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범인도 못 잡고, 억울한 피해자들의 진실조차 밝혀 주지 못했고.
숙적을 하릴없이 보낸 뒤 분노로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려 일단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머리는 뜨거운데 몸은 차갑게 식는 이 기분.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겨울이었지.
모처럼 기분 전환 겸 옷차림도 살짝 바꿔 볼까.
어디 보자…… 응?
그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대문 앞 우편함이 문득 시선을 붙든다.
마침 할 일도 슬슬 떨어져 가는 참이겠다, 혹시 형님이 멋대로 선물해 준 소일거리는 또 없나 안을 살펴본다.
역시나.
우편함 안에서 뜻 모를 엽서 한 장이 셜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생선을 낚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형님이 낚으려고 하는 건 너무 똑똑해서 제어가 안 되는 동생이시겠지요.
내용을 보니 분명 셜록더러 저 건물까지 오라는 소리다.
무슨 용건인지 설명도 없이 대뜸. 게다가 장소에 대한 단서라고는 항구 근처인 게 전부다.
아마도 동생의 명석한 두뇌를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이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그의 길잡이는 타고난 방향치라는 거.
하여간 불친절한 양반이셔.
코르도나에서 '항구'라고 하니 생각나는 게 어째 실버튼 부두 하나뿐이군.
물론 사면이 바다라 내가 발견 못한 항구가 더 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다만, 엔딩을 코앞에 둔 시점에 셜록이 발도장을 못 찍은 데가 아직도 남아 있을까 싶기는 하다.
일단 지도에서 물가 쪽으로 대충 방향만 잡아 놓고, 나머지는 움직이면서 생각하도록 하자.
오랜만에 느긋한 코르도나 산책. 형님에게 받은 엽서를 잘 보이게 꽂아 놓고, 비슷하게 생긴 건물이 불쑥 나타나지는 않나 주변을 살피며 걷는다.
이미 얼마큼 눈에 익은 풍경이지만, 이 이국적 정취를 이루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예전보다 눈길이 더 자주 가는 듯하다. 줄어든 일거리만큼 마음이 가벼워진 덕분인지, 아니면 머지않아 이곳과도 작별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러고 보니 이 구역은 스칼라디오였던가? 잘 정돈된 화단 위, 알록달록 화사한 꽃과 나무가 셜록을 반긴다.
오스만 사람들이 터를 잡고 있는 '올드 시티'나 폐광이 있는 '광부의 말로'는 지금 보는 풍경과 사뭇 달랐던 것 같은데.
남아 있는 일거리 다 끝내 놓고 나면, 마지막 관광 삼아 한 바퀴 더 돌아봐야겠다.
시청까지 와 잠깐 한숨 돌릴 겸 지도를 열어 본다.
음? 그런데 시청에서 가까운 곳에 '항만 관리소 건물'이라는 데가 있었다? 내가 저 근처는 또 언제 지나갔지?
위치상 바닷가 바로 옆은 아니지만, '항만'이라는 이름이 그럴싸하다. 적어도 어부들 동네였던 실버튼 부두보다는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확인해 보자.
맞군. 다른 건 제쳐두고 조각상 하나만 봐도, 여기가 형님이 셜록을 부른 장소임이 분명하다.
자, 여기까지 오기는 했는데 이제부터 어쩐담?
이 형님, 저번처럼 잠입 요원이라도 대기시켜 놨으려나, 아니면 종이 쪽지?
하지만, 항만 관리소 건물 주변 바닥에는 아무것도 떨어져 있지 않다. 그렇다고 마당 쓰는 저 청소부가 영국 비밀 요원인 것 같지도 않고. 혹시나 해서 건물 입구를 찾아 봤지만, 코르도나의 많은 명소가 자주 그랬듯 여기도 관광객 출입 금지다.
흠… 아무래도 내가 뭔가 놓친 게 있나 본데. 수첩을 꺼내 형님이 보낸 엽서를 다시 읽어 보자.
'이 건물 앞에 낚시하기 좋은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역시. 좀 전에 봐 놓고 이 중요한 단서를 그새 잊어먹냐. 건물에 용건이 있는 게 아니었잖아?
형님이 엽서에서 항구와 낚시를 언급한 게 괜히 있어 보이려고 한 소리가 아니었다. 워낙 지적인 양반이라 난 또 멋스럽게 빗대어 한 말인 줄.
건물에서 등을 돌리자, 탁 트인 바다와 배, 낚시꾼들의 모습이 곧 눈에 들어온다.
느낌상 저 낚시꾼 둘 중에 형님이 보낸 요원이 있을 듯하다.
매의 눈으로 살펴보니,
셜록이 말을 걸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로프트가 쓴 장문의 편지 하나를 건넨다.
아니, 형님. 이럴 거면 그냥 집 앞 우편함에다 넣어 놓지. 워낙 중요한 기밀이라 유출될 위험을 피하려고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쓴 건가?
내용을 보니 확실히 민감한 내용이기는 하다. 자칫하면 무고한 사람들이 여럿 희생당할 수 있는 일이라니. 이런 불상사가 신문에 보도되면 영국 정부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겠지.
형님은 이 잠재적 불상사와 얽힌 어느 조직의 우두머리가 배신자를 쫓고 있다며, 그 배신자를 찾은 다음 그의 가방 사진을 찍어 달라 한다. 단서는 그자가 골초이며, 정규 승무원의 대체 인력으로 북극 탐험선에 탑승할 예정이고, 그 배가 항만 관리소 북쪽에 정박 중이라는 사실.
그런데, 조직에서 자기네 조직원의 인상 착의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외모에 대한 정보는 왜 제공하지 않았을까? 마이크로프트의 능력이라도 새삼 시험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제한된 단서로 사람 찾기 하면서 골머리 좀 썩여 봐라 이건지.
그에 더해, 형님이 편지에서 말한 그 조직이 어디며 수장이 누구길래, 무려 '영국 정부' 그 자체라는 위인을 상대로 이런 질 낮은 협박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무리 많은 목숨이 걸려 있다지만, 형님이 이 정도 협박에 순순히 응해 자기 사람들을 움직였다는 사실 또한 놀랍고. 설마, 언젠가 사건 중에 만났던 버나도티 유한회사……는 아니겠지?
아무튼, 형님의 지시대로 문제의 배신자를 찾아 보자.
항만 관리소 북쪽에 배를 댈 만한 곳이라면,
근처까지 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부둣가에 배 한 척이 정박해 있고 그 주변으로 남자들 몇 명이 보인다.
과연 이 중에 조직에서 찾고 있는 그 인물은 누구일까. 우선 가장 가까운 데 있는 사람부터 차례대로 스캔해 볼거나.
첫 번째, 강한 담배 냄새를 풍기는, 말끔한 정장 차림의 프랑스 신사.
흡연자라는 점은 단서와 일치하지만, 출신지가 마음에 걸린다.
일단 보류.
두 번째, 이탈리아 은행가.
이 사람은 볼 것도 없겠군. 통과.
세 번째, 프랑스인 일꾼.
가지고 있는 단서와 일치하는 게 없다. 통과.
네 번째, 알바니아 재단사.
조건 불일치. 역시 통과.
낭패네. 몇 명 안 돼 보여서 금방 찾을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모두 꽝인 것 같다.
여기 어디 아직 발견 못한 용의자가 있지 않으려나… 음?
배 안에서 두 명의 인부가 귓속말을 하고 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새 동료라.
이거, 냄새가 나는데.
신참이 들어왔는데, 예전에 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전다.
짐작건대, 그 신참은 분명 담배도 많이 피울 듯. 분명 근처에 커다란 짐가방도 함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이 따끈한 단서를 들고 주변 인물들을 한 번 더 살펴보자.
부두에서 나 홀로 담배를 즐기고 있는 크림인 제빵사. 셜록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다리가 좀 불편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의 오른편에는 꽤 무거워 보이는 짐가방.
빙고.
가방 사진을 찍어 정보원에게 가져다 주니, 심부름에 대한 보답으로 얼마간 보수가 나왔다.
그런데, 뭐야. 꼴랑 20원? 셜록 같은 고기능 두뇌를 부려 먹으면서 너무 짜잖아요, 형님. 아무리 사진 한 장 찍어다 주면 되는 일이라지만, 좀 너무하네 싶기도 하고.
어쨌든 심부름은 끝냈으니, 계획대로 집에 가서 숨 좀 돌리자.
가는 길에 심심풀이 겸 형님이 숨겨 둔 동전이나 챙겨 볼까?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 5번 동전에 대한 단서가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단서를 확인한 적이 이미 있는 곳이다. 분명 그때 호기심 많은 동네 개 한 마리가 이 화분을 깨서 형님의 쪽지를 물고 갔을 텐데.
있군. 공연히 헛걸음 했네. 이래서 일거리를 기약 없이 미뤄두면 안 된답니다, 여러분.
마이크로프트가 알려 준 바에 따르면, 동전은 이 단서를 발견한 광장과 어느 민박집 사이에 있는 다리 밑에 숨어 있다. 일단 지도에서 광장 근처 다리부터 찾아 보면,
올드 시티 다리와 몰타 다리. 일단 지리상 둘 중 한 곳일 가능성이 높겠군.
문제는 그 민박집이 어디 있냐는 건데. 흠…
단서에 사람들 기호가 있는 걸 보니 탐문으로 해결하라는 건가?
집중 모드를 켠 뒤, 지나가는 행인 중 친절해 보이는 한 사람을 얼른 붙잡고 길을 묻는다.
역시 소문난 민박집이라 그런지 단박에 답이 나오는군.
다리라고 하길래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그런 대교를 생각했더니, 내 상상력의 폭이 너무 좁았나 보다.
이렇게 해서 5번 동전도 무사히 회수 완료. 동전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 다리 틈새에 숨어 있었다. 만약을 위해 정확한 위치도 기록에 남겨 두고...
덧없는 소망 같지만, 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이 길고 지독한 전쟁에도 조금은 끝이 보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