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같이 희고 쓸쓸한 턱
2년전 블로그에 비공개로 썼던 글
2023.05.07
숙취해소제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어린 두 자매를 데리고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식사를 떼우는 커플을 보았다. 사정은 모른다. 통장에 잔액이 비일 때보다 허전한 도시의 불편한 편의점
어린이날 익일에는 뉴페이스와 자리했다. 숙대 옛날감자전의 치즈감자전 레쟌도••• 얼큰해져서는 가로등 아래 떠다니는 꽃씨를 입바람으로 훅 불었다. 끔뻑하자 온데간데 없었다. 가냘픈 상관물의 행방을 쫓으며 커브길을 횡단하는데, 마주보이는 반사경에 나는 없고 웬 중늙은이만 비치는 게 아닌가. 그새 늙었나, 나는 사라졌나, 겁이 더럭 났다. 가만 들여다보니 볼록거울의 왜곡에서 비롯된 착시였다. 거울에 비친 건 내 사각에서 평범하게 길을 건너고 있던 중년이었다. 나는 놀랍게도 눈에 띄지 않게 멀쩡히 존재했고.
요즘 부쩍 하는 생각인데 나는 본론 같은 거 없는 이야기가 좋다. 생선구이의 가시를 바르다 든 생각이다. 내용은 모르더라도 이름이 맘에 든다면 그건 무언가를 좋아할 이유로 충분하다. 가령 양귀비뽀삐라든가 벨루가라든가. 앙증맞은 것들과 폭식•폭음, 그리고 충동이 난무하는 시절이다.
허구 속 같다. 따라서 코인세탁소 앞을 지날 때 흘깃 맡는 뭉근하고 미지근한 계면활성제 냄새 같은 걸 선호하고 있다.
더군다나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서는 별일이 다 일어난다. 마감 시간 즈음해 돌연 말 걸어온 누군가는 내가 그간 쌓아놓고 읽은 책을 차락 읊었다. 이런저런 공부하시냐며. 소름끼쳤다. 차치하고도 몰상식이 만연하다. 일례로 남자화장실에선 툭하면 담배냄새가 풍긴다. 믿기 어렵겠지만 손톱을 깍는 사람도 있었다.
열람실에 있다가 담피하러 나서는데 누군가 우렁우렁 소리치기에 ‘누가 도서관 앞에서 몰지각하게 저러나.’ 했다. 귀기울여 들으니 그가 호명하는 건 내 이름이었고, 그는 단골 카페의 사장이었다. 그는 양 옆에서 칭얼대는 두 아이를 건성으로 타이르면서 여기엔 어쩐 일이냐 내게 물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그는 가족끼리 나들이 나왔다고, 나중에 카페에서 보자며 양손을 명랑하게 흔들며 떠나갔다. 낯 뜨겁게도. 웬만한 트러블은 다 사각에서 나타난다.
이 모든 근자의 인연들이 왜 일거에 연달아 생각났는고 하니, 나는 혼자 외로움에 대해 생각하던 참이었다. 여기 인물들은 하나같이 희고 쓸쓸한 턱을 하고 있었다. 또한 모두 무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