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피는 못 속인다고 했나요. 7명의 처형처제를 두고 한 말인가 봅니다. 저도 젊은 시절 제법 논다는 년들과 클럽에서 만나 놀면서 무수히 많은 보지들을 따먹었지만 제 아내와 같은 음탕한 색녀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처형처제를 만나고 여자와 섹스에 대한 개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가 22살 때 사귀던 남친의 아버지와 섹스하면서 진정한 오르가즘의 세계에 눈 뜨게 되었다고 했는데 제가 직접 이브의 금지된 욕망을 맛본후 제 아내와 제 아버지와 은밀한 관계도 이해하게 되고 옆에서 그 관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었습니다.
제 아내와 처형처제 모두 섹스에 굼주린 색녀들이었습니다. 경쟁이나 하듯 노출을 하고 진한 화장에 남자에게 교태를 부리며 음탕한 미소로 유혹하듯 쳐다보는지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창녀들 같았습니다.
위 사진은 제 아내와 제일 친하고 아내와 섹스 취향도 닮은 5째 처형입니다. 자매 중 제일 공부도 잘 하고 서울 명문 모여대를 나와 미국에 유학까지 다녀온 수재죠. 미국 유학시절 홍콩에서 자란 영국인 유학생을 만나 결혼을 하고 현지에서 금융회사에 잠깐 일하고 한국 미국계 금융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남편도 아내따라 한국에와 홍콩계 금융사에 다녔죠.
아내보다 4살 위로 처형처제와 상견례했을 때 스타킹 신은 발로 탁자 밑에서 제 다리 정강이를 문지르며 유혹했던 창녀였죠. 똑똑하고 딱부러지는 성격에 유혹적인 미소로 쳐다보면 남자의 심장을 쉴새 없이 뛰게 만드는 매혹적인 걸레였습니다. 정말 미치는 것은 줄듯하면서 주지 않는 그런 얄미운 색녀였습니다. 처음 만나고 1년 동안 저 색녀를 따먹을려고 많은 공을 들였는데 키스와 약간의 스킨쉽 정도로 사람을 미치게 만들다 딱 한번 차 안에서 오럴섹스로 제 고환에 고여있는 정액을 쭉~~ 빨아 마셨습니다. 그러다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제가 26살 때 가을 이었을 겁니다. 남편이 가을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여행계획을 만들어 놓고 홍콩에 출장을 갔다가 회사일로 약속된 날짜에 한국에 못오게 되었는데 5째 처형이 자기랑 제주도에 가지 않겠냐며 목요일 저녁에 갑자기 연락이 왔고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금요일 오전에 처형과 함께 급히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엉덩이만 겨우 가린 짧은 미니스커트에 검정색 팬티스타킹과 속에 빨간색 브레지어가 다들여다보이는 흰블라우스를 입은 처형은 공항에서 부터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끌며 호텔에 도착해 점심만 먹고 호텔방에 들어가 다음날 아침까지 처형과 미친듯이 격렬하게 섹스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도도하던 차도녀가 호텔방에 들어가자 마자 저를 침대에 밀쳐 눕히더니 제 바지를 벗기고 하늘 위로 치솟은 제 자지를 한 입에 물어 넣고 쭈~우쭉 빨기 시작하였죠. 그리고 격렬하게 머리를 위, 아래를 흔들며 제 자지를 목구멍 안까지 흡입하였습니다. 꺼어~억 거리며 눈물, 콧물 흘리며 제 자지를 빨다 제 위로 다리벌리고 앉아 가운데 검정색팬티스타킹을 찢어버리더니 제 자지를 끈적거리고 미끈한 점액이 줄줄 흘러나오는 자신의 보지 구멍 속으로 잡아 넣어습니다. 그리고 미친듯이 엉덩이를 위, 아래로 방아질 하듯 찍어대며 엉덩이를 큰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보지 속에 박힌 제 자지를 자극하였죠. 제 자지는 처형의 질 속을 휘집고 다니며 허우적 거렸습니다. 하지만 5째 처형의 보지는 완전히 허벌창이었습니다. 30살의 애도 없는 여자가 실망스럽게도 애들 3,4명 낳은 여자의 고래보지 수준으로 너덜거리는 걸레였습니다. 혹 서양남자들 쫓맛에 길들여져 보지가 늘어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제는 제 자지가 자극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죠. 처형이 블라우스를 활짝 열어 제치고 출렁이는 젖가슴을 자신의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섹스하는 애로틱한 연출에 흥분할 뿐이었습니다. 처형이 제 자지를 보지 속 깊이 박아넣으며 몸을 격하게 위아래 흔들때마다 커다란 젖가슴이 파도 치듯 출렁거리고 자신의 손으로 클리토리스를 격하게 비비며 혼자 무아지경 속으로 빨려들어가 소리를 질러대었습니다. 제가 오히려 그 모습에 당황하여 누워서 멍하니 처형을 바라만 보았죠. 저는 사정의 신호를 느끼기 시작하였고 눈치 빠른 처형은 보지에서 자지를 빼내고는 제 자지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자지르 한 입에 물고서 고환에 터질듯이 분출하는 정액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깨끗이 맛있게 빨아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역시 정액맛은 국산이 제일 맛있어.“ 라고 능청을 떨며 음탕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젊은 피가 끓고 있는 제 자지는 여전히 발기 상태였고 처형은 제 자지와 본인의 항문에 오일같은 것을 바르더니 침대에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는 업드려 두 손으로 탱탱하고 탄력있는 엉덩이를 벌리고는 항문 구멍을 벌렁거렸습니다. 찢어진 검정색팬티스타킹 사이로 탐스럽게 벌어진 처형의 오일 바른 미끈거리는 똥구녕을 보자 흥분한 저는 거침없이 제 자지를 처형의 항문 속 깊숙히 수우~~우욱 조심스럽게 밀어넣고 천천히 앞뒤로 쑤시자 비로소 자지를 꽉 물어주는 느낌을 받았고 몽둥이 같이 딱딱하게 발기한 자지를 보지에 쑤시듯 처형 항문 속 깊이 자지를 박아 넣고 인정사정 없이 거칠고 빠르게 타격을 가하듯 쑤셔 박아대었습니다. 처형은 고통스러운듯 아프다며 소리를 질러대었지만 저는 오히려 처형의 뒷머리채를 움켜 잡고 항문 속을 자지로 온 힘을 다해 격하에 찔러 넣었습니다. 침대 베개에 얼굴을 쳐박고 신음하는 처형은 고통스러운듯 힘이 들어간 두 손을 쫙 펴졌다가 다시 침대보를 움켜잡았다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차례에 걸쳐 처형의 뱃속 가득 신선한 단백질 씨앗을 연신 뿌려주었습니다.
5째 처형과 관계하면서 알게된 사실은 미국 유학시절부터 영국인 남편 제안으로3som, 4som을 시작하게 되었고 남편의 비지니스파트너들과 섹스파티에서 난교섹스를 즐겼다고 합니다.한국에 살면서도 한국주재 외국인 부부들과 스와핑을 주기적으로 즐기고 섹스파티도 종종 참여 하였다고 하였죠. 그제야 애도 안 낳은 30살 젊은 5째 처형 보지가 고래보지처럼 허벌창이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28살 때 처형 부부의 소개로 외국인 스와핑 모임에 처음 참여해 보았고 섹스파티에도 초대 되어 외국인들과 난교섹스를 경험해보았습니다. 경험담이 참 많은데 글이 너무 길어져 아쉬지만 끝내야겠습니다.
위 사진 5째 처형과 제주도에서 급하게 구입한 1회용 카메라로 찍은건데 현상문제 때문에 더 야한 사진은 아쉽게도 찍지 못했습니다. 아주 오래된 필름사진이라 화질이 좀 구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