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땐 연필 꼭지에 달린 지우개가 참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이 조그만 것으로 무엇을 지우라고 달아 놓은 걸까, 그땐 틀리고 지우고, 지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이 많았다기보다 틀리는 것이 많았다. 마음만 먹으면 지우개를 고정시키고 있는 쇠깍지에 닿도록 하루만에도 많은 것을 지웠다.
지금은 연필 한 자루를 닳도록 쓸 때 까지, 연필과 지우개의 비례가 충분하다고 느낀다. 이제 그 많은 것들을 지우지 않게 된 것은 지울 수 없을 만큼 지우고 싶은 영역이 방대해졌기 때문이다. 체념하고 작은 지우개에 알맞고 효율적으로 지워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나, 포기나, 그 사이의 비슷한 것 쯤이 생겨 난 것 같다. 너무 많이 지워야 할 때는 그 페이지 넘겨버리는 지혜도 생겼다. 글쎄, 그걸 지혜라고 생각해야할까.
고등학교 땐 참 많은 것을 지웠다. 그 당시 하나에 800원 쯤 하던 pentel 사의 Ain 파란색 지우개 - 가볍게 지워지는 타입을 일주일에 하나씩 소비했다. 한통에 300원했던 모닝글로리 HB 샤프심에 비해 무척 비효율적이고 짧은 사용기간이었다. 지금은 대학교 때 산 똑같은 지우개를 5년 째 반쯤 썼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 적어진 것이 아니라 페이지를 넘겨버리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