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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de-bon
龜鑑
언제나 나의 영감이 되어줘. 너가 입는 옷, 듣는 음악, 마시는 커피와 사색에 잠기는 장소를 보여줘. 본질은 같고 취향은 조금 다른 우리는 깍지를 낀 손처럼 꼭 맞을 거야. 너가 술을 마시며 조금은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단어들을 상자에 담아두었다가 네가 잠든 사이 부엌에 홀로 앉아 하나씩 꺼내두곤 방금 찍은 폴라로이드처럼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문장으로 만들어둘게.
조금 더 추워지면 도쿄 구석에 있는 작은 집을 빌려 잠에 들자. 밤에는 와인을 아침에는 커피를. 나는 산미를 좋아하지만 너티한 원두로 내린대도 기꺼이 마실게. 밥도 먹기 전에 어제 사둔 스위츠를 조금 까먹자. 부시시한 머리를 짧은 모자로 가리고 세수만 겨우 한 얼굴로 나가 공원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을 구경하자. 바삭한 튀김과 찰랑거리는 면에 레몬즙을 조금 뿌리고 간 무와 함께 짭쪼름한 붓카케 우동 한 그릇을 먹은 다음엔 적절한 온도의 라떼 한 잔을 마실래. 시럽 한 방울 없이도 우유 고유의 단 맛이 잘 느껴지는 커피 한 잔쯤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니까.
너가 씻는 동안 어제 듣던 음악을 다시 틀어두곤 오늘 사온 바이닐의 뒷면에 적힌 제목들을 꼼꼼히 읽어볼 거야. 시장에서 사온 재료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 몇 개가 놓이고 오늘은 조금 더 쌉싸름한 와인으로 골라봤다는 너의 말에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케익을 한 조각을 잘라 곁들인다. 와인잔이 부족하면 머그에 마시지 뭐. 아무래도 좋아. 밤은 우리가 길게 길게 늘여놨으니 오래된 프랑스 영화 한 편을 마저 다 보기도 전에 등을 포개고 잠에 들겠지.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동할 때
예단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를테면 ‘동물을 키우다니, 따뜻한 사람일 거야’, '책을 많이 읽다니 생각도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 같은 사고의 흐름.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키우는 사람이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다. 그 자체로만 보려는 노력. 실망을 줄이는 노력.
내가 원하는 것은 너와 숨바꼭질을 하고 너에게 내 옷을 주고 네 신발이 맘에 든다고 말하고 네가 샤워할 때 계단에 앉아 있고 네 목을 마사지 해주고 네 발에 키스하고 네 손을 잡고 함께 무언가를 먹으러 나가고 내 접시까지 먹어 치운다고 화내지 않고 바에서 만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얘기하고 네가 저지른 바보 같은 행동을 비웃어 주고 네가 즐겨 듣는 테이프를 주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재미없는 영화들도 보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불평하고 네가 잠잘 때 사진을 찍고 너한테 커피와 빵을 가져다주러 일어나고 밤 12시에 커피를 마시러 플로렌스에 가고 네게서 담배를 훔치고, 성냥이 없을 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전날 저녁에 본 TV프로그램을 얘기해 주고 널 안과에 데려가고 네 농담에 웃지 않고 이른 아침에 너를 원하지만 네가 더 잘 수 있도록 깨우지 않고 네 등에 입맞추고, 네 피부를 어루만지고 네 머리카락과 눈과 입술과 목과 가슴과 엉덩이를 내가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있는지 말하고, 네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담배를 피우면서 기다리고 네가 늦으면 걱정하고, 일찍 오면 깜짝 놀라고 너한테 해바라기를 주고 네 파티에 가고, 쓰러질 때까지 춤추고 내가 틀렸을 때 사과하고, 날 용서해주면 기뻐하고 네 사진을 보고 너를 옛날부터 알지 못했던 것을 슬퍼하고 귀에 네 목소리가 들리고, 네 피부의 감촉을 느끼고 네가 참 멋지다고 말하고, 네가 무서워하면 꼭 안아주고 누군가가 너를 다치게 하면 널 감싸주고 네 향기를 느낄 때 너를 원하고 네가 옆에 있거나 멀리 있거나 하면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리며 울고 네 가슴이 침으로 젖고, 밤중에 널 부드럽게 만져주고 네가 이불을 다 가져가면 떨고 가져가지 않으면 열기에 숨이 막히고 네가 미소 지으면 황홀해지고 네가 소리 내어 웃으면 행복해지고 왜 내가 널 버릴거라고 생각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네가 정말 누구일까 생각에 잠기고 하지만 그대로의 널 받아들이고 너에게 시를 써주고 왜 네가 나를 믿지 않는지 생각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깊은 사랑을 느끼고 네가 나보다 더 좋아해서 내가 질투하게 될 작은 고양이를 사주고 네가 나가야 할 땐 침대 속에서 너를 붙잡고 그러다 결국 네가 가버리면 어린아이처럼 울고 네가 원치 않는 선물들을 사주고 그걸 가게로 도로 가져다주고 난 계속 새로 청혼하고, 네가 원하는 것을 원하고 너한테 나의 제일 나쁜 점들을 이야기하고 너는 그만큼 소중하니까 내 안에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주고 난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네 질문들에 대답하고 내가 전혀 원하지 않을 때 너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네가 바라는 것을 알기에 솔직하게 행동하고 내가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네 인생에서 나를 완전히 버리기 전에 짧은 그 10분 동안 너를 붙잡고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너를 배우는 게 좋아서 더 가까이 있을 수 있게 노력하고 그만큼 노력할 가치가 있기에 서툰 독일어로, 그보다 더 서툰 히브리어로 너에게 말하고 새벽 3시에 너와 사랑을 나누고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기적처럼 감히 저항할 수 없는 평생의 강렬한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심장이 터질 듯하고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끝없이 영원히 지속될 사랑을 너에게 느끼고 있다고 조금이라도 말하는 것이다 -사라 케인의 갈망( Crave)
40세까지는 주부로 살았어요. 그냥 살았어요. 집안일 하고 그냥 주어진 일을 하고 그냥 이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막둥이가 유치원에서 씨앗을 가져와 마당에 심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러라고 했지만 속으로 생각했어요. 꽃이 안 필 텐데. 왜냐면 저희 마당이 작고 그렇게 좋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나 설거지를 하는데 벌이 마당에 엄청 많이 모여 있는 거예요. 뭔가 해서 나가봤더니 꽃이 피어있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눈물이 갑자기 엄청 났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는 내 인생에 꽃이 피지 않을까 두려워 내가 좋아하는 씨앗조차 심지 않았구나. 그냥 메마른 땅으로 살았구나.
그 후로 저는 제가 좋아하는 씨앗이 뭔지 찾았어요. 물온 주부다 보니 돈과 시간이 없죠.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돈과 시간을 모아 새로운 걸 해봤어요. 돈과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 다 거짓말이에요. 없는 사람은 없거든요. 적은 거지. 적은 만큼 해보면 될 텐데. 어쨌든 저는 그렇게 45세가 되던 해 미술을 찾았어요. 그림을 그리는데 행복하더라고요. 계속 생각나고.
그러다 48세에 새로운 재능을 알게 되었어요. 아 내가 본 거를 똑같이 그리는 재능이 있구나. 그리고 지금 저는 타투이스트예요. 직원도 8명이나 되고요. 저는 알았어요. 꽃이 피든 안 피든 씨앗을 심는 동안 즐거우면 그 자체로 완성된 삶이구나. 왜냐면 저는 그 8년이란 시간이 정말 행복했거든요. 아 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요. 가끔 보면 저보다도 어린 사람들이 자꾸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너무 늦었어요. 저는 너무 늦었어요.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 도대체 뭐가 늦었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나보다도 어리면서. 행복에는 늦은 게 없는데.
출발선에서 출발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내 모습반 있을 뿐.
세련되다
그는 나에게 자기가 아는 몇 안 되는 세련된 사람 중 하나라고 했다. 나는 쑥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의아한 마음에 그런 이가 존재하기는 하냐며 되물었다. 일상적인 단어가 문득 모호한 구름 같이 느껴져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1 서투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능숙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2 모습 따위가 말쑥하고 품위가 있다
나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 능숙한 척은 꽤 잘하는 편이지만 다 껍데기일 뿐이고 이따금씩 촌스러운 마음을 품는다. 외양도 완벽하게 꾸미는 것에 도통 성실하지 못하여 종종 허접한 차림새로 길을 걷기도 하고 화장하기 싫을 땐 붉은 피부를 그대로 드러내며 털어서 말리기만 하면 되니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것도 있다.
그는 사투리가 강한 경상도 사람이었고, 처음 만난 날 우산 속에서 나눈 몇 마디에서 우스개소리로 재수 없다는 말을 할 정도로 서울말을 낯설어했다. 좋게 말하면 또렷하고 나쁘게 말하면 세고 강하다고 하는 나의 어투마저 나긋나긋하다고 할 정도였으니 어쩌면 그가 가지고 있던 ‘서울 사람’에 대한 괜한 긍정적 이미지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정사각형 사진 속 내가 마시는 커피, 다니는 카페와 영위하는 단편적인 것들과 결국 가공해낸 것일 나의 글로 이루어진 허상 혹은 환상 속의 나를 만났다. 실제의 조악함보다 가짜일지 진짜일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는 가상의 나를 선행하여 만났다. 네모난 창 밖으로 꺼내진 만남이 잦은 요즘, 그들에게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또다른 이는 그것이 무섭다고 했다. 작은 조각들을 보고 누군가에게 호감과 선의를 품는 것이.
나는 더이상 취향을 자랑하지 않는다. 4-50년대의 재즈나 소울 뮤직이 멜론 top 100보다 더 멋지다고 생각하거나 고전 문학을 읽는다고 현대의 것들이 우습다 말하지 않는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20만원이 훌쩍 넘는 스웨트 셔츠를 입은 사람이 3만원짜리 SPA 브랜드의 것을 입은 이보다 멋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되려 세련되고 잘 갖춰진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마저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몸매와 피부결, 잘 세팅된 머리와 예쁜 화장, 은은하게 고급스럽고 비싼 가방이나 옷 같은 것에 대한, 조금은 본질이 아닌 것들에 투영된 욕심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모순의 형태이다.
심플하게 살려고 한다. 말과 글만큼은 진솔하다. 내 옆에 있어주는 이에게 진심으로 눈을 맞추고 좋아하는 커피를 열심히 마신다. 투박하고 예쁘지 않은 가치를 알아준다면 그것은 덤일 뿐이다.
모르겠습니다. 어떤 때 얼마만큼 마음을 열어야 하는지. 너무 열지 않아서 지쳐 돌아간 사람도 있고 너무 일찍 열어서 놀라 돌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작게 열어서 날 몰라준 사람도 있고 너무 많이 열어 내가 지쳐버린 때도 있었습니다.-냉정과열정사이
남자들은 아마 잘 모를텐데 여자들은 예쁜 여자 되게 좋아한다. 절대적인 ‘얼굴’을 얘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고. 나 같은 경우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굵은 아웃컬의 긴 머리에 해사한 웃음과 채도가 낮은 치크가 잘 어울리는 ‘인간 가을 웜톤’ 같은 사람? 요즘엔 어디에든 자연스럽게 자기를 잘 단장하고 매력이 총천연색인 분들이 많아서 너무 좋다. 사진도 예쁘게 찍고 대화거리도 풍부하며 심지어 말도 예쁘게 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들
전 함께인 건 싫어요, 10월 14일
왜 인간들은 ‘긍정적인 나’만을 원하고 바라는지 모르겠다. 매일 웃고 다녔더니 인생이 바뀌었어요 같은 개소리는 이제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
자주 듣는 라디오에서 얼마전에 유재명 배우가 나왔다. 유재명 배우는 기다리고 기다리다 거대한 불꽃처럼 팡하고 다가온 배우다. 한예리 배우가 “시간이 날 때 주로 어떤 일을 하세요?” 라고 물었는데 그의 대답이 진실로 꾸밈없고 소박하여 가끔 생각난다. “일단 청소를 해요. 먼지도 털고 걸레를 꽉짜서 닦고 책장도 정리하고, 그러다 마실 나가서 산책을 하고요, 틈이 날 때 한 잔 걸치는게 (전석호 배우와) 행복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좋아하는 조말론 향수를 뿌리고 퇴근 후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엉덩이를 살랑살랑 움직이며 걷는게 삶에서 제일 커다란 행복이자 유일한 행복이라면 제 인생 망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