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4일, 그리고 5일을 더
평소에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굳어진 나다움’ 보다 (긍정일지 부정일지 모르는), 내 간절함과 절실함이 더욱 컸나보다.
_잠시 헛소리_
사람 마음 속 알 길이 없고 (아무렴 나는 내가 내 기분 맞춰주는 것이 가장 어렵고, 내가 나를 가장 모르겠기도 한 걸)
게다가 어설픈 30대는 더욱 느려진단 말이지.
어제 프리다이빙 강사님의 “초보자를 알려주는 것보다, 본인만의 습관이 고착화 되어있는 동호회 사람들을 교육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말처럼.
그래서 항상 ‘생각의 고임’을 경계하려 한다.
언제나 용기를 내야하는 상황에서는 너무나 큰 두려움이 생긴다.
판단의 오류를 계산할 수도 없고,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하게 내가 가져가야 하니. 다음날 이불킥이 되는 부끄러움이라면 감내할 수 있는지. 혹은 이 커다란 마음을 쏟았다가 돌아오는 답이 좌절일때 나는 빠르게 다시 달릴 수 있는 충분한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는가. 이만저만 고민한 것이 아니였다.
그렇지만 그 날의 내 결단은, 경험치에 의지하기엔 비슷한 나의 선택을 복습할 수 밖에 없겠다싶었다. 그러니 이전에 안됐던 것은 아닐까? 오히려 이것이 플러스 알파로 더해져 나를 빛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이 샜지만, 나에겐 이 의도치않은 갭이어가 방황과 불안의 시간이 아니였다. 빈 틈을 채우려 불운의 패턴을 지우고 나를 더 깊게 살펴보는 밀도있는 시간이였다.
그리고 이것이 ‘증명’이 되는 행운을 쟁취? 아니, 맞이하고있다. 소망과 애타는 마음이 담긴 가정의 문장이 아닌, 온점을 찍어 확고해진 말로 가득차게 표현할 수 있게.
“이 기회는 지수님이 만든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