힘겨웠던 나에게 새벽출근은 거를 수 없는 아침 식사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새벽의 냄새랄까. 구체적으로는 추운 계절 특유의 쌉싸름하고 상쾌한 공기가 좋았다.
고요하면서도 조금 일찍 움직이는 부지런한 움직임들이 세상을 깨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 움직임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 작은 자부심을 가지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조금씩 짧아지는 밤의 길이와 희미해지는 겨울공기에 아쉬움을 느끼는 오늘, 문득.
(내일 또 5시에 출근해야해서 쓰는 자기 최면 일기)
적당히 따뜻하고 시원했던 어느 봄 날 오후, 엄마아아 부르며 나만 보고 달려오는 아기. 토도도도 16비트로 달려오는 너를 보며 너의 세상엔 늘 내가 가득하단 사실을 생각하면 한 없이 고마워. 성격 급한 엄마라 남들만큼 기다려주는 걸 잘못하는 것 같아 미안해.. 😥
활짝 핀 꽃잎처럼 웃는 얼굴을 보면 너를 위해 더 바르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굳건히 하게 되지.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며 행복했던 지난 주말을 회고하며,
사랑하는 나의 아가, 우리 함께하는 두 번째 봄을 정말 축하해♡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달디단 케이크를 한 입
그를 삼키기도 전에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머금고
하나,
둘,,
셋,,,
꿀꺽.
이 마음도
한 입에 삼켜지면
참
좋겠다.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담은 듯한 너의 눈 속에 들어가 헤엄을 쳐보고 싶었던 날들이 참 많았다. 크고 맑은 네 눈가에 슬픔이 비출땐 내 가죽을 벗겨서라도 네 쓸쓸함을 덮어주고 싶은 날들이 많았지. 더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작별인사를 할 때도 참 다정하고 따뜻했던 너.
오래된 스웨터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추운 겨울 강가를 거닐던 그때의 너를 생각나게 한다. 강산을 변하게 한다는 그 세월이 흘러 나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 너 또한 너만의 삶을 건실히 살아가고 있겠지. 충분히 다정했던 그때의 너에 비해 유독 마음이 가난한 시절을 살아가고 있던 나는 네게 그러지 못했던게 마음에 돌덩이가 되어 남은걸까. 축복하지도 작별하지도 못한 그 때의 마음들은 어딘가에서 정처없이 부유하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 속을 불편하게 만든다.
헝클어져 풀 수 없는 실타래 같은 감정의 잔해들, 그 마저도 아깝다며 버리지 못하고 꼭 움켜쥔 손을 피지도 못하는 지금의 나는 얼마나 마음의 온기에 허기진 사람인걸까.
오늘은 그만 참고 속 시원히 울자
전 깨닫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는 것을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건 장소가 아님을
하염없이 나를 신뢰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음을
세상이 각박하다지만 나에겐 각박하지 않기를
그러니까 결국 고픈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품어주기를
나는 허상을 바랐기에 공허한 것임을
되돌아보니 어느순간부터
나는 애정을 아끼고 있었습니다
보상심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덧없는 슬픔을 잊기로 하였습니다
악의적인 사고를 잃어버린 순간부터
나는 자애롭고 무관심해졌습니다
만끽하니 외로웠고 부러웠고 서글펐고
노력하니 막연하고 모자라고 어여뻤고
그렇게 멀뚱히 관찰을 했습니다
내가 공허하니 모든 게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알 바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찾아옵니다
크리스마스의 첫눈처럼 뜬 구름 잡듯 내려옵니다
무던히 쌓이는 하얀 길들이 얇고 가냘픈 게
밟으면 자국나는 그 나약함이 사랑스러워서
…
그래서 다시 사랑하게 됩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애정을 담아봅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 이런 기분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어.
넌 어땠어. 요즘 너의 마음은 어때?
정말 네가 궁금해서 묻는 거야.
자주, 보고 싶다. 생각했어.
일조량이 현격히 낮아지는 겨울에는 ‘굳이’ 지나간 일에 대해 곱씹게 되는 일들이 많아지는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내일부터 삼일간 나는 오창으로 출퇴근을 할 예정이었고, 하필 출장지가 오창인게 문제였다. 각별했던, 친구였던 사람들과의 기억의 조각 조각이 어렴풋 떠오르며 입가에는 실소가 번졌다.
단연코 곁에 오래도록 함께일거라 여겼던 이들이 시절인연이 되었다는건 참 씁쓸한 일이다. 사회의 반경이 이렇게 줄어들어 결국엔 가족만 남게되는 것일까. 아쉽다는 마음보다 차라리 오히려 좋다는 마음으로 기우는 걸 보면 아무래도 지금의 관계가 서로에게 제자리였던 모양이다.
그 근처를 산책하며 그 때의 마음들에게도 잘 가라고 작별인사를 제대로 해줘야지.
안녕,
오늘은 기이한 경험을 했다.
가뜩이나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자꾸만 깨는 아이를 달래다가 짜증도 내다가를 반복하던 중에 꿈에서 “까까” “깍까” 하며 과자를 달라며 보채는 아기에게 “알겠어 엄마가 나중에 줄게.” 라고 했다. 곧이어 물달라며 엄마 엄마하며 나를 깨우던 아기가 깍까 준다고 하지 않았냐며 연신 “깍까” “까까아” 를 찾았다.
아기와 나의 꿈이 이어진걸까 너무나 기묘한 경험. 자는 모습을 더 많이 보는 요즘에 꿈에서 좀 더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아가,
나는 어쩌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거지.. 결혼을 안했더라면, 출산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몹쓸 가정을 염두에 두는 생각이 많아진다. 괴롭다. 막막하고 답답하다. 지금 내가 해야할 기도는 절망이 두 발목을 단단히 움켜쥠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건실히 살아내는 것, 다음 불행의 기약을 간절히 바라는 것 정도일까. 발끝 아래 낭떠러지가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면서 더딘 걸음이라도 내딛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얼마전 퇴근길 골드라인 맨 앞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앞만보고 달리는 지하철의 시선을 오롯이 느꼈다. 나도 지금의 절망을 똑바로 마주하고 앞만보고 달려가다보면 끝이 보일까.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습니다. 몇 번이나 맞이하는 새해지만 이번 해도 일출은 보지 못했군요. 작년부터는 내 나이가 헷갈릴 지경이 됐다고나 할까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의 눈에는 반짝이는 윤슬이 가득합니다. 살아생전 보지 못했던, 죽기전에 꼭 보지 못할 것만 같던 은하수가 그곳에 존재합니다.
올 해에도 이 녀석과 함께라면 분명히 조금은 더 행복한 한 해가 되겠지요. 날로 거세지는 추위에 어깨가 점점 더 움츠러드는 요즘, 아기의 따뜻하고 말랑한 볼을 생각하며 올 한해도 거뜬히 살아보겠다 다짐합니다.
올 한 해도 거뜬히 충분히 행복한 새해가 되시길 바라며.
2026년 새해 어느 날의 일기
새벽에 빨래를 널며,
5시 21분. 문득 빨래를 돌리고 널지 않은 것이 생각나 빨래를 널었다.
빨래를 널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SNS와 카톡을 하지만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않는 삶은 우울한 게 당연한 거 아닐까.
모두가 나를 빼고 행복한 모습인 것 같고 모두가 나를 빼고 활기차게 인연을 이어가는데 나만 투명한 유리 벽에 갇혀 그들을 바라보는 기분.
그런 우울함이 잠겼다.
피곤한 마음에 약을 한 알 더 먹고 잡생각이 비워지길 상상하지만, 그냥 생각을 정리하려 앉아 일기를 작성한다.
그래서 종종 번호를 바꾸고 SNS 계정을 지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폰을 멀리하고 책을 가까이하는 삶이 얼마나 고요하고 평화로울까. 독서가 하고 싶어졌다.
가끔 누군가 물어본다. 요즘 왜 인스타를 안 하냐, 글 좀 올려라.
밖으론 재미가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두 가지다.
1. 교시가 떠난 후로 시간이 머물렀으면 좋겠어서.
2.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일상을 행복한 척 과장하는 일에 체력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우울하면, 슬프면 교시가 생각난다.
얼마 전 연애 프로그램에서 그리 호감 가지 않는 남성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아직도 그게 의문이에요.”
나도 그러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 인터뷰 장면에서만 몹시 슬퍼졌다.
종종 이런 말을 하면 자기도 그런 적이 있다, 나도 그 말 잘 안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교시도 그렇게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리가 없다.
우린 아주 짧고 짧은 인연이었으니까.
그치만 지금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나는 사랑의 정의를 부재라 내렸다.
그렇게 몹시 애달픈 내 마음을 사랑이라 정의했다.
그녀의 사랑의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묻지 못했다.
그녀가 사랑을 떠올렸을지 묻지 못했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그녀를 그때 사랑할걸.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과 전화를 받을걸.
사랑하고 사랑한다.
비통하고 애달프다.
마음이 아리다.
아까 먹은 약의 졸음이 몰려온다.
새벽에 문득 빨래를 널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압축한다면 그건 아기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처음 엄마가 되던 날이 생생하다. 뱃속에서 나와 따끈따끈한 수증기를 뿜으며 내 옆으로 온 너. 수술실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울다가 내 곁으로 오니 울음을 뚝 그치던 너. 아직 앞도 안보이는 빨간 아기가 엄마 젖은 귀신같이 찾아 먹던 너.
팔 하나에 쏙 들어오던 아기가 정말 순식간에 커버렸다.
이제는 코끼리는 “뿌우”한다는 소리도 내고, 예쁜짓이라는 명령어를 입력하면 왼쪽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짧은 다리를 뒤뚱거리며 엄마 엄마 하며 걸어올때는 또 어쩌면 그리 앙증맞은지..
찰나의 순간마저 소중하다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잠 못자고 지새우던 날들의 보상이 달콤할 줄만 알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
이혼이 유행인것처럼 내가 아는 지인도 모두가 아는 누군가의 이혼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오는 요즘이다. 죽을만큼 사랑해서 결혼했을터인데 왜 그들은 서로를 견딜 수 없었을까. 마주보면 웃음만 나던 사이에서 쳐다보기도 싫은 사이로 전락하기까지 그들 사이에는 무슨 서사가 있었을까. 남일이겠거니 하면서도 남편과 다퉈 속을 끓일때면 이래서 하다하다 이혼을 하는 건가라는 못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그의 어딘가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거슬린다면 나의 한 부분도 그 사람에게는 분명 그럴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대화의 결말이 싸움으로 끝날 것을 알고 있기에 남편은 전력으로 피하려고 한다. 저렇게 사람을 잘보는 사람인데 어떻게 저 사람을 지지하는 걸까 알다가도 모를 나의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
익명성이 보장된 사람에게만 공개된 비상식적 일기장에 이런 이야기를 끄적이고 일주일 뒤 나는 우리 그만하자고 했다.
아기를 책임지는 삶이 너무 버겁고 힘든데 왜 당신은 모르냐고 이미 최선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울어버리면 도대체 나한테 어쩌라는걸까 싶은 마음을 왜 공감을 못하냐며. 이런 생각이 번쩍하니 도미노처럼 하루하루가 차례로 무너졌다.
이렇게 말해도 무슨감정인지 모를지 모른다. 아마 모를거다..
남편에게 털어놓으면 무슨 엄마가 그러냐는 뉘앙스로 죄책감을 느끼게했고, 엄마의 희생은 당연하다는듯이 얘기해서 내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그럴때마다 이렇게 헌신과 희생이 강요되는 관계, 그 관계를 위한 제도가 결혼이라면 나한테는 안 맞는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내가 남편이 원하는 배우자상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며 나도 딱히 이런 삶을 살며 행복하다고 느껴지진 않아서 그만 정리하자고 했다.
이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때 꿀타래처럼 몸에 이불을 돌돌말고 옆으로 누워 배를 들쑥날쑥 거리며 자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낳아달라고해서 세상에 나온 아이가 아닌데 책임을 똑바로 져야겠지. 엄마건 아빠건 한쪽이 엉성하게 붙어있는 가정에서 자라면 무언가 결핍이 있겠지. 물려줄게 없어 그런걸 물려주나 싶었다. 미안했고 눈물이 났다. 그래 책임을 똑바로 져야지.
바닥이 난 애정과 연민을 긁어모아 마지막으로 부탁을 했다. 둘 다 하루하루 버티는 마음으로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인 걸 알며 그렇게 마음 무너뜨리는 짓은 하지말자고. 진심으로 두 번 다시 볼 일 없는게 아니면 끝으로 가는 말은 하지말자고.
잘살자.
오래도록, 행복하게.
간절히 그러고 싶다.
고독과 슬픔은 인간의 숙명이라고 한다. 잘라버리고 싶지만 잘라낼 수는 없는 부서진 새끼발톱 같은 것들. 그래서 나는 슬픔을 고독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우울을 의식적으로 흘러보내려 했다. “흘러가는 고독과 슬픔은 장맛비 같은거야.” 우기가 지나고 벼가 껑충 뛰어 올라 자라듯, 끈적하고 축축한 감정들이 곧 마음의 자양분이라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총알처럼 지나버린 지난 삶을 돌아보니 어떤 슬픔은 못처럼 깊게 박혀 빼내면 폭 파인 못자국이 점처럼 선명히 남아있고, 어떤 우울은 밀도가 높아 배수되지 못한 구정물이 되기도 했다.
지나온 감정의 파편들을 이어붙이니 보고싶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건 언제나 내 몫이구나 생각하니 어쩜 우린 이런 악연으로 만났을까싶어 기가찼다.
안녕, 정말 영원히 안녕.
꿈에서 계속 보였던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순간 꿈인가 싶었다. 첫사랑이라 연락했다는 한 마디에 무너졌고, 실은 그 때 내게 돌아오고 싶었으나 그러질 못했다는 때늦은 변명엔 마음이 아팠다. 어떤 마음으로 연락을 한 걸까. 자기는 이혼하고 그럭저럭 잘지낸다며, 지금은 널 꼭 닮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며, 네 소식은 들었다며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이 너무 가벼워 괘씸했다.
9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도 넌 참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하구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기적인 너를 보니 그 시절의 가여운 내가 다시 떠올라 너무 안쓰러웠다.
너와의 기억을 그럴 수만 있다면 칼로 도려내고 싶다.
인스턴트식 만남에 익숙해진 나는 진득한 만남이 어려웠다. 필요 이상으로 진지한 관계가 진부하고 따분하고 갑갑했다. 목적없는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은 필요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모임, 만남 또한 각자의 필요가 모여서 만들어낸 집합일뿐 이라는 생각을 가진 나에겐 딱히 큰 의미가 있지 않았다.
사람이 연애를, 사랑을 시리고 아프게 하면 마음을 사리게 된다. 작은 일에도 주춤거리고 멈칫거리게 된다. 이게 반복되면 시작도 전에 어떻게하면 그만둘지를 생각하고 만다. 이 나이에 다시 연애? 스스로 명주실로 두 발을 꽁꽁 묶고 물에 뛰어드는 일을 자초하는건 아닐까. 두 손으로 내 목에 목줄을 거는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어딘가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을때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나와 너무 닮은 것 같아 두렵기까지 했던 사람이다. 누군가와 싸워본적 없는(싸우고 기빨리기 싫어 회피) 내가 소리 지르고 악을 쓰면서 싸워봤던 유일한 사람. 나의 가장 어둡고 추레한 이면을 아는 사람. 구릿한 나의 모습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던 사람.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출산과 육아로 책을 손에서 놓고 글을 쓸 시간도 없지만 지난 삼년은 충분히 가치있고 반짝이는 시간이었다. 사람 하나가 나의 삶에 들어와 사고와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그와 함께하는 삶에서 배우는 중이다. 앞으로 더 배워갈 것들이 많겠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매일이 나의 내일이라는게 감사하다.
이 글을 볼수도 없겠지만 많이 사랑해 남편. 그러니 우리는 이혼하지않고 오래오래 할미할비가 되어서까지 곁에 있어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