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이유로, 이유 없이 마음이 뭉클졌던 날.
(2020.09.26)
1. 벌초
일년에 단 한번 내 유년기를 보냈던 고향 안동에 방문하는 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연스럽게 방문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님은 나와 누나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기에 학기중엔 외할머니가, 방학 중엔 안동에 계셨던 조부모님과 함께 했었다. 사실 어린 시절엔 엄마 아빠보단 할머니 할아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더 컸다(옳고 그름의 문제 혹은 이에 관한 논쟁거리가 될 만한 모든 것들과 상관 없이 어린 시절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기에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던 나지만 사춘기가 되어 이들이 내게 주었던 무한한 관심과 사랑은 돌려주어야 할 의무로 다가왔고, 20대가 되어서는 귀찮음으로 변질되었다.
그렇게 2002년, 2009년 그리고 2016년에 모두 돌아가셨고, 20대 초반의 나보단 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뼈저리게 알게 됐지만, 말만 했을 뿐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명절이 아니고서야 찾아 뵙지 않는 못난 손주가 되어 있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올해의 벌초를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벌초를 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건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벌초를 하는 내내 그리고 끝내고 나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참 죄송하단 생각이 들었다.
매년 오던 빈집이였지만 올해 유난히 할아버지가 우리가 가는 모습을 쓸쓸히 지켜보시던 모습이 떠올랐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도련님 조심히 가세요'라면 내 손에 쥐어주시던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왜이리 그리울까.
2. 국민연금 수령
58년 8월생인 우리 아버지는 올해 9월부터 국민연금 수령자가 됐다. 바로 어제였다.
직장생활을 하며 내가 낸 돈이라며 별 거 아니라고 하셨지만, 숨만 쉬어도 매달 130만원이나 들어온다는 사실은 내겐 참 부러운 일이였다.
"좋겠어요 아빠. 월급까지 합하면 300만원 넘게 받으시네요."
"좋긴 뭐가 좋아. 국민연금 받는다는건 곧 죽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건데."
내겐 부러움이 가득한 국민연금 개시지만, 아빠에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가보다.
3. 호구네, 안씨 할아버지
할아버지댁으로 가기 위해선 길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고, 길 왼쪽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명명하셨던 '호구네'를, 오른쪽엔 기억나지 않는 어르신들의 집을 지나가야만 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길 오른편에 있던 집은 주인이 한 두번 바뀌었던 것 같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폐허 같은 빈집이 되었다. 그렇게 왼쪽에 있던 '호구네' , '안씨' 할아버지만이 길지 않은 길을 지키게 됐다.
벌초를 끝내고 시간이 남아 동네 한 바퀴를 걷다 전동자동차를 탄 낯 익은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안씨 할아버지인가?' 의아해 했지만 돌아가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긴 시간이 지났고, 그 동안 뵌 기억이 없었기에 다른 분이겠거니 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대구로 오기 위해 짐을 차로 옮기다 아까 마주친 할아버지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안씨 할아버지가 맞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 사실을 엄마빠에게 말씀드리니 음식과 과일을 드리기 위해 따로 준비를 하셨다.
그리고 다 함께 인사를 드리러 갔고, 아버지는 시멘트 바닥에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넙죽 큰절을 하셨다. 저렇게까지? 란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지만 내가 그랬듯 우리 아빠에게도 나와 같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어린시절 보았던 정정했던 모습이 아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된 모습을 보고 있구나 라 생각하니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린 안동 시내에 있는 막국수 가게에서 불고기와 막국수를 먹으며 아버지의 첫 연금을 축하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아버지는 갑자기 안씨네 할아버지에게 드릴 음식을 더 주문했다. 우리가 떠나는 모습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자동차 룸미러로 보았고, 할아버지 생각이 나 도저히 그냥 못 내려가겠다고 하셨다. 다른 일이라면 왜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냐고 뭐라고 했을 나와 엄마였지만, 마치 짠 것처럼, 소름 돋게 천천히 다녀오라고 동시에 말을 했다.
할아버지가 참 많이 생각났다.
4. 우리 엄마 아빠라 너무너무 고마워
아버지가 다녀오는 동안 엄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가족이 행복하려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공부(아마 노력이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던 것 같다)를 해야 한다며, 그리고 본인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게 처음이라 내가 어린 시절 잘 해주고 싶은 마음만큼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며, 그리고 잘 커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엄마, 잘 커준게 아니라 잘 키워준거야. 엄마아빠 덕분에 하자는 참 많은 인간이지만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는거야. "
그리고 곧 아버지가 돌아왔고 대구로 가는 차 안에서 짧았던 그 대화가 머리속을 계속 맴돌았다.
난 그냥 성장한 게 아니더라.
지금의 내가 오지랖을 부리는 것도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할줄 아는 엄마빠 덕분이고, 어디가서 인사 못 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 것도 어린 시절 강압적일 만큼 인사를 시킨 엄마빠 덕분이었다.
아빠가 조국이 아니라서,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서 이렇게 평탄한 삶을 살고 있잖아.
누군가에게는 별나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나지만, 좋은 모습 싫은 모습 모두 닮아 있는 나를 좀 더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