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몇개월간, 에듀테크를 한다고 설치고 다녔다. 앞으로 적어도 몇 년간은 그러고 다닐 것이다. 지난 몇 개월간, ‘너 교대나 사대생도 아닌데 왜 에듀테크를 한다고 그래? 최첨단 기술이라도 만드는 거야?’라는 질문을 수도없이 들었다. 그럴때면, 질문자가 친구라면 ‘그냥’이라 답했고, 심사위원이라면 에듀테크는 어쩌고-‘하면서 외운 답을 줄줄 풀어놨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교육에는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학교를 증오할만큼 싫어하는 내가 어째서 에듀테크 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는지, 그 이유 말이다. 어제 솔밭공원을 눈물 철철 흘리며 걸으면서 비로소 떠올릴 수 있었다.
난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마음속에 있는 18살의 은정이가 더이상 상처를 받지 않고 회복했으면 좋겠다. 갑자기 오글거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진심이다.
18살때 같이 공부를 열심히 하던 친구들이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뒤에, 한 22살때까지 힘든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어른들이 말하는대로, 부모님 선생님 말 잘듣고 건강하고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가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건 없었다. 슬퍼하는것 이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동안 살아온 18년의 성실한 삶에 깊은 배신을 느꼈다.
교육은 분명 애들을 행복하게 해야 하는건데, 오히려 우리를 사지로 내몰았다. 누군가 이것을 통제와 명령의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어른들 전체였다. 난 심각한 마음의 병을 오롯이 홀로 견뎌내야 했고, 성적이 떨어지니 그들은 내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맞다, 공부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언제든 내 책임도 아닌 일로 죽을 수 있는거라면,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그나마 덜 억울하다. 열심히 놀았고, 또 놀았으며, 알바를 해서 돈을 많이 발었고, 또 놀았다. 학교도 가기 싫었지만 학교에 가야 합법적으로 놀 수 있으니 다니긴 다녔다. 내 삶은 끝없는 웃음과 유희, 놀이로 가득찼었고 마음 한 곳은 텅 비어있었다. 학고를 받고, 출석만 하고, 과제는 안하고 놀러다녔다. 신나게 놀고 나니 ‘이젠 갑자기 죽어도 좀 덜 억울하겠다.’ 싶었다. (맞다, 그 와중에도 철학 수업은 참 재미있었다.)
‘그래 좀 생산적으로 놀아보자.’ 해서 마케팅 교육을 갔다. 진로 상담을 받는데, 거기 선생님이 파이썬을 한번 배워보라고 했다. 나는 어학 실력도 좋고 스펙도 다 괜찮은데, 그걸 써먹으려면 파이썬을 꼭 배우라고 했다.
“은정아 너같은 애들은 능력을 하나로 모아야 된다. 파이썬을 배워라. 너같이 방황하는 애들은 일반 직장에서 못 버틴다. 넌 꼭 뭘 배워서 만들어야 되는 타입이다.”
그렇게 ‘파이썬, 파이썬,...’을 되뇌이고 다니다가, 학교에서 파이썬을 가르쳐준다는 동아리 포스터를 발견했다. 지원서를 쓰다가 날라가서, 데드라인도 넘겨서 겨우 제출했다. 당연히 떨어졌겠지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덜컥 합격 문자가 왔다.
그렇게 내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내가 한번도 바라지도, 예상하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틀어졌다. 정말 괴로웠다. 전공자들 사이에서 혼자 버벅대다가 남들이 한시간만에 하는 과제를 밤 새워가며 겨우 해야 할 때면 ‘그만 둘까.’하는 생각이 맨날 들었다. 1학기때는 집에 와서 안 울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뭔가가 나를 계속 컴퓨터 앞으로 끌어당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디어톤장에 있고, 또 정신을 차려보니 해커톤장에 있었다. 이상하게, 내가 몇년만에 처음 해본 뭔가가 계속 잘되고 있었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좋은 동료들, 좋은 팀워크 덕분이다.)
물론 욕나오는 날들이 10일이고, 좋은 순간은 일주일에 10분도 채 안된다. 내 몸을 갈아넣고, 팔자에 없는 욕을 들으면서, SNS 인싸인 척을 해서 심리적 자원을 다 갈아넣는다. 힘들고 지치지만, 뭔가가 나를 계속 끌어당기고 있다.
그건 18살의 나였다. 숏컷 머리에 눈빛이 강하고 목소리가 유난히 컸던 그 소녀, 세상에 대한 배신감에 몸서리치고, 난 꼭 책임지는 어른이 되리라 다짐했던 그 학생이다.
25살의 나는 누구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애들의 행동의 자유, 생각의 자유가 당연한 세상을 꿈꾼다. 나같이 가만히 있다가 상처받는 어린 영혼들이, 어른들 말씀 잘 들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 그런 영혼들이 더는 없는,,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울면서도 달린다. 시간이 지나면 30살의 내가 25살의 나에게 ‘그래 너 참 고생 많았다. 그래도 너 덕분에 이 땅의 애들이 더 행복해졌네. 상처받은 영혼들이 더이상 없네.’라고 어깨를 토닥여 줄 것이다.















